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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 양자요동

「퍼펙트 월드」

저희는 어쩌면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고, 더 행복해질지도 모르죠.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저희 모두 당신과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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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카레프

지휘관님.

토카레프

그 일이 끝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어요. 가슴 졸이고 두려워 떨던 날들도 이제 끝난 것 같아요.

마지막에 소체를 댄들라이 씨에게 빌려드린 것에 대해선 후회하지 않아요.

만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그런 상황에선 저보다는 그녀가 지휘관님께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마지막에 지휘관님께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지금도 아쉽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됐어요.

토카레프

오늘은 그리폰 S09 지역의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일 거예요.

그날 이후 무단 가동된 인형인 저희는 IOP의 권한으로 다시 강제 휴면에 빠졌어요.

저뿐만 아니라 당시 참전했던 모두가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각오로 싸웠겠죠.

이런 심각한 규정 위반 행위를 연속으로 저지른 이상 위험 인형으로서 처분 또는 파기 당해도 할 말이 없다고요.

그런데...

"그리폰" 임시 기지의 회의실.

루련 관료

...최종 협약에 따라 모든 그리폰 & 크루거 PMC 소속 전술인형은 완전한 신분 자주권을 얻는다.

너희는 정식 등기된 PMC에 등록하여도 좋고, 무소속 인형이 되어 일반인 신분으로서 생활해도 좋다.

자세한 내용은 각자 신청서를 수령하고 작성하여 너희 관리인 헬리안 씨에게 제출하도록.

회의실에 모인 인형들은 먼저 의아해했다가 환호를 터뜨리고 열띤 토론을 펼쳤다.

G28

자유야? 우리 정말 자유야?!

만세! 나는 언니 찾으러 가야지!

95식

...앞으로의 직장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걸까?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면... 음, 어쩌면 다시 고쟁을 들 때가 온 것일지도.

K2

히히, 마침내 댄스계의 유망주가 두각을 보일 때구나!

SPAS-12

<size=50>나 정했어!</size>

<size=50>난 요리사가 될 거야!</size>

97식

우왁! 너 뭐 하는 거야, SPAS-12! 깜짝 놀랐잖아.

우와아... 탁자에 손자국 찍힌 거 봐...

싱글벙글한 분위기 속에서 일부 인형은 오히려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스프링필드

......

...그럼, 지휘관님은요?

지휘관님은 어디에 가셨나요?

G28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스프링필드 언니!

지휘관은 당연히 계속 우리를 관리할 거잖아?

스프링필드

...정식 등기된 PMC에 등록해도 좋고, 무소속 인형이 되어도 좋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그리폰을 해산하겠다는 뜻 아닌가요?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관리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고...

스프링필드

그 말은 곧... 지휘관님도 포함되는 것.

아닌가요?

G28

...어?

K2

자, 잠깐만... 그, 그게 무슨 뜻이야?

루련 관료

협약 보충 조항. 자주 권한을 얻은 모든 그리폰 인형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형식으로도, 어떠한 경로로도 자의로 '지휘관' 본인을 찾거나, 연락 또는 접촉해선 안 된다.

협약 위반 행위가 발견될 경우, 루크사트주의 합중국 연맹은 본 협약이 그리폰 인형 및 지휘관 본인에게 부여한 모든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

MDR

<size=50>뭐어!? 너 웃기지 마! 인터넷에 박제해 버릴 거야!</size>

95식

지휘관님에게... 접촉해선 안 된다?

97식

거, 거짓말...

토카레프

......

토카레프

...환희에 차 있던 우리 머리에 쏟아진 이 찬물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였어요.

만약 스프링필드 씨, 리엔필드 씨, 카라비너 씨 등 항상 솔선수범하시는 분들이 모두를 다독여주지 않으셨다면 정말 그 자리에서 폭동이 일어났을지도 몰라요.

정말 그렇게 됐다면 지휘관님의 희생과 배려가 전부 물거품이 되었겠죠.

혹시 지휘관님이 루련에게 구금당하셨거나, 아예 처형당하시진 않았을까 걱정하기도 했어요.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기만 해도 온몸에 오한이 들고, 마인드맵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어요.

토카레프

다행히 스프링필드 씨가 저희를 달래주셨어요. 확실히, 만약 그랬다면 협약에서 저희가 지휘관님에게 접촉하는 것을 재차 강조해서 금지할 필요가 없겠죠.

그리고 헬리안 씨도 보증을 서주셔서 지휘관님께서 무사하신 것을 확신할 수 있었고, 그제야 겨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토카레프

소문으론 꽤 많은 동료들이 지휘관님께서 완전히 떠나시기 전에 협약을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서 지휘관님을 뵙고 작별 인사를 했다고 하던데...

저는 그러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 편지를 지휘관님께 전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동료들을 다독이는 일은 어쩌면 카리나 씨가 더 잘하실 수 있었겠지만...

......

물론, 지휘관님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카리나 씨가... 엄청나게 속상해하셨어요.

그분이 그렇게 목이 쉴 정도로 우는 건 처음 봤어요.

토카레프

지휘관님께서 카리나 씨께 맡기셨던 임무는... 나중에 알아본 바로는 흠잡을 곳 없이 잘 처리하신 것 같아요.

댄들라이 씨가 찾아낸 공장 8곳 모두 흔적 하나 없이 불태웠어요.

아마 지휘관님도 그걸 아시고서 안심하고 떠나신 거겠죠.

토카레프

하지만, 역시 이해가 안 돼요. 왜 카리나 씨를 두고 가신 건가요?

만약 이 편지를 받으시게 된다면, 카리나 씨께 한번 연락해 주세요. 정말 속상해하고 있으니까요.

토카레프

죄송해요. 지휘관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었는데, 막상 펜을 잡으니까, 마인드맵이 조금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네요.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왠지 잔소리 같은 편지가 됐는데, 너무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토카레프

인형과 인간 사이엔 뛰어넘기 힘든 장벽이 있다는 건 저도 알아요.

저희는 결국엔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도구에 불과하죠.

그래서 저희 같은 "도구"에게 "자유"를 쟁취해 주는 사람을, 저는 지휘관님 한 분밖에 몰라요.

어쩌면 그리폰은 앞으로 유명무실한 회사가 되어버리거나, 아예 사라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희는 정당하게 태양 아래에서 자유롭게 숨을 쉴 권리를 얻었어요.

토카레프

이것들 전부, 지휘관님께서 저희에게 남겨주신 마지막 선물이겠죠.

이것을 위해 지휘관님이 그 못된 사람들에게 무엇을 타협하고 대가를 치르셨을까요?

지휘관님께서 지금 어디에서 어떤 생활을 보내시더라도 너무 무리하지 않으시길 바라요.

토카레프

스프링필드 씨가 안 계셔서 빨랫감이 너무 많이 쌓이진 않을까요?

토카레프

G36 씨와 종합근무팀의 분들이 없다고 항상 프로틴 바나 인스턴트 식품만 드시진 않을까요?

토카레프

MDR 씨 같은 사고뭉치가 없어져서 심심하시진 않을까요?

토카레프

그리고...

토카레프

......

토카레프

...지휘관님 없이 저희는 얼마나 쓸쓸하고 불안해할까요?

토카레프

대체... 어디로 가신 건가요, 지휘관님?

며칠 후.

"그리폰" 임시 기지 앞.

스프링필드

......

WA2000

스프링필드,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 차 출발한다니까?

수오미

다음 차는 언제죠?

WA2000

30분 정도 뒤인 것 같은데... 어휴, 내 짐은 왜 이렇게 많은 거람?

수오미

하아... 설마 저희가 무소속 인형이 될 줄이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WA2000

무소속이면 무소속이지. 불법 인형은 아니잖아? 정정당당하게 무소속이라고...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스프링필드

우리는 우리 자신 소유인 거죠.

WA2000

아, 맞아 맞아! 그런 거였어... 흥! 나도 방금 떠올렸다고!

G36

Vector 씨, 부탁하신 구급상자입니다.

Vector

고마워... 난 총기 손질 더 하고 갈 생각이니까 먼저 가, G36.

그로자

......

스프링필드

무슨 생각 하시나요, 그로자 씨?

그로자

......

...우리의 개인 물품은 원래 그 기지차량에 두고 있었잖아.

그 커다란 차가...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거지?

스프링필드

...글쎄요. 어쩌면 저희처럼 여정을 떠난 게 아닐까요?

그로자

너는 어디로 갈지 정했어?

스프링필드

......

스프링필드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잠시...

여기를 조금 더 지켜보려고요.

혹시 그분이 평소처럼 갑자기 나타나지 않을까...

...웃으시면서 모두에게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소녀전선 TRUE ENDING】

토카레프

지휘관님께선 자신의 "존재"를 대가로 저희 모두에게 "미래"를 가져다주셨어요.

이건 저희를 버리고 가신 것이 아니라, 가장 처절한 방식으로 저희를 지켜주신 거겠죠.

저는 믿고 있어요.

지휘관님께서 이대로 영영 저희를 신경 쓰시지 않을 리는 없다고요.

분명 그 협약은 차갑지만, 저희와 지휘관님 사이의 기억과 연결고리는 뜨거우니까요.

토카레프는 머나먼 별을 붙잡으려는 듯이 손을 뻗었다.

토카레프

저희는 그저 기다리면서, 열심히 살아가면 돼요... 지휘관님께서 저희에게 만들어주신 이 하늘 아래에서.

어쩌면, 미래 어느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기회가 올지 몰라요.

우리 모두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집으로.

......

삐삐.

지휘관

......

삐...

통신 연결.

훈작사

떠날 셈인가?

조용하다.

훈작사

이유를 듣고 싶군.

대답이 없다.

훈작사

무너진 질서를 바로 세워, 갈기갈기 찢어졌던 이 세상이 마침내 하나가 되는 걸세.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질서로 재구성됐어. 이제 우리의 칼끝이 미래를 새로 쓸 차례야.

지휘관

..."우리"라뇨, "당신"이겠죠. 애당초 반드시 저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당신에게 있어 저는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도구, 장기말일 뿐이죠.

더는 당신에게 부려먹히지 않겠습니다.

훈작사

어떤 선택을 하려는지 알고 싶을 뿐이네.

지휘관

“절대적인 진리를 신봉하는 고슴도치는, 세상을 단 하나의 틀에 넣고 가시를 세워 다른 사상을 모조리 거절했다.”

“반면 교활하고 변덕스러운 여우는, 어지러운 시대의 파도 속에 숨어 눈을 가늘게 뜨고 세상을 뒤집을 불협화음을 찾아 나섰다.”

그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하겠습니다.

훈작사

고슴도치는 되지 않겠다?

지휘관

여우가 될 생각도 없습니다.

훈작사

도피로군.

지휘관

아뇨, 더는 당신에게 이용당하기 싫은 겁니다.

제가 했던 모든 선택이, 결국엔 전부 당신과 당신 같은 빌어먹을 작자들을 위한 발판이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선택을 하든 무슨 상관이죠? 세상은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제 선택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훈작사

이전의 일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겠네. 허나 자네는 선택을 함으로써 지나간 과거를 딛고 넘어서야만 해.

도피는 어떠한 결과도 내지 못하네. 스스로를 동정하는 것은 겁쟁이나 하는 짓일세.

지휘관

도피? 겁쟁이? 하, 마음대로 생각하시죠.

다시는 저를 찾지 마십시오, 돌아올 생각도 없으니.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이것이 제가 선택하는 망명길입니다.

지휘관

안녕히 계십시오, 훈작사.

삐익.

통신이 끊어졌다.

훈작사

.......

훈작사

올바른 선택을 하게. 자네는 결국 올바른 길로 되돌아올 운명이야.

훈작사

이 짧은 이별을 충분히 즐기게나.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그날까지.

지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