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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23 · 퍼미션 리로딩

집결명령

"필기 시험 같은 건 꽝이어도, 화력 투사는 누구한테도 안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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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직... 지지직...

공허에서 무수한 픽셀이 몰려와 새하얀 땅으로 뭉치며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 나갔다.

두둥실한 느낌도 곧 사라져, CMR-30은 다시 몸을 끌어당기는 중력을 느꼈다.

털썩!

무릎에 힘이 풀려 넘어지려는 CMR-30을 톰슨이 타이밍 좋게 부축했다.

CMR-30

아... 고마워 톰슨 선배!

톰슨

천만에.

그런데 별일이네, 전자전 훈련처럼이라면 난이도에 따라서 적당히 우리의 스펙도 조절해 주는데, 이건 반실사야. 능력치가 전부 현실과 동기화되어 있어.

뭐, 신참한텐 잘된 일이려나? 실전 훈련인 셈 치고 천천히 적응하면 돼.

CMR-30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까지 교실 같은 분위기의 회의실에 있던 넷은 지금 설원의 한복판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리고 푸른 빛이 감도는 투명한 장막이 그들을 중심으로 드리워져, 지름 10m 크기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장막에는 스크린처럼 9분이 조금 안 남은 타이머가 띄워져 있었다.

톰슨

설명할 테니 주목해라, 신참.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전자전 훈련서 흔히 볼 수 있는 "준비 구역"이다. 그리고 저 벽은 경계선이지.

우리가 넘는 순간 실전처럼 적에게 노출되어 전투 시작, 이란 거다.

CMR-30

저 벽의 타이머는 뭐야?

톰슨

그야 당연히 이 준비 구역이 사라지기까지의 시간이지. 여기서 죽치고 있을 수만도 없잖아?

타이머가 끝나면 전투가 자동으로 시작될 거야, 우리가 제발로 나갈 때랑 똑같이.

주의할 점은 이상이다. 더 궁금한 거 있나?

CMR-30

없어! 고마워 선배!

톰슨

좋아, 그럼 전원 집합.

80식과 시노는 따르는 둥 마는 둥 느릿느릿 한자리에 모였다.

톰슨

지금부터 보충 시험 소대의 제1회 임시 작전 회의를 시작한다.

평소 하던대로, 각 소대원은 자기소개.

80식

우리 셋은 생략해도 되지 않나... 신참부터 시작해.

CMR-30

어? 나?

갑자기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CMR-30은 잠깐 얼을 타다 목청을 가다듬었다.

CMR-30

어... 크흠, 저는 최근 그리폰에 입사한 전술인형 CMR-30입니다!

특기는 작전이랑 테니스고, 그리고 신입 소대의 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카르카노 M91/38

반가워요, 저는 밝고 명랑한 카르카노 M1891, 줄여서 카노라 해요.

다정하고 믿음직한 동생 시노도 있으니 잘 부탁드흐으아아――

톰슨이 시노의 머리를 마구 문지르며 끼어들었다.

톰슨

됐어 욘석아, 하여간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니까.

톰슨

왼쪽의 얌전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한 성깔 하는 안경 땅꼬마 선배는 80식.

필기 시험 같은 건 꽝이어도, 화력 투사는 누구한테도 안 지지.

톰슨

그리고 오른쪽의 무표정한 거짓말쟁이는 카르카노 M91/38인데, 별명인 시노라 부르면 돼.

평소엔 엉뚱하지만 진지하게 할 땐 하는 녀석이야. 얘도 물론 네 선배고.

CMR-30

아... 으음...

공지로 "공개 처형"됐던 두 얼굴들을 찬찬히 살피는 CMR-30은 역시 톰슨의 칭찬엔 영 의심이 들었다.

톰슨

그리고 나, 톰슨은 우리 중 그리폰 재직 기간이 가장 긴 인형이자 최전열을 담당하는 명예로운 대선배시다.

이상, 소개 끝.

아무튼 너희는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전부 합격시켜 줄 테니까!

CMR-30

응! 고마워 선배!

CMR-30은 무의식중에 차렷 자세로 톰슨을 우러러보며 답했다.

80식

타이머 5분 남았는데, 이제 어쩔 거야?

톰슨은 대답하지 않고 시스템 인터페이스를 넘겨보며 생각에 잠겼다.

톰슨

흐음... 이런 훈련을 하면 미리 작전 맵을 보내 두는데, 왜 지금은 받은 게 아무것도 없... 잠깐.

아하, 뭔지 알겠다.

CMR-30

뭔데?

톰슨

아까 카리나 말 기억해? 이 가상 전투는 다 시험 범위 내에서 고른 거라고.

즉, 지금 우리가 있는 전장은 보스가 과거에 겪었던 전투일 가능성이 높단 뜻이지.

겪어본 전장이라면 이 주변의 지형도를 기억에서 찾을 수 있을 거야.

80식

아, 그렇구나. 어디...

...찾았다.

카르카노 M91/38

설원, 겨울, 그리고 이 익숙한 초연 냄새... 모르는 게 이상하겠네요.

CMR-30

응? 무슨 얘기야?

이게 무슨 전투인데?

톰슨

시간 없으니 얼른 설명해 주마, 신참.

이 스테이지가 재현한 건 S03 구역이야. 그때 수송 헬리콥터가 격추당해 고립된 한 인형 소대를 구출하기 위해, 보스가 우리를 이끌고 나섰지.

CMR-30

아하, 알았다! 그게 여기구나!

그때 여기서 철혈과 싸웠던 거지?

시험 자료에도 엄청 중요한 전투였다고 되어 있었어, 지휘관 커리어의 전환점이었다면서...

톰슨

정답.

바로 여기서 우리 그리폰이 처음으로 철혈의 고위 유닛을 생포했지,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 보스가 빅 보스의 주시를 받게 됐고.

CMR-30

역시 선배는 엄청 잘 아는구나!

톰슨

알다마다, 그때 나도 참여했으니까 말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통에 헬리포트로 보급받기도 어려워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원...

80식

저기, 언제까지 수다 떨 거야? 시간 없다며.

80식이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톰슨

아 좀 기다려 봐.

시험도 중요하지만, 이 기회에 우리 신참한테 그날의 영광스런 전투를 공부시켜 주는 것도 좋지 않겠어?

80식

몰라, 여긴 풍선껌도 없어서 빨리 나가고 싶다고.

그때라면 별거 아닌 쉬운 적뿐이잖아, 꾸물거릴 거면 나 먼저 갈래.

톰슨

야, 잠깐――

촤악.

톰슨이 말릴 새도 없이, 80식이 준비 구역의 경계선을 넘어 달려가 버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장막이 사라지더니,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CMR-30

엑, 바로 시작이야?!

카르카노 M91/38

그런 것 같네요.

톰슨

쯧, 성질 급하긴.

저 녀석 도와주러 갔다 올 테니 너희 둘은 적당히 엄폐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