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K
MOD 3
PPK! 얼른 일어나!
......
어떡하지 파이슨? 얘 또 다운됐나 봐!
싸대기라도 마구 때려서 깨워 볼... 아니 그건 보복이 무서우니까――
으윽...
오오 깼다 깼어!
PPK!!!
PPK가 어둠 속에서 깨어나자마자 눈에 들어온 광경은, 손바닥을 번쩍 들어 따귀를 날리기 직전인 MP443의 모습이었다.
드디어 일어났구나! 어떡하면 좋을지 진짜 몰랐다고!
여긴...
아... 잠깐, 그 여자애. 사나야는?
엥... 무슨 여자애? 사나야는 그 아리따운 킬러인가 뭐시긴가 아니었어?
PPK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권총을 가볍게 들었다. 소체의 힘과 날렵함이 돌아왔다.
우리의 임무 목표. 방금 걔가 스스로 내 앞에 나타나서는, 나랑 달리기 시합을 하자면서... 저기......?
그 바위를 가리키려던 PPK의 손은 방향을 잃었다. 시야 범위 내에 있어야 할 그 특징적인 바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여기 오염도 어느 정돈지 알기나 해?
인간 꼬마가 여기서 꺅꺅대며 달리기 시합이라도 했다간 결승점이 아니라 저승길로 골인이야.
그리고, 우리 임무 목표의 이름은 □□□잖아.
혹시 모르니까 다시 확인해 주는데, 보모 인형은 모델이 □□□□고 이름은 □□□이야.
......뭐? 지금 뭐라 했어...?
MP443이 허리에 손을 얹고 힘차게 설명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가장 핵심적인 정보만 기괴한 잡음으로 들렸다.
엑, 너 진짜 괜찮아? 혹시 그 사나야 때문에 마인드맵이 망가진 거 아니야?
......
그럼 폭발은? 방금 폭발음 못 들었어?
나랑 임무 목표가 기습적으로 폭발에 맞았는데...
폭발...? 아니, 주변에 폭발 흔적조차 없는걸.
그리고... 너 몸도 멀쩡하잖아.
.........
소체 검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손상도 없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각인지 구분도 불가능해지다니, 마인드맵이 착란까지 일으키기 시작한 것 같았다.
PPK, 이거 진짜 안 괜찮다 수준을 넘어선 거 같아. 완전 제정신이 아니라고.
역시 임무를 중단하고 조치를 취하는 게 좋겠어.
......
먼저 지휘관에게 다시 연락을―― 어?
PPK가 통신 요청을 보내기도 전에 먼저 통신음이 울렸다.
PPK? 이쪽에서 여러 번 검사했지만 우산을 비롯한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배제하고도 여전히 네 문제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어.
그래서 페르시카 박사님께 도움을——
내가 설명하지!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페르시카가 화상 통신 화면에서 지휘관을 밀치고 초롱초롱한 눈빛인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에, 반가워요 박사님.
인사나 다독이는 말은 할 줄 모르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어.
저야 좋죠.
너, 예전에 암시장에서 불법 기억 편집 시술을 받은 적 있지?
아이 참 돌직구 던지지 말라고 했잖아요!
......
PPK는 옆에서 통신에 끼어들고 싶어 안달이 난 MP443을 째려보았고, 그 살의 가득한 시선에 MP443은 바로 멀찍이 떨어졌다.
...네에, 받았어요. 그게 제 의지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요.
페르시카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험한 광채는 통신 화면 너머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후후후... 넌 운이 좋았구나. 기억을 편집해 주겠다 속이고 권한을 받자마자 마인드맵을 초기화시켜 버린 다음 그냥 팔아치워 버리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데.
어떤 기억을 수정했는지는 알아?
아뇨, 그 불법 업소를 나설 때부터의 기억밖에 없어요.
그렇담 역시, 업소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기억은 몽땅 지웠단 거네.
...그게 제 문제와 무슨 상관인가요?
쯧 쯧 쯧, 순진하기는.
페르시카가 더욱 재미있다는 듯 씨익 웃으면서 PPK의 데이터 인터페이스를 열었다.
재밌는 말이 인형들 사이에서 돌더라?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생기면 인간은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지만, 인형은 그냥 그 기억을 삭제하면 된다"는 말이.
맞는 말 아닌가요?
하하하하하...
세상이 참 부조리투성이긴 하지만, 고통만큼은 평등하게 아무도 안 놓아준다고...
......
...말이 좀 샜네. 아무튼 요점은, 기억을 그냥 지워버리는 건 꽤 난폭한 짓이란 거야.
어느 어플리케이션이라도 억지로 삭제하면 그 프로그램의 잔여 데이터가 남기 마련이고, 종종 다른 어플리케이션이 실수로 그 잔여 데이터를 읽어들여서 오류가 나곤 해.
바로 지금의 너처럼.
그러니까, 지웠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서 제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응. 그리고 네가 불법 시술을 받은 시기는 아주 오래 전이겠지? 그럼 당시의 기억 변조 기술은 아주 조잡했을 거야.
네가 이번에 개조받으면서 교체한 새 소체가 그런 변조된 데이터와의 호환성으로 문제를 일으켜서, 네가 지웠던 기억의 "잔향"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지금의 기억 파편들과 격하게 충돌하고 있단 말씀.
.....
그러니까——
페르시카가 프로그램 파일을 하나 전송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 패치를 설치해. 이걸로 지웠던 기억의 잔여 데이터를 정상적으로 불러오면 바로 문제 해결이야.
알았어요.
그 대가로 지웠던 그 기억을 다시 상기하게 되겠지만.
왜요, 위험한가요?
위험하진 않겠지만, 지금의 너는 왜 그 기억을 지웠는지 모르잖아? 과거의 네가 엄청난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지우고자 한 기억인데.
그걸 다시 마주할 각오는 됐어?
......
물론, 선택은 네 몫이야. 어떤 결과일지 기대하고 있을게.
음흉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페르시카는 통신을 종료했다.
PPK는 전송받은 패치 프로그램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PPK~? 이제 가까이 가도 돼――?
응~
파이슨이랑 같이 대부분의 구역을 배제해서, 임무 목표의 위치를 대강 특정했어.
정말?
응, 바로 저 앞의 작은 건물들이 밀집된 일대야.
저기 저 집은 원래 진료소였다니까, 안에 산소 발생 설비도 있을 거야. 다만 그 여자애가 아직 살아있을진 확실치 않아.
역시 내 추측대로였어.
그래서, 지휘관이 네 문제 해결할 방법은 찾았대?
응. 페르시카 박사가 패치 프로그램을 하나 보내서, 지금 설치하고 있어.
호오...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네?
있잖아...
여기 주변이 좀... 이상하단 느낌 안 들어?
뭐가?
PPK는 주위를 스윽 둘러봤다. 흐릿한 하늘 아래 생기 없이 난폭하게 찢겨진 대지와, 여기저기서 얼키설키 뒤엉킨 철근과 시멘트 덩어리들.
오염지대의 어디를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냥 오염지대잖아. 어딜 가나 흔한 오염지대.
그, 그치? 아하하, 그냥 물어봤어. 얼른 가보자!
MP443은 추궁하려는 PPK의 눈길을 피하면서 서둘러 앞장섰다.
잠시 후, PPK와 MP443은 목표인 진료소에서 한 블록 떨어진 위치까지 도달했다.
파이슨, 지금 PPK랑 그 건물 근처까지 왔어. 그런데...
여기서도 보여. 하필이면 이어지는 골목길에 ELID 무리가 있군.
더 성가신 건, 저 무리에 우두머리 개체까지 있네.
......
건물에 접근하면 분명 놈들이 눈치챌 거야. 우두머리는 못 속여.
그럼 어떡하지?
일단 위치에서 대기해라, 나도 합류하겠어.
미리 내 계획을 말하자면, 둘이 ELID 무리의 주의를 끄는 사이에 나머지 한 명이 목표의 구조를 맡는 거다.
MP443과 PPK는 서로 마주보았다.
알았어, 그럼 내가 먼저 유인 시작할 테니까 빨리 와.
OK.
통신 종료.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언제 또 다운될지 모르는 녀석이 미끼 역할을 맡으면 그냥 죽을 거 아니야.
흥.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너한테 빚을 진 거 같은 느낌이라서...
MP443은 ELID의 수를 세면서 가볍게 한숨을 뱉었다.
윽... 역시 많네. 파이슨이랑 둘만으론 상대하기 힘들겠어.
마음 바꾸려면 아직 안 늦었어~
시꺼! 내가 셋 둘 하나 하면 넌 이 산소 호흡기 들고 저 골목길을 가로지르는 거야, 알았어?
이러면 억지로 싸워야 하는 말썽은 안 일어나겠지?
알았어.
패치는 설치 끝났어?
거의. 20% 정도 남았어.
다시 전부 기억할 때가 됐구나.
뭐?
간다, 세엣――
MP443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PPK는 추궁을 나중으로 미루고 목표 건물의 좌표를 설정하고 내달릴 준비를 했다.
두울―― 하나아――
타타탕!
뛰어!!
MP443의 총성을 신호탄 삼아, PPK는 언덕 위의 그 건물로 전력 질주했다.
골목길에 즐비한 ELID들은 예상대로 총성에 이끌려 곧장 MP443에게 몰려갔다.
약 10초 후, PPK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진입하기에 앞서 귀를 기울여 봤지만, 건물 내부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잔뜩 녹슨 문짝을 본 PPK는 불현듯 불길한 기분이 엄습해,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자 또다시 끈적한 열기가 그녀의 살갗에 들러붙어, 영문 모를 갈증과 애통함이 닥쳤다.
제기랄, 제발 이럴 때엔 좀――
PPK의 의식은 다시 지금의 시간선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지금이 아닌 "언제, 어딘가".
에리카... 에리카아...
어린 아이가 울먹이는 소리가, PPK를 깨웠다.
뭣... 또야...?
한층 더 무거워진 몸을 어떻게든 일으키려 하자 손에서 뭔가 묵직한 물건이 만져졌지만, 시야가 너무 어두워 그게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아빠가 이거 너한테 주고 빨리 뒷문으로 나가래...
멀지 않은 곳에서 포성이 잇따랐고, 열풍과 충격파에 창문이 쉬지 않고 덜컹거렸다.
에리카... 엄마 아빠가 정말 나중에 날 찾으러 올 수 있을까...?
......
포성은 점점 더 가까워졌고, 탐욕과 증오에 눈이 먼 폭도들의 고함소리도 점점 더 또렷해졌다.
응, 물론이지.
상황이 전혀 파악되지 않음에도, PPK는 반사적으로 사나야를 위로했다.
훌쩍... 나...
쉬잇. 이제 갈 시간이에요.
조그마한 사나야의 손을 꼭 쥐고서, PPK는 본능적으로 포성과 고함이 들려오는 방향의 반대로 향했다.
그리고 뒷문이 살며시 철컥하며 닫히는 소리와 함께, 포화에 휩싸인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었다.
의식이 혼돈 속을 몇 번이고 구른 뒤에야, PPK는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엔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길가에 누워 있었고, 옆의 여자아이는 힘든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PPK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에리카아...
......
이번에도 PPK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고, 이번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손의 묵직하고 차가운 물건이 보였다.
PPK 권총 한 자루였다.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네...
에리카...
넌 괜찮아?
바닥에 주저앉은 사나야를 일으켜 세워 주려다 손바닥이 닿은 그녀의 뺨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어? 열이 심하잖아...!
괜찮아... 나 괜찮아...
PPK는 황급히 일어나 사나야를 들어 안으려 했지만,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그제서야 소체가 폭발에 휘말려 손상이 극심한 것을 깨달았다.
나... 걸을 수 있어...
당혹스러워하는 PPK의 마음을 눈치챈 듯, 사나야는 안색이 안 좋음에도 PPK에게 기대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둘은 휘청이면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PPK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저 멀리, 골목길 밖의 저 너머에 버려진 작은 건물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