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31
MOD 2
한밤중, 그리폰 기지의 어느 복도.
......
복도를 지나는 지휘관의 머릿속엔 페르시카가 한 말이 좀처럼 떠나질 않았다.
"암시"라고요...?
지휘관이 벙찐 얼굴로 페르시카에게 되물었다.
응, 암시.
이해가 안 되는데, 좀 풀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에휴...
페르시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폰에 온갖 군상의 인형들이 있다는 건 설명 안 해도 되지?
내 동기 중 한 명은 이런 게 이상하대. 무기한테 무슨 인격이냐면서.
하지만 얘네는 그냥 무기가 아니라 전술인형이야. 인간처럼 저마다의 성격과 성향이 있지.
그중엔 출고 이후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도 있고, IOP가 개발하는 과정에서 마인드맵에 적당히 설정한 것도 있어.
당신들이 인형들의 성격을 정한다는 말입니까?
조금 정정해야겠다. 확고한 설정이 아니라, 그냥 이러저러한 경향을 띄도록 방향성을 제시할 뿐이야.
그냥 암시라서 그 자체에 대단한 결정력은 없어. 최초 설계대로 성격이 형성되는 인형이 오히려 드물 지경이라고.
그런 점 때문에 인형을 연구하는 재미가 있다니까.
아, 참고로 진짜 어겨서는 안 될 설정은 전부 마인드맵의 기반 명령으로 입력해. 완전 별개의 이야기야.
그렇군요... 그럼, 수오미가 저토록 구소련제 총기가 각인된 인형을 싫어하는 건 그녀의 디자이너가 그러기를 바랐기 때문이겠군요?
그거밖에 없지.
근데 솔직히, 나도 이렇게 막무가내인 설정은 처음 들어봤어.
IOP의 인형은 전부 페르시카 씨가 개발을 맡으신 줄 알았습니다만.
내가 야근하다 과로사하는 꼴 보고 싶어? 야근 수당 줄 것도 아니면서 그런 끔찍한 소리 마.
아무튼 이건 출고되면서 정해진 거라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걔의 마인드맵을 아예 포맷하지 않는 이상은 제거 못 해. 극복하려면 걔가 스스로 노력할 수밖에.
수오미가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
지휘관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말이야 쉽지... 노력한다고 쉽게 해결될 일이 세상에 어디 있어?
딸깍딸깍딸깍...
...응?
돌연 복도 한쪽에서 소리가 나는 듯해, 지휘관은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온 것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기분 탓인가? 저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지휘관은 고개를 들었다.
보좌관 사무실... 카리나 이 녀석 아직도 퇴근 안 했나?
아니었다.
지금 시간에 카리나가 낼 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지휘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호신용 권총에 뻗었다.
......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의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카리나라면 실수로라도 절대 저지르지 않을 일이었다.
한껏 긴장한 지휘관은 권총을 빼 들고, 슬며시 열린 문틈 사이로 사무실에 숨어들었다.
......
타닥타닥타닥...
한 실루엣이 불도 안 켠 채로 보좌관 사무실의 테이블 앞에 앉아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꼼짝 마!
팟!
지휘관은 소리죽여 심호흡한 뒤, 전등 스위치를 누르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쥔 총을 수상한 침입자를 향해 겨눴다.
헉!?
앗, 지, 지휘관님?!
수오미...?
너 여기서 뭐하고 있어?
저...
지휘관은 황당해하며 총을 내렸고,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대는 수오미의 어깨 너머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을 보았다.
...입사 프로필? 수오미, 왜 이런 걸 뒤지고 있었니?
그, 그게...
수오미는 잘못한 어린아이마냥 고개를 숙이곤 우물쭈물댔다.
하아...
이를 본 지휘관은 한숨을 푹 쉬며 옆의 의자를 당겨 와, 수오미 앞에 앉았다.
괜찮아, 화 안 났어.
......
무슨 일이길래 그러니? 말해 줄 수 있을까?
......
지휘관님... 지휘관님은, 그게, 한 번이라도...
자신을 의심해본 적 있으세요?
예를 들어서?
내가 나 자신이 아닌 느낌이 든다거나요...
어... 너무 두루뭉술한 주제인걸.
그래도 뭐, 스스로를 의심한 적 있냐 묻는다면야 당연히 있지.
아뇨, 그런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요!
어... 아니, 그것도 맞나...
아아아니 역시 그게 아니라――
네 입사 프로필을 보고 있던 거랑 관계가 있니?
......
수오미는 다시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조금, 의문이 생겼어요. 저 스스로는 해결 못할 의문이요.
뭔데? 네가 파파샤를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야?
그 말을 들은 수오미는 다시 토끼 눈이 되었다.
......
먼저 말을 꺼낸 지휘관도 조금 놀라웠다.
이 일을 어떻게 수오미에게 말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수오미도 스스로 깨달은 것이었다.
저... 저, 이런 기분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태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문득 생각이 들고 보니까...
보니까... 저... 으으... 제가 왜 파파샤를 싫어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서...
수오미는 머리를 싸맸다.
그래서 머리를 식히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니까, 제가 저 자신이 아닌 것 같아서...
뭔가...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제 무의식 속에서 저를 조종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수오미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제 마인드맵으론 이 현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가 없었어요.
몇 번을 연산해 봐도 결론은 똑같았어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건 혹시, 제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라, 저를 디자인한 사람이 저를 이렇게 설정한 탓이 아닐까요?
수오미...
그래서 입사 프로필에서 그게 누군지 알아내려 했어요.
저를 디자인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고 싶어요.
만약에 그 사람을 정말 찾아서, 직접 만나러 갔다고 하자.
그 다음엔? 어떡할 셈이니?
...가능하면 이 설정을 없앴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소련 곰탱이들이랑 친하게 지낼 마음은 1비트만큼도 없지만, 제 심정이 제가 아닌 다른 것에 조종당한다고 생각하면 엄청 불쾌해요.
곰탱이들이랑 어울리는 것보다 더요.
즉, 그 문제는 해결하고 싶다?
어... 그런... 셈이죠?
지휘관이 정말 사무실에 무단 침입한 것을 혼내려는 의도가 없음을 깨달은 수오미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일단, 그런 정보야 당연히 입사 프로필에 안 적혀 있지.
널 만든 사람은 찾지 못하겠지만, 대신 널 도와줄 방법이 좀 있긴 해.
지휘관은 권총을 홀스터에 도로 넣으며 씨익 웃었다.
...수상한데요.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미심쩍어하는 수오미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지휘관은 가슴을 툭툭 치면서 호언장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