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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 양자요동

「지옥불」

"그건 네가... 윌리엄이기 때문이지. 우리 사이의 빚은 영원히 청산될 날이 없어... 영원히."

-77-A-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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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이 호텔에서 탈출하고 얼마 후.

비밀 합류 지점에서, 지휘관은 그리폰의 동료들에게 자신이 계획한 기습 작전을 설명했다.

지휘관

이건 아마 다신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야.

모두가 명령을 받고 출동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였다.

AN-94가 잠시 망설이던 끝에 지휘관에게 다가가, 자신이 우려하는 바를 말했다.

AN-94

지휘관. M16이 공장을 습격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아무리 윌리엄이 기지 안에 틀어박혀 있어도, 분명히 상황을 파악했을 거다.

윌리엄이 기지의 위치가 들통난 것도 눈치채고, 이미 철수했을 가능성은 고려했나?

놈은... 그럴 가능성은 낮다만, 훈작사에게 도움을 청했을 수도 있다. 얌전히 기지에서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 않아.

지휘관

바로 그게 포인트야, AN-94.

윌리엄은 내가 놈의 본거지를 알아냈다는 걸 알아. 그러니, 놈은 거기서 나를 기다릴 거야.

나와 결판을 내고 싶어서.

AN-94

왜... 그렇게 되지? 비합리적이다.

두 눈동자에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 들끓는 눈동자로, 지휘관은 잠시 침묵했다.

지휘관

내가 그놈을 죽이고 싶고...

지휘관

...그놈도 마찬가지니까.

돌이킬 수 없게 되지 않는 이상, 훈작사는 나와 그놈 중 어느 쪽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만약 그놈이 이대로 도망친다거나, 훈작사에게 고자질한다면... 당연히 나는 영영 그놈의 털끝도 못 만지게 되겠지.

하지만 그건 놈에게도 똑같아.

AN-94

그래도, 최소한 예비 방안이 있어야...

지휘관

걱정 마. 장담할 수 있어.

AN-94가 무어라 더 말하려 했지만, AK-12가 다가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AK-12

소용없어, 94.

이번이 윌리엄의 꼬리를 붙잡을 마지막 기회인데, 지휘관이 포기할 리가 있겠어?

...나도 그렇고.

AN-94

알고 있다, AK-12.

AN-94

단지, 계획이 너무 과격하지 않은가 해서...

AN-94

안 그런가, 지휘관? 이건 너의 스타일이 아니야.

이런 계획은, 조금... 편집적이랄까, 무모하다고 할까...

AN-94

...그때, 우리가 그 양옥으로 향했을 때가 떠오를 정도다.

AN-94는 결국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마인드맵에 새겨진 흉터가 여전히 쓰라리는 탓이었다.

AK-15

......

AK-12는 어깨를 으쓱하곤 AN-94의 어깨를 토닥였다.

AK-12

나도 대장 실격이라니까, 그런 때에 자리를 비우다니.

내가 그때 있었으면, 안젤리아를 진짜 뜯어말렸을 텐데.

다 내가 잘 못한 탓이고, 다시는 만회할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이번엔 달라.

AN-94

다르다니... 어떻게?

AK-12

지휘관을 봐. 저렇게 확신으로 가득찬 거 본 적 있어?

작전 계획이 신속하게 정해졌겠다...

지휘관은 리벨리온을 이끌고, 결전의 장으로 향했다.

지휘관과 리벨리온이 탄 차량은 고요한 도로 위를 그림자처럼 달렸다.

AN-94

M16에게서 연락. 외부 통신 교란 배치 끝났대.

기지는 이제 완전히 고립됐어.

AK-12가 능숙하게 운전하면서 백미러로 지휘관을 엿봤다.

AK-12

집주인이 우리의 기습 방문을 어떻게 생각하려나?

지휘관

...기지 내 보안 시스템에 반응 있어?

AN-94

아니, 현재 모두 정상이다.

AN-94가 감시 설비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답했다.

AN-94

어떠한 경계 경보도 없다.

조용하군.

카리나

...너무 조용한 거 아닐까요?

M16

방심만 안 하면 돼.

지휘관은 좌석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잠시 고민했다.

지휘관

...매복이다.

카리나

매복이요? 그럼 어떡할까요?

지휘관

매복은 상대가 예상을 못해야만 의미가 있지. 우리가 눈치챈 이상, 상황은 달라.

도착하면 먼저 적의 위치부터 파악하고, 돌입하는 즉시 섬멸할 수 있도록 준비해.

M16

댄들라이, 지형도 같은 거 있어? 놈들의 배치를 한번 예상해봐야겠는데.

댄들라이

완전한 건 없고, 지금 최대한 평면도를 확보해서 이 정도예요.

AK-12

긴장 풀어, 94. 우리가 있잖아?

AN-94

...응.

차가 나아갈수록, AN-94의 마음 속 불안은 점점 커져 갔다. 이건 더는 복수전이라기보다는...

도박에 가까웠다.

지휘관은 이 판에 전부 걸었다. 윌리엄이 포기하지 않아야만 성립하는 이 도박판에.

기지로 향하는 길은 길고, 조용했다.

소대가 도착한 그 버려진 기지는 모든 것이 무서우리만치 조용했다.

경보도, 함정도, 패러데우스가 활동한 흔적조차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치, 한참 전에 버려진 껍데기 같았다.

지휘관 일행은 기지의 핵심 실험 구역까지 아무런 방해 없이 진입할 수 있었다.

지휘관

사주 경계. 함정 조심해.

돌연 커다란 스크린이 켜져, 차가운 불빛이 실험실 안으로 발을 디딘 얼굴들을 비췄다.

그리고, 화면에 윌리엄이 나타났다. 의자에 앉아, 생쥐를 잡은 고양이 같은 그 구역질 나는 미소를 지은 모습으로.

AN-94는 문득 지휘관의 뒷모습을 보았다. 두 주먹을,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움켜 쥐고 있었다.

윌리엄이 도망치지 않았다. 지휘관은 이 첫 번째 도박에서 이겼다.

하지만, 이는 이 도박을 시작하기만을 위해서 지휘관이 모든 카드를 써버린 것을 의미했다.

윌리엄

<color=#00CCFF>어서 와, 지휘관.</color>

<color=#00CCFF>내 예상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움직였네?</color>

윌리엄이 조소하며 박수를 치려고 손을 들었다가, 이젠 손이 하나뿐임을 다시 인식하곤 손을 내렸다.

순간 살모사 같은 표정도 스쳤지만,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윌리엄

<color=#00CCFF>그거 알아?</color>

윌리엄

<color=#00CCFF>너희의 계획을 그대로 훈작사에게 일러바칠 수도 있었어. 그러면 네가 혼신을 다해 준비한 이 복수극이, 출동한 루련군 때문에 싱겁게 끝나버리는 촌극이 되었겠지.</color>

윌리엄

<color=#00CCFF>그랬으면 너의 그 모든 희생과 몸부림이 무의미해졌을 거야.</color>

지휘관

하지만 넌 그럴 리가 없지.

윌리엄

<color=#00CCFF>푸하하하핫! 그래, 내가 왜 그러겠어!</color>

윌리엄

<color=#00CCFF>네가 그 재밌는 쓰레기들을 데리고 쳐들어오기를 기다렸다고! 그러려고 네 계획에 어울려 주기로 했지!</color>

윌리엄

<color=#00CCFF>왠 줄 알아?</color>

지휘관

당연하지.

지휘관

네가 여기 있어야, 내가 확실하게 여기로 올 테니까.

너도 나도, 서로를 죽이고 싶으니까.

나를 뼛속까지 증오하니까.

네가... "빌"이니까.

스크린 속에서 여유를 부리는 윌리엄을 향해, 지휘관은 가장 치명적인 한마디를 뱉었다.

지휘관

아니면, 무슨 일만 있어도 누나한테 대신 눈물을 닦아 달라는 울보라서려나?

지휘관

그런데 어쩌나, 그녀는 더 이상 그러지 않을 텐데. 안타깝게 됐어.

지휘관

그치? 발라드 폰 오버슈타인.

윌리엄

<color=#00CCFF>……</color>

<color=#00CCFF>훗...</color>

윌리엄

<color=#00CCFF>후훗...</color>

<color=#00CCFF><size=50>푸흐하하하하하하핫!!!</size></color>

윌리엄이, 발작하듯, 미친듯이 폭소했다. 그리곤 카메라 렌즈에 바짝 얼굴을 들이밀어, 그 일그러진 표정을 화면 가득 채웠다.

윌리엄

<color=#00CCFF>죽여버리겠어! 내 손으로 반드시 널 죽여버리겠어!</color>

윌리엄

<color=#00CCFF>먼저 네 동료들이 모조리 죽는 것부터 보여 주고, 놈들을 실험 재료로 써서, 너를――</color>

타앙!

지휘관의 총성이 스크린을 부숴, 윌리엄의 히스테릭한 포효를 멈췄다.

지휘관

시끄러워.

총성이 스위치였던 것처럼, 요란한 사이렌이 기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사방에서 쇠붙이의 마찰음과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무수한 통로들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런데, 우르르 몰려나온 것은 예상했던 니토들만이 아니었다. 척 봐도 고급인 장비로 무장한 사병 부대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휘관 일행 앞의 대문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해, 실험실이 퇴로 없는 지옥으로 변하려 했다.

AN-94

니토가 아직도 이렇게나 많이...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거냐!

M16A1

쳇, 이건 예상보다 많은데...

AK-12

대문이 닫히면 퇴로를 잃고 말아! AK-15!

AK-15

음.

AK-15가 대문을 향해 포탄처럼 돌진했고, 닫히던 문짝을 공성추처럼 들이받아 찌그러뜨려 멈췄다.

동시에 AN-94와 AK-12는 지휘관을 밀착 호위했다.

지휘관

적들에게 포위돼서 협공당하는 것만은 피해야 해! 내부로 돌파한다! 윌리엄은 분명 여기 어딘가에 있어!

AK-12

뭐야, 적외선 기관총 포탑까지 있어?! 요새가 따로 없네 정말!

AN-94

지휘관! 위험해!

콰앙!!

돌연, 지휘관의 머리 위에서 폭발이 일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총성도, 폭발도, 금속의 비명도, 전부 서서히 가라앉았다.

만신창이인 몸으로, 지휘관은 시체 더미 속에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더 깊은 곳으로 통하는 통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려 막혔다.

지휘관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대신 폭발의 충격을 몸으로 받아내려고 자신을 감싸안은 AN-94의 모습이었다.

윌리엄이 실성한 게 분명했다.

지휘관을 죽이려고, 막무가내로 이런 실내에서 고폭탄까지 동원한 것을 보면.

니토들로 하여금, AK-15에게 이판사판 자폭 돌격을 감행시킨 것을 보면.

...그렇지, 리벨리온. 리벨리온은 어떻게 됐지?

지휘관

AN-94? AK-12! AK-15!

지휘관은 그들을 찾아 해멨다. 하지만 이 잔해의 산은 발 디딜 틈조차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감각이 거의 사라진 왼다리를 끌며 힘겹게 실험실을 나왔다.

바깥의 전장은 더욱 참혹했다. 온통 박살난 니토들의 잔해 투성이였고, 산채로 잡아 뜯겨지기라도 했는지 공포에 휩싸인 표정으로 죽은 하얀 니토도 보였다.

리벨리온은 이 포위를 뚫고 탈출한 걸까?

...아니다. 그때 내린 지시는 분명히, 내부로 돌입해서 포위를 뚫는 것이었다. 그럼, 바깥의 적을 처리한 건...

지휘관

윌리엄...

폭발의 충격으로 인한 후유증이 아직도 있는지, 머리가 계속 웅웅 울렸다.

팔이 한 짝밖에 없는 시체는 얼굴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지휘관의 관심은 그가 아니었다.

지휘관

댄들라이? ...카린?

지휘관은 고요해진 기지를 방황하며, 생존자를 한 명이라도 찾아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마음에는 전혀 희망을 품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후, 피로 물든 시야에, 검정과 하양으로 가득한 잔해 속에서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지휘관

...토카레프?

지휘관은 이미 정지한 토카레프를 살며시 안아 들었다. 그녀의 소체는 심각하게 파손돼서, 마인드맵 코어까지 박살난 상태였다.

하지만 그보다 눈에 띈 것은, 바로 등에 크게 난 깊은 창상이었다. 하얀 니토의 낫에 베인 것이 분명했다.

이 상처... 설마, 누구를 감싸다......

지휘관

......카린?

그 이상은 차마 상상할 수가 없어, 지휘관은 토카레프를 다시 조심조심 바닥에 눕히곤 다급하게 달렸다. 진작에 한계에 달한 몸은 걸음마다 가시밭을 걷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달렸다.

지휘관

카린... 카린!!

그 익숙한 주황빛이, 조용히 콘솔 옆에 몸을 기댄 채 쓰러져 있었다. 마치, 오늘도 열심히 일하다 피곤해서 곯아떨어진 것처럼.

지휘관

카린...?

지휘관은 황급히 다가가, 조심스레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녀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지휘관

카린.....

기지의 깊은 곳으로부터 밝은 빛이 솟아올라,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하지만 저 더없이 화려한 빛도, 더는 텅 비어버리고 만 지휘관의 세상을 밝히지 못했다.

콰아앙!!

【END】

댄들라이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흘려서, 처절하게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긴 해요.

하지만, 이런 결말을 당신이 받아들일 일은... 당연히 없겠죠? "그녀"도 마찬가지고요.

댄들라이

"그녀"에겐, 그를 죽이는 것보단 당신을 살리는 것이 한참 더 중요하거든요.

댄들라이

그런데 말이죠... 이런 가능성은 실제로 일어난 것도 아니고, 당신의 기억 속에도 흔적조차 남지 않아요.

댄들라이

그런데도, 당신은 은연 중에 무언가 깨달은 모양이네요.

댄들라이

당신은, 당신의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을 자꾸만 죽게 만든다는 사실을.

댄들라이

그렇기에 당신은 이후로 그녀를 자꾸만 멀리 밀어낸 걸지도 모르겠네요.

댄들라이

아아, 불쌍하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