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897
MOD 3
......
알렉셰이 형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내일 장사 얘기는 아침에 마저 하지. 그만 돌아가.
예!
......
...후우.
여기는 이반, 무슨――
우리 자기~ 생일 축하해!
......
고마워 여보, 미안하지만 지금 정말 바빠서...
그래, 바쁘겠지. 한가했으면 지금 집에서 애들이랑 같이 생일 케이크 먹었을 텐데.
...미안해.
자기 하는 일이 그렇잖아, 괜찮아.
오늘 열심히 일해야 내일이 더 나아질 수 있어.
그래도 집안일엔 좀 더 신경써 줘, 나 혼자선 너무 힘들어.
정말 미안해...
어휴, 맨날 미안하다고만 하고...
아 맞다, 레상에 아주머니가 그러던데, 그린존의 가정 서비스 센터는 직원이 다 인형이라 비용이 엄청 싸대.
한달에 한 번 부르는 정도면 우리 수입으로도 괜찮을 거 같은데, 어때?
인형을 부른다고?
나 혼자서 집안일 몽땅 하는 것보단 나을 거 아니야. 이따 연락처 보낼 테니까 꼭 예약해 줘.
[통화 종료]
문자를 받았습니다.
[자기, 가정 서비스 센터 연락처야]
[꼭 예약해 줘!]
......
......
분명 일에 차질이 없었을 터다.
그 문자만 잘못 보내지 않았다면.
......
얼굴에 끼얹어진 찬물에 의식이 돌아왔다.
보스, 깨어났습니다.
처음부터 변변찮은 놈 아닌가 했는데 역시나였네요, 너무 늦지 않아서 망정이지...
꺼져 봐.
아, 예...
크윽...!
정신이 돌아오고 가장 먼저 느껴진 감각은, 양손이 포박된 느낌이었다.
한편 내 옆에 똑같이 묶인 가정부 인형은, 어째선지 별로 겁먹지 않은 표정이었다.
감쪽같이 속았군... "이반". N65 구역 소속 경찰이라니 정말 놀랐어.
위장 신분으로 우리 조직에 잠입해 한탕 할 셈이었나? 뭐, 이번 경매를 노렸으니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 그간의 노력이 허사가 되어 참 유감이야.
......
알렉... 이반 씨 경찰이었어요?
너 정말 지원 온 전술인형 아니야?
저, 전 청소 의뢰 받고 왔는데요...
그렇군... 그래, 다 내 실수지. 너까지 말려들게 해서 미안하다.
그럼 이 사람들은...?
여러 구역의 지하조직들이야.
조, 조직!
목소리 낮춰 이 녀석아...
경찰... 경찰이라니!
내가 얼마나 널 믿었는데!
그리고 이 망할 인형, 잘도 입을 놀렸겠다! 이게! 이게!
딱! 딱! 딱!
훅... 훅... 에고고...
브라운 부인이 지팡이로 M1897을 마구 때렸다.
하지만 인형인 탓인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만 제풀에 진이 빠졌다.
어... 괜찮으세요?
아니 지금 저쪽을 걱정할 때냐?!
...이익!
이 빌어먹을 인형! 퉷!
아앗! 아무데나 침 뱉으면 안 돼요!
이거 풀어 주세요, 빨리 얼룩지기 전에 깨끗이 닦아야 해요!
이 M1897는 정말 가정부 인형인 모양이다. 위생에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다니.
하지만 나처럼 양손이 꽁꽁 묶인데다 조직원에게 바닥에 눌린 채니, 평범한 민수용 인형이라면 달리 방도가 없다.
이보세요, 스파이가 있었다는 건 진작부터 노려지고 있었단 뜻 아니에요?
분투협회의 총수로서 책임지세요!
걱정할 것 없습니다, 우리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비장의 무기~?
이 군용 인형 말이에요?
저 인형 계집 말대로면 이거 완전 고물이잖아요!
그래, 어물쩡 넘어가려 하면 안 되지!
어떻게 설명할 거요!?
후우... 그럼 시간도 없고 하니 거래를 빨리 끝내야겠군요.
정 그렇다면, 성능 테스트를 앞당기도록 하죠.
그 뜻은...?
이 인형 덕분에 간첩을 발견한 건 엄연한 사실이죠.
허나 달리 쓸모가 있지도 않으니, 과녁으로 쓰겠습니다.
네에에엣!?
잠깐! 이 녀석은 관계 없잖아!
허, 지금 인형을 걱정하는 거냐?
안심해라, 다음은 너니까.
제기랄...
입찰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시동이 걸린 그 군용 인형이 엔진 소리를 내었다.
——
젠장, 일났네...
흐음...? 확실히 움직이긴 하는데, 어째 소리가 영 아닌데요?
낡은 모델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하지만 조금만 손을 보면 어중이떠중이 쯤은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습니다.
수리는 제게 맡겨 주십쇼!
분투협회는 이런 상황도 이미 예상했기에, 미리 대기시켜 둔 부하가 바로 온갖 연장을 가지고 군용 인형을 손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확실히 제법이라 쳐 줄 만한 것이, 부품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솜씨가 좀 거칠긴 해도 어디서 배운 듯했다.
다만, 옆의 M1897이 저 놈이 수리하는 꼴을 보곤 비명을 질러댔다.
냉각액! 냉각액통 그냥 열면 안 돼요! 밑에 받칠―― 으아아 바닥에 잔뜩 쏟아졌잖아요!!
꺄아아아 쏟아진 거 밟고 다니지 마세요!! 발자국! 발자국이이이!! 빨리 멈춰요!!
아 저 되게 시끄럽네!
그렇게 깨끗한 게 좋아? 옜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던 브라운 부인이 결국 참지 못하고, 바닥의 기름때와 냉각액 범벅인 걸레를 M1897의 입에 쑤셔넣었다.
우으읍——!!!
꼴까닥...
......?!
기절했어!?
흥, 이제야 좀 얌전해졌네!
인형의 결벽증이 이 정도로 심할 수가 있는 건가?
하지만 이 인형은 깨어있든 아니든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기회를 봐서――
도망치려고?
!!!
그럴 일 없으니 포기해라.
테스트를 인형만으로 하긴 부족하니, 마지막으로 "알렉셰이"로서 조직에 끝까지 공헌하라고.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네!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지껄이라고.
준비는 언제 끝나지?
다 됐습니다!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이젠 발목까지 묶인 나와 M1897은 벽으로 내팽개쳐졌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곧 벌어질 불꽃놀이를 구경하려고 저만치 떨어졌다.
난 여기까지인가?
...하지만 내 물음에 대답해 줄 사람은 없다. 그저 군용 인형의 시커먼 총구를 보면서, 곧 다가올 폭발과 충격에 몸서리칠 뿐이었다.
오히려, 옆에서 기절한 이 인형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적어도 눈 뜨고 최후를 맞이하진 않으니...
——
......
——%¥#@%¥#
응...?
내가 과도하게 긴장하여 헛것을 보는 게 아니라면, 저 군용 인형의 움직임은 전혀 정상적이지 않았다.
공장 안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 가운데, 군용 인형은 시꺼먼 기름을 사방으로 찍찍 뿜었다.
우왁!?
푸엑, 켁켁!
으윽, 퉷 퉷!
저들보다 훨씬 가까운 난 온몸에 기름을 뒤집어썼고, 콧구멍 안까지 기름범벅이 되어, 그 끈적함과 냄새가 도저히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역겨웠다.
그래도 저 엉망인 상태를 보니, M1897이 말한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허... 허허! 역시 고물이었구만?
어어, 이럴 리가 없는데?!
읍...
지독한 기름 냄새 때문인지, M1897이 깨어났다.
이봐, 너 괜찮아?
으읍...?
읍읍!? 읍읍읍읍??!!!
정신을 차린 M1897이 자신이 더러운 기름 범벅이 됐음을 서서히 깨달았고, 회까닥 뒤집어진 눈은 흡사 정신붕괴 직전의 인간 같았다.
우읍읍——!!
우엑...... 더...
걸레를 겨우 입에서 뱉어낸 그녀가 무어라 말했다.
......?
그리고 그 중얼거림이 점점 커지더니...
더...러워... 더러워더러워더러워――
더럽게 이게 무슨 짓이야아아아!!!
......
인형은 시간이 흘러 인간 사회의 일부가 되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인형에게 편견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나는 인형도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폭발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눈앞에서, 그 가정부 인형이 폭주했다.
밧줄과 수갑은 아무 소용 없었고, 저 군용 인형은 그녀의 "장난감"에 박살나 버렸다.
물론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기고만장하던 각 조직의 우두머리와 수행원들, 정예 경호원들 모두, 폭주한 가정부 인형에게 깔끔하게 청소됐다.
문자 그대로 "청소됐다"고밖에, 눈앞의 광경을 달리 형용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M1897이 청소도구로 놈들을 향긋한 비누거품에 담가버렸으니까.
아무튼 놈들은 저항할 능력을 상실했으니, 내 입장으로선 일발역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지저분한 거... 더 있었네?
......어?
이런 제기랄, 나도 기름을 뒤집어썼단 걸 깜빡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