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635
MOD 4
RO635의 마인드맵 공간.
마카로프와의 대화 직후에 마인드맵 업그레이드를 결심하지 않았다면, 또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야 먼저 내 대원들에게 돌아갔지.
AR팀은 어떻게 반응했어?
AR-15는 당연히 "내 그럴 줄 알았다"하는 표정이었고, SOP2는...
엄청 화냈어.
걔가 그렇게 화내는 건 정말 처음 봤어.
왜 SOP2가 화를 냈는데?
내가 M16처럼 AR팀을 떠난 줄 알았나 봐.
미안, 마카로프...
내가 정말 한심한 말을 했지?
괜찮아, 다 익숙해진 일인걸.
그런데 말이지, 지금 SOP2가 AR-15을 끌고 다니면서 대장 찾아 삼만리 중이야. 아주 어쩔 줄 모르는 눈치던데?
빨리 안 돌아가면 AR-15의 다리가 망가져 버릴걸?
!!!
내가 또 동료들한테 걱정을 끼쳤구나...
고마워 마카로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RO635는 바로 임시 기지로 달려갔다.
천만에, 동지.
한편, SOP2는 AR-15을 잡아 끌면서 임시 기지를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RO――!! 어딨어 RO――!!
AR-15, 혹시 RO한테 또 무슨 일 생겼으면 어떡하지?
......
RO가 무슨 일인진 몰라도, 이대로 가다간 내가 먼저 고장나겠어!
몰라! RO부터 찾아내야 해!
누가 말도 없이 사라지는 꼴은 다시는 두고보지 않을 거라구!
......
SOP2! AR-15!
야, RO 저기 온다.
정말?!
......
RO635는 헐레벌떡 SOP2와 AR-15에게 달려왔다.
헉... 헉... 미안해, 방금 너희가 날 찾는다고 들었어.
......RO.
혼자 어디 갔다 왔어?
그――
넌 지금 AR팀의 리더잖아!
어떻게 대원들한테 말도 안 하고 함부로 이탈할 수가 있어?!
미, 미안해... 내 마인드맵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해결하고 올 생각이었어...
모두 말로는 안 하지만, M4 씨와 M16 때문에 걱정이 많다는 건 나도 알아...
거기에 나 때문에 또 걱정이 늘어나게 하고 싶지 않았어...
......
RO――!!!
6――!!! 3――!!!
5――!!!
이 바보 멍청아――!!!
SOP2?! 우, 울지 마!
으아아아아앙!!!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SOP2는 네가 우릴 두고 떠난 줄 안 거야, M16이 그랬던 것처럼.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몰라 이 바보야아아!!!
......
RO635는 SOP2와 AR-15를 꼭 껴안았다.
난 아무 데도 안 가...
정말 미안해 SOP2, AR-15.
아까는 내 감정이 전부 프로그램의 설정이 아닐까, 온전히 내 것이 아니지 않을까 혼란스러워서였어.
하지만 잊고 있었어... 너희 모두가 나와 함께 성장하고, 내가 지금의 RO635가 되도록 함께 있어 줬단 사실을.
난 절대 너희를 두고 가지 않아.
너희는 나의 일부인걸, 너희가 없으면 나도 나로서 있을 수 없어...
그것 때문이야? SOP2가 울어서?
그래서 여태까지 마주보지 못했던 기반 알고리즘을 보기로 결심한 거야?
......
아니... 그건...
말해 봐.
그, 그건 그중 하나고!
SOP2는... 내가 가장 처음 만난 애라서...
응? M4가 아니라?
아니... 내 마인드맵 기록에 따르면, 확실히 SOP2야.
페르시카의 연구실.
RO635가 정식 가동하던 날.
자아 RO635, 그럼 이제 일――
꺄하하하핫!
전속력으로 달리는 나는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다아아아!!
야 SOP2! 연구실에서 달리지 마!
싫지롱~ 내가 1등으로 새 멤버 볼 거야!
음...? 밖에 AR팀이 있나?
눈 깜짝할 사이에, 분홍색의 형체가 페르시카의 눈앞을 가로질러 RO635를 덮쳤다.
억, 잠깐!
얼른 일어나!
히히히, 안녕 RO635.
난 AR팀의 M4 SOPMOD II야, 만나서 반가워~♪
그것이, RO635의 기억의 시작이었다.
엥... 그 기억 내가 안 지웠던가...?
......?
잠깐만, 너 누구야?!
아.
페르시카 씨!?
어...
역시 페르시카 씨였군요!
아니, 그게, 네가 걱정돼서!
어쩐지! 하긴, 그딴 악취미인 아바타는 당신 말고 쓸 사람이 없죠!
귀여운데...
......
어... 업그레이드 얘기, 계속해도 돼...?
빨리 끝내요, 빨리!
으, 응. 어디까지 했더라...
아, 아무튼 넌 마침내 네 의문의 원인과 직접 마주하기로 결심했단 거지?
더는 도망치지 않겠어요. 그럴 만한 용기도 얻었으니까요.
이제 어떡하려고?
들어가지 못했던 그 방에 들어가서, 내용을 확인하겠어요.
그런 다음 새 소체의 구조에 맞춘 최적화를 완료해서, 업그레이드 문제를 해결하겠어요.
후후, 기반 알고리즘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로 했구나.
네. 제 감정이 정말 만들어진 거라 해도, 제 경험... 울고 웃었던 모든 일은 전부 저만의 것이에요.
단조로운 코드 덩어리가 아니라, 그런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든 거예요.
그래, 그래야 우리 RO지.
업그레이드를 마치면 뭘 하고 싶어?
계속 지휘관님을 도와 임무를 완수하고, 그리폰을 재건하고, 우리를 상처 입힌 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야죠.
...물론, M4 씨와 M16도 찾아서 무사히 돌아오도록 하겠어요.
전부 남을 위한 일뿐이네?
지휘관을 위해, AR팀을 위해, 그리폰을 위해...
너 자신을 위해서는 뭘 할지 생각 안 해봤어?
네?
저 자신을 위해서...?
임무나 직책에 관계된 게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은 없어?
......
강해진 모습으로, 다시 M16, AR-15와 함께 한잔하고 싶어요. 그리고 M4 씨의 부담을 덜어 주고 싶고요. M4 씨는 짊어진 게 많으니까요...
그리고 그 대규모 퇴각 작전 이후에 갔던 임시 기지에, SOP2랑 함께 다시 가보고 싶어요. 그때 같이 업그레이드를 하고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결국 저는 포기했으니...
팔레트 소대랑도 약속한 게 있어요, 다시 모두 모여 수다를 떨면서 식사하자고...
또, 예전에 신세 졌던 법무기관도 방문하려고요. 거기 사람들도 저를 많이 보살펴 줬으니까...
거 봐, 너도 하고 싶은 일이 잔뜩이지?
네...
그럼, 이제 준비됐어?
......
준비됐습니다.
RO635는 다시 그 얇은 문에 손을 얹었다.
내 마음을 싹틔운 씨앗... 네 모습을 내게 보여 줘...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기반 알고리즘 룸"은, 텅 비어 있었다.
......어?
왜, 왜 아무것도 없죠?
그러게, 왜 텅 비었을까?
...숨겨놨어요?
너한테 권한을 전부 부여했는데, 숨겨서 뭐해?
......
관리자 권한으로 파일 관리자 실행, 숨긴 파일 표시.
실행 완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이 방의 점유 용량 확인.
[기반 알고리즘 룸] 점유 용량 - 총 0바이트.
......
더 확인할 거 있어?
말도 안 돼! M4 씨도 인형들은 모두 똑같다고...!
우리의 감정은 다 설정된 거라고...!
예전에 말했잖아, 난 너한테 아무 설정도 안 할 거라고.
......죄송합니다.
제가 당신을 의심하다니...
이번에 정말 실망시킨 게 아닌지...
사과할 거 없어, RO.
실망이라니, 오히려 엄청 기쁜걸?
자아의 존재를 의심했다는 건, 네가 너 자신을 좋아하게 됐다는 뜻이니까.
그게 무슨...?
난 네가 바로 그렇게 되길 바랐어. 프로그램에, 설정에 의존하지 않고, 너 스스로 성장하기를.
이 세상을 사랑하고, AR팀을 사랑하고, 너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를.
지금 넌 그걸 해낸 거야.
그건 AR팀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RO, 너는 특별해.
제2세대 자율인형의 마인드맵엔 꼭 인위적으로 "씨앗"을 심어야 하지만, 네 마인드맵이 싹틔운 씨앗은 네가 스스로 만들어낸 거야.
다르게 말하자면, 지금의 RO635 너는 오로지 너의 선택에서 비롯된 존재라는 뜻이지.
그게 바로 리코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차세대... 제3세대 인형의 프로토타입이야.
제 선택으로...
그럼... 전 앞으로 어떻게 되죠?
2세대 인형의 인격 발달 과정엔 패턴이 있어. 그래서 초기 AI 설정과 성장 경력을 통해 대강 예측할 수 있지.
하지만 넌 달라, 네 마인드맵은 완전히 너 스스로가 형성해낸 거라, 널 창조한 나마저도 네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예측할 수 없어.
넌 최초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결정하는 인형이야.
어쩌면 너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제3세대 인형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째서죠?
왜 인형에게 감정을 줬죠? 그리고 이젠 인형에게 모든 결정권을 맡기려 하다뇨...
감정을 통해 우리가 더 긴밀하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인가요?
그뿐만은 아니지. 감정이란 게 엄청 신기하거든...
인형에겐 그저 버그 같은 물건 아닌가요?
하하하! 꽤 독특한 인식이지만, 네 말이 맞아.
감정은 버그야. 그건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지.
그럼 왜 인형에게도 감정이 필요한가요? 버그는 제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감정이란 버그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빠지게 만드는 버그와는 달리, 아주 무한한 가능성을 품었거든.
네가 이성을 잃고 불합리한 행위를 저지르게 할 수도 있지만...
엄청난 힘을 발휘해, 원래대로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도 해낼 수 있도록 하기도 하지.
엄청 모순적이네요...
이런 말, 들어봤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야말로, 진정한 힘의 원천이다."
진정한 감정을 느낀다면, 인형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해.
네가 감정을 채워 가는 도중에 그런 경험 없었어?
감정 때문에 더없이 나약해지거나, 반대로 힘을 내서 못할 것 같았던 일을 해낸 경험 말이야.
......
나약해지거나, 힘을 내거나...
과거의 단편이 RO635의 마인드맵을 스쳤다.
13
...RO, 넌 어째서 우리에게 감정 모듈이 설치됐다고 생각해?
그건...
예전에 한 번 M16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어. M16은 그게 우리가 단순히 살육을 위한 기계가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고 했어.
우리는 감정을 가졌어. 그러니 저런 아무런 감정도 없는 군용 인형들과는 달라...
하지만 감정은 우리의 약점이라고, 감정이 있기에 결함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네 생각은 어때? 인형이 감정을 지니는 게... 결함품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해?
난 잘 모르겠어...
하지만 감정 모듈은 인간들이 우리에게 부여해 준 거야. 그 누구도 자신의 상품에 일부러 결함품이라는 딱지를 달고 싶어하지는 않잖아?
그러니... 분명히 어떤 의미가 있을 거야.
......
다 의미가 있다...
나도 감정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확답해 줄 순 없지만, 적어도 사람마다 그 답이 다 다르다고 봐.
그러니 너도, 언젠가는 분명 너만의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반드시 찾아내겠어요.
후후, 축하해 RO.
이걸로 넌 네 마인드맵 업그레이드를 위한 최적화를 끝냈어. 무한한 네 성장의 작디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RO635의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
RO! 일어났구나!
잘 돌아왔어. SOP2가 널 위해 선물까지 준비해 뒀다고.
어... 고마워. 그런데 이게 뭐야?
행운을 빌어.
AR-15는 RO635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선 바람처럼 방을 나갔다.
저게 무슨 뜻이야...?
짜잔~! 내가 R&D팀한테 부탁해서 만든 다목적 악세서리야!
심심할 때 만지작할 수도 있고, 짐도 어느 정도 들 수 있어!
그리고 제일 중요한 기능! RO가 내 허락 없이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면, 얘가 경보를 울리면서 널 꽉 깨물 거야!
...농담이지?
헤헤, 못 믿겠어?
당장 보여 줄게!
SOP2가 여태까지 본 적 없는 속도로 창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창고에서 RO635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악 SOP2 야 임마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