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635
MOD 3
RO635의 마인드맵 공간.
갑작스러운 일? 어떤 일이었는데?
용의자가 맹세도 어기고 도망쳤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왜 바로 임무를 수행하지 않은 거야?
설마, 용의자가 또 네게 거절하기 어려운 요구를 했어?
그것도 아니야...
...결혼식이 끝나고.
이제 됐지?
정말 감사합니다 경관님, 이제 소원이 없어요... 그만 가죠...
...헉, 쟤가 왜 이리 오지?!
용의자는 황급히 벤치 밑으로 숨었다.
응? 너 갑자기 무슨――
안녕하세요, 혹시 경찰관이신가요...?
아... 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그게... 제 친아버지의 성함이 이반 이바노비치인데, 최근에 복역하고 출소하신 걸로 알아요.
RO635는 뒤의 벤치가 덜컹한 걸 느꼈다.
복역 기간 중에 여러 번 면회를 요청했지만 계속 거절당해서...
그래, 교도소의 직원분께 대신 청첩장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그래도 사실 기대하진 않았는데, 방금 방명록에서 아버지의 성함을 봐서...
죄, 죄송합니다, 그런 사람은... 모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혹시라도 제 아버지를 만나신다면, 제 말을 전해 주실 순 없을까요?
전 이미 용서했으니, 아버지도 부디 행복하게 사시길 바란다고요.
그리고 괜찮다면, 가끔이라도 좋으니 절 보러 와 주셨으면 한다고요.
네, 제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갔으니까 그만 나와.
흥...... 여, 여자는 몇 살을 먹어도 시끄럽다니깐...
뭐야, 울어?
그럴 리가요...! 사내대장부가, 눈물을 흘려서, 되겠습니까!?
흥...
옷깃하고 소매가 아주 흠뻑 젖었는걸 뭐.
......
이, 이건 더운 날에 웅크려 있느라 땀이 난 겁니다! 벌써 시원한 철창 안과 콩밥의 맛이 그리워지네요!
울려면 실컷 울어. 울 권리는 성별을 안 따지니까.
자, 복면 줄 테니까 이걸로 얼굴이나 가려.
딸아이의 아버지는 그 복면을 덥석 집어 머리에 썼다.
붉은 노을이 질 무렵, RO635는 검은 복면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남자를 데리고 경찰서로 돌아갔다.
왜 그 남자가 거기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럼 일이 더 간단했을 텐데.
그건...
그자가 네게 숨겨 달라 부탁하진 않았지?
안 했지...
그런데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했어?
그냥 처음부터 바로 체포했다면 일이 그렇게까지 길어지진 않았을 텐데.
......
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나 보네.
그럼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이전의 주제로 돌아가자.
RO635, 넌 네가 SOP2를 다치게 만들었다 생각해 자책하고, 자신의 기반 알고리즘이 임무 목표와 충돌한 것 때문에 동료들을 피해 혼자 자리를 옮겼지?
그 다음 무슨 일이 있었길래 도우미...인 나를 실행하게 됐어?
그 다음... 난 혼자서 멀리 걸어갔어.
RO635는 홀로 고뇌하며, C 구역 깊숙한 곳으로 도피했다.
또야...
또 당장의 임무를 무시하고 감정적으로 움직여서, 임무 수행에 차질을 빚은 것도 모자라 동료까지 다치게 만들었어...
예전에도, 이번에도... 대체 난 왜 자꾸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거지?
RO635는 짜증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분명 다시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뭐... 그 후에도 팔레트 소대에서 마카로프를 껴안고 울기도 했지만...
이, 이번엔 임무도 무시하고 억지로 무기 상자를 건져내려다 SOP2를 크게 다치게 만들었어...
......
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예전에 M4A1이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이게 전부 프로그래밍에 의해 만들어졌단 걸 아세요? 인형이라면 모두 다 그렇다고요.
......
역시 내가 인간에게 우호적이도록 다른 인형들을 좋아하도록, AR팀을 좋아하도록 설정된 탓일까...?
그래서 임무와 설정이 충돌할 때, 내 시스템이 설정을 우선시하도록 하는 걸까...?
그래서 그 도둑도 바로 체포 안 하고, 딸의 결혼식을 끝까지 보고...
동료 인형이 위험에 처했을 때 울음을 터뜨리고...
앞뒤 안 가리고 M4 씨의 무기 상자를 건져내려 한 걸까...?
RO635는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만약 이 모든 게 내 프로그램이 대신 정한 거라면, 내 감정이 진실되다 할 수 있을까?
그럼, 내 삶도 진짜일까? 내게 자유 의지가 있긴 할까? 자아는?
난... 대체 뭐냐고...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방전된 인형인가 해서 와 봤더니, 너였구나.
이 목소리는...!
Привет, RO.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제일 마주치기 싫은 애가...!
오, 오랜만이야 마카로프...
너도 코어 회수 임무 중이야?
응, 보다시피.
그렇구나...
......
......
어색한 고요함이 맴돌았다.
RO, 너 고민 있어?
...없어.
......
예전부터 말해 주고 싶던 게 있는데 말이지...
지금 여긴 우리 둘뿐이니까, 그냥 말할게.
RO, 너 진짜――
그래 그래 나도 알아! 나 거짓말 지인~짜 못 해!
......흐음.
벌써 누구한테 들은 모양이네.
......
그럼, 간만에 같이 얘기나 할까?
...무슨 얘기?
전 팔레트 소대 대장, 현 AR팀 대장님이 왜 혼자 폐허 깊숙이에서 쪼그려앉아 울상인지 말이야.
그렇게 티 나...?
응, 몇백 미터 밖에서도 네 그 "망했어요" 냄새가 날 정도로.
난...
걱정 마, 이번엔 Fatebook에 안 올릴 테니까.
......
그냥... 인형은 왜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어졌는지 고민이 들었어.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감정을... "마음"이라 할 수 있을까?
마카로프는 RO635의 등의 무기 상자를 눈치챘다.
그러니까, 인형의 감정은 그저 인간이 우리에게 설정해 둔 시뮬레이션 데이터일 뿐이라 생각해?
틀린 말도 아니잖아? 다 그렇게 느끼도록 설정된 거잖아...
하긴, 나도 예전에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지. 하지만 내 생각엔 말이야...
인형의 감정에 관한 기반 알고리즘은, 그저 우리의 마인드맵에 심어 둔 "씨앗"이 아닐까 싶어.
씨앗...?
흙과 햇빛, 빗물이 전부 씨앗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우리가 겪는 모든 임무, 상처, 이별이 우리 마인드맵 안의 씨앗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거지.
그래서 어떤 씨앗에선 맥주가 열리고, 어떤 씨앗에선 보드카가 열리는 거야.
심지어는 완전히 똑같은 씨앗이라도, 경험의 차이로 전혀 다른 것으로 자라날 수 있지.
......
그러니까, 모든 인형들의 마인드맵엔 다 씨앗이 하나 심어져 있어.
인간이나 저 쇳덩어리 군용 인형한테는 어차피 필요 없지.
하지만 넌 동료를 잃을까 봐 울고, 민수용 인형 몇 명 구하느라 몸을 던지고, 동료의 소중한 물건을 되찾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
다 너의 경험을 먹고 자란 씨앗이, 널 그런 인형으로 만든 거야.
방금 네가 한 말은 여태까지 너를 위해 햇살과 이슬을 바친 이들의 노력을 완전히 부정한 거나 다름없어.
......
마카로프와의 대화로 인형의 감정의 대한 의문이 풀렸구나.
녀석이랑은 말을 나눌 때마다 많이 배운다니까...
그 대화로 너도 인형의 감정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단 거지?
"기반 알고리즘이 감정을 결정한다"에서, "경험이 기반 알고리즘을 통해 감정을 생성한다"로.
마카로프 덕분에, 모든 일에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
경찰서에서, 팔레트 소대에서, AR팀에서 겪은 모든 것이 다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
페르시카 씨 말씀대로, 계속 내 감정을 채워나가고 있었던 거야.
그럼 이젠, 자신의 감정이 단순한 시뮬레이션의 산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겠네?
망각은 기억에 대한 배신이야.
다시는 나와 친구들의 과거를 부정하지 않겠어.
내 감정은 결코 기반 알고리즘만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니까.
아주 좋아. 그럼 마카로프와의 대화 후에 바로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심한 거야?
아니, 그 전에 또 마무리할 일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