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31
MOD 3
며칠 후, 어느 오염지대.
먼 길을 달려온 수송 차량 한 대가 황야의 끝자락에서 멈춰섰고, 두 인형이 몰아치는 모래바람을 맞으며 차에서 내렸다.
...임무 기록.
"빨간 불" 팀이 목표 구역의 경계에 도착. 현시간부로 보행 이동으로 변경.
임무 목표 재확인.
금주의 오염도 측정 기록 및 일기예보 분석 결과, 고오염지대의 붕괴 복사가 현재 위치까지 퍼질 것으로 예상됨.
우리는 현지 마을의 인간들이 안전한 구역으로 철수하는 것을 협조, 호위해야 합니다.
질문 있습니까, 수오미 동지?
...네.
수오미는 녹음기를 끄고, 파파샤에게 홱 고개를 돌렸다.
왜 제가 당신이랑 팀이에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지휘관님께 따지세요.
......
어깨를 늘어뜨리며 하늘을 올려다본 수오미는 왠지 저 하늘에 지휘관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이게 지휘관님이 말씀하신 좋은 방법이에요?'
'다시는 지휘관님 말 안 믿어요.'
뭘 하늘을 보고 있어요?
저는 뭐 좋은 줄 알아요? 불만인 건 저도 마찬가지라고요.
하지만 이렇게 정해진 이상, 임무에 성실하게 임해 주세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쓸데없는 억측 말아 줄래요?
불만이 있어도 왜 우리 둘뿐이냐는 거예요.
화력면에서 너무 빈약하지 않나요?
당신이 못한다고 남도 못할 거란 생각부터 버려요.
그리고 여긴 옐로우존 중에서도 복사 농도가 옅은 곳이라 ELID도 잔챙이들뿐이고, 강도가 출몰한 기록도 없어요.
당장에라도 삿대질하며 따지고 싶었지만, 수오미는 지휘관의 의도를 헤아려 속으로 분을 삭이려 했다.
문제는, 파파샤가 며칠 전의 일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어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시가 돋친 상태라는 것이었다.
상대의 태도가 저러니, 수오미도 머리가 점점 달아올라 목청을 높이고 싶은 충동을 참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머리에 문제 있어요? 바보예요?
그러다 불의의 사태라도 벌어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진짜 말이 통할 여지가 1비트만큼도 없다니까요. 나중에 어떻게 돼도 난 몰라요.
무서우면 혼자 돌아가던가요.
이런 임무쯤, 저 혼자서도 얼마든지 완수할 수 있거든요? 당신은 오히려 짐만 된다고요.
잊지 말아요, 지금의 저는 최신 마인드맵 업그레이드를 받고 소체도 신형으로 바꿔서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단 말예요.
...새 부품 좀 달고 출력 쬐끔 올라간 거 가지고 콧대는 아주 하늘을 찌르네요.
......
파파샤가 반격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욕설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대신, 뭔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홱 돌리곤 심호흡하며 중얼거렸다.
참자, 참아아... 이 임무의 대장은 나야, 모범을 보여야지...
후우... 서둘러 임무 마치고 빨리 돌아가는 편이 서로에게 좋겠죠?
그것만큼은 의견이 일치하네요.
옐로우존으로 진입하고 5분 후.
임무 기록.
붕괴 복사 농도가 옐로우존 일반적 기준치를 초과함.
전자 신호 감도가 다소 저하됨. 인간에 대한 영향도 높을 것으로 추정.
당신, 정보 수집 능력이 엉망이네요. 상황 변화를 전혀 못 따라가고 있어요.
이건 브리핑받은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에요.
우리가 조금만 더 늦게 도착했더라면 이 구역 내의 인간들은 무사히 철수해도 치유하기 힘든 후유증이 남았을 거예요.
그, 그게 제 탓은 아니잖아요.
저도 지휘부에게서 정보를 공유받았을 뿐이라고요.
애초에 붕괴 복사 연구는 미해명된 난제가 잔뜩이라고요, 이런 상황이 벌어져도 어떻게 예측해요!
흥, 변명은 수준급이네요.
뭐라――후우우... 참자 참아아아...
......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순간, 수오미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며 파파샤를 잡아 세웠다.
뭐예요 이거 안――!
반사적으로 짜증을 내려던 파파샤였지만 바로 수오미의 뜻을 눈치채고 눈빛이 달라졌다.
최신형 개조가 뭐 어쨌더랬죠, 베테랑 대장님?
눈치채는 것도 저보다 느리면서... 역시 소련 곰탱이들한텐 자원을 쓰는 것 자체가 낭비예요.
쉬잇.
할 말 많지만 나중에 하죠.
파파샤도 곧장 사주 경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완전히 포위된 상황이었다.
...ELID예요.
그런데, 머릿수가 심상찮네요...
아무리 복사 수치가 올랐다 해도, 단시간 내에 ELID가 이렇게 많이 나타날 리가 없는데...
여긴 레드존과 맞닿은 구역이에요.
복사 농도가 올라 레드존과 엇비슷해졌으니, 여기도 자기네 영역으로 인식한 거겠죠.
저것들한테 그런 지능이 남아있어요?
그건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리 짐작할 수 밖에요.
철컥.
크오오오!!
사격 개시!!
타타탕!!!
......
타앙!
이걸로 마지막——
수오미, 조심해요!
——!?
덥석!
타앙!
끄아악!!
썩은내가 진동하는 걸쭉한 피가 눈앞을 가렸고, 수오미는 천지가 뒤집히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아얏!
이 바보, ELID를 뭘로 보는 거예요?!
전투 중에 한눈팔면 기습당해요!
미... 미...
자신을 감싼 파파샤와, 비틀거리다 고꾸라지는 ELID. 수오미는 미안함에 사과하려 했지만, 그 말은 마인드맵에서 성대 모듈을 거친 그 순간 변질되었다.
미쳤네요 진짜!
아깐 싸울 필요도 없을 거라더니 이게 뭐예요!? 다, 당신이 자꾸 헛소리를 해대니까 저도 컨디션이 꼬이잖아요!
음악 센스가 엉망인 것도 모자라서 일처리도 엉망이네요!
진짜 소련 곰탱이들은 쓸모가 없어!
......
수오미의 비난에 파파샤의 얼굴이 씰룩였지만, 웬일로 대꾸하질 않았다.
이, 이제 어떡할 거예요! ELID가 이렇게 많은데, 둘만이서 어떻게 마을의 사람들을 지켜요?!
임무를 완수할 수나 있을지 불확실해졌는데, 이제 어떻게 할지 말해보라고요!
아 좀 닥쳐 봐요!
——?!
파파샤가 그녀답지 않게 버럭 욕설을 내지르자, 수오미는 순간 움찔했다.
뭐... 뭔데요 갑자기.
...당신이랑 말싸움으로 낭비할 기운 없어요.
천천히 일어나는 파파샤는 어째선지 조금 비틀거렸다.
......
다쳤어요?
당신 대신 맞아 줬는데, 고맙다고는커녕 미안하다고도 못 해요?
......대신 맞아 달라 안 했어요.
수오미는 마음에도 없는 고집을 부리며 뒤따라 일어났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당신 투정 받아 주느라 감각이 둔해졌다고요.
이러다간 진짜 임무 망쳐버리겠어요.
무슨 소리예요, 임무는 진작에 끝장났다고요.
ELID가 떼거지로 여기까지 왔는데, 마을이 멀쩡하겠어요?
참 매정하게도 말하네요.
매정한 게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이에요. 오염지대에서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라고요.
우리 전술인형은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잖아요.
우리마저 인간처럼 일희일비하면 남은 사람들을 어떻게 지키겠어요?
그만해요... 그만하고, 당신은 차로 돌아가세요.
네?
어차피 당신도 저랑 같이 있기 싫잖아요.
그냥 차로 돌아가서, 제가 복귀하면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나 해 두세요.
아니 진짜 미쳤어요? 혼자 뭘 하려고요?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 부상까지 입은 채로 뭘 혼자 무리하겠다는 거예요 이 바보 소련 곰탱이 씨야!
...걱정해 주는 거예요?
몰라요 이 바보야!
아직 누구한테 걱정받을 정도로 허약해지진 않았거든요? 하지만... 적어도 정찰은 해야겠어요.
파파샤는 담담한 투로 총을 점검했다.
ELID가 여기에 나타났으니, 마을도 습격당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복사 농도는 아직 인간이 즉사할 수준은 아니에요.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마을이 습격받았단 보고는 없었어요.
그리고 탄창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아직 생존자가 있을 거예요.
낙관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거 참 미안하게 됐네요, 전 항상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거든요.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독창적인 발상을 할 수 있죠.
...그래서 당신들이 질색이라는 거예요.
......
꼭 갈 거라면, 저도 가겠어요.
하지만 파파샤는 그대로 수오미를 등졌다.
필요 없다니까요. 당신은 차로 가서 퇴로를 확보해 두세요.
......그럼 어디 혼자 잘 해봐요.
수오미도 결국 눈을 굴리며 그들이 왔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렇게 둘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서로를 등진 채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