진실
...사랑이 우리를 함께 살게 하시어... 사랑이 우리를 함께 죽게 하리라.
프랑크푸르트 화이트존, 마인강 댐.
노을이 질 무렵, 석양이 내뿜는 빛에 구름이 금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발라드와 루니샤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둘은 죽어가는 말티즈를 품에 안은 채, 강아지를 치료해줄 병원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다행히, 발라드가 먹이를 줬던 강아지는 자전거에 짓밟히고도 기적적으로 살아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강아지를 치료해줄 의사를 찾지 못한 탓에 여전히 죽을 위기에 놓여 있었다.
미안하지만 여긴 사람이 다니는 병원이지, 동물 병원이 아니거든.
다른 병원을 알아보렴.
그런 강아지는 얼마 안 하니까 그냥 새로 한 마리 사세요. 지금 저희는 많이 바쁘거든요.
다른 환자들 기다리게 하지 말고 나가주세요.
하지만 도시의 거의 모든 의사가 그들을 거절했다. 누구도 두 아이를 위해 죽어가는 강아지를 치료해주려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여기가 이 거리의 마지막 병원인데...
가장 가까운 병원은... 여기서 10km나 더 가야 해...
하지만 거기까지 못 버틸 거야. 벌써 움직이질 않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사람이란 어릴 때 그 본성이 어떻든 간에 측은지심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발라드도 처음에 강아지에게 먹이를 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하게도 아무도 이 강아지를 맡아주려 하지 않았고, 아무도 이 오누이의 기대에 응해주지 않았다.
...빌, 나 좀 도와줄래?
뭐?
발라드는 옆에 있는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오래 달린 탓에 붉게 상기되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피거품을 뱉고 있고, 기흉 증상이 선명해.
이 강아지가 얼른 다시 호흡할 수 있게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누, 누나, 우리 둘이서...?
우리 말고 얘를 구해주려는 사람이 없잖아.
그럼 누가 얘를 구해줄 수 있겠어?
......
누나, 정말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누나가 예전에 의사를 도운 적이 있고, 나도 그런 경험이 몇 번 있긴 하지만...
날 믿어, 빌.
빌이 도저히 못 하겠다면, 전부 나한테 맡겨도 돼.
난 빌을 나무라지 않을 거니까.
그야 누나는 동생이 어른이 되기 전까지, 동생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니까.
누나의 눈빛은 더없이 굳세고 감화력이 녹아있었다.
그저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발라드는 용기가 공포를 몰아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겁쟁이조차도 현실에 맞설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의지였다.
...도와줄게.
좋아. 내가 의료 기구랑 소독약을 사올 테니까, 빌은 이 아이를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려가줘. 너무 몸이 흔들리지 않게, 차분하게 이동해.
지금 이 아이는 몹시 겁에 질려 있으니까, 만약 얘가 막 움직이려고 하면 꼭 안아줘야 해. 스스로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까, 알겠지?
누나의 지시는 침착하고 명확했다. 발라드는 한 토씨도 빠뜨리지 않고 새겨들었다.
여전히 망설여졌지만, 누나가 그렇게 말한다면...
알겠어.
빌, 우리가 해냈어!
......
정말이다... 우리가 정말로 살려냈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나 봐... 외상으로 인한 기흉 증상은 도관을 삽입해서라도 일단 숨을 쉴 수 있게 해줘야 해...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임시조치일 뿐이니까, 수의사에게 데려가야 해.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던 발라드의 긴장이 마침내 풀렸다. 설마 두 미성년자가 정말로 죽어가던 강아지를 살려낼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루니샤는 발라드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티즈의 심장 위에 얹었다.
들어봐, 이게 바로 생명이 뛰는 소리야.
이 아이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이건 모두... 네 덕분이야, 빌.
이 아이는 널 믿고 있어. 자신을 지켜준 빌을 믿기 때문에, 이렇게 아픈데도 몸부림치지 않고 참고 있는 거야.
다행이다...
그 순간 그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있더라도, 누나가 곁에 있기만 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이 기쁨을 누나와 나누려 고개를 돌려 입을 열려던 순간, 누나의 무거운 표정을 보았다.
저물어가는 석양이 그녀의 얼굴을 사선으로 비췄다.
빌, 우리가 얘를 구했으니 이제 얘는 우리 강아지야.
이름을 지어주는 게 어때?
이름... 뭐라고 지어야 좋을까?
발라드는 이름을 짓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 역할은 누나에게 넘어갔다.
그럼 빌이라고 부르자!
뭐? 빌은 내 이름인데...?
아니지~
빌은 언젠가 어른이 되어서, 빌이 아닌 발라드가 될 거잖아?
하지만 이 작은 빌은 언제나 빌일 수 있으니까.
그러자 루니샤의 얼굴에서 미소가 조금 옅어졌다... 약간의 쓸쓸함이 그녀의 얼굴에 번졌다.
누나의 사명은 동생이 어른으로 자랄 때까지 지켜주는 거야.
하지만 내게는... 사실 말하기 부끄러운 작은 소원이 있어...
빌이 언제까지나 빌이었으면 좋겠어... 발라드도 아니고, 오버슈타인도 아니었으면 좋겠어...
누나의 손이 발라드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눈엔 눈물이 맺힌 듯하면서도, 그 속에는 웃음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네가 언제나 지금이랑 똑같은 키면 좋겠다. 그러면 누나가 평생 빌을 지켜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네가 반드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언젠가 어엿한 어른으로 자랄 운명이라면...
그럼 이 조그마하고 귀여운 빌이 대신 곁에 있어주면 좋겠어...
발라드는 멍하니 서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나... 왜 그런 생각을 해?
나는 언제까지나 누나의 동생일 수 있잖아... 누나 앞에서는 영원히 그냥 작은 빌이어도 괜찮은데.
아니, 빌에겐 이 세상을 바꿀 사명이 있어.
뭐?
발라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로, 누나가 서서히 쓸쓸한 감정을 추스르고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봤다.
빌, 네가 나한테 저번에 물어본 거 기억해?
무슨 질문?
이 세상이 정말 올바른 건가 물었잖아?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하는 어른들, 상처로 가득한 전쟁터, 이기심으로 가득한 사회...
그리고 약육강식이라는 이치를 떠받들며 너를 때렸던 그 나쁜 녀석들까지...
왜인지 모르게,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살벌한 분노가 누나의 주위를 맴도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럼 빌은 이 모든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뭔가 하고 싶지 않아?
예를 들어... 세상의 흐름을 바꿔서 모든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든가.
난...
발라드도 누나가 던진 질문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있었다. 다만 요즘 누나 곁에 오래 있으면서, 누나의 따스함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누나의 곁은 너무 따뜻해서, 그는 오랫동안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온기에 푹 빠져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빌이 분명 이런 문제들을 늘 고민하고 있는 아이란 걸 알고 있어서야.
어릴 적부터 빌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으니까. 누나는 다 알아...
이 잔혹한 세상은, 이렇게 조그마한 강아지조차도 폭력을 피할 수 없어.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도 말할 수 없이 많고.
누나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게 하자!
낡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든... 나는 할 수 있어!
누나만... 누나만 내 곁에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듣고 루니샤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발라드의 단호한 얼굴을 보자, 그녀는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 며칠 사이에 빌도 참 많이 자랐구나...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도 그런 기분이 들어...
빌이... 곁에 있어 주면, 이 누나도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신세계라... 어쩌면 괜찮을지도.
나랑 빌이 손을 잡으면 정말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을지도 몰라...
그곳은 착취도 없고, 박해도 없고, 모두가 평등하게 푸른 잔디밭 위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세상일 거야.
때가 오면, 우리가 진정한 천국을 만드는 거야...
발라드는 루니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 그녀의 맑은 이마가 드러났다.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운명 속 여신을 보았다. 여신은 그에게 손을 내밀면서, 자신을 새로운 세계로 초대했다.
발라드는 그날의 매 순간들을 뇌리 깊은 곳에 새겨두었다.
빌, 사랑하는 내 동생.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거야. 그곳의 생명들이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어.
그곳이야말로, 약속의 땅.
지복의 정경이 펼쳐진 곳.
주께서 내리신 거룩한 선물.
새로이 탄생한 지고지상의 만물을 위한 순수한 낙원.
이 순간, 원대한 계획이 시간의 좌표 위에 미세한 이정표를 새겼다.
몇 년 후, 발라드는 윌리엄으로 성장할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 순간, 누나의 순수한 얼굴에 매료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바로 그때, 그는 마음속으로 누나의 바람에 따라 맹세했다.
나를 거쳐 번뇌의 성으로,
나를 거쳐 극락의 탑으로,
나를 거쳐 버림받은 자들 사이로 갈지어니.
정의로 창조주는 움직이시어,
전능하신 힘과 지고하신 지혜,
원초의 사랑으로 우리를 만드셨도다.
나 이전에 태어난 것 없었으며, 나 영원히 존재하리.
우리는 함께하리라.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곳에서, 저주도 축복도 받지 아니하매. 나는 죽지도 아니하고, 살아있지도 아니하다.
...사랑이 우리를 함께 살게 하시어,
사랑이 우리를 함께 죽게 하리라.
마치 아주 기나긴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그 꿈 속에서, 그는 누나와 함께 새로운 세계로 향하자고 약속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약속을 이행할 때가 왔다...
프랑크푸르트, 슈타지 청사 지하 "종점" 실험실.
그는 망연함 속에서 깨어났다.
눈앞에는 텅 빈 수술대만 있었고, 루니샤는 사라져 있었다.
누나...? 우리... 성공한 거야?
여기가... 여기가 우리의 신세계...인 거야?
어질어질한 몸을 이끌고 일어섰다.
...누나는 그의 곁에 없었다.
...누나?
누나!
두 번이나 크게 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바로 뒤에서 폭탄이 터지고 충격파에 휘말려 기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누나가 눈을 뜬 것을 똑똑히 본 기억만큼은 선명했다.
윌리엄은 몸을 더듬어 회중시계를 꺼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기능을 멈춘 지 오래였다.
칫...
수술실에서 나온 윌리엄은 바닥에 쓰러져있는 시체를 발끝으로 툭 찼다.
그것이 한 검은 니토의 몸뚱이라는 것을 알아봤고, 그 옆에는 인형의 팔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쓰레기들...
...이게 왜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거지?
여긴 아직도... 원래 세계인 건가?
누나... 누나는...?
건물 안은 온통 격전의 잔해로 가득했다. 이런 것들은 신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됐다. 이것은 그와 누나가 그려온 그림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그는 당혹함을 느꼈다.
원래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할 모든 것, 약속된 미래의 풍경과 신의 계시가, 삽시간에 그에게 흉포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는 셧다운된 인형들을 지나치고, 니토의 몸뚱이를 하나씩 걷어차며, 무너진 흙더미를 넘어 차갑도고 긴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햇빛 아래에 도착했을 때, 잿빛 폐허가 된 프랑크푸르트 화이트존을 마주했다.
——정지! 움직이지 마라!
그러나 막 지면에 올라오자마자, 군대가 그를 포위했다.
군인들 사이로 길이 열리더니, 그 남자... 그리폰 라이언이 천천히 그의 앞으로 걸어나왔다.
...네가 한 짓인가?
네가 그런 질문을 하다니, 뜻밖이군.
그녀는 어디에 있지? 누굴 말하는 건지는 알고 있을 테니 묻지 마.
윌리엄의 질문을 들은 훈작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은 객관적으로는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윌리엄에게는 끝이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이미 지휘관과 함께 프랑크푸르트를 떠났네.
......
............
......나한테 농담하는 거라면, 들어줄 생각 없는데.
나도 방금 내가 한 말이 농담이었으면 좋겠군.
................
정객으로서 그리폰 라이언이 가장 잘하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의미 없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무슨 의미지?
누가, 누구하고?
지금까지 그는 일개 PMC의 인간 지휘관 따위는 눈에 두지 않았다. 그가 일으킨 문제들도 전부 계획 도중 피할 수 없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저항의 일부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 말은 즉, 그리폰의 지휘관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PMC의 지휘관이든, 어디선가 튀어나온 아무개든, 결국 방해하는 자가 나와 훼방을 놓을 것이 뻔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는 그 지휘관이 어떤 존재인지 같은 건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건, 루니샤의 결정이었다.
왜... 루니샤가 그런 하찮은 지휘관 나부랭이랑 떠났다는 거야?
윌리엄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귓가에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와 자신의 의문에 답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훈작사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루련에 합류한 것을 환영하네, 미스터 윌리엄.
그러고서 훈작사는 뒤돌아 떠났다. 그가 대동한 군대도 함께 슈타지 청사에서 철수했다.
윌리엄에게는 소수의 인원만을 호위 겸해 남겨둔 채로.
프랑크푸르트의 전투가 막을 내린 것도, 자신이 새롭게 세워진 루련에 받아들여졌다는 것도 알었다.
하지만...
루니샤의 선택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멀리 펼쳐진 하늘엔 짙은 먹구름만이 가득해서 날씨는 우중충했다.
윌리엄은 고개를 숙인 채, 곁에 있는 이들을 따라서 이 폐허를 떠났다.
...아니야, 이건 말도 안 돼...
예...? 윌리엄 씨, 무슨 지시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후후, 아무것도 아니야...
윌리엄은 고개를 돌려 질문한 장교를 향해 평생 잊지 못할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건 웃는 얼굴이라고 부르기엔 어려운 표정이었다.
누나가 어떻게 나와의 약속을 어기겠어?
그녀는 바로 여기 있어, 어디에도 가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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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화이트존, 마인강 댐.
노을이 질 무렵, 석양이 내뿜는 빛에 구름이 금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발라드와 루니샤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둘은 죽어가는 말티즈를 품에 안은 채, 강아지를 치료해줄 병원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다행히, 발라드가 먹이를 줬던 강아지는 자전거에 짓밟히고도 기적적으로 살아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강아지를 치료해줄 의사를 찾지 못한 탓에 여전히 죽을 위기에 놓여 있었다.
미안하지만 여긴 사람이 다니는 병원이지, 동물 병원이 아니거든.
다른 병원을 알아보렴.
그런 강아지는 얼마 안 하니까 그냥 새로 한 마리 사세요. 지금 저희는 많이 바쁘거든요.
다른 환자들 기다리게 하지 말고 나가주세요.
하지만 도시의 거의 모든 의사가 그들을 거절했다. 누구도 두 아이를 위해 죽어가는 강아지를 치료해주려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여기가 이 거리의 마지막 병원인데...
가장 가까운 병원은... 여기서 10km나 더 가야 해...
하지만 거기까지 못 버틸 거야. 벌써 움직이질 않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사람이란 어릴 때 그 본성이 어떻든 간에 측은지심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발라드도 처음에 강아지에게 먹이를 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하게도 아무도 이 강아지를 맡아주려 하지 않았고, 아무도 이 오누이의 기대에 응해주지 않았다.
...빌, 나 좀 도와줄래?
뭐?
발라드는 옆에 있는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오래 달린 탓에 붉게 상기되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피거품을 뱉고 있고, 기흉 증상이 선명해.
이 강아지가 얼른 다시 호흡할 수 있게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누, 누나, 우리 둘이서...?
우리 말고 얘를 구해주려는 사람이 없잖아.
그럼 누가 얘를 구해줄 수 있겠어?
......
누나, 정말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누나가 예전에 의사를 도운 적이 있고, 나도 그런 경험이 몇 번 있긴 하지만...
날 믿어, 빌.
빌이 도저히 못 하겠다면, 전부 나한테 맡겨도 돼.
난 빌을 나무라지 않을 거니까.
그야 누나는 동생이 어른이 되기 전까지, 동생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니까.
누나의 눈빛은 더없이 굳세고 감화력이 녹아있었다.
그저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발라드는 용기가 공포를 몰아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겁쟁이조차도 현실에 맞설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의지였다.
...도와줄게.
좋아. 내가 의료 기구랑 소독약을 사올 테니까, 빌은 이 아이를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려가줘. 너무 몸이 흔들리지 않게, 차분하게 이동해.
지금 이 아이는 몹시 겁에 질려 있으니까, 만약 얘가 막 움직이려고 하면 꼭 안아줘야 해. 스스로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까, 알겠지?
누나의 지시는 침착하고 명확했다. 발라드는 한 토씨도 빠뜨리지 않고 새겨들었다.
여전히 망설여졌지만, 누나가 그렇게 말한다면...
알겠어.
빌, 우리가 해냈어!
......
정말이다... 우리가 정말로 살려냈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나 봐... 외상으로 인한 기흉 증상은 도관을 삽입해서라도 일단 숨을 쉴 수 있게 해줘야 해...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임시조치일 뿐이니까, 수의사에게 데려가야 해.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던 발라드의 긴장이 마침내 풀렸다. 설마 두 미성년자가 정말로 죽어가던 강아지를 살려낼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루니샤는 발라드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티즈의 심장 위에 얹었다.
들어봐, 이게 바로 생명이 뛰는 소리야.
이 아이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이건 모두... 네 덕분이야, 빌.
이 아이는 널 믿고 있어. 자신을 지켜준 빌을 믿기 때문에, 이렇게 아픈데도 몸부림치지 않고 참고 있는 거야.
다행이다...
그 순간 그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있더라도, 누나가 곁에 있기만 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이 기쁨을 누나와 나누려 고개를 돌려 입을 열려던 순간, 누나의 무거운 표정을 보았다.
저물어가는 석양이 그녀의 얼굴을 사선으로 비췄다.
빌, 우리가 얘를 구했으니 이제 얘는 우리 강아지야.
이름을 지어주는 게 어때?
이름... 뭐라고 지어야 좋을까?
발라드는 이름을 짓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 역할은 누나에게 넘어갔다.
그럼 빌이라고 부르자!
뭐? 빌은 내 이름인데...?
아니지~
빌은 언젠가 어른이 되어서, 빌이 아닌 발라드가 될 거잖아?
하지만 이 작은 빌은 언제나 빌일 수 있으니까.
그러자 루니샤의 얼굴에서 미소가 조금 옅어졌다... 약간의 쓸쓸함이 그녀의 얼굴에 번졌다.
누나의 사명은 동생이 어른으로 자랄 때까지 지켜주는 거야.
하지만 내게는... 사실 말하기 부끄러운 작은 소원이 있어...
빌이 언제까지나 빌이었으면 좋겠어... 발라드도 아니고, 오버슈타인도 아니었으면 좋겠어...
누나의 손이 발라드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눈엔 눈물이 맺힌 듯하면서도, 그 속에는 웃음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네가 언제나 지금이랑 똑같은 키면 좋겠다. 그러면 누나가 평생 빌을 지켜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네가 반드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언젠가 어엿한 어른으로 자랄 운명이라면...
그럼 이 조그마하고 귀여운 빌이 대신 곁에 있어주면 좋겠어...
발라드는 멍하니 서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나... 왜 그런 생각을 해?
나는 언제까지나 누나의 동생일 수 있잖아... 누나 앞에서는 영원히 그냥 작은 빌이어도 괜찮은데.
아니, 빌에겐 이 세상을 바꿀 사명이 있어.
뭐?
발라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로, 누나가 서서히 쓸쓸한 감정을 추스르고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봤다.
빌, 네가 나한테 저번에 물어본 거 기억해?
무슨 질문?
이 세상이 정말 올바른 건가 물었잖아?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하는 어른들, 상처로 가득한 전쟁터, 이기심으로 가득한 사회...
그리고 약육강식이라는 이치를 떠받들며 너를 때렸던 그 나쁜 녀석들까지...
왜인지 모르게,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살벌한 분노가 누나의 주위를 맴도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럼 빌은 이 모든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뭔가 하고 싶지 않아?
예를 들어... 세상의 흐름을 바꿔서 모든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든가.
난...
발라드도 누나가 던진 질문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있었다. 다만 요즘 누나 곁에 오래 있으면서, 누나의 따스함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누나의 곁은 너무 따뜻해서, 그는 오랫동안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온기에 푹 빠져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빌이 분명 이런 문제들을 늘 고민하고 있는 아이란 걸 알고 있어서야.
어릴 적부터 빌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으니까. 누나는 다 알아...
이 잔혹한 세상은, 이렇게 조그마한 강아지조차도 폭력을 피할 수 없어.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도 말할 수 없이 많고.
누나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게 하자!
낡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든... 나는 할 수 있어!
누나만... 누나만 내 곁에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듣고 루니샤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발라드의 단호한 얼굴을 보자, 그녀는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 며칠 사이에 빌도 참 많이 자랐구나...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도 그런 기분이 들어...
빌이... 곁에 있어 주면, 이 누나도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신세계라... 어쩌면 괜찮을지도.
나랑 빌이 손을 잡으면 정말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을지도 몰라...
그곳은 착취도 없고, 박해도 없고, 모두가 평등하게 푸른 잔디밭 위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세상일 거야.
때가 오면, 우리가 진정한 천국을 만드는 거야...
발라드는 루니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 그녀의 맑은 이마가 드러났다.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운명 속 여신을 보았다. 여신은 그에게 손을 내밀면서, 자신을 새로운 세계로 초대했다.
발라드는 그날의 매 순간들을 뇌리 깊은 곳에 새겨두었다.
빌, 사랑하는 내 동생.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거야. 그곳의 생명들이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어.
그곳이야말로, 약속의 땅.
지복의 정경이 펼쳐진 곳.
주께서 내리신 거룩한 선물.
새로이 탄생한 지고지상의 만물을 위한 순수한 낙원.
이 순간, 원대한 계획이 시간의 좌표 위에 미세한 이정표를 새겼다.
몇 년 후, 발라드는 윌리엄으로 성장할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 순간, 누나의 순수한 얼굴에 매료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바로 그때, 그는 마음속으로 누나의 바람에 따라 맹세했다.
나를 거쳐 번뇌의 성으로,
나를 거쳐 극락의 탑으로,
나를 거쳐 버림받은 자들 사이로 갈지어니.
정의로 창조주는 움직이시어,
전능하신 힘과 지고하신 지혜,
원초의 사랑으로 우리를 만드셨도다.
나 이전에 태어난 것 없었으며, 나 영원히 존재하리.
우리는 함께하리라.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곳에서, 저주도 축복도 받지 아니하매. 나는 죽지도 아니하고, 살아있지도 아니하다.
...사랑이 우리를 함께 살게 하시어,
사랑이 우리를 함께 죽게 하리라.
마치 아주 기나긴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그 꿈 속에서, 그는 누나와 함께 새로운 세계로 향하자고 약속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약속을 이행할 때가 왔다...
프랑크푸르트, 슈타지 청사 지하 "종점" 실험실.
그는 망연함 속에서 깨어났다.
눈앞에는 텅 빈 수술대만 있었고, 루니샤는 사라져 있었다.
누나...? 우리... 성공한 거야?
여기가... 여기가 우리의 신세계...인 거야?
어질어질한 몸을 이끌고 일어섰다.
...누나는 그의 곁에 없었다.
...누나?
누나!
두 번이나 크게 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바로 뒤에서 폭탄이 터지고 충격파에 휘말려 기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누나가 눈을 뜬 것을 똑똑히 본 기억만큼은 선명했다.
윌리엄은 몸을 더듬어 회중시계를 꺼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기능을 멈춘 지 오래였다.
칫...
수술실에서 나온 윌리엄은 바닥에 쓰러져있는 시체를 발끝으로 툭 찼다.
그것이 한 검은 니토의 몸뚱이라는 것을 알아봤고, 그 옆에는 인형의 팔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쓰레기들...
...이게 왜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거지?
여긴 아직도... 원래 세계인 건가?
누나... 누나는...?
건물 안은 온통 격전의 잔해로 가득했다. 이런 것들은 신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됐다. 이것은 그와 누나가 그려온 그림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그는 당혹함을 느꼈다.
원래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할 모든 것, 약속된 미래의 풍경과 신의 계시가, 삽시간에 그에게 흉포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는 셧다운된 인형들을 지나치고, 니토의 몸뚱이를 하나씩 걷어차며, 무너진 흙더미를 넘어 차갑도고 긴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햇빛 아래에 도착했을 때, 잿빛 폐허가 된 프랑크푸르트 화이트존을 마주했다.
——정지! 움직이지 마라!
그러나 막 지면에 올라오자마자, 군대가 그를 포위했다.
군인들 사이로 길이 열리더니, 그 남자... 그리폰 라이언이 천천히 그의 앞으로 걸어나왔다.
...네가 한 짓인가?
네가 그런 질문을 하다니, 뜻밖이군.
그녀는 어디에 있지? 누굴 말하는 건지는 알고 있을 테니 묻지 마.
윌리엄의 질문을 들은 훈작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은 객관적으로는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윌리엄에게는 끝이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이미 지휘관과 함께 프랑크푸르트를 떠났네.
......
............
......나한테 농담하는 거라면, 들어줄 생각 없는데.
나도 방금 내가 한 말이 농담이었으면 좋겠군.
................
정객으로서 그리폰 라이언이 가장 잘하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의미 없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무슨 의미지?
누가, 누구하고?
지금까지 그는 일개 PMC의 인간 지휘관 따위는 눈에 두지 않았다. 그가 일으킨 문제들도 전부 계획 도중 피할 수 없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저항의 일부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 말은 즉, 그리폰의 지휘관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PMC의 지휘관이든, 어디선가 튀어나온 아무개든, 결국 방해하는 자가 나와 훼방을 놓을 것이 뻔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는 그 지휘관이 어떤 존재인지 같은 건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건, 루니샤의 결정이었다.
왜... 루니샤가 그런 하찮은 지휘관 나부랭이랑 떠났다는 거야?
윌리엄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귓가에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와 자신의 의문에 답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훈작사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루련에 합류한 것을 환영하네, 미스터 윌리엄.
그러고서 훈작사는 뒤돌아 떠났다. 그가 대동한 군대도 함께 슈타지 청사에서 철수했다.
윌리엄에게는 소수의 인원만을 호위 겸해 남겨둔 채로.
프랑크푸르트의 전투가 막을 내린 것도, 자신이 새롭게 세워진 루련에 받아들여졌다는 것도 알었다.
하지만...
루니샤의 선택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멀리 펼쳐진 하늘엔 짙은 먹구름만이 가득해서 날씨는 우중충했다.
윌리엄은 고개를 숙인 채, 곁에 있는 이들을 따라서 이 폐허를 떠났다.
...아니야, 이건 말도 안 돼...
예...? 윌리엄 씨, 무슨 지시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후후, 아무것도 아니야...
윌리엄은 고개를 돌려 질문한 장교를 향해 평생 잊지 못할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건 웃는 얼굴이라고 부르기엔 어려운 표정이었다.
누나가 어떻게 나와의 약속을 어기겠어?
그녀는 바로 여기 있어, 어디에도 가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