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11
MOD 4
내가 널 지켜줄게.
......
이런다고 네가 달라지진 않아, G11...
시야 사각지대에 숨은 G11은 중얼거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은 막 풀숲에서 뛰쳐나온 철혈 인형의 머리를 관통해, 그 CPU를 파괴했다.
정신이 이토록 맑은 적은 없었다.
지금이라면 그녀에겐 빈틈도, 허점도 없다.
......
홀로 눈밭 위를 나아가는 G11은, 거추장스러운 배터리 박스를 끌고 있음에도 전혀 속도가 느려지지 않았다.
그녀가 지나간 곳에는 철혈 인형의 잔해만 남을 뿐이었다.
일격즉살. 무엇도 그녀에게서 도망치지 못했다.
G11은 완전히 깨어 있었다. 이렇게나 정신 맑은 적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본래대로라면, 지금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짓이 자신과는 전혀 안 어울린다는 걸, G11 본인도 잘 알았다.
홀몸으로 철혈 군단에게 덤벼든다고?
완전히 정신 나간 짓이었다.
힘들어... 자고 싶어...
거짓말이었다.
G11은 전혀 지치지 않았다.
엄청 피곤하면서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싸우고 나면 피곤해질 줄 알았건만.
끝이 보이질 않는 에너지가 배터리 박스에서 소체로 끊임없이 주입됐다.
계속 이렇게 앞으로 걷기만 하게 되는 걸까?
오래전, 이렇게 끝도 없이 걸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거리를 걸을 때, 습하고 어두운 뒷골목에 쓰러져 끝날 거라 생각했다.
아아... 힘들어 죽겠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그때... G11은 어느 폭력배들에게 끌려갔다.
......
철혈은 이제 군세라 할 것도 없었다. 한 구역을 장악하던 놈들의 본거지에 당당하게 쳐들어가도, 보이는 건 하나같이 통제를 잃은 잡졸들뿐이었다.
그것들을 처리하는 데 소모된 에너지는, 지금의 G11에겐 새 발의 피 수준이었다.
......
G11이 신음하던 사이, 익숙한 그림자가 눈밭에 나타났다.
우으...?
나 지금 꿈이라도 꾸나...?
인형이 꿈을 꾸긴 해?
여태까지 엄청 많이 잤지만...
꿈을 꿔본 적은 전혀 없어...
어... 아니, 있었던가?
꿔 봤어? 어떤 꿈이었는데?
그게... 엄청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는 꿈이었어.
걔들이랑 함께면, 아무리 오래 자도 뭐라 안 했어.
뭐라 안 하긴 누가.
G11의 시야가 서서히 좁아졌다.
지금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눈앞의 그 폭력배뿐이었다.
그녀의 과거가, 눈앞에 있었다.
그녀의 미래도, 바로 눈앞에 있었다.
416...
...왜.
나... 자고 싶어.
그럼 그 전원 뽑아.
꼭 뽑아야 해?
응.
......
뽑아버리고, 네 과거와 작별해.
......모르겠어.
꼭 그래야만 해?
어떡하면 좋을지, 도저히 모르겠어...
416... 예전의 일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이런 거 가지고 고민할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이 기억들을 전부 버리면...
그래도 나는 나일까?
괴로운 기억을 전부 버리면, 그냥 새롭게 다시 태어나?
정말 그렇게 편한 일이 세상에 어딨어?
그래?
416이 총구를 들었다.
너 지금 아주 팔팔하지?
마침 잘됐다, 나랑 한판 겨루자.
에에?
왜, 왜??
왜 방금 대화에서 이런 전개로 바뀌어?!
내가 지금 엄청 짜증나니까.
그냥 트집잡아서 날 때리려는 거네 뭐!
내가 얼마나 허약한데――
타앙!
HK416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총알은 G11의 옷자락을 스치고 날아가, G11에게 몰래 다가오던 철혈 인형의 머리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이딴 폐품들로 운동이 되겠어?
......
아니면 뭐, 나로도 부족해?
나보다 더 강한 인형이라도 만나봤어?
아, 아니야!
416보다 대단한 인형 본 적 없어...
잘 들어, G11.
네 생각은 이제 잘 알았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난 네 그 케이블을 억지로라도 뽑아버릴 거야.
날 막고 싶으면, 네 실력으로 막아 봐. 알았어?
우으... 정말 416다운 방식이야, 순 억지라구...
네가 과거에 어떤 꼴이었는지는 나랑 아무 상관 없어.
우린 404야. 우리의 과거는 공백이고, 우린 존재하지 않아.
너만 특례로 내버려둘 순 없어.
정말 성격이 배배 꼬였다니――
화악!
G11의 중얼거림을 다 듣지도 않고, HK416은 눈 깜짝할 사이에 G11에게 달려들었다.
커다란 배터리 박스를 달고 다니는 탓에, G11은 그녀처럼 민첩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따앙!
서로의 총몸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고, G11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으에엑, 너 진심이야?!
그럼 내가 장난하는 줄 알아!?
HK416이 G11의 전원 케이블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아, 안 돼!
찰싹!
...!
하지만 이동을 제외한다면, G11의 몸놀림은 이제 HK416에게도 전혀 뒤처지지 않게 되었다.
근접 전투에 대한 소양을 자부하는 HK416이, G11을 쉽게 이기질 못했다.
이때 HK416은 다시 한번 실감했다.
G11도, 어엿한 404 소대의 전술인형임을.
헉... 허억...
그러니까... 기다리라고...
나... 나한테도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할 거 아니야!
그렇게 한가하진 않아서.
아 진짜, 내 말 좀 들어!
이 아줌마야!
아줌...!?
어쭈, 이젠 아주 못하는 말이 없네?
다 컸다 이거지?
좋아, 지금부턴 아주 사적인 문제야!
그래서 어쩌라고 이 바보야!
뭐만 하면 다짜고짜 손부터 나가면서!
너어어...! 건방!! 떨지!! 마!!
새하얀 눈밭 위에서, 두 인형이 엉겨붙어 싸웠다.
전술인형이란 신분조차 잊고, 그저 서로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댔다.
목적을 가진 전투가 아닌... 서로를 향한 화풀이였다.
......
언니... 쟤네 안 말려도 돼?
냅둬.
저대로 냅둬도 괜찮아.
저 416이 된통 당하고 있는걸.
에에... 하긴, 나도 쟤넨 못 이길 거 같아.
지금의 G11한테는 져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걸?
아니, 그거 말고.
UMP45는 치고받고 싸우는 두 인형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 콧대 높은 엘리트 인형 씨도 우리 같은 불량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어.
그야 당연하지! 416은 우리 가족이잖아!
UMP9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G11도 그렇고.
......
저, 저기... 날 꽁꽁 묶어서 어디로 끌고가나 했더니, 쟤들이 저러는 거 보러 온 거였어?
에, 에... 에취!
하, 하나도 재미 없거든?!
G11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저기 철혈 무리 속에 던져 버릴 거야.
그럼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하다, 그치~?
사람 부려먹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아 진짜, 신고할 거야! 밀린 외상도——
와아, 아직도 돈 얘기를 할 정신이 있구나?
...크흠.
A, ARS 말이지? 물론 해 줘야지, 아하하...
......
그냥 물어보는 건데, 너 혹시 평소에 너네 메이드 G11을 혹사시키진 않지?
뭐어? 보자보자 하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걔한테 힘든 일 시킨 적 한 번도 없거든?
그래...
왜, 뭔데 갑자기 그런 걸 물어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
......
아리송해하는 데레 너머에서, 두 인형의 난투극은 한 시간이나 계속됐다.
결국 둘 다 녹초가 되었고, 끝내 HK416이 G11을 넉다운시켰다.
우으으...
힘들어 죽겠어...
이번엔 정말로 힘들어 죽겠어...
G11은 눈밭에 대자로 뻗어, 일어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끈질기게 진짜... 이제 불만 없지?
응... 역시...
역시 뭐?
역시... 416을 만난 건 꿈이 아니었구나.
...인형은 꿈 같은 거 안 꿔.
416...
또 뭐.
돌아갈 때, 나 업어 줘.
......
HK416은 말없이 G11에게 다가가, 전원 케이블을 집어 들었다.
이것까진 안 끌고 갈 거야.
응... Zzz......
HK416이 케이블을 뽑는 동시에, G11은 휴면 상태에 빠졌다.
정말 잘했어, 엘리트 인형 씨.
설마 G11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다니, 정말 놀랐어. 그것도 육탄전이었는데 말이야!
과연 완전무결한 엘리트 전술인형이라니까~
시끄러워.
416는 묵묵히 G11을 등에 업었다.
그래서, 저건 어떡할 거야?
다시 말하지만, 개조는 아주 성공적이다 못해 내 예측을 뛰어넘었어.
하지만 딱 하나... 에너지 공급량이 너무 과했다는 점은 내 실수로 인정할 수밖에 없겠는걸.
적당히 뜯어내면 되겠네.
그래, 소형 배터리로 교체할게.
그럼 저 상자에 공간이 꽤 남아돌 텐데, 새걸로 바꾸게?
흐음... 그러긴 좀 아까운데...
아! 그냥 G11 전용 캐리어로 만들면 되겠다!
항상 전장에 베개 가져가겠다고 떼썼잖아?
......
그리고 스위치도 추가해서, 전투 시에만 작동하도록 바꿀게. 평소에는 그냥 예전처럼 잠탱이로 두자고.
예전처럼?
사실 말이지... 지난 1주일간 나도 제레도 G11 때문에 피곤했거든.
무슨 시골 할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메이드 인형의 일까지 죄다 뺏어서 자기가 하더라.
아마 옛 마인드맵 디자인과 관계 있겠지만... 음, G11은 역시 이런 모습이 더 귀여워.
...그래.
416은 말없이 잠든 G11의 얼굴을 바라봤다.
쟤한테 후유증은 없겠지?
장담은 못하지만...
네가 이대로 실종된다면 네 누나가 과연 뭐라 할까~?
아 진짜 말 좀 끝까지 들어!
완전히 영향이 없다곤 장담 못하지만, 그게 꼭 나쁜 쪽으로만은 아닐 거라고!
과충전으로 마인드맵에 잠들어 있던 기억이 일부 깨어났잖아? 어쩌면 이후로도 계속 남아있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쟤가 집안일을 좀 거들게 된다던가 하는 식으로.
......
철없는 딸이 자란 기분이려나?
닥쳐.
그래 그래.
됐으니까 이만 돌아가요 어머님~
누가... 하아, 됐다 됐어.
416은 G11을 업고 약간 절뚝거렸다.
어이쿠, 조심하세요 어머님~
옆에서 지켜보던 UMP9이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
......
...잠깐, 설마 나보고 이거 끌고 돌아가라고?!
눈치 없어?
난 인간인데!?
그래서?
......
불만 없지? 됐어.
그럼 또 잘 부탁해.
이틀 뒤에 보러 갈 테니까, 또 문제 일으키지 마.
내가 또 참을 수는 있어도...
416이 널 찢어버릴지도 모르거든.
쟤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는, 봤지?
아... 알았어...
흐흥~♪
UMP45는 데레를 겁준 뒤 앞서가는 세 인형을 뒤따랐다.
뒤에서는 HK416의 등에 업힌 G11의 잠든 옆얼굴이 아주 잘 보였다.
곤히 자는 G11의 모습을, 정말 아주 오랜만에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