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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21 · 한푼차이

꽂처럼 흩날리는 눈 Ⅱ

...돌아가기 전에 알려드릴 비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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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오후 8시, 기지 근처.

FP6

음, Px4는 여기서 체포됐군.

좋았어, 사건 보고서 기록 완료. 세부 사항을 좀 더 붙인 다음에 지휘관한테 올리자.

뭐,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보고할 필요는 없겠지. Px4 녀석 일은 나중에 찬찬히 조사해보자고...

FP-6는 다짐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편, 100식은 FP-6를 몰래 따라다니며,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묘한 미소를 보이는 모습에 잔뜩 겁을 먹었다.

100식

<color=#A9A9A9>으으... 설마 파묻은 흔적을 들켰나?</color>

<color=#A9A9A9>진실을 알게 되면 날 엄청 미워하려나...?</color>

<color=#A9A9A9>그, 그건 싫은데...! 간신히 괜찮은 사이가 됐다 싶었는데...</color>

<color=#A9A9A9>이럴 줄 알았으면 Px4 씨의 말을 듣지 말걸...</color>

100식은 FP-6 옆의 그 나무를 바라보며 후회했다.

12월 24일 오후 5시, 기지의 창고.

도주범들의 위치를 파악한 100식과 FP-6이 문을 열었을 때 Px4 스톰은 이미 창고 바깥을 밟았고, CAWS도 막 창문에 걸터앉은 참이었다.

FP6

찾았다!!

100식

둘로 갈라져서 도망치려 해요!

벌써 저만치 달려가는 Px4 스톰을 본 100식은 재빨리 뒤쫓았다.

100식

제가 Px4 씨를 쫓을게요!

FP6

100식! 잠깐――

FP-6의 외침은 바깥의 바람 소리에 흩어져버렸다.

100식의 정신은 온통 저 빨간 뒷모습에 팔렸다.

100식

<color=#A9A9A9>절대 FP-6 씨를 실망시키지 않겠어!</color>

거기 서라! Px4 스톰! 거기 서!

Px4 스톰

멈추라고 멈추는 바보가 어디 있어?

100식

거기――으흡...!

소리지를 때마다 입 안으로 얼음장 같은 눈보라가 들어왔다.

혀가 얼어버릴 것만 같아, 결국 100식은 그냥 입을 앙 다물고 전력으로 Px4 스톰을 추격했다.

그렇게 빨갛고 검은 두 그림자가, 고요한 눈밭 위를 내달렸다.

주차장, 사격 훈련장, 식당 근처...

도망가는 Px4 스톰과 이판사판으로 뒤쫓는 100식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듯했다.

100식

<color=#A9A9A9>...이상해. 나를 따돌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는데, 왜 계속 일직선으로만 도주하는 거지?</color>

<color=#A9A9A9>혹시 따로 속셈이 있나? 다른 일행이 어디서 기다리는 걸까?</color>

<color=#A9A9A9>그럼 FP-6 씨한테 지원 요청을 보내야... 으응, 아니야... 내가 나서서 한 일이야, 혼자서 해결해야 해!</color>

100식은 체력이 바닥날 지경임에도 이를 악물고 끈질기게 Px4 스톰의 뒤를 쫓았다.

한참 뒤, 마침내 Px4 스톰의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100식

<color=#A9A9A9>지금이다!</color>

100식

Px4 씨! 얌전히 멈추세요!

Px4 스톰

그래.

그 말에 Px4 스톰이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그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마찬가지로 꼴이 엉망인 100식에게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100식

헉... 헉... 따, 따라오세요...

Px4 스톰

후우... 잠깐만... 아니 잠깐만 기다리래도...?

100식은 Px4 스톰의 손을 붙잡아 수갑을 채우려 했다.

하지만 Px4 스톰은 체력이 바닥났을 텐데도 좀처럼 얌전히 붙잡혀 주질 않았다.

100식

저기... 헥... 얌전, 얌전히 체포에 응해 주세요...

같이 돌아가서, FP-6 씨한테...

Px4 스톰

왜 그렇게 FP-6의 말을 들어?

100식

그녀가... 기회를 줘서... 하, 함께 임무를 수행하자 해 줘서요...

Px4 스톰은 저항을 그만두는 대신 얼굴에 교활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Px4 스톰

아하, 걔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거구나. 그럼 협조해 줄게.

...오, 마침 잘됐다. 내가 비밀 하나 가르쳐 줄까?

100식

......

뭔데요?

Px4 스톰이 고개를 들어, 100식의 뒤에 있는 나무에게 시선을 향했다. 제법 크지만 평범한 소나무였다.

Px4 스톰

이 소나무 있잖아, 그냥 평범한 나무가 아니다?

100식

네...?

Px4 스톰

우리 기지에 떠도는 소문 못 들어봤어? "우정 나무 전설" 말이야.

100식

......아뇨.

Px4 스톰

우리 그리폰에는 자매처럼 착 달라붙어서 다니는 애들 많은 거 알지?

사실 걔네도 처음부터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어.

100식

......

그 말을 들은 100식의 머릿속에 수많은 "단짝"들의 모습이 스쳤다. 볼 때마다 부럽기 그지없던 그 모습들이.

Px4 스톰

인형들끼리는 친구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100식

네...

100식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Px4 스톰

음음, 마음을 전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지. 게다가 용기를 내서 전하더라도 꼭 받아 줄 거란 보장도 없고.

Px4 스톰

친구를 사귀는데 운도 따라 줘야 한다니, 세상 참 부조리하다니까.

100식

그렇다니까요!

Px4 스톰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전하고, 상대가 또 그걸 고스란히 받아줄 수만 있다면...

100식

친구 사귀기가 그렇게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요!

Px4 스톰

그치? 바로 그게 이 우정 나무의 유래야.

소문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그리폰에 친구를 사귀고 싶은 인형이 있었는데, 너무 내성적이어서 남들에게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대.

그래서 그 인형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신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물건을 이 우정 나무의 밑에 묻고, 진심을 담아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대.

그랬더니 세상에, 크리스마스날 친구가 되고 싶었던 인형과 바로 친해져서, 저녁 식사까지 같이 했다지 뭐야!

100식

정말요...?! 그, 그 인형 이름이 뭔데요!?

Px4 스톰

이 사진 좀 볼래?

Px4 스톰이 낡은 사진 하나를 100식에게 전송했다.

그 사진에는, 100식이 처음 보는 소녀 둘이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에 앉아 서로에게 기댄 채 활짝 웃고 있었다.

100식

......

Px4 스톰

크리스마스 이브에 네 마음이 담긴 물건을 이 우정 나무 아래에 되도록 많이 묻은 다음 진심을 담아 소원을 빌면, 크리스마스에 친구를 한 명 얻을 수 있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여기까지 이렇게 열심히 달려온 이유도 다 이 나무 때문이야.

Px4 스톰은 "우정 나무"를 툭툭 두드리더니, 나무 아래에 땅을 파기 시작했다.

Px4 스톰

내가 오래전부터 사귀고 싶은 인형이 있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거든.

100식

......

Px4 스톰

넌 그런 고민 없지?

100식

아뇨... 저도...

Px4 스톰

헤에... 의외인걸.

Px4 스톰은 금세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가져온 성탄 코인을 보따리째로 던져 넣었다.

Px4 스톰

이제 여기다 소원을 비는 거야!

100식

......

100식이 보는 앞에서, Px4 스톰은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100식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다, 주머니에서 자신의 성탄 코인을 꺼내 들었다.

100식

<color=#A9A9A9>정말... 친구가 생길까?</color>

Px4 스톰

...끝. 이제 구덩이를 메울게...

100식

잠깐만요!

Px4 스톰

응? 왜, 너도 소원 빌게?

100식

......네.

망설인 끝에, 100식도 자신의 성탄 코인을 구덩이에 넣고 기도했다.

100식

<color=#A9A9A9>신이시여, 제가 FP-6 씨와 친구가 되게 해 주세요!</color>

기도하느라 꼭 감았던 눈을 떴을 때도, Px4 스톰은 제자리에 있었다.

Px4 스톰

다 했어? 그럼 이제 묻는다?

100식

네.

Px4 스톰

아참참, 말해 주는 걸 깜빡할 뻔했네.

100식

뭐, 뭔데요?

Px4 스톰이 구덩이를 묻다 말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Px4 스톰

만약 누가 이 구덩이를 크리스마스가 지나기 전에 파내버리면, 빌었던 소원은 전부 무효가 되어버린대.

100식

아하...

Px4 스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야.

네가 빈 소원의 그 상대가, 널 어어어엄청 싫어하게 된대!

100식

녜!? 그, 그럼 어떡하죠?!

Px4 스톰

괜찮아 괜찮아, 크리스마스가 끝날 때까지만 비밀을 지키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100식

하지만...

Px4 스톰

무슨 걱정인진 알아, 나를 체포하고 이 성탄 코인을 회수하는 게 네 임무잖아.

하지만 딱 하루만 참으면, 넌 소원도 이루고 FP-6이 맡긴 임무도 완수할 수 있어.

100식

전...

Px4 스톰

100식이 착한 아이란 건 다들 아는 사실인걸! 착한 아이라면 누구나 크리스마스에 최고의 선물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Px4 스톰은 스스로 수갑을 찼다.

Px4 스톰

자, 가자. 체포한 용의자는 연행해야지.

12월 24일 오후 8시 30분, 기지의 근처.

죄책감으로 찔리는 마음에, 100식은 가까운 나무의 거친 기둥에 이마를 댔다.

100식

<color=#A9A9A9>역시 속은 거지? 속은 거겠지!? 그런 형편 좋은 마법이 있을 리가 없겠지?!</color>

<color=#A9A9A9>하지만... 지금 이걸 FP-6 씨에게 말하면...</color>

<color=#A9A9A9>마법이 아니라도 날 엄청 싫어하게 될 거야!</color>

<color=#A9A9A9>그렇다고 말 안 하면 난 Px4 씨와 공범이 되는데...</color>

100식은 이젠 아예 나무에 이마를 쾅쾅 부딪혔다.

100식

<color=#A9A9A9>안 돼! 역시 솔직하게 말해야 해!</color>

<color=#A9A9A9>설령... FP-6 씨한테 미움받게 되더라도... 어?</color>

잠시 눈을 뗀 사이에, 우정 나무 앞에 있던 FP-6가 사라지고 없었다.

100식

<color=#A9A9A9>어... 언제 갔지?</color>

<color=#A9A9A9>나... 나는...</color>

100식은 몸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시각 모듈의 특수 필터가 다시 한번 켜졌고, 펑펑 내리는 눈송이가 벚꽃잎으로 변했다.

100식이 그리폰에 입사한 지 7일차의 오후, 기지 내 카페.

100식은 카페의 문 근처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창밖의 햇살이 따스했지만, 할일이 없었다.

100식

<color=#A9A9A9>입사하고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친구를 한 명도 못 사귀었어...</color>

<color=#A9A9A9>내가 조금만 더 밝은 성격이었다면...</color>

가볍게 한숨을 푹 쉬면서, 100식은 창밖의 잎사귀가 우거진 나무들을 바라봤다. 내심 저 나무들이 벚꽃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툭툭.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넋놓고 밖을 보던 100식이 놀라 정신을 차렸다.

입에 초콜릿을 문, 금발에 꽤나 험상궃은 인상인 인형이었다.

100식

<color=#A9A9A9>엑, 내가 뭐 잘못했나?</color>

100식은 당황해서 허둥대다 커피까지 엎지르고 말았다.

그러자, 창밖의 그 인형이 카페로 들어왔다.

FP6

놀라게 해서 미안.

100식

아, 아뇨... 저...

FP6

FP-6. 지나가다 정신 쏙 빠진 얼굴이길래 말이지.

뭐 희한한 거라도 있나 해서 봤더니 아무것도 없더라?

그래서 뭘 봤길래 그렇게 이죽댄 건가 궁금해서 물어보려던 거였어.

100식

아, 그게, 저, 저 나무를 보니까... 제가 예전에 많이 보던 벚꽃이 생각나서...

FP6

흠?

FP-6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밖의 푸른 나무를 봤다.

100식

<color=#A9A9A9>망했다, 또 이상한 말을 했어... 이상한 녀석이라 생각할 거야!</color>

FP6

벚꽃을 보고 싶어?

100식

네?! 아... 네...

FP6

훗, 그럼 마침 좋은 물건이 있지.

FP-6가 피식 웃으면서 100식에게 프로그램을 공유해 줬다.

FP6

이건 특수 시각 필터인데, 실행하면 눈앞에서 벚꽃이 휘날려.

나도 친구한테 받은 거야, 한번 써 봐.

100식

해, 해볼게요...

정말이었다. 필터를 켜자, 푸른 잎사귀가 무성하던 나무가 분홍빛 벚꽃으로 만발했다.

100식

멋지다...

FP6

꽤 괜찮은 벚꽃이지?

방금은 놀라게 해서 정말 미안해, 그 필터는 사과 선물로 받아 줘.

FP-6은 뒤로 손짓하며 쿨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100식은,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계속 물끄러미 바라봤다.

12월 24일 오후 9시, 기지 근처.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었던 100식이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밤이 깊어졌다.

100식

돌아가자... 내일도 질서유지반의 업무를 해야니까...

몸에 묻은 눈을 털어내면서, 100식은 천천히 일어섰다.

100식

마법 같은 게, 정말 있을 리가...

그때, 주머니에 뭔가 단단하고 작은 물건이 느껴졌다.

바로 수오미가 준 소형 메모리 카드였다.

메모리 카드에는 "How I Remind of U"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마음을 전해라".

수오미

크리스마스에만 통하는 마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