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푼차이
EP.2021 · 한푼차이

헤비 메탈과 마일드 트리Ⅰ

우선, 이걸 마시고 이성을 완전히 꺼버려.

-49-2-1

1 / 255
전체 대사 보기 (241줄)

어떡해야 상대에게 진실된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서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자주 갖는, 원거리 교제의 난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거리가 가까워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12월 23일 오후 8시, 소란스러운 그리폰 카페.

카페 안에 온통 색종이 가루가 휘날리는 가운데, 수오미는 홀로 구석의 소파에 앉아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색종이 가루가 머리와 커피잔에 떨어졌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지휘관이 꽁무니 빠져라 도망쳐서 오늘 선물을 전하기는 무리라는 생각뿐이었다.

잠시 후 커피잔을 내려놓은 수오미는 최대한 무심한 척 카페를 훑어보았지만, 그녀가 찾는 다른 인물도 보이지 않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뜨거웠던 공기가 천천히 식어 가는 가운데, 수오미는 주머니 속 자신의 성탄 코인을 꼭 쥐었다.

수오미

......

몇 개월 전의 어느 주말, 같은 소파에서 게임 모임이 있었다.

2인 1조로 짝을 지은 행렬 속에서, 혼자서 도전하려는 수오미는 유독 눈에 띄었다.

그때, 소파에 앉아 게임패드를 꼭 쥔 그녀는 여유 넘치는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자신이 이미 궁지에 몰려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수오미

이번 웨이브만 버티면 다음 보급 지점에 갈 수 있어...

탄약만 충분히 확보하면, 이 정도 몹들쯤 아무것도 아니야!

화면 속의 플레이어 캐릭터는 몬스터들 사이로 이리저리 몸을 굴렸지만, 체력 게이지는 계속해서 눈에 띄게 깎여 나갔다.

결국 귀퉁이에서 튀어나온 기습을 피하지 못하고, 수오미의 플레이어 캐릭터는 쓰러지고 말았다.

수오미

아앗! 조금만 더 가면 됐는데...!

RFB

안녕~ RFB야, 나 너무 늦게 오진 않았지?

다들 팀 짠 거 같은데, 너 혼자야? 우리 같이 팀 하자!

수오미

저는 팀 같은 거 필요――

RFB

우와, 너 솔플로 여기까지 왔어? 대단하네!

하지만 여긴 무작정 돌파하려 해서는 절대 못 지나간다?

수오미가 뭐라 하기도 전에, RFB가 옆에 털썩 앉더니 다른 게임패드를 들고 캐릭터를 생성해 참여했다.

RFB

빨리 빨리! 시간 얼마 안 남았어!

수오미

...서폿은 할 생각 없어요.

RFB

오~ 자신 있나 봐? 좋아, 내가 서폿할 테니까 네가 딜러 해!

"섶친 이론"!

수오미가 개인적으로 정립한 이론으로, 게임할 때 스스로 서포트를 맡겠다 하는 사람은 절친한 친구가 되어 줄 확률이 매우 높다는 이론이다.

수오미는 가슴이 뛰었지만, 성격상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기에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수오미

좋아요.

RFB

오케이, 그럼 바로 시작하자고!

RFB의 배려심 있고 센스 넘치는 서포트를 받아, 수오미는 그녀와 함께 파죽지세로 게임을 클리어해 상품까지 받게 되었다.

수오미

이...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요 RF――

수오미가 환호하며 고개를 돌렸지만, RFB는 벌써 게임패드를 놓고 사라진 뒤였다.

그 후로도 수오미는 RFB와 함께 자신의 "섶친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영 적당한 기회가 오질 않았다..

이번에도 RFB의 모습이 안 보이자, 수오미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면서 인형들의 무리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그제서야, 언제 왔는지 모를 카리나가 맞은편에 앉아 매우 흥미롭단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수오미

카리나 씨?

카리나

엄청 고민 많은 표정인데, 또 무슨 생각하니?

수오미

...별거 아니에요.

카리나

수오미는 생각하기 좋아하는 애구나~

수오미

잘못됐나요?

카리나

물론 아니지~ 다만, 생각만 하다가는 네 곁으로 다가온 기회를 놓치게 될 거야.

수오미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구체적인 대답 대신, 카리나는 히죽 웃으며 술잔을 수오미에게 내밀었다.

카리나

한번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생각해보는 건 어때?

수오미

어째 제가 사고를 치도록 부추기는 거 같은데요?

카리나

얘가 생사람 잡네? 당당하게 네가 추구하는 바를 좇으라고 격려하는 거야. 틀을 깨고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아?

그 말에, 수오미는 그날 곁에서 함께 몹들의 포위를 헤쳐나갔던 RFB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수오미

...어떡하면 돼요?

카리나

우선, 이걸 다 마시고 네 이성을 꺼 버려.

수오미의 앞에 놓인 것은 스프링필드가 크리스마스를 위해 특별히 만든 칵테일, "마일드 트리"였다.

하지만 이 짙은 적갈색의 액체는 아무리 봐도 마일드해 보이지 않았고, 한 잔도 아니고 무려 석 잔이었다.

수오미

......

카리나 씨, 저를 너무 얕보시는 거 아닌가요?

카리나

응?

수오미

저, 주량 세요. 출고된 이후로 단 한 번도 필름 끊긴 적 없어요.

의미심장하게 웃는 카리나 앞에서, 수오미는 석 잔의 마일드 트리를 단숨에, 아무렇지도 않게 비워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수오미가 기억하는 12월 23일의 마지막이었다.

12월 24일 오후 2시경, 수오미의 숙소.

다시 의식을 되찾은 수오미는 자기 방의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침대의 머리맡에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성탄 코인도 놓여있었다.

수오미

......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지?

아직도 머리가 몽롱한 채로 일어나던 중, 손가락에 뭔가 가늘고 부드러운 것이 만져졌다.

갈색의 긴 머리카락이었다.

그리고 그 갈색 장발의 주인은, 수오미의 바로 옆에서 엎어진 채로 쿨쿨 자고 있었다.

수오미는 조용히 침대에서 나와, 옆의 의자에 다소곳이 앉았다.

수오미

............스읍――

수오미

<size=50>꺄아아아아아아악!!!</size>

뭐야뭐야뭐야 왜 내 침대에 다른 여자가 있어!?

누구지?! 아직 살아있는 거지!?

나 어젯밤에 대체 뭘 한 거야!!

몇 번 심호흡한 다음, 수오미는 카리나에게 연락했다.

수오미

카리나 씨! 어젯밤에 저 대체 뭘 하고 다녔나요!?

카리나

<color=#00CCFF>안녕 수오미~ 이제 일어났구나? 어젯밤에 너 잔뜩 취해서는 카운터 위로 올라가 노래 부르다 그대로 곯아떨어져서, 내가 사람 불러서 숙소로 옮겨다 놨어.</color>

수오미

제가 무슨 노래를――아니 그보다, 그럼 제 침대의 이 사람은 누구예요?!

카리나

<color=#00CCFF>응? 네 침대에 또 누가 있다고? 세상에, 정말이네! 걔 누구야?</color>

수오미

......

아뇨, 됐어요. 수고하세요 카리나 씨.

카리나

<color=#00CCFF>어? 아, 알았어. 그래도 누군지는 나중에 말해——</color>

수오미는 통신을 끊고, 손으로 얼굴을 덮고 손가락 사이로 침대 위의 낯선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은 긴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수오미는 상대가 깰까 봐 겁나 머리카락을 치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수오미

알코올의 영향 때문에 어젯밤의 기억이 동기화 안 된 걸 거야...

아직 마인드맵 공간에 남아있을 테니, 조각모음을...

12월 23일 밤 10시, 수오미의 숙소.

카리나와 FP-6은 부축해 온 수오미를 침대 위에 눕혔다.

카리나

휴우... 고마워 FP-6, 나 혼자서는 얘 못 데려왔을 거야.

FP6

천만에.

그건 그렇고, 설마 수오미한테 이런 면이 있었을 줄은 몰랐는걸.

카리나

헤헷, 가끔은 다 내려놓고 즐기는 것도 좋잖아? 항상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면 오히려 사고가 나기 쉽다고.

아 참, 잠깐 시간 되지? 지휘관님이 너한테 특별 임무를 맡기시겠다 하셨는데――

카리나와 FP-6의 목소리는 점차 멀어졌고, 방은 고요해졌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수오미가 돌연 눈도 안 뜬 상태로 윗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더니, 옆으로 손을 쭉 뻗어 스피커의 스위치를 켰다.

부웅!

스피커가 폭발할 듯한 화끈한 음악과 함께, 수오미가 눈을 번쩍 떴다.

시스템

<color=#FFFF00>이성 모드 OFF. 플레이 모드 ON.</color>

수오미

오늘 밤으으은 헤비한 바――암!!

스피커를 품에 안아 들고서, 수오미는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12월 23일 오후 10시 30분, 한산해진 카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RFB가 카페에 있다는 말을 들은 수오미는 그대로 문을 벌컥 열며 들이닥쳤고, 모두가 화들딱 놀라는 한편 스프링필드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가왔다.

시스템

<color=#FFFF00>이벤트 발생 - [도와줘요 춘전느님]</color>

스프링필드

수오미 씨, 또 오셨어요? 아까 카리나 씨가 방으로 데려가지 않았나요?

수오미

마일드 트리 세 잔.

스프링필드

네? 더 마시려고요?

수오미는 말 대신 손가락을 척 들어, 구석에서 게임에 열중인 듯한 RFB와 TMP를 가리켰다.

스프링필드

흐음... 알겠습니다.

스프링필드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옅은 미소를 띄우며 카운터로 돌아갔고, 수오미는 휘청이면서도 당당하게 걸어갔다.

한 걸음 가까워질수록, 구석의 대화가 점점 또렷하게 들려왔다.

RFB

아 진짜 무슨 일인데! 오늘 같이 레이드 뛰기로 약속했잖아!

TMP

K2 대장한테 이번 크리스마스는 함께 보낼 수 있을지 물어봤는데, 역시 못 돌아온대요...

AEK랑 다른 분들도 모두 임무로 나가서, 올해는 저 혼자서 지내야 해요...

RFB

뭐? 그럼 오히려 잘된 거 아니야? 네가 게임하는 거 말릴 사람 아무도 없잖아.

밤새도록 달리자구!

TMP

아뇨... 하나도 안 좋아요... 모두가 보고 싶어요...

<color=#FF0000>모두한테 선물이라도 보내고 싶어요...</color>

시스템

<color=#FFFF00>돌발 퀘스트 발생.</color>

수오미

대화를 요청합니다.

RFB

오? 오랜만이야 수오미!

TMP

아... 안녕하세요 수오미 씨...

수오미

두 분, 지금 행복합니까?

RFB

음...? 아, TMP가 지금 고민이 좀 있는 모양이야.

TMP

네...

시스템

<color=#FFFF00>선택지 결정.</color>

수오미

안 됩니다. 두 분은 즐거워야 합니다.

수오미가 다짜고짜 가져온 스피커의 스위치를 켜 그 "헤비"한 노래를 틀었다.

RFB

우왓!? 어, 엄청 화끈한 곡이네...

TMP

너, 너무 쿨해요...!

수오미

지금은 어떻습니까?

TMP

마, 많이 괜찮아졌어요...

시스템

<color=#FFFF00>NPC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color>

때마침 스프링필드가 근처의 탁상을 두드리며 주문이 나왔음을 알렸다.

스프링필드

주문하신 마일드 트리 나왔습니다.

RFB

엥? 우린 주문 안 했는데?

스프링필드

수오미 씨가 드리는 거예요.

TMP

오... 고맙습니다...

스프링필드

천천히 드세요.

여전히 그 묘한 미소의 스프링필드는 칵테일 세 잔을 내려놓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수오미

마셔요.

TMP

그, 그런데... 저 술 잘 못 마시는데...

RFB

나도 딱히 안 좋아하는데...

수오미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내렸던 스피커의 볼륨을 냅다 다시 올렸다.

RFB

으아아아 마실게 마실게 마실게!

TMP

히이익...! 마실게요오...

몸속까지 진동시키는 음악과 수오미가 도끼눈으로 내뿜는 눈초리를 받으며, RFB와 TMP는 마일드 트리를 꿀꺽꿀꺽 삼켰다.

RFB

으에에... 나 HP 바닥났어...

TMP

어지러워요오... 호엑...

TMP가 그대로 탁상에 풀썩 엎어졌다.

RFB

아하하, 허접하긴... 꼴깍.

RFB도 그대로 고꾸라졌다.

시스템

<color=#FFFF00>NPC 2명의 공략에 성공했습니다.</color>

<color=#FFFF00>퀘스트 제2단계로 돌입.</color>

똑똑 소리와 함께, 스프링필드가 이번엔 따뜻한 물을 들고 왔다.

스프링필드

더 필요한 거 있으신가요?

수오미

예.

수오미가 자신의 마일드 트리를 단숨에 비우고 말을 이었다.

수오미

얘네, 포장해 주세요.

기가 막히는 전개에 화들짝 놀란 수오미는 어젯밤의 자신의 행보를 의심했다.

수오미

<color=#A9A9A9>맙소사, 이거 진짜 나 맞아?!</color>

<color=#A9A9A9>대체 어쩌자고 저런 짓을... 바이러스 걸린 것도 아니고 뭔데!?</color>

<color=#A9A9A9>...그럼, 내 침대 위의 저 사람은...</color>

R... RFB...?

떨리는 손을 갈색 머리카락에 뻗자...

탁상 밑에서 무언가가 수오미의 치맛자락을 당겼다.

RFB

수오미... 나 물 좀 줘...

수오미

<size=50>히익?!</size>

<color=#A9A9A9>그럼 침대에 있는 건...?</color>

RFB는 밍기적밍기적 탁자 밑에서 기어나와 기지개를 켰다.

수오미

당신 왜 탁자 밑에서 나와요!? 침대 위의 이 갈색 머리는 누구죠?!

RFB

나야 게임기 충전했지. 침대의 쟨 TMP고.

어제 네가 쟤한테 나처럼 코스프레시켰잖아, 스쿼드로 이기려면 내가 둘이어야 한다면서. 기억 안 나?

수오미

......

수오미는 자신의 자존심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RFB

근데 사실 TMP도 게임 잘하는 편이다? 나중에 또 같이 할 때 보라고.

아, TMP도 깼어?

TMP

우웅... 수오미 씨... 이제 이거 벗어도 돼요...?

수오미

빨리 벗으세요, 어젠 제가 너무 취해서――

RFB

어, 그럼 어제 도와주겠다 한 것도 기억 안 나?

TMP

제가 이거 쓰면... 같이 방법 생각해 주겠다고...

수오미

제가... 뭘요? 그러니까 뭘 도와주겠다고 했죠?

기억이 아직 거기까지 동기화가 안 돼서...

RFB

어젯밤에 네가, 같이 TMP의 마음을 K2에게 전하는 걸 돕기로 약속했어.

그러니까, 도구 제작이랑 호송 담당!

수오미

......?

TMP

어젯밤에 들려주신 노래 덕분에,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수오미 씨밖에 없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 노래를... K2 대장과 모두에게 전하고 싶어요!

RFB

그렇대~ 우리가 도와주자 수오미, 응?

수오미가 고개를 돌려, 아직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RFB의 얼굴을 바라봤다.

한순간, RFB가 불쑥 나타나 옆에 앉아선 멋대로 게임에 끼어들었던, 몇 개월 전의 그 날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수오미

좋아요.

그래서, 그날과 똑같이 대답했다.

12월 24일 오후 4시, 그리폰 기지의 파티 홀.

수오미 일행은 이곳에서 곡을 재확인하고 어떻게 "포장"할지를 궁리했다.

수오미

그러니까... TMP의 마음을 전할 곡을 대원들에게 전해 주면 된다는 거죠?

TMP

네! 곡은 벌써 정했어요, 어젯밤 수오미 씨가 들려준 그거요...!

그때 수오미 씨가 가사도 따라 부르셨잖아요, "우린 한밤중에 깨어나 삶의 축제를 여리라!"...

수오미

......

RFB

맞아맞아, 그 노래를 BGM처럼 틀면서 들어왔을 때 엄청 멋졌어!

TMP

"초에 불을 붙이긴 어려우나, 대신 어둠을 욕하기는 쉬우니!"

수오미

...그만, 어느 곡인지 알겠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들은 게 이거 맞나 확인해 주세요.

수오미는 어젯밤의 곡을 파티 홀의 방송 설비에 전송했다.

그리폰 MUSIC

신분 확인 - 전술인형 수오미. [그리폰 MUSIC]에 연결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송하신 곡을 확인, 재생 중...

"헤비"한 광란의 노래가, 홀의 대형 스피커에서 파도처럼 쏟아져 나왔다.

수오미

이 곡 맞죠?

RFB

이거야 이거!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이야!

TMP

와아아! 모두가 좋아할 거예요!

RFB

다 같이 소리질러! 얏호――!!

수오미

앗? 잠깐——

신난 RFB가 수오미 TMP의 손을 덥석 붙잡고는 리듬의 파도에 몸을 맡겼다.

얼떨결에 휩쓸렸지만, 수오미는 내심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길 빌었다.

맞잡은 손을 따라 격류처럼 전해지는 이 즐거움이,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노래는 반복 재생이 아니었다.

TMP

저기... 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이 선물을 어떻게 전할지...!

노래를 그냥 링크로 전하는 건 신비로움이 부족하니까...

제 방에 소형 메모리 카드가 많은데, 구식이지만 곡 하나를 담기에는 용량이 충분할 거예요!

RFB

무슨 말인지 알겠다! 갑자기 수수께끼의 메모리 카드를 받으면 안에 뭐가 들었나 당연히 궁금하겠네!

수오미

그거, 써본 적은 있나요?

TMP

네! 방금 하나 완성했어요!

TMP가 활짝 웃으며 손에 쥔 메모리 카드를 수오미에게 건넸다.

각지고 소박한 것에 담긴 뜨거운 마음.

메모리 카드에 저장된 곡이 정상적으로 재생되는지 간단히 확인해보는 것만으로, 수오미는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RFB

그럼 선물은 이 메모리 카드로 결정! 작고 튼튼하니까 전달해 주기도 쉬우니 안성맞춤이네!

수오미

그럼 이제 어떻게 포장할지를 정해야...

RFB

그나저나 TMP, 이 메모리 카드 혹시 저번에 같이 갔던 중고 시장에서 네가 퍼 온 쓰레기야?

TMP

에엑... 쓰, 쓰레기라니 너무해요...

수오미

......

<color=#A9A9A9>RFB는 TMP랑 같이 중고 시장도 가봤구나...</color>

손에 메모리 카드를 쥔 수오미의 마음속에, 오만가지 복잡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RFB

미안미안, 농담이야. 사과하는 의미에서 내 성탄 코인 줄까?

아, 생각해보니까 이거, 우리가 자주 가는 아케이드 오락실의 코인 대신으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TMP

네?

그 순간, 수오미의 마인드맵 속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냅다 그리폰 MUSIC으로 다시 노래를 재생했고, 음량을 최대로 높였다.

수오미

잡담은 이제 그만! 오늘은 즐겁게! 모두 함께 노래를 즐겨요!

RFB

아하하! YEAH――!!

TMP

Yeah――!

세 인형들은 다시 손에 손을 잡고 방방 뛰었다. 수오미도 모두와 함께 헤비 메탈에 무아지경이 된 듯 보였지만, 머릿속은 말 그대로 명경지수였다.

자신이 RFB에게 자신의 성탄 코인을 주고 싶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성탄 코인을 받고 싶은 마음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수오미

<color=#A9A9A9>...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지.</color>

<color=#A9A9A9>RFB에게서 코인을 받으려면, 우선 어떻게든 TMP를 떼어놓고 단둘이 있는 상황부터 만들어야 해...</color>

맞잡은 TMP의 손을 의식하며, 수오미는 머리를 굴렸다.

수오미

<color=#A9A9A9>다행히 TMP는 코인에 욕심이 없어 보이니, 소원만 잘 들어주면 자연스럽게 떨어지겠지?</color>

<color=#A9A9A9>그럼 RFB와 단둘이 있을 기회가 생길 텐데, 어떡해야 코인을 받을지...</color>

그때, RFB가 수오미의 귀에 대고 외쳤다.

RFB

<size=50>수오미! 나 좋은 생각이 났어!</size>

수오미

<size=50>뭔데요?</size>

RFB

<size=50>우리, 이 기분을 모두한테 전하자!</size>

<size=50>TMP네만이 아니라 그리폰 전체에!</size>

<size=50>모두가 우리처럼 즐거워지도록!</size>

TMP

<size=50>와아——!!</size>

수오미의 눈동자도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RFB

<size=50>덤으로 성탄 코인 대회도 우승하는 거야!</size>

<size=50>우승해서, 소원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이 노래를 그리폰의 모든 기지에다 1년 내내 반복 재생하자고!</size>

TMP

<size=50>우와아——!!</size>

원대한 계획을 세운 셋은 환호했고, 수오미도 고민은 잠시 접어 두고 지금 이 순간의 환희에 몰입했다.

덕분에, 아무도 귀마개를 쓴 인형이 조심조심 파티 홀로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100식

안에 있는 분들! 당신들은 포위됐습니다!

100식이 무대 위의 세 인형에게 경고했지만, 볼륨 최대인 노래 때문에 들릴 리가 만무했다.

100식

<size=50>당신들...! 콜록콜록... 포위됐단...!</size>

100식

아 몰라, 음악 정지!

음악이 툭 끊어졌고, 메아리의 여운과 함께 수오미 일행도 그대로 멈췄다.

100식

휴우... 질서유지반의 100식입니다. 당신들이 지금 여기서 엄청난 소음을 내고 있다는 민원이 다수 접수됐어요!

수오미

소음...!? 이게 뭐가 소음이란 거예요!

RFB

100식이 오해한 거 아니야?

우린 그냥 여기서 모두를 즐겁게 할 음악을 먼저 좀 즐기고 있었을 뿐인데?

100식

아무튼 지금 이 시간부로 파티 홀의 미디어 재생 설비는 사용 금지예요!

RFB

뭐어? 아 좀 봐주라 100식~!

100식

죄송해요... FP-6 씨가 맡긴 임무라, 그녀의 신뢰를 저버릴 순 없어요...

100식

그러니까 이만 나가 주세요. 협조 부탁합니다.

수오미

......

수오미는 재생 설비에 붙여진 빨간 "사용 금지" 딱지에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100식과 협상하는 RFB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계속할 용기가 샘솟았다.

수오미

<color=#A9A9A9>선곡과 전달 방법은 정해졌어. 이제 남은 건... 마케팅.</color>

<color=#A9A9A9>독특하고 눈에 띄는 홍보 방식이어야만 모두를 제치고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거야.</color>

100식

――안 돼요, 이 일은 정말 선처해드릴 수 없어요.

FP-6 씨가 직접 저를 불러서 맡기신 중요한 임무라고요. 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손 안의 메모리 카드를 꾹 쥐면서, 수오미가 나섰다.

수오미

알겠어요.

RFB

엥, 수오미?

수오미

저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겠다 약속해서, 당신의 심정을 이해해요.

100식

양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수오미 씨.

수오미

대신 이걸 받아 주겠어요?

수오미는 그 메모리 카드를 100식에게 내밀어 보였다.

100식

이건...?

수오미

마음이란 상대와 비슷한 경험이라도 하지 않으면 공감하기가 어려운 법이죠.

그래서 다른 형식과 매체를 이용해, 마음을 전해야 해요.

이 메모리 카드에는 노래 한 곡이 들어있어요.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상대에게 주면, 그 사람도 분명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예요.

100식

......

수오미

크리스마스에만 통하는 마법이죠.

그 말에 놀란 100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수오미는 그녀의 눈에서 자신과 비슷한 것을 보았다.

100식

...고마워요.

100식은 메모리 카드를 받아들고, 공손히 인사한 뒤 홀을 빠져나갔다.

RFB

오호라... 이게 네가 생각한 "포장"이야?

수오미

우릴 제재하려던 사람에게도 먹혔으니, 효과는 확실하네요.

TMP

저, 슬로건도 정했어요...!

"마음을 전해라"!

한껏 들뜬 TMP가 잠시 고민하더니, 메모리 카드에 조심스럽게 글을 적었다.

"How I Remind of U".

RFB

좋~았어! 우리 계획 준비 다 된 거 맞지?

TMP

물건... 포장... 홍보... 준비 완료!

수오미

그럼 지금부터――

수오미

――아, 잠깐만요.

RFB

왜 그래?

수오미

방금 100식한테서 성탄 코인 달라 하는 걸 깜빡했네요, 시장 검증 단계도 필요한데...

RFB

......

TMP

......

RFB

에이 뭐 사소한 문제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가자 얘들아! 성탄 코인을 위하여!

수오미

우리의 마음을 모두에게 전하기 위해서예요.

TMP

아, 아무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