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635
MOD 1
자신의 마인드맵 속 레벨 3 플랫폼에서, RO635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페르시카에게 받은 "업그레이드 도우미"를 실행했다.
그러자 곧바로 주위가 변했다.
안녕, RO. 드디어 만나게 됐구나.
그럼 바로 시작할까?
......
지금부터 너에게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할 테니, 긴장 말고 간결하게 대답해 줘.
RO635는 탁상에 놓인 구식 기구들을 보며, 눈살을 약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TV를 보는데, 갑자기 방에 생쥐 한 마리가 나타난다면?
SOP2가 보기 전에 몰래 밖으로 내보내야 정신 건강에 이로워.
보던 잡지에 그리폰 전술인형의 수영복 특집이 실려 있다면?
...바로 덮을 거야.
그 잡지를 지휘관이 발견해, 마음에 들어하면서 아예 사무실에 장식해 놓는다면?
그, 그런 업무에 지장을 주는 행위는 말려야지.
하하하, 그럼 다음은――
그런 1세기도 더 된 심리 테스트는 꼭 해야 해?
...네 컨디션 조절에 도움이 되니까.
난 아주 양호한 상태야. 네가 모습을 드러내서 직접 마주보고 대화할 수 있다면 더 좋겠는데.
난 줄곧 네 앞에 있었는걸?
아주 익숙한 형체가, 탁상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어?
하고 많은 것들 중 왜 하필 그 모습인데!!
오, 방금보다 목소리가 우렁차네? 역시 마주보고 소통하는 편이 제일이구나.
......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도 되겠지?
빨리 끝내, 빨리!
좋아, 그럼 첫 번째 질문.
이전에 페르시카가 너에게 개조를 건의했을 때, 왜 거절했어?
그건...
......두려워서.
S11 구역 대규모 철수 작전 이후.
업그레이드를 마친 SOP2가 전자 공간을 떠난 뒤, 페르시카는 RO635의 마인드맵 코어를 새로운 소체에 연결했다.
자아... 이제 네 차례야, RO.
드디어 제 차례군요. 여기다 아예 그리폰 기지를 재현하려던 참이었어요.
네가 오래 기다린 만큼 아주 끝내주는 소체를 준비했어.
이거 마련하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다고.
마인드맵 공간을 다 정리하고 일어나면, 네가 얼마나 굉장해졌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거야.
네, 정말 기대돼요.
참, 그런데 말이야...
RO, 넌 네가 다른 인형들과 비교해서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아니?
음... 지휘 모듈과 전자전 능력이 대폭 강화된 거 말인가요?
그런 표면적인 거 말고, 내면의 차이.
페르시카가 그 말을 하면서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는 모습을, RO635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몰라도 괜찮아, 그런 만큼 너 자신의 내면을 더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다른 인형들과는 다르게, 네 마인드맵 공간은 네게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 다른 AR팀 멤버조차 누리지 못한 특권이지.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고요?
전부, 모조리. 네 모든 기억 파편은 물론이고, 모든 기능의 기초 데이터, 심지어는 마인드맵의 시스템 기반까지 전부.
시스템 기반까지... 과연 그게 정말 좋은 일인진 모르겠는걸요.
솔직히 나도 그게 잘한 일인지 확신이 안 서.
하지만 이런 기회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지.
자신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 도출되는지 알고 싶은 인형이 있긴 할까요?
너는 어떤데?
너 자신의 내면이 어떤지 안 궁금해?
......
너무 그렇게 겁먹지 마, 모든 것엔 최초가 있는 법이니까. 이번에 신세계의 문을 여는 사람이 네가 됐을 뿐이야.
뭐... 그 신세계가 우리를 문전박대할지, 아니면 열렬히 환영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무튼, 좋은 소식 기다릴게.
통신 종료.
......
나의 내면...
인형의 감정은 전부 시뮬레이션으로 생성된 데이터인데, 그걸 정말 "감정"이라 할 수 있을까...?
애당초, 왜 인형에게 감정을 부여한 거지? 우린 그저 명령을 받고 따르기 위해 존재할 뿐인데...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RO635는 자신의 마인드맵의 대부분을 정리했다.
단 한 부분만을 제외하고.
...여기다.
"기반 알고리즘 룸". 여기서 인형의 기반과 감정 알고리즘 설정을 볼 수 있어.
출고 시의 기본 설정은 물론, SOP2나 AR-15에게 설정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M4A1을 반드시 지킬 것"처럼, 목적에 따라 추가된 명령의 내용도 확인할 수 있어.
페르시카 씨는 내겐 그런 명령을 추가하지 않았다 하셨으니, 이 안에 이상한 건 없을 거야.
응, 분명 없을 거야...
RO635는 문에 손을 댔다.
최고 권한을 지닌 RO635에겐, 이 "기반 알고리즘 룸"도 당연히 개방된 상태였다.
그녀가 이 얇은 문을 살며시 열고 방 안의 정보를 열람하고 정리해 소체의 최적화를 마치기만 하면, 업그레이드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다.
......?
왜 안 열리지?
분명 손바닥으로 문을 짚고 있는데도, 어째선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마치 문과 손 사이에 공기로 된 두꺼운 벽이 있는 것만 같았다.
권한에 무슨 오류라도 있나...?
의아해하며 팔을 오므리려던 그때, RO635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엄청나게 떨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 왜, 왜 이러지? 뭐가 무섭다고 이러는...
당신에게 다른 존재 목적이 있을 거예요...
지금 당신의 가치도 당신의 의지로 정해진 것이 아니잖아요!
당신은 이게 전부 프로그래밍에 의해 만들어졌단 걸 아세요? 인형이라면 모두 다 그렇다고요.
그럼 넌 결국 스스로 원해서 자아를 버리고, 다른 이의 대체품이 되기로 한 거야?
......
난 M4 씨가 없을 때 그녀를 대신해 AR팀을 지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형이야.
M4 씨에게 소중한 이들을 나도 절대 버리지 않고, M4 씨가 믿는 사람을 나도 똑같이 믿어.
그런 목적을 부여받고 태어난 나인데, 정말 아무런 설정도 가해지지 않았을까...?
AR팀으로서, RO635가 진행한 생애 첫 모의 작전에서.
돌아왔어! 목표 문서도 확보했어!
잠깐, M4는?
집결 포인트로 이동 도중 철혈의 포격으로 건물이 무너졌어.
그때 M4와 갈라지고 말았어.
그래서 M4를 버리고 너 혼자 돌아왔다고?!
어쩔 수 없었어. 우리에겐 임무가 최우선이잖아.
하아......
RO...
임무 목표 달성.
전술인형 M4A1, KIA. 마인드맵 코어의 파괴를 확인.
이외 AR팀 대원 4명, 전원 생존.
다들 표정이 왜 그래...?
임무를 달성했잖아?
지금 이게 임무 달성이라고? M4를 일말의 주저 없이 버렸으면서?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인형은 원래 소모품인걸. 우리의 존재 의의도 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아니야?
......
정말 한심한 실패작이네.
......
나는 분명, 내 첫 모의작전에서 승리를 위해 망설임 없이 M4 씨를 희생시켰을 정도로 무감각했지.
그런데 난생처음 직접 만나 함께 하게 된 지 채 몇 시간도 안 됐던 그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난 M4 씨를 지키려고 필사적이었어.
대체 왜 그랬을까? 기반 설정에 이미 그런 명령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외엔 달리 합리적인 해석이 떠오르질 않아...
RO635의 손이 힘없이 축 처졌다.
만약, 내 감정이 사전에 설정된 거라면...
누굴 좋아하고 누굴 싫어할지, 다 정해진 거라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미리 정해진 거라면...
그럼, 대체 무엇이 진정으로 "내 것"이지?
타인이 나 대신 정한 걸 빼면, 내겐 뭐가 남지?
그럼 난... 대체 뭐지?
......
인형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다니, 참 이상하지?
...아니, 내가 보기엔 아주 좋은 고찰이야.
그럼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길 두려워하던 네가, 왜 지금 이렇게 나를 실행했는지도 말해 줄래?
......
이야기가 꽤 길어질 것 같은데, 급할 거 없으니 차근차근 털어놔도 돼.
음... 그래, 네가 두 번째로 업그레이드를 거절한 일부터 말해보는 게 어때?
응... 바로 오늘 있었던 일이지...
팔디스키 잠수함 기지에서의 작전이 종료된 후, 그리폰 임시 기지의 창고.
AR팀은 지휘관이 IOP로부터 긴급 조달한 물자를 정리 배분하는 중이었다.
이쪽부터 차례대로 일반 예비 부품, 식량, 탄약...
응, 전부 목록과 일치해.
이쪽 건 대체 코어랑 전지야.
양은 턱없이 모자라지만... 목록에 적힌 대로네.
우와아, 이 특제 예비 부품 엄청 멋지다! 나 이거 써 봐도 돼?
SOP2!
알았어어, 그냥 해 본 소리라구우...
SOP2가 아쉬운 표정으로 특제 예비 부품을 내려놓은 뒤, 빠진 건 없는지 목록과 계속 대조하던 그때였다.
어라? RO, RO!
뭔데?
이거 봐봐!
"RO635 전용"?
상자의 크기로 봐선, 새 소체겠네.
오오! 혹시 RO의 업그레이드용 소체 아니야?
RO, 빨리 열어 봐!
......
왜 그래?
너야 별 생각 없겠지만, 이건 엄청 중요한 일이라고. RO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어어... 알았어.
......
RO635는 숨을 죽이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상자를 천천히 열어 보았다.
역시, 그 안에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소체가 조용히 누워 있었다.
오오오~!!
지금보다 훨씬 말끔해 보이네.
...응, 좋은 소체네.
그럼 빨리 교체해 봐!
...성급할 것 없어. 아직 검수할 물자도 잔뜩인 데다, 밖에 우리가 회수해야 할 그리폰 인형들도 많잖아.
괜찮아 괜찮아, 나랑 AR-15 둘이서 다 할 수 있어!
멋대로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아 줄래?
그치만 페르시카가 직접 새 소체를 보내 줬잖아.
마인드맵 정리만 하고 교체하면 업그레이드 끝인데, 그게 얼마나 오래 걸린다고 그래?
응... 그렇지.
그런데 왜? 저번에도 분명 같이 업그레이드하자 했잖아.
그런데 나와서 보니 그대로였고.
......
RO, 일단 페르시카랑 연락해 봐.
난 SOP2랑 다른 창고의 물자를 검수하고 올게.
응? 싫어어어~ RO가 소체 바꾸는 거 볼래애애~
잔말 말고 따라와.
AR-15는 친절히 SOP2를 끌고 나가, RO가 혼자 있도록 해 주었다.
......
페르시카 씨?
오랜만이야 RO, 내가 보낸 선물 받았구나?
...왜 하필 지금이죠?
하벨 씨가 마침 지휘관의 긴급 주문을 받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임무에 네가 더 강해질 필요가 있으니까지.
AR팀의 현재 상태가 많이 나쁘다는 건 알잖아, M16에 M4마저 함께 실종됐으니...
AR팀의 대장으로서, 네 책임은 막중해.
저도 알아요. 그래도 지금은 때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거절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일분일초가 중요한 상황이잖아요. 그리폰을 재건해야 하고, M4 씨와 M16도 찾아야 하고...
이런 상황에서 새 소체에 적응할 여유는 없지 않을까요?
RO, 너 거짓말 엄청 못 한다고 들은 적 있어?
......
아직도 네 M4를 지키려는 마음이 내가 명령을 설정해 놔서라고 생각하는구나?
내가 그렇게 너에게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네 감정을 채우라고 했는데도?
아뇨... 페르시카 씨를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
임무를 위해서도, 그게 옳으니까요.
정 그렇게 신경쓰이면, 직접 열어 보면 되잖아.
......
......
그래 그래, 강요하지 않을게.
대신, 이러는 건 어때? 우리 서로 한발 양보하는 거야.
네?
너한테 "업그레이드 도우미" 프로그램을 줄 테니까, 네 마인드맵에 설치해.
나중에 업그레이드할 준비가 되면, 그걸 실행해 줘.
걱정 마, 이상한 거 아니니까. 업그레이드가 끝나면 저절로 삭제돼.
...네, 받았습니다.
또 연락하자. 다음에 볼 땐 새로워진 모습이길 기대할게.
통신 종료.
이야기를 들어보니, 넌 여전히 네게도 기반 설정이 있지 않을까 신경 쓰이는구나.
...응.
인형의 감정이 그저 시뮬레이션과 데이터에 좌우된다면, 대체 그게 인형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초에, 인형은 임무를 수행하고 달성하기 위해 존재하잖아. 감정이 임무에 무슨 도움이 되는 거지?
정말 고민이 많네. 여긴 우리 둘뿐이니까 속 시원하게 털어놔 봐.
그래서, 그 다음엔? 페르시카의 제안을 다시 거절한 뒤엔 무슨 일이 있었어?
......엄청 창피한 일이 좀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