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AL FOLKBLUES(상편)」
만약 네가 있었다면...
크루거 씨와 면담을 마치자마자 출발한 나는 공항에 도착했다.
AR팀은 이미 채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봐도, 평소대로라면 어디 한구석에 있을 활발한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 한켠에 구멍이 난 것만 같았다.
오늘은, 별이 잘 보이네...
어째선지, 드라마에서 작별을 고하는 씬을 찍기 좋은 날이란 감상도 들었다.
지휘관! 이번 임무는 뭐야?
발랄한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불러와, 표정을 관리하고 뒤로 돌았다.
우리가 여태껏 받아본 적 없는 유형의 임무야.
엥? 그거 설마...
나는 임무 목표의 사진을 대기실 테이블 위에 놓았다.
뭐야, 이 여자는?
이건...?
이번 조사 대상인가요, 보호 대상인가요?
둘 다 아니야.
우리의 이번 임무는 독일 베를린의 "본"이란 이름의 마을에 잠입, 목표인 이 인물을 찾아 지정 위치까지 데려가는 거야.
즉, 납치로군요. 확실히 처음이라면 처음인 유형이네요.
목표를 확보하면 우릴 마중나올 사람도 있다고 해.
매번 그럴 거라 통보받으면서도, 결국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하지 않았나요?
......
저희 임무인데 얘는 왜 따라왔죠?
너희의 임무 외에 나도 나대로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그리고 이번 임무도 패러데우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까, 댄들라이가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댄들라이는 AR팀의 뒤에 서서, AR-15의 싸늘한 눈초리를 일부러 무시했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마침 통신기가 울렸다.
잠시만.
네.
잠깐 자리를 바꾸고 통신기를 켜 보니, 카리나가 입원한 병원에서 보낸 통지였다.
발신자명을 본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불이 붙은 것처럼 초조함이 몸을 기어올랐다.
그러다가, 진단서의 마지막 줄에 적힌 결론에 시선이 고정됐다.
"경미한 세균성 페렴 의심. 현재 정맥 치료 중. 향후 결과의 관찰이 필요하며, 환자에게 안정 및 휴식을 권장함."
세균성 폐렴이라고?
현대의 의료 수준으로, 세균성 폐렴이라면...
며칠 정도 링거 주사 맞으면 낫는 거 아닌가? 그것도 경미한 수준이라니...
그러니까, 카리나는 무사하단 건가?!
다행이다, 다행이야...
내 마음 속 돌덩이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카리나가 무사한 것에 안도하던 그때, 멀리서 바쁜, 그리고 성난 발소리가 들려왔다.
지이휘이과안니이이임!!
왜 저한테 날도 안 하시고 임무 나가시는데요!!
아무래도, 내가 이 아가씨의 직장에 대한 열정과 끈기를 너무 얕본 모양이었다.
카리나는 건강에 큰 문제가 없음을 진단받자마자 곧장 퇴원 수속을 밟았고, 기지로 돌아왔더니 내가 베를린으로 출장을 간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뒤쫓아왔다.
저 없이 어떻게 일을 하시려고요!
.........
솔직히, 지금까지 온갖 고난을 겪고 나니 이 정도 임무는 별로 긴장감도 들지 않는다.
그래도... 카리나가 함께라서, 큰 안심이 되었다.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AR팀도 404소대도, 카리나의 등장으로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우리 모두, 이번 독일행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것임을 잘 알았다. 탈린과 팔디스키에서처럼 적과의 전면전보다, 이번처럼 적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채로 임하는 임무가 더더욱 방심을 불허한다.
하지만 카리나의 존재가 우리의 부담감을 크게 덜어 주었다. 분위기도 많이 가벼워졌고, 여전히 기지에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카리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 무작정 따라온 게 아니라, 오히려 각오를 다지고 일부러 따라왔을 것이다.
언제 어느 때나, 그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 일상 같은 느낌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이었다.
그리고, 일부 특수한 상황에서는 나보다 그녀가 더욱 활약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이죠...?
이처럼, 패닉 상태인 소녀를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 아무도 없었다.
당신들, 인간이 아니잖아...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왔어?!
그들이 보낸 거야!?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인해 마구 떨리는 손으로, 마흐리안은 품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 들었다.
AR팀이 인간이 아니라 인형임을 깨닫고는 처음 보는 우리를 몹시 두려워하고 경계했다.
다가오지 마! 날 건들지 마!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겠어, 절대로!
일단 진정——
일단 진정하세요, 성녀님!
저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보세요! 전 무기 같은 거 없어요! 그냥 일반인이랍니다?
카리나가 주특기인 친절한 미소로 저 겁먹은 소녀에게 조심조심 다가갔다.
군인도, 인형도 아닌 카리나는 어찌 보면 상대보다도 연약하게 느껴져서, 우리 중 가장 경계심을 늦출 수 있는 사람은 역시 그녀뿐이었다.
이때 SOP2가 슬그머니 마흐리안의 뒤로 다가섰지만, 나는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저어 그녀를 제지했다.
다... 당신들... 뭐하는 사람이에요...?
어... 저희 모두, 좋은 사람이죠...? 뭐어 자기가 착하다는 사람 말을 믿긴 좀 그렇겠지만요.
아무튼, 저희는 절대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보세요, 인형들이 잔뜩에 다들 총을 들고 있잖아요.
만약 성녀님을 어떻게 할 셈이었으면, 이렇게 대화를 했겠어요? 그쵸?
하지만...
이해해요, 지금 엄청 무서운 거. 아까 그 인간들이 그렇게 심한 짓을 했는데!
어우 진짜 소름 돋아... 지휘관님도 차마 지켜볼 수가 없어서 이렇게 성녀님을 데리고 나오신 거예요!
......
카리나의 설득에, 마흐리안은 조금 전의 광경이 떠올라 안색이 다시 살짝 창백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때, 그곳, 그 상황에서, 자신을 꺼내 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그 사람들 지금도 계속 쫓아오고 있어요. 다시 끌려가긴 싫죠?
그래도...
걱정 마세요!
카리나가 다시 활짝 웃어보이며 다가가, 비수를 쥔 마흐리안의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마흐리안은 화들짝 놀랐다. 무기를 빼앗길까 봐가 아니라, 실수로라도 그녀를 다치게 할까 봐.
안심하세요, 지휘관님이 계시니까요.
하늘이 무너져도 우릴 지켜 주실 분이라고요!
지휘...관님...?
언제까지 화기애애하게 수다 떨고 있을 셈인가요?
지금 추격병이 쫓아오는 걸 잊었나요?
그래, 우선 안전한 곳으로 간 다음 천천히 이야기하자.
저희를 믿으신다면, 따라오세요. 여기서 함께 도망칩시다.
마흐리안의 시선은 나와 카리나 사이를 방황했다.
그러다 결국 카리나의 거부할 수 없는 미소에 감화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베를린 시가지의 임시 지휘부.
......
이름이 마흐리안... 맞아?
네.
당신은요? 이름이 무엇이죠?
...계속 "로빈"이라 부르면 돼.
로빈... 알겠어요.
일단, 저를 구해 주신 건 사실이니까요.
지휘관은 태블릿으로 자료를 확인하다가 고개를 들어, 마흐리안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제 막 정신을 차린 그녀는 얼굴에 여전히 잠기운과 불안감이 역력했다.
외모는 이견의 여지가 없이, 자료 속 "몰리도"란 자의 사진과 거의 일치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천지 차이였다.
몰리도의 변장술이 이토록 뛰어난 것일까? 아니면, 정말 별개의 인물일까?
일단 물어는 볼게. 너는 패러데우스야?
아뇨, 저는 평범한 인간이에요.
......
내가 받은 자료에 나오는 패러데우스 소속의 여성이, 너와 외모가 완벽하게 일치해.
이름은 "몰리도".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넌 몹시 질색인 표정을 짓던데...
......
그 사람과 너는 무슨 관계야?
......
네가 몰리도야?
아뇨, 저는 "마흐리안"입니다. 제 이름은 이것 하나뿐이에요.
그 이름에 대해 굳이 말씀드리자면...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에요.
정말 네가 아니야?
네.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해요.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말할 생각은 없고?
"로빈"이 당신의 본명이 아닐 테지만... 제가 로빈에게 거짓말할 이유는 없어요.
그녀에 대해선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 가능하면 평생 엮이고 싶지 않아요.
그럼, 왜 본 마을에 있었는지는 말해 줄 수 있을까?
처음부터 말했잖아요.
복사감염증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예요.
어째서?
이유는 없어요. 제게 그런 힘이 있으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자 했을 뿐이에요.
스타프 장원은 설립된 지 얼마 안 되는 곳이야. 본 마을로 오기 전에는 어디 있었어?
다른 곳에서 환자를 치료했던 거야?
......
그런 셈이죠.
그럼, 복사감염증을 어떻게 치료했는지 설명해 주겠어?
내가 아는 한, 세상에 복사감염증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치료제는 없어.
그런데도 넌 그걸 해냈지. 나도 똑똑히 봤어.
당신이 바라시는 것이, 단지 치료라면...
환자분을 데려와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아, 오해했다면 미안해.
딱히 치료가 필요한 친구나 가족이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네가 지금까지 구해 준 사람들 모두가, 내가 구하고 싶었던 사람들이지.
...그럼, 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죠?
저를 납치하려 드는 사람은 예전부터 많았어요.
소중한 이가 병들었거나, 저를 이용해 돈을 벌려던 사람들이요.
전자가 아니라면, 후자이신가요?
돈 때문도 아니야.
...그렇군요. 당신과 만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당신을 믿을게요.
그러니, 나쁜 의도가 없으시다면 이만 저를 풀어 주세요.
아직 저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아요.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에요.
본 마을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요.
너의 그런 마음은 나도 존중해. 하지만...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카리나가 들어왔다.
지휘관님, 본 마을에서 확보한 자료 정리 끝났어요.
앗, 성녀님 일어나셨군요!
...안녕하세요.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 준 소녀를 보자, 마흐리안의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본 마을은 네가 그 포부를 펼치기에 좋은 곳이 아니야.
지휘관이 카리나가 가져온 자료를 건네받으며 말을 이었다.
너를 노리는 사람은 두 부류라고 했지? 그럼 가르쳐 줄게. 본 마을의 인간들은 양쪽 다야.
못 믿겠다면, 여기 증거가 있어. 봐봐.
전부 제가 정리했어요. 자료 출처도 다 표기해 둔 100% 사실이죠.
마흐리안 씨는 그 사람들한테 속은 거예요!
......
말없이 그 자료를 받아 보는 마흐리안의 얼굴에 슬픔이 스쳤지만, 금세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당신들이... 어떻게 몰리도를 알고 계시죠?
저를 여기로 데려올 때... 패러데우스와 싸우기까지 하고...
대체, 뭐하는 분들이에요?
아직 진짜 신분을 말해 줄 수는 없어.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해 줄게. 우리는 패러데우스의 적이야.
우리가 어떤 목적으로 너를 데려왔는지도 궁금하다면, 그것도 말해 줄게.
우리는 너의 능력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너를 이용해 돈을 벌 생각도 없어. 우리가 널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네가 몰리도와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녀가 패러데우스가 꾸미는 음모와의 연결고리라는 건 확실하지.
우리가 너를 찾은 건, 오직 패러데우스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야.
다른 목적은 없어.
저는 마흐리안 씨를 믿어요.
확실히 사진 속의 몰리도란 사람이랑 정말 똑같이 생기셨지만, 당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요!
그러니까... 다른 복잡한 속사정이 있는 거겠죠? 강요하진 않을게요.
그래도 아는 걸 말해 주신다면, 패러데우스가 계속 나쁜 짓을 하는 걸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도 있겠죠. 마흐리안 씨가 계속 환자들을 구하려고 노력한 것처럼요!
......
마흐리안은 눈을 감고 고민에 빠졌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가고, 다시 뜬 그녀의 눈에서는 굳은 결심이 보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과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볼게요. 카린 씨, 그리고... 로빈.
저를 믿어 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여러분을 믿을게요.
마흐리안이 겪은 일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비참했다.
우리가 패러데우스와 싸우는 것을 직접 보고, 카리나와 내가 설득한 끝에 협력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은 완전히 뒤죽박죽이어서, 스스로도 과거를 온전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효율적인 조사를 위해, 댄들라이에게 직접 기억을 들여다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흐리안이 댄들라이를 보고 상당히 격하게 거부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카리나가 다독여 준 덕분에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내 불찰이었다. 그도 그럴 게, 댄들라이는 어쨌든 소체가 니토니까. 우리가 패러데우스와 싸우는 모습을 마흐리안이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해명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을 것이다.
아무튼, 댄들라이가 마흐리안의 기억을 살펴본 결과, 패러데우스는 역시나 베를린에서 어마어마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알아낸 것을 전부 훈작사에게 보고했고, 때마침 누군가의 초대장이 도착해 조사를 일시 중단했다.
베를린 시가지에 위치한 "미네르바의 부엉이".
처음 뵙겠습니다, 안나 대위.
그리폰&크루거, S09 구역 담당이자 AR팀의 현임 전술지휘관입니다.
풋... 그래, 만나서 반가워 지휘관. 난 안나 빅토로브나 최... 그냥 계속 안젤리아라 불러.
그런데 꼭 자기소개부터 해야 했어?
여는 말은 있어야죠~
두 분, 이번이 처음 직접 만나는 거잖아요?
너도 왔냐... 뭐 좋아, 지휘관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이 많을수록 나도 안심이니까.
그런데...
이 자리에 함께한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향하는 안젤리아의 표정이 구겨졌다.
......
너랑 함께여서 보자마자 쏘지 않은 거야.
이 년은 무슨 생각으로 데려왔어?
진정하세요, 안젤리아 씨. 마흐리안 씨는 몰리도하곤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
안젤리아는 카리나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세상 불쌍한 모습인 마흐리안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지휘관을 향해 빈정댔다.
그딴 헛소리를 믿는다고?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부터 들어 주세요.
...그래, 어디 말해 봐.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 진지하게 설명했다.
먼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녀가 몰리도인지 마흐리안인지가 아닙니다.
그녀가 누구든 간에, 그녀에게서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 이 정보가 사실이든 거짓이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어떤 지옥이든, 직접 들여다봐야 합니다. 적어도, 아무런 단서도 없이 헤매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방금 하신 질문에 답하자면, 저는 그녀를 믿습니다.
너어——
벌써 화내지 마시고요. 알고 있습니다, 브레멘에서 그 니토와 많은 일이 있었던 거.
그래서 직접 보고 확인하시라고 마흐리안을 데려온 겁니다.
백 번 양보해서, 그녀가 누구인지라든가 묻고 싶은 것이 잔뜩 있지 않습니까?
......
마흐리안 씨가 정말로 나쁜 사람이라면, 지금 리벨리온이랑 AR팀, 404은 모두 바깥에 있잖아요.
여기엔 인간 셋뿐인 상황인데, 정체를 드러낸다면 바로 지금이란 생각은 안 드세요?
...그래서 더 마음에 안 들어.
AK-12는 무슨 생각으로 들여보낸 거냐고.
나와 카리나가 입장을 고수해서 끝내 양보하긴 했어도, 안젤리아 씨는 영 못마땅한지 고개를 기울여 마흐리안을 쏘아봤다.
철판마저 뚫어버릴 듯한 그 시선에 마흐리안은 눈에 띄게 위축됐지만, 카리나가 그녀의 손을 잡아 용기를 주었다.
......
좋아, 얘기 좀 해볼까.
베를린 교도소.
그쪽은 어때?
거의 다 처리했습니다. 리벨리온 쪽은 어떻죠?
진작에 깔끔하게 다 처리했지. 여기가 마지막이야.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로빈, 안젤리아 씨,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
생각을 정리하던 와중, 마흐리안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녀를 보자마자 안젤리아가 혀를 차서, 마흐리안은 놀란 고양이처럼 움찔했다.
어휴 참, 안젤리아 씨! 마흐리안 씨 그만 좀 겁주세요!
아직도 못 믿으시겠어요?
흥...
나야말로 너네 태도가 이해가 안 되거든? 지휘관, 너 요원이었으면 옛저녁에 죽었어.
그래, 결과적으로 너희가 맞았다 치자. 그래서 어쩌라고, 다음에도 이렇게 운이 좋을 줄 알아?
오래 살아남고 싶으면, 함부로 남을 신뢰하지 마.
죄송해요...
너도 잘못한 거 없으면 쓸데없이 사과하지 마.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고, 안젤리아는 마흐리안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어지간히도 답답했는지, 구석에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에휴... 안젤리아 씨의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마흐리안 씨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저는 괜찮아요...
AK-12 씨에게, 브레멘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어요. 확실히 몰리도다운 짓이에요.
몰리도의 손에 그토록 놀아났으니, 저를 싫어하시는 것도 당연해요.
에이, 그런 말 마세요. 마흐리안 씨랑은 관계 없는 일이잖아요!
물론... 마흐리안 씨랑 그 몰리도란 니토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자매든, 클론이든... 그럴 거 같진 않지만 모녀 관계든! 남의 잘못을 대신 책임질 필요는 없어요!
마흐리안 씨는 마흐리안 씨잖아요!
...그런...가요?
카린의 말이 맞아. 그러니 마음 놓도록 해.
안젤리아 씨도, 네가 몰리도가 아니란 건 이제 아시니까.
저러는 건, 그냥... 저분 성격이 그래.
이런 성격이라 미안하게 됐수다!
풉...
약간 떨어져 있어도, 안젤리아는 우리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
단순한 대답인지 아니면 안 어울리는 심술인지, 굳이 성량을 높여서 외쳤다.
카리나는 그런 안젤리아에게 짓궂은 메롱으로 응수하고는 마흐리안과 서로 마주보며 활짝 웃었다.
비록 안젤리아의 태도는 전혀 누그러질 기미가 없었지만, 마흐리안도 결국 참지 못하고 빙긋 웃었다.
전체 대사 보기 (182줄)
크루거 씨와 면담을 마치자마자 출발한 나는 공항에 도착했다.
AR팀은 이미 채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봐도, 평소대로라면 어디 한구석에 있을 활발한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 한켠에 구멍이 난 것만 같았다.
오늘은, 별이 잘 보이네...
어째선지, 드라마에서 작별을 고하는 씬을 찍기 좋은 날이란 감상도 들었다.
지휘관! 이번 임무는 뭐야?
발랄한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불러와, 표정을 관리하고 뒤로 돌았다.
우리가 여태껏 받아본 적 없는 유형의 임무야.
엥? 그거 설마...
나는 임무 목표의 사진을 대기실 테이블 위에 놓았다.
뭐야, 이 여자는?
이건...?
이번 조사 대상인가요, 보호 대상인가요?
둘 다 아니야.
우리의 이번 임무는 독일 베를린의 "본"이란 이름의 마을에 잠입, 목표인 이 인물을 찾아 지정 위치까지 데려가는 거야.
즉, 납치로군요. 확실히 처음이라면 처음인 유형이네요.
목표를 확보하면 우릴 마중나올 사람도 있다고 해.
매번 그럴 거라 통보받으면서도, 결국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하지 않았나요?
......
저희 임무인데 얘는 왜 따라왔죠?
너희의 임무 외에 나도 나대로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그리고 이번 임무도 패러데우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까, 댄들라이가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댄들라이는 AR팀의 뒤에 서서, AR-15의 싸늘한 눈초리를 일부러 무시했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마침 통신기가 울렸다.
잠시만.
네.
잠깐 자리를 바꾸고 통신기를 켜 보니, 카리나가 입원한 병원에서 보낸 통지였다.
발신자명을 본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불이 붙은 것처럼 초조함이 몸을 기어올랐다.
그러다가, 진단서의 마지막 줄에 적힌 결론에 시선이 고정됐다.
"경미한 세균성 페렴 의심. 현재 정맥 치료 중. 향후 결과의 관찰이 필요하며, 환자에게 안정 및 휴식을 권장함."
세균성 폐렴이라고?
현대의 의료 수준으로, 세균성 폐렴이라면...
며칠 정도 링거 주사 맞으면 낫는 거 아닌가? 그것도 경미한 수준이라니...
그러니까, 카리나는 무사하단 건가?!
다행이다, 다행이야...
내 마음 속 돌덩이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카리나가 무사한 것에 안도하던 그때, 멀리서 바쁜, 그리고 성난 발소리가 들려왔다.
<size=50>지이휘이과안니이이임!!</size>
왜 저한테 날도 안 하시고 임무 나가시는데요!!
아무래도, 내가 이 아가씨의 직장에 대한 열정과 끈기를 너무 얕본 모양이었다.
카리나는 건강에 큰 문제가 없음을 진단받자마자 곧장 퇴원 수속을 밟았고, 기지로 돌아왔더니 내가 베를린으로 출장을 간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뒤쫓아왔다.
저 없이 어떻게 일을 하시려고요!
.........
솔직히, 지금까지 온갖 고난을 겪고 나니 이 정도 임무는 별로 긴장감도 들지 않는다.
그래도... 카리나가 함께라서, 큰 안심이 되었다.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AR팀도 404소대도, 카리나의 등장으로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우리 모두, 이번 독일행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것임을 잘 알았다. 탈린과 팔디스키에서처럼 적과의 전면전보다, 이번처럼 적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채로 임하는 임무가 더더욱 방심을 불허한다.
하지만 카리나의 존재가 우리의 부담감을 크게 덜어 주었다. 분위기도 많이 가벼워졌고, 여전히 기지에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카리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 무작정 따라온 게 아니라, 오히려 각오를 다지고 일부러 따라왔을 것이다.
언제 어느 때나, 그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 일상 같은 느낌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이었다.
그리고, 일부 특수한 상황에서는 나보다 그녀가 더욱 활약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이죠...?
이처럼, 패닉 상태인 소녀를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 아무도 없었다.
당신들, 인간이 아니잖아...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왔어?!
그들이 보낸 거야!?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인해 마구 떨리는 손으로, 마흐리안은 품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 들었다.
AR팀이 인간이 아니라 인형임을 깨닫고는 처음 보는 우리를 몹시 두려워하고 경계했다.
다가오지 마! 날 건들지 마!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겠어, 절대로!
일단 진정——
일단 진정하세요, 성녀님!
저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보세요! 전 무기 같은 거 없어요! 그냥 일반인이랍니다?
카리나가 주특기인 친절한 미소로 저 겁먹은 소녀에게 조심조심 다가갔다.
군인도, 인형도 아닌 카리나는 어찌 보면 상대보다도 연약하게 느껴져서, 우리 중 가장 경계심을 늦출 수 있는 사람은 역시 그녀뿐이었다.
이때 SOP2가 슬그머니 마흐리안의 뒤로 다가섰지만, 나는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저어 그녀를 제지했다.
다... 당신들... 뭐하는 사람이에요...?
어... 저희 모두, 좋은 사람이죠...? 뭐어 자기가 착하다는 사람 말을 믿긴 좀 그렇겠지만요.
아무튼, 저희는 절대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보세요, 인형들이 잔뜩에 다들 총을 들고 있잖아요.
만약 성녀님을 어떻게 할 셈이었으면, 이렇게 대화를 했겠어요? 그쵸?
하지만...
이해해요, 지금 엄청 무서운 거. 아까 그 인간들이 그렇게 심한 짓을 했는데!
어우 진짜 소름 돋아... 지휘관님도 차마 지켜볼 수가 없어서 이렇게 성녀님을 데리고 나오신 거예요!
......
카리나의 설득에, 마흐리안은 조금 전의 광경이 떠올라 안색이 다시 살짝 창백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때, 그곳, 그 상황에서, 자신을 꺼내 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그 사람들 지금도 계속 쫓아오고 있어요. 다시 끌려가긴 싫죠?
그래도...
걱정 마세요!
카리나가 다시 활짝 웃어보이며 다가가, 비수를 쥔 마흐리안의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마흐리안은 화들짝 놀랐다. 무기를 빼앗길까 봐가 아니라, 실수로라도 그녀를 다치게 할까 봐.
안심하세요, 지휘관님이 계시니까요.
하늘이 무너져도 우릴 지켜 주실 분이라고요!
지휘...관님...?
언제까지 화기애애하게 수다 떨고 있을 셈인가요?
지금 추격병이 쫓아오는 걸 잊었나요?
그래, 우선 안전한 곳으로 간 다음 천천히 이야기하자.
저희를 믿으신다면, 따라오세요. 여기서 함께 도망칩시다.
마흐리안의 시선은 나와 카리나 사이를 방황했다.
그러다 결국 카리나의 거부할 수 없는 미소에 감화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베를린 시가지의 임시 지휘부.
......
이름이 마흐리안... 맞아?
네.
당신은요? 이름이 무엇이죠?
...계속 "로빈"이라 부르면 돼.
로빈... 알겠어요.
일단, 저를 구해 주신 건 사실이니까요.
지휘관은 태블릿으로 자료를 확인하다가 고개를 들어, 마흐리안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제 막 정신을 차린 그녀는 얼굴에 여전히 잠기운과 불안감이 역력했다.
외모는 이견의 여지가 없이, 자료 속 "몰리도"란 자의 사진과 거의 일치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천지 차이였다.
몰리도의 변장술이 이토록 뛰어난 것일까? 아니면, 정말 별개의 인물일까?
일단 물어는 볼게. 너는 패러데우스야?
아뇨, 저는 평범한 인간이에요.
......
내가 받은 자료에 나오는 패러데우스 소속의 여성이, 너와 외모가 완벽하게 일치해.
이름은 "몰리도".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넌 몹시 질색인 표정을 짓던데...
......
그 사람과 너는 무슨 관계야?
......
네가 몰리도야?
아뇨, 저는 "마흐리안"입니다. 제 이름은 이것 하나뿐이에요.
그 이름에 대해 굳이 말씀드리자면...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에요.
정말 네가 아니야?
네.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해요.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말할 생각은 없고?
"로빈"이 당신의 본명이 아닐 테지만... 제가 로빈에게 거짓말할 이유는 없어요.
그녀에 대해선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 가능하면 평생 엮이고 싶지 않아요.
그럼, 왜 본 마을에 있었는지는 말해 줄 수 있을까?
처음부터 말했잖아요.
복사감염증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예요.
어째서?
이유는 없어요. 제게 그런 힘이 있으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자 했을 뿐이에요.
스타프 장원은 설립된 지 얼마 안 되는 곳이야. 본 마을로 오기 전에는 어디 있었어?
다른 곳에서 환자를 치료했던 거야?
......
그런 셈이죠.
그럼, 복사감염증을 어떻게 치료했는지 설명해 주겠어?
내가 아는 한, 세상에 복사감염증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치료제는 없어.
그런데도 넌 그걸 해냈지. 나도 똑똑히 봤어.
당신이 바라시는 것이, 단지 치료라면...
환자분을 데려와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아, 오해했다면 미안해.
딱히 치료가 필요한 친구나 가족이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네가 지금까지 구해 준 사람들 모두가, 내가 구하고 싶었던 사람들이지.
...그럼, 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죠?
저를 납치하려 드는 사람은 예전부터 많았어요.
소중한 이가 병들었거나, 저를 이용해 돈을 벌려던 사람들이요.
전자가 아니라면, 후자이신가요?
돈 때문도 아니야.
...그렇군요. 당신과 만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당신을 믿을게요.
그러니, 나쁜 의도가 없으시다면 이만 저를 풀어 주세요.
아직 저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아요.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에요.
본 마을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요.
너의 그런 마음은 나도 존중해. 하지만...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카리나가 들어왔다.
지휘관님, 본 마을에서 확보한 자료 정리 끝났어요.
앗, 성녀님 일어나셨군요!
...안녕하세요.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 준 소녀를 보자, 마흐리안의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본 마을은 네가 그 포부를 펼치기에 좋은 곳이 아니야.
지휘관이 카리나가 가져온 자료를 건네받으며 말을 이었다.
너를 노리는 사람은 두 부류라고 했지? 그럼 가르쳐 줄게. 본 마을의 인간들은 양쪽 다야.
못 믿겠다면, 여기 증거가 있어. 봐봐.
전부 제가 정리했어요. 자료 출처도 다 표기해 둔 100% 사실이죠.
마흐리안 씨는 그 사람들한테 속은 거예요!
......
말없이 그 자료를 받아 보는 마흐리안의 얼굴에 슬픔이 스쳤지만, 금세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당신들이... 어떻게 몰리도를 알고 계시죠?
저를 여기로 데려올 때... 패러데우스와 싸우기까지 하고...
대체, 뭐하는 분들이에요?
아직 진짜 신분을 말해 줄 수는 없어.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해 줄게. 우리는 패러데우스의 적이야.
우리가 어떤 목적으로 너를 데려왔는지도 궁금하다면, 그것도 말해 줄게.
우리는 너의 능력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너를 이용해 돈을 벌 생각도 없어. 우리가 널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네가 몰리도와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녀가 패러데우스가 꾸미는 음모와의 연결고리라는 건 확실하지.
우리가 너를 찾은 건, 오직 패러데우스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야.
다른 목적은 없어.
저는 마흐리안 씨를 믿어요.
확실히 사진 속의 몰리도란 사람이랑 정말 똑같이 생기셨지만, 당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요!
그러니까... 다른 복잡한 속사정이 있는 거겠죠? 강요하진 않을게요.
그래도 아는 걸 말해 주신다면, 패러데우스가 계속 나쁜 짓을 하는 걸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도 있겠죠. 마흐리안 씨가 계속 환자들을 구하려고 노력한 것처럼요!
......
마흐리안은 눈을 감고 고민에 빠졌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가고, 다시 뜬 그녀의 눈에서는 굳은 결심이 보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과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볼게요. 카린 씨, 그리고... 로빈.
저를 믿어 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여러분을 믿을게요.
마흐리안이 겪은 일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비참했다.
우리가 패러데우스와 싸우는 것을 직접 보고, 카리나와 내가 설득한 끝에 협력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은 완전히 뒤죽박죽이어서, 스스로도 과거를 온전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효율적인 조사를 위해, 댄들라이에게 직접 기억을 들여다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흐리안이 댄들라이를 보고 상당히 격하게 거부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카리나가 다독여 준 덕분에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내 불찰이었다. 그도 그럴 게, 댄들라이는 어쨌든 소체가 니토니까. 우리가 패러데우스와 싸우는 모습을 마흐리안이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해명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을 것이다.
아무튼, 댄들라이가 마흐리안의 기억을 살펴본 결과, 패러데우스는 역시나 베를린에서 어마어마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알아낸 것을 전부 훈작사에게 보고했고, 때마침 누군가의 초대장이 도착해 조사를 일시 중단했다.
베를린 시가지에 위치한 "미네르바의 부엉이".
처음 뵙겠습니다, 안나 대위.
그리폰&크루거, S09 구역 담당이자 AR팀의 현임 전술지휘관입니다.
풋... 그래, 만나서 반가워 지휘관. 난 안나 빅토로브나 최... 그냥 계속 안젤리아라 불러.
그런데 꼭 자기소개부터 해야 했어?
여는 말은 있어야죠~
두 분, 이번이 처음 직접 만나는 거잖아요?
너도 왔냐... 뭐 좋아, 지휘관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이 많을수록 나도 안심이니까.
그런데...
이 자리에 함께한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향하는 안젤리아의 표정이 구겨졌다.
......
너랑 함께여서 보자마자 쏘지 않은 거야.
이 년은 무슨 생각으로 데려왔어?
진정하세요, 안젤리아 씨. 마흐리안 씨는 몰리도하곤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
안젤리아는 카리나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세상 불쌍한 모습인 마흐리안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지휘관을 향해 빈정댔다.
그딴 헛소리를 믿는다고?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부터 들어 주세요.
...그래, 어디 말해 봐.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 진지하게 설명했다.
먼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녀가 몰리도인지 마흐리안인지가 아닙니다.
그녀가 누구든 간에, 그녀에게서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 이 정보가 사실이든 거짓이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어떤 지옥이든, 직접 들여다봐야 합니다. 적어도, 아무런 단서도 없이 헤매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방금 하신 질문에 답하자면, 저는 그녀를 믿습니다.
너어——
벌써 화내지 마시고요. 알고 있습니다, 브레멘에서 그 니토와 많은 일이 있었던 거.
그래서 직접 보고 확인하시라고 마흐리안을 데려온 겁니다.
백 번 양보해서, 그녀가 누구인지라든가 묻고 싶은 것이 잔뜩 있지 않습니까?
......
마흐리안 씨가 정말로 나쁜 사람이라면, 지금 리벨리온이랑 AR팀, 404은 모두 바깥에 있잖아요.
여기엔 인간 셋뿐인 상황인데, 정체를 드러낸다면 바로 지금이란 생각은 안 드세요?
...그래서 더 마음에 안 들어.
AK-12는 무슨 생각으로 들여보낸 거냐고.
나와 카리나가 입장을 고수해서 끝내 양보하긴 했어도, 안젤리아 씨는 영 못마땅한지 고개를 기울여 마흐리안을 쏘아봤다.
철판마저 뚫어버릴 듯한 그 시선에 마흐리안은 눈에 띄게 위축됐지만, 카리나가 그녀의 손을 잡아 용기를 주었다.
......
좋아, 얘기 좀 해볼까.
베를린 교도소.
그쪽은 어때?
거의 다 처리했습니다. 리벨리온 쪽은 어떻죠?
진작에 깔끔하게 다 처리했지. 여기가 마지막이야.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로빈, 안젤리아 씨,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
생각을 정리하던 와중, 마흐리안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녀를 보자마자 안젤리아가 혀를 차서, 마흐리안은 놀란 고양이처럼 움찔했다.
어휴 참, 안젤리아 씨! 마흐리안 씨 그만 좀 겁주세요!
아직도 못 믿으시겠어요?
흥...
나야말로 너네 태도가 이해가 안 되거든? 지휘관, 너 요원이었으면 옛저녁에 죽었어.
그래, 결과적으로 너희가 맞았다 치자. 그래서 어쩌라고, 다음에도 이렇게 운이 좋을 줄 알아?
오래 살아남고 싶으면, 함부로 남을 신뢰하지 마.
죄송해요...
너도 잘못한 거 없으면 쓸데없이 사과하지 마.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고, 안젤리아는 마흐리안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어지간히도 답답했는지, 구석에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에휴... 안젤리아 씨의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마흐리안 씨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저는 괜찮아요...
AK-12 씨에게, 브레멘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어요. 확실히 몰리도다운 짓이에요.
몰리도의 손에 그토록 놀아났으니, 저를 싫어하시는 것도 당연해요.
에이, 그런 말 마세요. 마흐리안 씨랑은 관계 없는 일이잖아요!
물론... 마흐리안 씨랑 그 몰리도란 니토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자매든, 클론이든... 그럴 거 같진 않지만 모녀 관계든! 남의 잘못을 대신 책임질 필요는 없어요!
마흐리안 씨는 마흐리안 씨잖아요!
...그런...가요?
카린의 말이 맞아. 그러니 마음 놓도록 해.
안젤리아 씨도, 네가 몰리도가 아니란 건 이제 아시니까.
저러는 건, 그냥... 저분 성격이 그래.
이런 성격이라 미안하게 됐수다!
풉...
약간 떨어져 있어도, 안젤리아는 우리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
단순한 대답인지 아니면 안 어울리는 심술인지, 굳이 성량을 높여서 외쳤다.
카리나는 그런 안젤리아에게 짓궂은 메롱으로 응수하고는 마흐리안과 서로 마주보며 활짝 웃었다.
비록 안젤리아의 태도는 전혀 누그러질 기미가 없었지만, 마흐리안도 결국 참지 못하고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