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S12
MOD 3
다음날. 밤이 깊은 가운데, 두 인형들은 탕비실에서 기다림에 지쳐 가고 있었다.
P30 녀석, 입구 똑바로 지키고 있는 거 맞아? 벌써 1시간이 넘었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지?
어제 우리한테 들켜서 오늘은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어. 그리고, 인간은 수면이 필수불가결이잖아.
P30, 상황 보고해.
내가 뭐랬어, 아무 말도 없으면 아무 상황도 없는 거라고 했지?
...어쩌다 이런 골치 아픈 녀석들만 있는 건지.
뭐?
뭐. 암말도 안 했거든?
웃기고 있네, 다 들었――
앗! 그 애 나타났다!
개조실의 백색 불빛이 드리운 인간 소녀의 얼굴에선 평소의 긴장되고 위축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앤은 지금 눈앞의 설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거대하고 정교한 기계 팔의 구조가, 소녀의 감탄을 자아냈다.
저걸 쓴다면...
잡았다 요놈!
?!
Saiga 308이 개조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고, 구경하러 온 P30과 담담한 표정인 AR-57이 그 뒤를 따랐다.
현장 검거야! 여기서 뭐해? 그리폰의 기술력을 훔치려는 거야? 아님 우리 설비를 사보타주!?
정직하게 실토하도록 해. 한밤중에 기지를 돌아다니던 게 너야? 개조실 말고 또 어딜 갔어?
엣, 아, 아뇨, 다른 곳에 안 갔어요...
그저께 건물 밖 잔디밭에 있던 것도 너 아니야?
밖...? 아뇨, 저, 저는 개조실만 왔어요...
얘가 설마 200kg이나 나가려고.
......
그래서, 이틀 연속으로 개조실은 왜 드나들었어?
저는... 기계가 익숙해요. 밤이면 혼자는 무서워서, 익숙한 곳에 있고 싶어서... 그, SPAS-12 언니한테도 말했는데...
얼버무리려 마, SPAS-12는 우리한테 그런 얘기 안 했어.
긴장감이 개조실을 감돌아, Saiga 308은 벌써 윗선에 보고할 준비까지 했다.
"그리폰의 유령"이 아직까지는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았지만, 지휘관과 모두의 안전을 위해 확실하게 조사하려는 것이었다.
얘들아 잠깐, 창밖을 봐봐.
3층에 위치한 개조실의 창문은 청결함을 위해 방진, 방음인 최신식 차단 기술이 적용되어서, 외부로부터의 소리는 일체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창문 자체는 투명해서, 밖의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수상한 붉은 빛을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저... 저게 뭐지...?
앤도 그런 광경은 처음인지, 방금까지 잔뜩 긴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인형들 곁에 바짝 붙었다.
가서 확인하자! 따라와!
"그리폰의 유령" 괴담이 최소한 앤만의 작품은 아님이 밝혀진 순간, Saiga 308은 쏜살같이 빛이 난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아...
혼자 남겨지길 원치 않는 듯한 모습에, AR-57은 한숨을 푹 쉬며 이마를 짚었다.
하아... 같이 가자.
쓰레기 처리기가 사용된 흔적이 있어. 방금 누가 여기서 뭔가를 폐기한 거야.
이런 시간에, 이 쓰레기장에서?
기지의 숙소동에서 멀지 않은 이 쓰레기장은 원활한 쓰레기 운송을 위해 개조실 방향으로 트인 것 외에는 삼면이 벽이었고, 바닥에 모래도 깔려 있어 누군가 드나들었다면 반드시 흔적이 남는 구조였다.
그리고 방금 모두가 보았던 붉은 빛은 이곳에서 번쩍인 것이 틀림없었다.
...쓰레기통이 비워졌네.
Saiga 308은 까치발을 들고 자신만한 초록색 쓰레기통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점검했다.
그중 눈에 띄는 쓰레기통은, 앞면에 흰색 글씨로 "음식물 쓰레기"라 적힌 쓰레기통이었다.
이 임시 기지에서 배출되는 모든 쓰레기는 전부 여기에 보관되고, 매일 아침 6시마다 누가 치우러 와.
그러니 지금 쓰레기통이 비어 있을 리가 없어. 누군가가 일부러 쓰레기를 처리한 거야.
어느새 밤이 깊어, 어둠 속에서 건물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도깨비불 같은 주황색 불빛에 눈이 부신 앤은 밖으로 나온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
다음주에 육아원에서 사람이 오니까, 떠나기 전에 끝내고 싶은데...
...이제 돌아가면 안 돼요?
범인이 떠난지 얼마 안 됐으니 지금 뒤쫓는다면 잡을 수 있어.
하지만 어디로? 귀신의 그림자도 안 보이는데.
주방이야! 음식물 쓰레기통도 비워졌으니 분명히 주방에 단서가 있을 거야!
주방이라... 왠지 전개가 예상이 되는걸.
땡그랑!
밖에서도 주방에서 금속제 그릇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P30은 냅다 문을 열어젖혔다.
SPAS-12?!
우와앗!?
불이 환히 켜진 주방은 따뜻한 백색 조명이 깨끗하게 치워진 조리대를 비췄고, 그 옆에서는 SPAS-12가...
설거지...? 한밤중에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고?!
너희 여긴 웬일이야?!
헉, 어떡하지?!
SPAS-12는 허겁지겁 떨어뜨린 스테인리스 그릇을 주워 식기세척기에 넣은 뒤, 문을 쾅 닫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식기세척기는 새하얀 거품이 점차 채워져서, 투명한 유리문을 금세 뒤덮었다.
그건 우리가 할 말이야! 한밤중에 혼자 여기서 뭐해?
SPAS-12는 우물쭈물대며 P30을 보지 않고 옆의 흰 찬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그 찬장은 문 사이로 분홍색 리본이 삐져나와 있었다.
나, 나야 먹을 걸 찾고 있었지! 이제 다 먹었어!
예상한 대답 그대로네.
그래서 너희는 주방에 무슨 일이야? ...어? 앤도 있네?
세 인형들 뒤의 인간 소녀를 발견한 SPAS-12가 의아해하는 찰나, 앤이 슬쩍 앞으로 한 발짝 나와 삐져나온 리본이 가려졌다.
개, 개조실에 갔다가 만났어요.
자신의 허리를 조금 넘는 키의 Saiga 308을 바라보며, 앤은 애매하게 답했다.
그런데 쓰레기장에서 빨간 빛이 번쩍이길래 가봤더니, 음식물 쓰레기가 비워진 상태였어요. 그래서 모두 주방을 보려고 왔어요.
쓰레기 처리기를 쓴 사람이 너야?
어... 그게...
SPAS-12의 눈빛이 다시 흔들렸다. 무의식적으로 제대로 닫히지 않은 찬장을 바라봤지만, 앤이 가려서 분홍 리본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그녀의 오른손이 식기세척기에 닿아, 손을 통해 전해지는 규칙적인 진동을 느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간식 진짜 끊기로 지휘관이랑 내기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만... 아하하...
그래서 들킬까 봐 요 며칠 동안 몰래 쓰레기를 버렸는데, 하필이면 오늘 쓰레기 처리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결국 들키고 말았네~
SPAS-12가 다소 빠른 속도로 설명했다.
그럼 그 200kg 유령도 너야?
아 나 그렇게 안 무겁다니까!
그땐 짐이 무거웠어서 그래! ...새 간식 사 가지고 오느라.
간식이 50kg이야?
너 지금 내 몸무게 알아내려는 거지?!
어쩐지 주방의 식재료가 줄지는 않았더라니, 밖에서 사온 거였구나.
그럼 그 이상한 소리와 형체는?
어... 내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느라?
그럼 네 짓 맞구나? 네가 "그리폰의 유령"이었어!
아니 잠깐만, 그럼 다 알면서 우리가 한밤중에 돌아다니는 걸 구경만 했단 소리잖아?!
헉... 미안해, 그땐 너희가 엄청 들뜬 거 같아서...
말했다간 이렇게 될 거 같아서 그랬지 뭐...
이제 진상 밝혀졌지? 그럼 난 이만.
AR-57은 SPAS-12에게 따지는 두 동료들을 내버려두고 이 해프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앤도 같이 갈까?
아... 고맙지만 괜찮아요. 저도 마침 출출해서.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뒤, SPAS-12는 비밀을 지키는 대가로 총기 정비를 대신 해 주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동료들을 보내고 난 주방에는 SPAS-12와 계란 프라이를 만드는 앤만 남았다.
완숙이 좋아요, 반숙이 좋아요?
...응? 아, 나한테 물은 거야? 난 괜찮아, 고마워.
언니, 먹는 거 좋아하죠?
어? 어... 어. 그리고 그냥 "SPAS-12"나 "사브리나" 부르면 돼.
SPAS-12는 의자 위에서 다리를 흔들며 멍하니 점점 거품이 사라져 가는 식기세척기를 쳐다봤다.
그런데 왜 소화 모듈을 제거했어요?
왜냐며언... 헉? 소화 모듈?!
소화 모듈도 없는데 어떻게 한밤중에 주방에서 음식을 먹어요?
.....!
불을 끄고 계란 프라이를 접시로 담은 뒤, 앤은 식탁으로 왔다.
밤에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쁜 건지 말해 줄 수 있어요?
제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사브리나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