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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 양자요동

「도전자들」

"나 그냥 죽을래요."

-77-A-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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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의 세례를 받으며 인터뷰가 끝났다.

훈작사의 주도면밀한 안배로, 지휘관은 곧바로 말만 "보호"지 실상은 연금인 호텔 스위트룸으로 돌아왔다.

프랑크푸르트의 야경을 가리는 저 두꺼운 커튼을 포함해, 건물 아래의 보초들, 문마다 배치된 카메라까지. 자유로 통할지 모르는 모든 가능성이 봉쇄되어, 이곳이 일종의 감옥이라고 경고했다.

방은 모든 것이 지휘관이 나갈 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그마저도 의심스러웠다.

탁자 위에 놓인 외부와의 통신이 차단된 태블릿의 화면이, 지휘관이 방으로 돌아온 타이밍을 노린 듯 밝아졌다.

댄들라이

<color=#00CCFF>어서 돌아오세요, 슈퍼스타.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느낌은 어떠셨나요?</color>

태블릿의 화면은 목소리의 현재 감정에 맞춰 어울리는 표정을 띄웠다.

댄들라이

<color=#00CCFF>역시 몸은 있는 게 좋아요, 마음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으니.</color>

<color=#00CCFF>저는 이 낡아 빠져서 메모리가 뒤주만 한 태블릿 안에 처박혀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데 말이에요. 아아, 불쌍한 내 신세~</color>

지휘관

......

댄들라이

<color=#00CCFF>후훗, 왜 그러세요? 뇌세포에 블루스크린이 뜬 것 같은 표정을 하시고.</color>

<color=#00CCFF>인터뷰가 당신 마음대로 되지 않으리란 것쯤은 다 예상하지 않으셨어요?</color>

지휘관은 태블릿을 툭 쏘아봤다. 댄들라이의 능력상, 녀석은 인터뷰가 시작될 때부터의 모든 정보를 파악했을 것이다.

지금 저렇게 능청을 떠는 건 단순히 심심풀이다.

지휘관

...댄들라이, 좀 조용히 해.

댄들라이

<color=#00CCFF>우와아, 위세가 굉장하시네요.</color>

<color=#00CCFF>방송에서 멋진 말을 늘어놓기만 해도 박수를 잔뜩 받으니까, 바로 저 같은 불쌍한 AI를 권위로 찍어누르시는군요?</color>

<color=#00CCFF>서러워서 어떻게 사나~ 잉잉잉~</color>

지휘관

...내가 정말 너를 찍어누를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

조용히 투덜대는 것으로 지휘관은 댄들라이와의 실랑이를 관뒀다.

의미 없는 말싸움이거니와, 그런 말싸움에서 댄들라이는 평생 못 이기니까.

지휘관은 창가로 걸어가, 커튼 틈새로 바깥 "경비원"들의 순찰 경로를 관찰했다.

경비대는 인간 보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슈타지 소속 디너게이트 몇 기로 구성된 일종의 기동대도 나란히 줄지어 고정된 루트를 따라 순찰했다.

그런데, 그중 신호 불량이기라도 한지 살짝 뒤처지는 디너게이트 한 기에 지휘관의 시선이 꽂혔다.

지휘관

댄들라이, 몸 구해다 주면 조용히 할 거야?

댄들라이

<color=#00CCFF>어머나? 이런 상황에서 제게 소체를 구해다 주신다니, 역시 지휘관이시네요.</color>

태블릿의 화면이 번쩍이며 댄들라이의 표정이 함박웃음으로 변했다.

댄들라이

<color=#00CCFF>지금 형편이 형편이니, 큰 욕심은 안 부릴게요. 적당히 표준 군용 규격이면 돼요.</color>

지휘관

......

지휘관은 말 없이 태블릿을 바라봤다.

댄들라이

<color=#00CCFF>역시 무린가요?</color>

<color=#00CCFF>그러엄... 슈타지의 전술인형으로 참을게요. 그쪽이 기술력은 좀 떨어져도, 비주얼은 센스가 괜찮더라고요.</color>

지휘관

......

댄들라이

<color=#00CCFF>...그렇겠죠. 그냥 혹시나 해서 해본 말이에요.</color>

<color=#00CCFF>이 호텔의 민수용 서비스 인형 소체를 구해 주실 셈이시죠?</color>

<color=#00CCFF>SSD-62F 모델 정도면 저도 눈 딱 감고 참을게요.</color>

지휘관

......

댄들라이

<color=#00CCFF>......어...</color>

<color=#00CCFF>민간 서비스업종 모델... 맞죠?</color>

<color=#00CCFF>왜 말이 없으세요?</color>

지휘관

복도 감시 카메라 확인해 봐.

정확히 1분 뒤에 감시 공백 5초 만들고, 더미 신호로 소대 내부 통신망에 온라인 유닛 수 변동 없도록 더미 신호 위장시켜.

지휘관

가능하지?

댄들라이

<color=#00CCFF>당연하죠.</color>

댄들라이의 목소리가 다시 밝아졌다.

지휘관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방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아주 살짝 열었다가 있는 힘껏 쾅 닫았다.

몇 초 후, 밖에서 바쁘고 어수선한 기계 발소리가 들려왔다.

통통통.

지휘관이 다시 문을 열어보니, 일렬로 나란히 정렬한 순찰병 디너게이트들이 있었다. 뛰어난 기동력으로 먼저 도착한 이 녀석들 중, 아까 포착한 계속 뒤처지던 녀석도 대열의 가장 끝에 있었다.

디너게이트들은 카메라 렌즈부터 깜빡이며 방 안의 상황을 스캔했다.

그리고 선두의 디너게이트가 이상 정황은 없는지 확인하려고 문턱을 넘는 순간.

지휘관이 진상 부리듯 발로 앞을 턱 막았다.

지휘관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렸을 뿐이야. 이 호텔 보안이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선두 디너게이트는 차가운 기계 눈으로 지휘관을 위아래로 훑어보고선 항의를 무시하고 방 안으로 총총 들어갔고, 나머지도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방을 다시 살펴봐도 정말로 아무런 이상이 없자, 그제서야 오인했음을 받아들인 듯했다.

별다른 동작 없이, 녀석은 순찰대를 이끌고 떠나려 했다.

대열 가장 마지막의, 자꾸만 반응이 한 박자 늦는 디너게이트가 지휘관을 스치고 지나가려던 순간, 복도의 모든 카메라가 화면이 조작됐다.

지휘관도 그 디너게이트를 덥석 붙잡아 방에 가둬버리고, 문짝을 발꿈치로 밀어 닫고 자물쇠를 걸었다.

지휘관

해치워.

물론 댄들라이는 지휘관이 녀석을 붙잡는 거의 동시에 해킹을 마친 상태였다.

디너게이트는 움직임이 멎고, 광학 센서가 두 번 깜빡인 뒤 다운됐다.

몇 초 후 빛이 다시 돌아왔을 땐, 동체에서 체념한 듯한 댄들라이의 목소리가 나왔다.

댄들라이

저 그냥 죽을래요.

지휘관

미안해.

댄들라이

그 난리를 치면서까지 하려던 게, 겨우 이 디너게이트 소체를 빼돌리기 위해서였어요?

제 몸값을 대체 얼마나 낮잡아보시는 건지...

지휘관

상황이 이런데 디너게이트라도 쓸 수 있으면 다행인 줄 알아.

댄들라이는 삐죽 내밀 입술이 없어서 대신 앞발을 휙휙 휘둘렀다.

댄들라이

알았어요. 제가 아량이 넓어서 망정이죠.

조금만 더 섬세했으면, 정말 죽으려고 난동을 부렸을 거예요.

지휘관은 쪼그려 앉아, "Neo 댄들라이"가 제자리 백덤블링을 하고 두 발로 서서 앞다리를 흔드는 등 소체의 한계 테스트를 하는 것을 지켜봤다.

지휘관

신호 위장은 어떻게 됐어?

댄들라이

그야 물론 빈틈 없이 처리했죠.

감시 카메라도 온라인 유닛 수도, 아주 감쪽같을 거예요.

테스트를 마쳤는지 다시 네 발이 된 댄들라이가, 이번엔 전혀 다른 요소를 고민했다.

댄들라이

그런데 이거, 전혀 특징이랄 게 없네요. 초라하기 짝이 없어요... 잠시만요, 좀 꾸며볼게요.

소녀 마음으로 외모를 신경쓰는 댄들라이를 내버려두고, 지휘관은 다음 계획을 궁리했다.

아까 인터뷰에서 윌리엄이 보인 모습은, 명백히 결코 훈작사의 뜻대로 얌전히 있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지휘관도 놈이 패러데우스를 완전히 손에서 놓을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적 기술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면 훈작사는 윌리엄이 하는 짓을 철저히 방임할 터.

그러니 지금 유일한 돌파구는, M16과 카리나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댄들라이

참, 지휘관님?

방금 첩보물 찍고 계실 때, M16 쪽에서 소식이 들어왔어요.

디너게이트의 외형을 자기 취향으로 개조한 댄들라이가 관절을 풀면서 지휘관 곁으로 다가왔다.

지휘관

아니, 잠깐 눈 돌린 사이에 호텔 인터폰을 뜯어냈네?!

댄들라이

어때요, 굉장한 창의력이죠? 제가 그린 이 이모티콘도, 훗날 전 세계에서 유행할 예감이 들어요.

맥이 빠지다 못해 탈력감이 든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지휘관은 루니샤가 강림해서 댄들라이를 좀 말려 줬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휘관

...됐으니까 빨리 소식이나 말해.

댄들라이

윌리엄의 기지의 구체적인 좌표를 특정했다고 해요. 저 태블릿으로 전송했으니 확인하세요.

지금은 제 허물인 저 골동품을 제가 최첨단 전술 단말기로 개조했답니다. 기념품으로 삼으셔도 돼요.

지휘관은 얼른 태블릿을 들어, 지도 위에 깜빡이는 지점을 살펴보며 전술 배치를 시작했다.

지휘관

모든 동료들의 마지막 발신 좌표가 필요해.

댄들라이

표시했어요.

지휘관

음...

잠시 생각한 후, 지휘관은 전술 지도 위를 손가락으로 가로지르며 빨강과 파랑, 두 색상의 화살표들로 대담한 작전 계획의 윤곽을 그려 나갔다.

지휘관

이곳의 지형은 기습적으로 돌입하는 게 좋겠어. 리벨리온과 M16의 힘이 꼭 필요해.

리벨리온에게, 이 위치에서 날 기다리라고 전해. 내가 현장에서 지휘할 테니까.

지휘관

기지로 돌입한 후 큰 문제가 없다면, 네가 해킹으로 침투할 지점을 확보해 줄게.

그럼 너는 나와 따로 움직여서, 기지의 시스템 전체를 탈취하도록 해.

그리고 놈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말끔하게 포맷해 버려.

댄들라이

디너게이트인 채로요?

지휘관

...거기서 더 좋은 걸로 구해 줄 테니까.

지휘관

다음은 가장 중요한 단계야...

지휘관이 잠깐 망설였다.

지휘관

...카린은 404, 토카레프 소대와 함께 움직이도록 시켜.

기지를 중심으로, 네가 찾아낸 패러데우스 공장과 그 예비 가동 역량을 파괴하도록.

지휘관

마지막 마무리 작업도 부탁할게, 댄들라이.

댄들라이

제가 패러데우스의 모든 연구 데이터를 파괴한다면... 지휘관은요?

지휘관

나는... 어떠한 후환도 남기지 않고, 윌리엄을 죽이러 갈 수 있지.

지휘관이 말을 마치자, 방이 간만에 조용해졌다.

그렇게 잠시 후, 댄들라이가 디너게이트의 머리를 살짝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댄들라이

썩 괜찮은 계획이네요. 전부 당신의 계산대로 진행된다면, 분명 최고의 피날레를 감상할 수 있겠죠.

댄들라이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문제를 하나 깜빡하셨어요.

지휘관

그게 뭔데?

댄들라이

제1단계. 이 쇼의 제1막 말이에요.

슈타지가 철통 감시 중인 이 호텔을, 어떻게 빠져나갈 셈이시죠?

지휘관은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프랑크푸르트의 야경이 한눈에 드러났다.

지휘관

아무리 슈타지가 24시간 철통 감시 중이라도, 내 곁의 울트라 디너게이트의 존재는 모를 거 아니야.

댄들라이

어머? 저를 그렇게 비행기 태우시면 많이 부끄러운데요.

그래도, 네. 저도 여긴 이제 질렸어요.

지휘관

세상 어떤 감옥이든, 열쇠 구멍이 있기 마련이지.

지휘관은 고개를 돌려, 댄들라이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지휘관

다행이야, 나한테 마침 최고의 만능 열쇠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