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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 양자요동

「신세계로부터」

"'누나'는 몇번이고 너를 지켜줄 거야. 언제까지나..."

-77-A-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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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4년 X월 X일. 프랑크푸르트 화이트존. 오버슈타인의 옛 연구소 최하층.

"종막"

퍼엉!

댄들라이

정말이지... 저한테 이런 막노동은 시키지 말아 주실래요? 다했어요.

댄들라이는 토카레프의 소체를 조종해서 굳게 닫힌 문을 손쉽게 파괴했다. 단지 그 익숙한 목소리와 잔뜩 투정 부리는 모습이 토카레프의 얼굴에 전혀 안 어울린다는 점이 흠이었다.

지휘관

......

지휘관은 심호흡을 했다. 총을 쥔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박살 난 대문을 넘어가자, 눈앞에 있는 것은 거대하고 썰렁한 실험실이었다... 솔직히 이젠 지겨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왠지 패러데우스와 엮인 이후로, 계속 온갖 실험실이나 공장만 들쑤시고 다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짓도 오늘 여기서 끝날 것이다.

??

...어째서.

지휘관

......!

중앙에서 은은한 푸른 빛을 내는 거대한 기계만 보이던 실험실에 자극적인 붉은 빛이 켜졌다.

눈을 찡그리면서도 지휘관은 밝아진 불빛으로 그 거대한 시설과 그 앞에 서 있는 그 인간을 알아봤다.

윌리엄

어째서 계속 질리지도 않고... 밟아도 계속 꿈틀거리는 벌레처럼...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 귀찮게 구는 거냐고!?

윌리엄

좀 얌전히 죽어줄 수 없다는 거냐? 어엉!?

지휘관

네 인생에 종을 쳐주기 전에는 말이지.

탕!

지휘관은 곧바로 총을 들어 쏘았다.

하지만 총알은 윌리엄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커다란 낫에 막혀버렸다.

하얀 니토

......

댄들라이

조심해요, 지휘관... 아직 "악성 재고"가 많이 남아있네요.

지휘관과의 발걸음에 맞춰 걷던 댄들라이는, 어느새 지휘관을 제 몸 뒤에 숨겼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앙의 거대한 기계 양쪽에서 수많은 니토가 대열을 이루어 나타나 윌리엄을 중앙에 감쌌다.

지휘관

...쯧.

댄들라이

보시다시피, 의식의 호수가 파괴되었어도 녀석은 저들을 통제할 능력이 있어요.

윌리엄

축하하지, 나 자신에게도 축하해야겠어.

그야 너의 죽음을 직접 보는 건 내게도 제법 좋은 오락거리일 테니까.

이 꼭두각시 손에 죽는 것도 너에게 딱 어울리는 결말이고.

지휘관

......

지휘관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높은 곳에 선 윌리엄과 마주 봤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리폰은 그와 직간접적으로 셀 수 없이 부딪혔지만, 놈의 털끝 하나 건드는 것조차 이뤄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며칠... 이 짧은 며칠 사이에 그와 놈은 이렇게 몇 번이나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 대면은 모두 각기 다른 상황에서 이루어졌고, 감상도 항상 달랐다.

지휘관

내가 결국 어떤 신세가 될지 생각해 본 적 없어.

도중에 죽을지도 모르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입에 겨우 풀칠하는 떠돌이가 될지도 모르고, 영원히 감옥 속에 갇혀 온갖 고문을 받으며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뼈다귀가 될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 내게 어울리는 결말인지, 나는 그딴 거 전혀 신경 안 써.

지휘관

내가 어떤 결말로 끝날지는 중요하지 않아.

네놈이 어떤 결말일지가 더 중요하지.

윌리엄

...그것 참 낯 뜨거운 고백인데, 지휘관.

갈수록 모르겠단 말이지, 대체 왜 그렇게 나한테 집착하는 거야?

지휘관

너 같은 인간은 언제나 이 세상을 진심으로 바로 세우려 하는 이들의 노력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지.

너 같은 인간은 타인의 부와 심혈에 기생해 이상주의자의 빛을 더럽히기 때문이지.

네 존재가, 이 세상의 암 덩어리이기 때문이라고.

지휘관

넌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으니까,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하는 거다.

윌리엄

...지루하네.

그게 네 마지막 연설이냐?

어린애나 선과 악과 같은 이분법적인 세계에 빠져있지.

너는 조금 더 성숙한 상대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내가 너를 과대평가한 모양이군.

놈은 음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윌리엄

난 이제 질렸거든. 네가 바라는 대로 여기서 끝내자고, 지휘관.

이미 너한테 시간을 충분히 낭비했으니.

윌리엄은 말을 마치고 손을 들어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니토들은 마치 신호가 끊어진 것처럼, 그저 석상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댄들라이

아이, 좋아라. 우리의 팀워크가 말도 필요 없이 통하는 경지에 올랐네요.

시간 끌어줘서 고마워요, 지휘관. 그래도 이번엔 살짝 버거웠어요.

댄들라이

——방금 이들을 꼭두각시라고 불렀지? 빌.

아쉽게도, 비록 내가 꼭두각시 술사는 아니지만, 이들에게 내가 너보다 더 좋은 친구였나 봐.

윌리엄

——네놈이...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

댄들라이의 조종으로, 하얀 니토들은 일제히 총구를 돌렸다. 원거리 타격 능력을 지닌 낫에서 하얀 광선이 번쩍였다.

——콰앙!!!

지휘관

——!

지휘관이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서려 할 때, 무거운 표정인 댄들라이가 막아섰다.

댄들라이

...조심해요. 지휘관.

역시 피날레는 이리 쉽게 맞이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네요.

지휘관

저건...

광선의 집중으로 일어난 폭발과 고온이 안개를 일으켜 시선을 가렸다. 상식적으로 이런 공격에서 살아있을 수 있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지휘관은 분명 똑똑히 봤다.

하얀 안개 속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무언가"를.

——파란 "나비"였다.

윌리엄

...내가 정말 그렇게 바보인 줄 알았어? 지휘관?

점점 걷혀가는 연기 속에서 조롱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윌리엄

내가 너의 어설픈 연기에 어울려준 건 그냥 네가 어떤 물장구를 칠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을 뿐이야.

윌리엄

정말 실망이야.

지휘관

......!

댄들라이

...호오.

연기가 완전히 걷혔다. 끄떡없어 보이는 윌리엄의 모습 말고도 높은 단상 위에 누군가가 우뚝 서 있었다.

댄들라이

인정해야겠네요. 제가 이미 모든 전개와 가능성을 예상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제 시야도 현실의 틈새를 벗어날 수 없었어요.

지휘관

루니...샤?

윌리엄

푸하하하!

그래, 맞아. 지휘관, 눈 크게 뜨고 잘 보라고.

너의 그 어설프고 지저분한 삼류의 거짓말이 어떻게 진실에 의해 무너졌는지를 말이야!

윌리엄

내 누나는... 단 한 번도 나를 떠난 적 없어.

우리 남매는, 구세계의 끝까지도, 신세계의 시작까지도...

영원토록 함께라고!

루니샤

너는 여전히 개구쟁이구나... 빌.

루니샤

그래도 괜찮아. 누나가 여기 있으니까 마음껏 놀아도 돼.

루니샤

그리고... 누나도 저 불쾌한 인형을 직접 부러뜨리고 싶으니까.

댄들라이

내 뒤엔 다른 사람이 없는데. 혹시 우리가 안 보이는 거라도 보이는 거야? 무서워라.

지휘관

...댄들라이.

댄들라이

안심하세요,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댄들라이

저승길까지 함께하죠, 지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