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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 양자요동

「신세계」

"너"는 수천만 가지 갈림길을 마련하겠지만, "나"는 항상 가장 깊고 험난한 길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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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4년 X월 X일, 프랑크푸르트 화이트존의 호텔

각종 고급 의료 기기가 호텔 스위트룸에 실려왔다.

감시 요원

......

지휘관

......

온갖 고급 의료 기기들과 함께 들어온 의사들이 지휘관에게 철저하게 신체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동안 건장한 체격의 요원이 문앞에서 한 발짝도 비키지 않고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의사

...어라, 왼쪽 어깨 상처는 최근에 생긴 거네요? 어쩌다 다치셨습니까?

지휘관

스트레칭하다가 그만 상처가 벌어졌어요.

제가 직접 처치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니토가 찌른 곳을 의사가 물어보는 순간, 요원이 고개를 숙여 이어폰으로 무언가를 보고했다. 하지만 지휘관 쪽에서 요원이 하는 말을 자세하게 들을 순 없었다.

의사

조심하세요. 지금 몸 상태로 격하게 움직이시는 건 절대 안 됩니다.

다친 곳은 가급적 움직이지 마시고, 혈압과 간 효소 수치가 높은 편인데, 이건 아무래도 피로가 원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지휘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남은 검사 동안 지휘관도 의사들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방 안에는 오직 의료 기기의 소음만 울려 퍼졌다.

의사

다른 이상은 없군요, 푹 쉬세요.

마침내 기나긴 검사가 끝났고, 의사들은 장비들을 정리하여 포장한 뒤 줄지어 방을 떠났다.

문을 지키던 요원은 방을 검사했다. 침대 밑이든 커튼 뒤든 어느 곳도 빠짐 없이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요원은 나가면서 문을 조용히 닫았다.

지휘관

...후우.

이제야 스위트룸이 조용해졌다. 지휘관은 한숨을 내쉬면서 소파에 누워 미간을 주물렀다.

삑.

이때 책상 위에 놓은 태블릿이 반짝 켜졌다.

댄들라이

<color=#00CCFF>우리 지휘관님, 받는 대우가 참 대단하네요. 한 국가의 대통령 수준은 되어야 머물 수 있는 스위트룸에서 지내시면서 빈틈없는 의료 서비스까지 받고 계시니까 말이에요.</color>

<color=#00CCFF>방금 그 의사들의 신분은 확인해 보셨나요? 안에 카롤린스카 연구소 재직 교수까지 있었어요.</color>

지휘관

그 정도로 수준 높은 의사들이니까 아마 내가 습격당한 일을 눈치챘을 거야.

계획 준비를 서둘러야 해.

댄들라이

<color=#00CCFF>계획은 아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조금 전에 귀여운 보급관분께서 404와 함께 M16에게 합류했어요.</color>

지휘관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면서 연락을 기다리라고 해.

딩동!

이때 방의 초인종이 울렸다.

지휘관

...누구십니까?

초인종이 울리는 순간 태블릿의 화면이 꺼졌다.

댄들라이의 모습과 녀석이 침입한 흔적은 순식간에 지워졌다.

지휘관은 문으로 걸어가 인터폰을 켰다.

???

<color=#00CCFF>문을 좀 열어줄 수 있겠나, 지휘관. 자네를 보러 왔다네.</color>

지휘관은 인터폰 화면으로 문 앞에 다른 요원이나 사람은 없고 하벨만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지휘관은 문을 열고 하벨이 들어오게 했다.

하벨

어떤가, 여긴 지내기 편안한가?

혹시 불편하면 내가 다른 호텔로 옮겨줄 수 있다네.

지휘관

...아뇨, 여기로도 괜찮습니다.

하벨

의사한테 다친 걸 한참 내버려뒀다고 들었네.

몸을 소중히 여기게나, 지휘관. 자네는 이 프랑크푸르트의 영웅 아닌가.

지휘관

그냥 가벼운 상처입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벨

자네를 억지로 끌고 온 일은 부디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주게.

훈작사가 부탁해서 그런 것이기도 하고, 자네의 안전을 위해서기도 하네.

지휘관

하벨 씨... 여기까지 직접 행차하신 건 아마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용건이 있어서겠죠?

하벨은 조용히 소파에 앉아 어떻게 입을 열지 고민했다.

하벨

자네의 금성 훈장 말일세...

훈작사는 좀 더 정식적인 자리에서 수여하길 원하네.

...다른 사람과 함께 말일세.

지휘관

...흥.

지휘관은 콧방귀를 뀌고 입을 다물었다.

하벨

이게 자네에겐 큰 도전이라는 것은 알고 있네.

그래도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훈작사의 지원 없이는 자네는 어떤 작전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걸.

개인의 힘으로 대세를 막을 수는 없다네.

지휘관

......

하벨

자네 자신을 위해서라도, 주변 사람을 위해서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생각해 보게나.

...서로가 어색해질 만한 이런 대화는 통신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벨은 지휘관에게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 직접 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휘관은 계속 침묵을 유지한 채로, 창밖의 화이트존 길거리를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하벨

...방에 있는 저 글렌리벳, 나도 한 번밖에 못 마셔 본 물건일세.

훈작사의 주선으로 IOP와 그리폰이 협력을 체결할 때 일이었지.

그 양반이 그걸 여기에 둔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나?

창밖에는 가지런한 도로가 이어져 있고, 홀로그램으로 만들어낸 구름이 천장에 있는 푸른 스크린에 느긋한 자태로 떠다녔다.

이곳은 지하에 위치한 화이트존, 프랑크푸르트의 정치·상업계의 중요 인사와 각국 고위 인사 대부분이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엉망진창이 되어 재건을 기다리는 지면과 달리, 이곳 길거리는 전쟁의 여파를 거의 받지 않고 여전히 깔끔했다.

지휘관

...하벨 씨.

제게 벌어주신 12시간에 대해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하벨

글쎄,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구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내가 감사를 받을 수는 없네.

다만... 젊은이의 생각은 늙은이들하고는 자주 다른 편이지, 특히 변혁의 시대일수록 말일세.

하벨은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났다.

하벨

나중에 또 이렇게 함께 앉아서 수다를 떨 수 있기를 바라네, 지휘관.

무슨 주제든 좋으니 말일세.

지휘관

...저도 그럴 수 있길 바랍니다.

하벨이 떠난 뒤, 지휘관은 길고 긴 사색에 빠졌다.

이 며칠 동안, 지휘관은 예전처럼 사방을 분주하게 다니기 힘든 처지에 있었다.

이런 시간은 머리를 굴리기 정말 좋다.

조용하고, 침묵에 잠긴 채로, 효과적인... 그런 생각을...

댄들라이

<color=#00CCFF>어머어머, 설마 저 영감님 말에 흔들린 건 아니시죠?</color>

태블릿 화면이 다시 켜졌다.

지휘관은 능청맞은 댄들라이를 무시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에서 굴렸다.

지휘관

...댄들라이, "침투"가 어디까지 됐는지 보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