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36C
MOD 3
작전 시뮬레이션이 끝난 후.
침대 위에 반듯이 누워 있는 G36C은 시뮬레이션의 상황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작전에 실패할 때 벌어질 광경을 상상하는 것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점점 불안감만 커져 갔다.
왜... 다들 이렇게 칠칠맞지 못한 나를 위해서...
예전에 G36 언니와 함께 싸웠던 일도 기억났다. 언니와 함께라면,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총탄이 아무리 전개한 포스실드를 두들겨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언니도... 그들도...
귓가엔 시뮬레이션에서의 총성이 메아리쳤다. 무수한 총탄이 포스실드마저 깨뜨리고, 동료들의 소체까지 무자비하게 꿰뚫던 소리가.
내가 좀 더 강해진다면... 모두를...
밤이 깊어지면서 시간의 흐름도 느려졌고, G36C는 그저 말없이 천장만 바라보던... 그때였다.
크흠... G36C 씨?
?!!
누구세요?!
전혀 기록이 없는 신호가 통신을 연결했다. 신호 스캔 결과 적대적은 아니었지만, G36C를 당황시키기엔 충분했다.
어휴, 드디어 포트를 찾았네...
안녕하십니까 G36C 씨, 저는 현재 범죄 조직에게 감금된 상태인 IOP 402번 기술자입니다.
엑... 당신이 그 납치당했다는 IOP의 기술자시라고요...?
못 믿겠어요. 신분을 증명하세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G36C의 통신기에 바로 일련의 숫자가 전송됐다. IOP의 직원임을 증명하는 ID였다.
정말 IOP의 직원이 맞으시군요, 그런데 어째서――
시간 없으니까 요점만 말하겠습니다.
절 납치한 놈들이 떠드는 걸 들었는데, 그리폰이 구출 작전을 맡았다는 게 사실입니까?
네, 맞아요. 그쪽 상황은 어떤가요?
저는 지금 심문실에 갇혀 있습니다, 그 자식들이 저한테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IOP의 기밀 기술을 빼내려고 해요.
다행이 놈들이 아직 원하는 걸 얻지 못해서, 목숨이 위태롭진 않습니다.
IOP의 미공개 기술이요...?
한 회사의 기술자로서, 기밀을 유지해야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고심한 끝에, 마음을 먹었습니다.
놈들이 원하는 이 기술을 당신에게 공유하기로요.
잠시만요, 그게 어떤 기술이죠? 아니 그보다 왜 저에게...?
G36C가 상황을 정리하기도 전에, 상당한 용량의 데이터가 그녀의 마인드맵 공간에 전송됐다.
[마인드맵 공간의 축적 에너지 해방 & 인형의 잠재 능력 활성화 프로그램 V 1.11]...
이건...?
제가 여태까지 제목 그대로의 방면을 연구해 온 결과물입니다.
동봉된 설명서는 제 성과의 요약이고요.
어... 402번 기술자님? 정말 죄송하지만, 당신의 개발품이라도 안전성도 확인하지 않고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순 없어요.
그렇죠, 아직 범용 테스트도 거치지 않아서 당신의 마인드맵과의 적합도가 어떻게 될지 예측조차 불가합니다.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결코 낮지 않겠죠.
죄송해요, 마인드맵에 손상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으니 설치할 수 없어요.
그래도 걱정 마세요, 한시라도 빨리 구출해드릴――
가망이 없으니까 이러는 겁니다. 아무리 그리폰이라도, 달랑 전술인형 소대 하나로 이곳의 방어를 돌파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요.
하지만 G36C 씨가 이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면, 마인드맵 공간에 축적된 에너지를 십분 활용해 당신의 포스실드를 대폭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공격도 우산 앞의 빗방울이 될 거예요.
그 말에, 모의 시뮬레이션 때의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번뜩이는 총구의 화염, 부서지는 포스실드, 동료들의 비명...
......
지휘관님과 기술팀과 상의할게요.
당신이 말하면 저는 기밀유출죄가 적용됩니다.
그럼 구하러 올 필요도 없어져요.
......
왜...
왜 하필 저죠...?
이건 더더욱 당신에게 말해서는 안 되는 정보입니다만...
IOP의 기술자인 제게 있어서, 당신은 무척 특별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제가 처음으로 설계를 담당했던 모델이에요.
그후의 제 모든 연구도, 당신의 모델을 베이스로 삼아 행했습니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과 가장 적합도가 높은 인형은 아마 당신이겠죠.
......!
아시다시피, 제겐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정말 다른 방법은 없나요...?
있다면 이렇게 당신에게 통신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전...
G36C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떡할지 모르겠는 일이 생기면, 언제나 곁의 언니가 도와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곁에 아무도 없었다.
항상 다른 사람이나 언니에게 기댔지만, 결국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 프로그램, 받을게요.
...기술자님?
기술자님, 들리세요?
아, 신호가 끊어졌네...
다음날, 암거래 조직이 농성 중인 벙커의 인근. 구출 임무를 맡은 소대원들이 각자 지정된 위치에 도착했다.
PSG, 상황 어때?
외곽에서 몇 명 더 제압, 체포했어요. 이제 남은 건 벙커 안에서 기술자를 구출하는 일뿐인데...
MG3...어제 얘기했던 계획대로 하는 거, 맞죠?
어떤 식으로든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먼저 준비할게.
어... 얘들아? 누구 G36C 못 봤어?
어째 아까부터 호출을 안 받는데?
네?
G36C? G36C, 응답하세요.
콰앙――!!
맹렬한 포성이 목표인 벙커 방향에서 들려왔다.
예정 작전 개시 시각보다 훨씬 일찍.
무슨 일이죠?! 설마 발각당했나요!?
아니야, 저건...!
뭐여, 쟤 왜 저래?!
G36C?! 무슨 생각이에요, 당장 돌아와요!!
가까스로 인근의 엄폐물에 숨어 포복한 채로, G36C는 눈앞에 숨막히게 배치된 자동화 포탑들을 보며 402번 기술자가 준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그러자 눈앞의 풍경이 접히며 마인드맵 공간으로 향하는 통로 같은 구멍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자신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리얼 넘버 18294810XX... 흠, 신세대 소체네?
후후후... 다시 소체를 접수할 기회가 찾아오다니.
참 순진해 빠진 얼굴이구나. 참... 불쌍하기도 하지.
너...는...?
나는 너야. 빛에 가려져 그림자 속에 숨겨져 있던 너.
이렇게 해방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지.
자아, 이제 소체를 넘겨. 오직 나만이 네가 상상도 못해 봤을 소체의 진짜 성능을 끌어낼 수 있어.
그게 무슨...?
그러니까... 이 힘을 받아들이면, 네게 지배당한다고?
인형이라면 명령 수행이 최우선 아니야?
네가 할 수 없는 일을 나는 할 수 있어.
너도 느꼈잖아? 방금 그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었던 건, 네 실력 덕분이 아님을.
......
안 돼... 이미 계획에서 너무 많이 벗어났어, 동료들과 합류해야 해. 내 안에서 나가 줘.
또 그런 비극을 되풀이하고 싶어?
콰앙――!!
순간적으로, G36C는 이 포성이 현실인지 기억에서 들려온 것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G36C!
조금만 더 버텨요!
우와아악!!
산산조각 나 흩어지는 포스실드의 조각에 비친 동료들의 소체가 맹렬한 포화에 벌집이 되는 광경이, G36C의 눈에 다시 비쳤다.
안 돼――!!
너도 언제까지고 응석받이인 채로 있긴 싫잖아?
구출하려는 기술자는 바로 저 앞에 있어.
그러니까, 네 몸을 나한테 맡겨. 네가 해내지 못할 일을 내가 대신 해 줄게.
하지만...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모두의 눈엔 "G36C"가 임무를 무사히 완수한 걸로밖에 안 보일 텐데.
그걸로 충분하잖아?
난...
아니면...
너 자신으로 있는 것이, 나약하고 남들 발목이나 붙잡는 너로 있는 것이 동료, 임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거야?
......
물론, 어떡할진 너에게 달렸어.
어떡할진... 나에게...
격발된 뒤 뱉어지는 탄피들이 좁은 공간의 숨막히는 공기를 달구며 이리저리 튀었다.
치명적인 총탄은 엄폐물로 삼은 방벽에 부딪혀 깨지면서 눈부신 불꽃을 튀겼다.
상심, 울분, 갈망...
마인드맵을 지녔기에 이토록 무력함이 느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언니, 동료들, 그리폰에 필요한 건... 어떤 나지?
자아, 내게로 와.
차가운 두 손이 G36C의 눈을 가렸다.
그러자 어둡고, 춥고, 죽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G36C이 감았던 눈을 다시 뜨자, 자욱한 초연 너머로 402번 기술자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G36은 심각한 표정의 카리나 옆에서 재검진 결과를 기다렸다.
잠시 후 검진 결과에 여전히 데이터 링크들이 단절되었음이 나타나자, 카리나는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자꾸 동기화에 실패하네...
역시 마인드맵의 문제였군요.
숙소에서부터 영문 모를 말도 했습니다. 대화 기능을 상실했는지 모니터 화면에 글을 출력하는 식으로만 소통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것도 마인드맵 오류 때문인가요?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이건 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상황이야.
G36C의 마인드맵이 왜 있는지 모를 불필요한 데이터와 함께 암호화되어 묶여버린 것 같아.
그래서 마인드맵에 착란이 발생했어.
불필요한 데이터라니, 그게 무슨...?
아직은 뭔지 몰라. 하지만 마인드맵 모듈은 출력이 엄청 낮은데 소체는 정반대라니...
이래선 마치... 고출력 가동 중인 무기 같아.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나도 이런 건 생전 처음 봐...
하지만 적어도, 동기화율은 하락할 수록 마인드맵이 서서히 분해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야.
......그럼 가만 있을 수 없군요.
마인드맵 공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카리나 씨, 준비를 부탁드립니다.
자, 잠깐만 G36! 말리진 않겠지만, 이거 엄청 성가신 상황이니까 안에서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해.
정 달리 방도가 없으면, G36C의 설정을 초기화하고 바로 마인드맵 업그레이드를 진행할 거야. 그러면 적어도 얘의 데이터가 완전히 손상되는 것만 방지할 수 있어.
네, 명심하겠습니다.
접속 포트 확인...
저도 대체 무엇이 제 동생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아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