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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 양자요동

「끝없는 어둠 저편」

"일생은 너무나도 짧아, 그저 한 명의 용감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았다."

-77-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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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암호화 통신 채널이 울렸다.

AR-18

지휘관, 훈작사에게서 통신입니다.

지휘관

......

지휘관은 잠시 침묵하며 감정을 억눌렀다.

지휘관

연결해.

지휘관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약간 피로가 비치던 얼굴을 다시 평소의 침착한 표정으로 되돌렸다.

통신기 쪽으로 돌아서자, 화면에는 익숙하면서도 지금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는 얼굴이 나타났다.

지휘관

훈작사, 지시라도 있으십니까?

훈작사

<color=#00CCFF>우선 자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네.</color>

<color=#00CCFF>프랑크푸르트에서 자네는 자신과 G&K 모두에게 명예를 가져다줬네.</color>

훈작사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고, 그 속에서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지휘관

...감사합니다. 그럼, 임무에 관해서... 제가 알아야 할 <b>정보</b>가 또 있습니까?

지휘관은 "정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훈작사가 단순히 축하하기 위해서 연락했을 리가 없기에.

훈작사

<color=#00CCFF>임무라면 이미 끝났네, 지휘관.</color>

<color=#00CCFF>아니면, 무엇을 더 알고 싶은 건가?</color>

훈작사

<color=#00CCFF>베를린으로 돌아오면 우리 함께 한잔하세나, 크루거와 함께 말이지.</color>

지휘관

그렇습니까? 저는 아직 끝이라고 생각 안 합니다.

훈작사

<color=#00CCFF>배후 주도자 카터는 이미 사망했네.</color>

훈작사

<color=#00CCFF>왜 끝나지 않았다는 겐가?</color>

콰앙—!

지휘관이 손바닥으로 제어콘솔을 내리쳤다. 스크린의 영상마저 약간 흔들릴 정도였다.

그 돌발적인 행동이 훈작사의 말을 끊어버렸다.

지휘관

무슨 말인지 설명해야 아십니까, 훈작사?

지휘관

패러데우스와 윌리엄이 남아있는 이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훈작사

<color=#00CCFF>하지만 자네의 임무는 끝났다네.</color>

훈작사는 목소리에 무게감을 주며 말을 이었다.

훈작사

<color=#00CCFF>나머지 일은 내게 맡겨주게.</color>

지휘관

...맡기면 어쩌실 셈입니까?

지휘관

패러데우스를 손에 넣으실 겁니까? 윌리엄을 휘하에 두시게요?

놈이 무슨 짓을 했든, 살짝 세탁하면 아무 일도 없어지는 줄 아십니까?

훈작사

<color=#00CCFF>언행에 주의하게, 지휘관.</color>

그제야 훈작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훈작사

<color=#00CCFF>자네의 일시적인 감정은 참아줄 수 있네. 하지만 나는 자네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전장에서 지내왔다네.</color>

지휘관

<size=50>대체 그게 어느 시절의 이야기입니까!</size>

<size=50>지금 당신에겐 전장에서 희생된 사람들에게는 관심 없지 않습니까!</size>

지휘관의 목소리가 혈기와 분노로 갑자기 높아졌다.

지휘관

<size=50>이아손의 상자에 죽은 시민들, 패러데우스의 실험 재료가 된 사람들!</size>

지휘관

그 사람들이 당신 눈에 들어온 적이 있습니까?

지휘관

당신에겐 그 사람들 모두 보잘것없는 희생양일 뿐입니까?

지휘관

윌리엄의 목숨이 그들보다 훨씬 값지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훈작사

<color=#00CCFF>루련의 성립이 바로 코앞이네. 오버슈타인과 카터가 모든 책임을 끌어안았어.</color>

훈작사

<color=#00CCFF>이것이 바로, 모두의 희생을 보듬어줄 최선의 방식이란 말일세.</color>

훈작사

<color=#00CCFF>이제 곧 평화의 시대가 올 걸세. 그런데 자네는 다시 한 번 전란을 일으킬 셈인가?</color>

<color=#00CCFF>...지휘관?</color>

지휘관

죽은 이들의 영혼은 당신처럼 너그럽게 말하지 못할 겁니다.

지휘관의 목소리가 완전히 식어버렸다.

지휘관

당신이 일컫는 평화란 건 거짓말과 시체 위에 억지로 세운 모래성에 불과합니다.

지휘관

저는 이런 식으로 해결하는 거,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지휘관

프랑크푸르트에서 죽은 이들도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훈작사

<color=#00CCFF>그 입 다물게.</color>

훈작사의 얼굴에 처음으로 분노가 드러났다.

훈작사

<color=#00CCFF>지휘관, 자네는 아직 너무 젊네.</color>

훈작사

<color=#00CCFF>젊은 혈기로 자기가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color>

훈작사

<color=#00CCFF>그렇게 큰소리칠 수 있는 토대를 과연 누가 깔아준 건지도 잊어버리고 말이네.</color>

지휘관

제가 젊긴 하지만,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지휘관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분노한 훈작사를 두려움 없이 똑바로 마주보았다.

지휘관

전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목숨도 주저 없이 내놓을 수 있습니다.

지휘관

하지만 먼저, 패러데우스와 윌리엄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합니다.

지휘관

이대로,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훈작사

<color=#00CCFF>......</color>

훈작사

<color=#00CCFF>크루거가 너무 오냐오냐 해준 바람에, 자기 분수를 잊어버린 모양이군.</color>

훈작사

<color=#00CCFF>아무래도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닫게 해줘야겠군.</color>

뚝.

통신이 일방적으로 끊어지더니 화면이 그대로 꺼졌다.

지휘관은 분노로 꽉 쥐었던 찌그러진 소파 팔걸이를 놓고, 두근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런데 바로 그때.

——퉁.

엘모호의 메인 전원이 끊어졌다.

비상등도 두 번 정도 깜빡이더니 그대로 꺼졌다.

순간, 완전한 어둠과 정적이 마치 심해 괴수처럼 지휘실을 집어삼켜 버렸다.

지휘관

......

AR-18

지휘관, 엘모호의 에너지 시스템이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AR-18

예비 전원까지 원격 권한으로 잠겨, 엘모호의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지휘관

다른 건 없어?

AR-18

......!

AR-18

지휘관, IOP제 인형이 모두 강제로 오프라인으로 전환되었습니다.

AR-18

IOP제 인형 중 그 누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지휘관

하벨 씨께 연락해 줘.

지휘관

그리고 내부 통신으로 연결되는 모든 인형을 작전실로 집결시켜.

이동 통신 설비의 홀로그램이 켜지며, 하벨의 수심 가득한 얼굴이 나타났다.

하벨

<color=#00CCFF>...지휘관.</color>

<color=#00CCFF>이런 상황에서 보는 날이 오지 않길 바랐네.</color>

지휘관

보아하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계시나 보군요.

하벨

<color=#00CCFF>...니드호그 프로토콜, 혹시 크루거에게서 들어본 적 있나?</color>

지휘관

무슨 프로토콜이죠?

하벨

<color=#00CCFF>G&K와 IOP의 협력 관계에 걸려 있는 최고 권한 프로토콜이라네.</color>

<color=#00CCFF>이 프로토콜을 발동하면 IOP와 G&K의 협력 관계는 종료일세.</color>

<color=#00CCFF>모든 IOP제 인형의 가동을 정지시키고,</color>

<color=#00CCFF>자네의 지휘 권한을 강제로 회수하는 프로토콜이라네.</color>

지휘관

그러니까, 지금 그 프로토콜이 발동한 거군요.

되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미 일어난 일을 확인할 뿐이었다.

통신 저편에서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탄식이 들려왔다.

하벨

<color=#00CCFF>이론상으로는... 이 프로토콜은 원래 내가 실행하기로 되어 있네.</color>

하벨

<color=#00CCFF>훈작사가 자네와 통신을 마치면, 내가 바로 자네에게 연락할 생각이었지.</color>

하벨

<color=#00CCFF>그런데...</color>

지휘관

훈작사가 먼저 프로토콜을 발동시킨 거군요.

...제가 그의 성질을 세게 건드린 모양입니다.

통신 너머에선 침묵만 흘러나왔다. 지금은 이 침묵이 가장 좋은 대답이었다.

하벨

<color=#00CCFF>나는 자네가 조금 진정하길 바라네, 지휘관.</color>

<color=#00CCFF> 나도 자네가 오늘 여기까지 오는 것을 쭉 지켜봐 왔네. 자네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힘든 길이었는지도 잘 알고 있지.</color>

<color=#00CCFF>지금 상황과 국면상으론, 신소련으로 돌아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르네.</color>

지휘관

저는 빈손이 되더라도 윌리엄을 끝까지 쫓아가 죽일 겁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지금 제가 그 일을 맡았을 뿐입니다.

하벨

<color=#00CCFF>바보 같은 짓은 피했으면 좋겠네. 특히 내 도움이 닿지 못할 때 말일세.</color>

<color=#00CCFF>하지만... 이제는 내가 뭐라해도 자네 고집을 꺾을 수 없겠지. 내가 훈작사의 고집도 꺾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color>

<color=#00CCFF>...행운을 빌겠네, 지휘관.</color>

엘모호의 작전실, 원격 제어 권한을 우회해 겨우 켠 불빛이 몇 안 되는 이들의 윤곽을 비췄다.

404, 리벨리온, 흄의 아이와 AR팀...

이들을 다 합쳐서 20명도 채 되지 않는 인형이 지금 엘모호에 남아 있는 전력의 전부였다.

AR-18

지휘관. 연락이 닿는 인형 소대 전원, 모였습니다.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분한 시선으로 익숙한 얼굴을 한 명씩 바라봤다.

지휘관

훈작사가 IOP와 관련된 모든 인형과 설비를 차단해 버렸어.

지휘관

하벨 씨는 내게 신소련으로 돌아가거나, 훈작사와 다시 한 번 대화하는 편이 희망이 있을 거라 조언했어.

달빛이 창문을 넘어 지휘관의 얼굴에 차가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두 눈에 담긴 것은 이미 결말을 예견한 단호함이었다.

지휘관

지금 우리는 모든 지원을 잃고,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거야. 보장된 미래를 등졌다는 말이지.

지휘관

하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겠어.

지휘관

윌리엄을 찾아내서... 패러데우스를 뿌리뽑겠어.

지휘관은 넬레에게서 돌려받은 마카로프를 뽑았다. 경쾌한 장전음이 작전실에 울려 퍼진 뒤, 지휘관은 마카로프를 허리춤에 단단히 꽂았다.

지휘관

무슨 대가를 치르든, 어떤 미래가 기다리든.

오로지 놈들이 짓밟은 영혼들을 위해서야.

지휘관

설령 이것이 지옥으로 가는 편도 티켓이라 해도...

나는 내리지 않겠어.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지휘관에게 돌아온 대답은 흔들림 없는 눈빛들이었다.

RO635

지휘관님, AR팀은 영원히 지휘관님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입니다. 그 끝이 설령 지옥이라 할지라도.

AK-12

AK-15랑 약속했거든, 같이 패러데우스를 박살내자고. 지옥행 열차에 우리 자리도 좀 남겨줘.

UMP45

지휘관이 외상값도 안 갚고 지옥으로 튀는 걸 내버려둘 수야 없지. 후훗, 그러니까 우리도 같이 갈게.

AR-18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저희는 당신을 지지합니다.

스티븐스 520

제가 당신의 결말을 지켜보겠다고 했죠? 그럼, 당신이 지옥으로 가는 길의 끝까지 지켜보게 해주세요.

지휘관

너희들... 이번이 정말 마지막 임무가 될지도 몰라.

지휘관

그리고 설령 우리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승자란 없을 거야.

RO635

그럼, 빈틈 없는 작전을 짜야겠죠.

AK-12

후훗, 지옥이 꽉 차기 전에 놈들을 빨리 떨어뜨려주자고.

이미 작전을 논의하기 시작한 인형들을 바라보며 지휘관은 깨달았다.

이것은 신뢰이자, 죽음까지도 함께하겠다는 맹세임을.

...슈타지 본부 청사 부근.

UMP45

지휘관, 스틱스의 신호가 화이트존에서 사라졌어.

이 위치는 슈타지 본부 청사인데 말이야.

아마 지하로 들어간 모양이야.

지휘관

지하...

AR-18

지휘관, 지하는 화이트존 범위입니다.

슈타지의 정보 서버룸이 바로 화이트존 지하에 있습니다... 이전에 AK-12가 잠입했던 장소입니다.

지휘관

45, 9, 권한 해킹을 부탁할게.

UMP45

좋아. 하지만 슈타지 본부의 권한은 실시간으로 계속 인증해야 해서, 내가 계속 체크해야 해.

그러니 나와 9은 신호가 양호한 장소에 있어야 해. 그쪽이 완전히 잠입할 때까지 외곽을 지키고 있을게.

UMP45의 해킹으로 슈타지의 보안 권한이 잠시 뚫려, 대문 보안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인형들을 이끌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지휘관

후속 임무도 부탁할게, 45, 9.

...다시 만나자.

UMP9가 지휘관을 와락 껴안아 주고, 웃으며 UMP45의 곁에 돌아갔다.

UMP9

지휘관도 조심해~

UMP45

후훗, 우리를 부려 먹은 게 한두 번도 아니잖아, 지휘관.

두꺼운 금속 문이 서서히 닫히며 UMP 자매의 모습을 가렸다.

UMP45

그럼, 작업 시작할까? 우리가 최종 대결전에 빠질 수는 없잖아.

UMP9

응, 대결전!

...화이트존.

...슈타지 데이터 센터 구역.

AK-12

지휘관.

지휘관

뭐라도 발견한 거 있어?

AK-12

여기는... 벌침 시스템의 데이터 센터야.

지휘관

......

지휘관은 잠시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주변의 무수한 서버로 이루어진 데이터 센터를 바라봤다.

지휘관

벌침? 여기가 벌침 시스템의 서버룸이라고?

AK-12

...이런 추측을 안 해본 건 아니긴 한데.

순간, 지금까지의 온갖 정보들이 지휘관의 머릿속에 쏟아졌다. 해일처럼, 혹은 회오리처럼 머릿속을 휘저었다.

지휘관

그랬구나...

지휘관

슈타지는... 처음부터 패러데우스와 협력 관계였던 거야.

지휘관

그래서 패러데우스에 관한 정보가 그렇게 정확했던 거고...

지휘관

그럼 스틱스는...

???

어머, 날 찾는 거야? 지휘관.

뾰족한 금속 가시들이 앞의 기둥 뒤에서 튀어나와 지휘관 일행을 향해 날아왔다.

AR-15

흥.

AR-15가 방아쇠를 당겨 가시들을 공중에서 쏘아 떨어뜨렸다.

하지만 반대편 기둥 뒤에서도 가시 몇 개가 지휘관의 급소를 향해 날아왔다.

AK-15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모든 가시를 몸으로 받아냈다. 그녀의 소체에는 흠집 하나도 나지 않았다.

AK-15

...나와라.

???

호오~ 과연 리벨리온의 에이스야, 정말 굉장한걸.

스틱스가 휘황찬란하게 빛을 내는 채찍을 만지작거리며 기둥 뒤의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 뒤에는 흑백의 니토 몇이 따라 나왔다.

스틱스

결국 여기로 올 줄은 몰랐는데, 지휘관.

스틱스

하지만, 지금 아버님께선 중요한 일로 바쁘시니까, 불청객을 맞이하실 시간 같은 건 없으셔.

지휘관

......

AK-15

먼저 가십시오.

G11

...아니, 안 돼.

계속 긴장하고 있던 G11이 어느새 평정을 되찾았다. 평소엔 잔뜩 졸린 것 같던 눈빛도 지금은 보기 드물게 냉정했다.

G11

저, 저 녀석이 여기를 지키고 있다면, 아마 이 아래엔 분명 더 강한 녀석이 있을 거야.

적어도... 그 몰리도란 녀석이 저 녀석보다 훨씬 세잖아.

G11

너는 우리 중에서 제일 강하잖아. 여기서 퇴장하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여긴 나한테 맡겨줘.

지휘관

G11...

G11

...416, 그 녀석이 돌아오면... 잔뜩 야단칠 거야.

그러려면 녀석이 박수를 칠 만한 일을 해야 할 거 아니야.

G11

그리고... 보통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악당이 최약체잖아?

스틱스

너 같은 꼬맹이가... 너 따위가 나를 막겠다고?

기괴한 채찍이 바람을 가르며 G11을 향해 날카롭게 휘둘렀다.

하지만 G11에게 채찍이 닿기 전에 AR-15의 총알 세례가 채찍을 맞이했다.

AR-15

하아... 좋아, 나도 여기 남을게.

G11

에에, 내가 폼 잡고 있는데...

AR-15

여기는 저희에게 맡기고 가세요, 지휘관.

지휘관

응, 여긴 너희에게 맡길게.

AR-15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G11과 나란히 섰다.

G11

됐다... 그럼, 후딱 끝내자?

나 일찍 쉬고 싶으니까.

철컥, AR-15가 깔끔한 솜씨로 탄창을 갈았다.

AR-15

그럼, 물론이지.

...화이트존, 더 깊은 곳.

지휘관

......

AR-18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휘관.

G11과 AR-15 둘 다 그리폰의 엘리트입니다.

고작 니토 따위에게 애먹지 않을 겁니다.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패러데우스의 저항이 있을 것이라 감안하긴 했지만, 스틱스 수준의 전력이 벌써 나타날 줄은 예상 못했다. 그렇다는 건 이 앞의 적은 분명...

AR-18

그리고, 방금 중요한 정보를 하나 가로챘습니다.

발키리 계획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정보입니다.

지휘관

마지막 단계? 그게 뭐야?

AR-18

수술, 마지막 수술입니다.

AR-18

지금 패러데우스가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지휘관

......

AR-18

지휘관, UMP45와 UMP9가 임무 중 방해를 받아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휘관

그래, 그쪽 통신을 내 채널에 연결해 줘.

화이트존 심층부, 비좁은 복도가 어둠 끝까지 이어졌다.

이곳은 갈림길 하나 없이, 저 끝에 굳게 닫힌 금속 문이 유일한 출구였다.

AR-18

지휘관... 여기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어둠이 찾아왔다.

AR-18

전자전이다! 각 대원 방어 주의해라.

브라메드

......!

AK-12

후훗, 기다리고 있었어.

은신 모드를 해제한 AK-12가 브라메드의 전자전 신호를 차단해 버리고, 상대를 포착하자마자 즉시 손에 쥔 칼을 브라메드에게 내질렀다.

타타탕——

적외선 시각 모듈을 이용해 AN-94도 목표를 포착해 총구를 돌렸다.

브라메드는 점프해서 AN-94의 화력 투사를 잠시 피하고, 문에 매복한 일반 니토들 옆으로 돌아갔다.

AK-12

응, 이번엔 아무래도 우리가 활약할 차례인 것 같네.

지휘관, 여기는 나랑 94에게 맡겨줘.

AN-94

..."우리" 지휘관을 잘 부탁한다, 15.

AK-15는 굳건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AK-12도 AK-15의 흉갑을 툭 치고 가볍게 작별 인사를 했다.

브라메드는 지휘관 일행이 앞의 통로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고 가만히 지켜봤다.

AK-12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얌전하네, 브라메드.

한 번쯤은 방해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브라메드

어머,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네. 혼자서 리벨리온과 놀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거든.

그리고... 내가 뭐 하러 선심을 써서 저들을 막겠어?

브라메드는 자세를 바꾸고는, 입술을 핥았다.

브라메드

너희가 이따가 자살하는 모습을 AK-15에게도 보여주고 싶은걸?

AK-12가 번쩍 눈을 뜨고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AK-12

이제야 소문으로 듣던 느낌이네. 그럼...

조금이라도 오래 버텨보라고.

부서진 문의 잔해를 밟고 지나자, 전장은 내부에 있는 거대한 실험실까지 이어졌다.

AR-18

지휘관, 모든 정보를 토대로 추측한 바로는 발키리 계획의 마지막 수술이 이곳에서 진행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스틱스와 브라메드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익숙한 모습의 니토가 천천히 공중에서 내려왔다.

몰리도

안녕, 또 만났네. 지휘관.

그녀와 함께 모든 통로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니토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절망적인 분위기가 한순간 모두의 목을 움켜쥔 것만 같았다. 고작 몇 명만 있는 이쪽 전력에 비해 막대한 양의 물량이 나타난 것이었다.

몰리도

어라, 손님이 너무 적게 온 건 아닌가 모르겠네? 설마, 그 명성 높은 그리폰이 해산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지휘관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몰리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몰리도를 지나쳐 그녀 뒤에 있는 통로를 향하고 있었다. 그 놈은 바로 저기에 있을 것이다.

몰리도

......

몰리도는 자신이 "영웅"이라고 불리는 그리폰 지휘관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용감, 침착, 선량... 모든 긍정적인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인물... 그녀가 예전에 본 안젤리아와 똑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은 변해 있었다.

그건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빛이었다. 상대방의 눈빛에는 적나라한 살의와 원한으로 가득했다.

지휘관

...더 할 말은 없냐?

지휘관은 천천히 입을 열어 가볍게 말을 던졌다. 그것만으로도 경험 많은 몰리도를 움찔하게 했다.

지휘관

해치워.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휘관 옆에 있던 AK-15가 포탄처럼 몰리도에게 돌진했다.

무겁고 빠른 주먹이 공성추 마냥 날아들었다.

몰리도

칫...!

몰리도는 자신의 기계팔로 전방을 단단히 막아서 간신히 그 일격을 받아냈다.

AK-15는 상대방이 일격을 막자마자 몸을 돌려 기계팔이 반응하기도 전에 돌려차기를 꽂았다. 비록 힘이 덜 실리긴 했지만 몰리도를 날려버리기엔 충분했다.

AK-15는 지휘관을 향해 고개를 돌려 명령을 기다렸다.

지휘관

죽여.

AK-15

예.

AK-15가 저 멀리 날아간 몰리도에게 집중하던 그때.

슉.

우아한 하얀 실루엣이 소리보다 빠르게, 유령처럼 구석에서 튀어나와 지휘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쏟아진 산탄 세례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스티븐스 520

흥, 패러데우스의 생쥐 주제에. AK-15만 없으면 만만한 줄 아나 봐?

나를 무시하지 말라고.

헤베

......

스티븐스 520

지휘관님, 이젠 저희가 나설 차례인 것 같죠?

지휘관

부탁할게.

스티븐스 520, AR-18...

저 귀찮게 구는 생쥐를 지옥으로 보내버려.

AR-18

예.

지휘관

RO, 너랑 SOP는 길을 열어.

RO635

네!

M4 SOPMOD II

문제없어! 안 그래도 저놈들을 찢어버리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리고 있었거든!

......

치열한 총성과 폭발음, 쇠붙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한 곳에 섞이며 커다란 실험실은 무자비한 도살장으로 바뀌었다.

인형들의 뛰어난 전술적 판단 덕에 처음엔 팽팽한 상황이 펼쳐졌다.

하지만, 압도적인 물량 차이는 여전히 소수 정예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인형이 다치고 쓰러졌다. 모든 인형이 소체와 마인드맵의 능력을 최대한 짜내고 짜냈다.

그러나 적은 끝없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화망을 뚫은 검은 니토 하나가 지휘관의 측면에 나타나 칼을 휘둘러 찌르려고 했다.

검은 니토A

......!

갑자기 튀어나온 손이 니토의 칼을 붙잡아 불똥을 튀겼다.

M4 SOPMOD II

<size=50>캬오!!</size>

SOP는 그대로 손을 비틀더니 니토의 팔을 통째로 뜯어버렸다.

그리고 니토를 걷어차면서, 다른 손에 쥔 돌격소총으로 놈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M4 SOPMOD II

지휘관 건드릴 생각하지 마, 이 쓰레기들아!

푸욱—!

다른 하얀 니토의 칼날이 SOP의 등 뒤에서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하얀 니토B

...죽어라.

M4 SOPMOD II

...이 자식, 이 자식, 이 자식, 이 자식이!!!

하얀 니토B

......!?

SOP는 몸을 홱 돌려 온힘을 실어 하얀 니토의 얼굴에 박치기를 꽂아버렸다.

그러고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니토의 목을 물어뜯어 억지로 끊어버렸다.

더 많은 니토가 SOP에게 달려들어 동시에 칼날을 찔러댔다.

니토들

죽어라...! 죽어!

하지만 SOP는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행동이 느려지지도 않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니토들의 무기를 붙잡더니 포효하며 부러뜨렸다. 그리고 부러뜨린 잔해를 적에게 마구 던졌다. 고슴도치처럼 칼날이 박혔음에도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단 한 걸음도.

M4 SOPMOD II

더 크게 질러 봐...

<size=50>더 크게 소리질러 봐! 꺄하하하!</size>

RO635

SOP!

RO635가 옆에 있던 적을 처치하고 SOP를 지원하려고 했다.

하지만 SOP는 또다시 한 차례 공격을 받고, 수많은 칼날에 가슴이 꿰뚫린 채로 힘없이 무릎 꿇었다.

몰리도가 그녀 뒤에 나타나 자신의 기계팔을 뽑았다.

몰리도

흥, 신나게 짖어대는구나.

몰리도

네놈들을 아버님께 가게 둘 순 없어...!

거대한 풍압이 측면으로 닥쳐오자 몰리도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피했다.

원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하얀 니토가 날아왔다.

몰리도가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AK-15가 날아들더니 몰리도의 기계팔을 발차기로 부러뜨렸다.

AK-15

어딜 갈 셈이냐.

AK-15는 아직도 안간힘을 다해 일어나려는 SOP를 보고 잠시 침묵했다. 또다시 니토 사이에 숨은 몰리도를 추격하는 것을 그만두고는 SOP의 앞을 막아서서 몰려드는 니토 무리를 상대했다.

M4 SOPMOD II

켁... 난, 신경... 쓰지 마... 케흑.

AK-15

......

AK-15가 대부분의 니토를 가로막아 선 덕에 수술실로 향하는 통로가 잠시 열렸다.

RO635

지휘관님! 수술실로 가는 길을 열었어요!!

지휘관

그래.

지휘관은 통로 입구에 서서 고개를 돌렸다.

실험실 안에는 검붉은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다리가 끊어졌음에도 여전히 일어나려고 하는 SOP. 홀로 몰리도에게 맞서면서도 셀 수 없이 많은 니토들에게 포위당하기까지 한 AK-15. 지휘관을 통로까지 엄호하느라 많이 다친 RO. 그리고 실험실 다른 쪽에서 혈투를 벌이는 AR-18과 스티븐스 520...

이 모든 일이 "그"로 인한 것이다.

지휘관

RO, 모두를 지원해.

RO635

지휘관님! 이 앞이 안전한지 아직 몰라요!

지휘관

아니, 괜찮아. 너희는 이미 충분히 해줬어. 나머지는 내 손으로 끝내겠어.

지휘관은 RO를 바라보았다. 평소 감상에 자주 젖던 인형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RO635

저... 모두 함께 기다리고 있을게요.

지휘관

그래, 모두 함께...

지휘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구나.

영원히 실현시킬 수 없는 거짓말.

지휘관은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서,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수술실 쪽으로 나아갔다.

지휘관을 떠나보내고, RO는 고개를 돌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통로 입구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몰려드는 니토들을 향해, 몸에 지닌 모든 무기와 폭발물을 꺼내 들었다.

RO635

그럼... 너희의 죄를 세어라!

시체와 초연이 깔린 통로를 지나, 지휘관은 종착지로 향하는 문을 걷어차 열었다.

실험실 안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뒤섞여 있었고, 그는 지휘관을 등지고 분노에 가득 차 수술대를 내려치고 있었다.

윌리엄

어째서... 어째서 실패한 거야!

윌리엄

<size=50>수술은 분명 완벽했을 텐데! 왜 대답 안 하는 거야!!</size>

윌리엄이었다.

그리고 수술대에 누워있는 익숙한 모습의 인물은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윌리엄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잘못된 거지... 아니면 다른 쐐기가 필요한 건가...?

윌리엄은 의자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 얼굴과 그 옷차림, 세상 만물이 마치 자기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저 표정.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불쾌함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복수심의 화염이 지휘관의 마지막 이성의 끈을 그대로 불태워 버렸다.

지휘관

...윌리엄.

윌리엄

......

지휘관의 기척을 그제야 느낀 윌리엄이 고개를 들었다.

윌리엄

너는...

탕! 탕! 탕!

대화도, 사형 선고의 한마디조차 없었다.

윌리엄에게 대답한 것은 지휘관이 손에 쥔 마카로프의 화염뿐이었다. 정확하고 빠르고, 치명적인 모잠비크 드릴이었다.

팅!

하지만, 윌리엄에게 날아들던 총알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두 검은 니토의 칼날에 튕겨 나갔다.

탕탕탕탕!

지휘관은 멈추지 않고, 침착하게 재장전을 한 뒤 계속 니토의 수비에서 빈틈을 찾아 화력을 쏟아냈다. 살의가 담긴 총알 한 발, 한 발이 윌리엄의 몸뚱이를 정확하게 노리고 있었다.

총알은 포효하며 윌리엄의 귓불을 스치고, 옷자락에 구멍을 냈다.

니토 한 명이 온몸으로 윌리엄을 감싸들었고, 다른 하나는 칼날을 휘두르며 지휘관에게 달려들었다.

몸을 굴려 피하고, 사격, 다시 회피.

지휘관은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다하여 싸움에 임했지만, 결국 그 검은 그림자에게 빈틈을 붙잡히고 말았다.

권총이 손에서 튕겨 나가고, 몸은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처박혔다.

지휘관

......

윌리엄

저리 비켜.

윌리엄은 계속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검은 니토를 툭 발로 차고서는 천천히 일어나 지휘관 앞으로 다가가 거만하게 내려다보았다.

윌리엄

날 죽이러 온 거냐? 인형도 없지 않았어?

윌리엄은 지휘관이 떨어뜨린 단말기를 집어들고는 대충 훑어보았다.

윌리엄

아... 그런 거였구나. IOP제가 아닌 예외가 조금 있었던 모양이네.

하지만, 고작 이 몇 명을 데리고 덤비다니. 나를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지휘관

......

윌리엄

사실 난 말이지. 너한테 계속 흥미를 가지고 있었거든. 혹시 나랑 "신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래?

지휘관

네놈 시체가 어떻게 떠드는지 들을 생각은 있어.

지휘관은 고개를 들고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윌리엄

흥, 너랑 이딴 고물 인형들 몇 명만으로?

윌리엄

내 광채에 기생해서 겨우 손에 넣은 조금의 명예와 성과를 얻은 버러지 주제에, 나랑 같은 눈높이라고 생각했나 보지?

윌리엄은 하찮다는 듯이 그대로 문밖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심각한 중상을 입고서도 간신히 움직이는 하얀 니토가 들어와 어떤 물건을 그에게 건넸다.

윌리엄은 그걸 받아 슬쩍 살펴보고선 지휘관 앞에 던져버렸다.

그것은 찌그러진, 피가 묻은 확성기였다. 조금 전 헤어진 RO635가 늘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처참하게 찌그러진 모습과, 가득한 핏자국은 주인이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치렀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윌리엄

영웅 놀이는 이제 끝이야, 지휘관.

난 너랑 계속 어울려줄 시간이 없거든,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지휘관은 검은 니토의 제압을 뿌리치고 망가진 확성기를 집어 소맷자락으로 검붉은 얼룩을 닦았다.

확성기를 등 뒤에 묶은 뒤, 윌리엄이 바닥에 버린 단말기를 집었다. 거의 모든 인형이 오프라인 상태가 되어 있었다.

지휘관

RO... SOP...

통신 이어폰에서 마지막으로 희미한 호출이 들려왔다.

UMP9

<color=#00CCFF>어... 여기는 9, 지휘관...</color>

<color=#00CCFF>임무... 임무 완료했어...</color>

<color=#00CCFF>그런데, 45 언니가 나를 엄호하느라 아까...</color>

UMP9의 목소리는 뚝뚝 끊어지면서 통신기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상태도 안 좋은 것이 분명했다.

지휘관

......

UMP9

<color=#00CCFF>나 지금... 본부 옥상에 있어. 하지만 적에게 곧 따라잡힐 것 같아...</color>

<color=#00CCFF>헤헤... 아무래도 결전에는 빠져야 할 것 같네...</color>

지휘관

아니야, 9.

지휘관

우린 계속 함께 싸웠어.

UMP9

<color=#00CCFF>...헤헤.</color>

<color=#00CCFF>45 언니도 아까 그렇게 말했는데...</color>

문을 부수려는 격렬한 소리와 웅성거림이 통신 너머로 들렸다.

UMP9

<color=#00CCFF>응, 그럼 그런 걸로...</color>

<color=#00CCFF>나머지는... 지휘관한테 맡길게?</color>

지휘관

응, 맡겨줘.

통신이 그대로 끊어지고 마지막 신호까지 사라졌다.

세상은 완전히 고요해졌다.

윌리엄

하하하하하하하...

윌리엄이 지휘관 곁으로 돌아와 친근한 척 지휘관의 어깨를 다독였다.

윌리엄

왜 그래? 그리폰의 영웅이신 우리 지휘관. 패배를 인정하는 거야? 네 계획은? 네 희망은?

윌리엄

방금 내 시체한테서 어쩌고저쩌고 나불대지 않았나?

지휘관

야.

윌리엄

뭔데?

지휘관

들이대지 마.

지휘관의 주먹이 무방비한 윌리엄의 얼굴에 그대로 꽂혔다. 윌리엄의 이목구비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방 안에 있던 니토가 곧바로 지휘관을 제압했지만, 은빛 고리가 그의 손에서 청아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윌리엄

뭣——

눈부신 하얀 섬광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슈타지 본부 옥상.

격렬한 진동이 지하에서부터 전해져 올라왔다. 마치 족쇄에서 풀려난 드래곤, 니드호그가 세계수의 뿌리를 물어뜯는 것처럼.

만신창이가 된 UMP9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주변에 있던 적들은 마치 세계 종말 같은 광경을 보고는 혼비백산에 빠져있었다. 그녀는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UMP9

하하, 폭탄을 잔뜩 설치하느라 힘들어 죽겠어... 그래도, 일단... 작전은 다 성공했네...

UMP9

지휘관, 45 언니...

금방 다시 볼 수 있겠지?

몇 초 후, 슈타지 본부의 엘리베이터 통로를 중심으로 격렬한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지하에서 솟아난 화염은 신화 속 수르트의 마검처럼 한 층 한 층 타올랐다. 슈타지 본부는 눈부신 횃불로 변해 끝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구세계의 질서는 그 죄악과 함께 잿더미가 되었다.

멸세의 화염은 기나긴 밤에 찰나 떠오른 파멸의 태양이 되었다.

패러데우스와 슈타지의 모든 비밀은, 그 이름 없는 영웅들의 유골과 함께 이 폐허 아래 영원히 파묻힐 것이다.

댄들라이

......

댄들라이

혜성이 달을 가로지르고, 무지개가 태양을 꿰뚫는 것처럼.

댄들라이

당신은 항상 존엄과 용기로 가득했죠. 이상을 위해서라면 앞길이 아무리 험난한 가시밭길이어도 마다하지 않고 나아갔죠.

시세를 잘 헤아리고 몸을 사린다는 말은, 당신에게는 참으로 사치스러운 말이었죠.

댄들라이

마치 이카로스가 태양을 향해 날갯짓한 것처럼, 아킬레우스가 트로이를 향해 돌격하는 것처럼...

댄들라이

죽음으로 뜻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만, 그 뜻을 안고 살아가는 건 참으로 고된 일이죠.

댄들라이

......

댄들라이

당신은 이곳에서 이렇게 막을 내려선 안 됐어요. 이렇게 경솔한 방식으로, 당신의 목숨으로, 무가치한 생명을 맞바꿔선 안 됐어요.

댄들라이

그래도, 당신의 묘비명은 제가 영원히 기억하겠어요.

댄들라이

일생은 너무나도 짧아, 그저 한 명의 용감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았다.

【BAD END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