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pardM1
MOD 4
어서 오세... 어라?
......
그대로 카페로 온 게파드 M1은 초조한 기색으로 카운터 앞에 앉았다.
뭐 드시겠어요?
...커피.
주문을 받은 스프링필드는 콧노래를 흥얼대며 능숙한 솜씨로 커피 한 잔을 내어 왔다.
은은한 커피향을 음미하며, 게파드 M1은 평소처럼 잔을 두 손으로 쥐었다.
스프링필드는 파티 안 가? 곧 시작되는데.
파티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카페 일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도 없죠.
역할을 분담했으니, 다른 분들이 헬리안 씨에게 멋진 서프라이즈를 선사해 줄 거예요.
.......
커피잔을 든 손이 약간 움츠렸다.
결국... 못 꺼냈어.
네?
그 말에 스프링필드도 조금 놀란 듯했다.
그날 있잖아... 헬리안 씨한테 퇴역 신청서 제출할 셈이었어.
그런데, 막상 직접 보니까 입이 안 떨어지더라.
평소처럼, 커피도 한 모금씩 홀짝였다.
왜요?
......
아직 다 마시지 않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툭툭 탁상을 두드렸다.
모르겠어... 아니, 확실치 않아서랄까?
퇴역 얘기를 꺼낸 이유는, 내가 이곳에 속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였는데... 그런데...
헬리안 씨, 지휘관, 카리나, 스프링필드, 그리고 모두가...
나랑 거리낌없이 어울려 주고, 받아들여 줬어.
정말 편한 느낌인데... 한편으론 엄청 괴로워.
괴롭다뇨?
내가 이 친절을 누릴 자격이 있기나 한가 싶어서.
그런 자격이 꼭 있어야만 하나요?
아니, 그 전에, 당신이 말하는 그 "자격"이란 어떤 건가요?
......
침묵하던 게파드 M1은 한참 뒤에서야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내가 잃은 기억이 엄청 신경쓰여.
"그때"의 난... 마지막에 뭘 어떻게 했을까? 어쩌면, 난 아무것도 안 하진 않았을까?
아뇨, 당신은 마지막 순간까지 맞서 싸웠어요.
그걸 누가 증명할 수 있는데?
......
게파드 M1은 다시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홀짝였다.
내가 한번 머리를 굴려서 추정하고 내린 결론은...
"그때"의 난, 싸우길 포기하고 도망쳤을 거라고 생각해.
네...?
줄행랑쳤을 게 뻔하다고, 스프링필드.
리엔필드는 분명 그래서 전사한 거야.
그녀의 실력으로는 생환하고도 남았을 텐데.
내가... 그녀를 버리고 혼자 도망친 탓일 거야. 중요한 순간에 난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녀석이었던 거야...
아니오, 당신은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스프링필드의 표정도 점점 어두워졌다.
전술인형은 전장에서 도망치지 않아요.
난 그저 평범한 인형인걸. 그런 전장에서 살아남아 봤자, 짐만 될 뿐이야.
......
논리적으로 추측해 봐도 그래.
군의 포격을 받는 와중에, 리엔필드는 나를 데리고 퇴각하려 했겠지.
내가 부상까지 입었다면 걘 더더욱 나를 버리고 가려 하지 않았을 테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정말 그런 상황이었는지는 차치하고... 설령 정말 그랬더라도, 반대의 입장이었을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저는 게파드 씨도 똑같은 판단을 내렸을 거라 믿어요.
...그게 내가 불안한 이유야.
게파드 M1이 고개를 들어 스프링필드를 올려다봤다.
내가 정말 그랬을까?
나보다 너희를 중요시했을까?
......
스프링필드는 슬픈 눈빛으로 게파드 M1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저는 믿어요. 당신이 믿지 않아도 저는 믿어요.
나도 그렇게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좋겠다.
게파드 M1은 뭔가 더 말하려는 눈치였지만, 이내 포기하고 벽시계로 시선을 향했다.
...벌써 시간이네.
그렇네요.
무거운 화제에서 잠시 벗어나, 스프링필드도 벽시계로 고개를 돌렸다.
......
쉬지 않고 돌아가는 초침을 보며, 스프링필드는 대화를 이어 가려고 목청을 다듬었다.
사표는 여전히 낼 생각인가요?
파티 다 끝나면.
게파드 M1도 시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제 초침은 밤 00시 정각을 가리키는 마지막 한 바퀴를 끝내기 직전이었다.
여태까지 신세 많이 졌어, 스프링필드. 정말 고마워.
괜찮다면...
역시 좀 더 생각하길 바라요.
어떻게 생각해봐도 내 진심을 확실히 알 방법을 모르겠어.
그러니까... 이 딜레마에서 괴로워하기보단,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게 나을 거 같아.
하지만 그 올바른 선택이라는 게——
콰아아아앙――!!!
굉음과 충격이 카페를 찢어발겼다.
스프링필드!!
콰르르――
앗!?
천장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가 스프링필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 위기일발의 순간, 게파드 M1이 몸을 던져 그녀를 구해냈다.
헉... 헉... 적습인가?!
이건...
저 위에서 규칙적인 폭음과 진동이 들려와 바닥을 흔들었다. 기지가 폭격을 받는 것이었다.
여전히 스프링필드를 감싼 채인 게파드 M1의 앞에서 불타는 벽이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고, 그 너머로 아수라장이 된 기지가 눈에 들어왔다.
적습 맞네... 대체 누구지?
이 오밤중에 폭격까지 하다니...
신소련에서 이 정도로 강한 화력을 보유했으면서...
동시에 그리폰에게 원한이 있는 자라면...
――군의?
대체 왜? 나는, 윽... 우리는 분명...
팔디스키에서의 기억. 지금의 게파드 M1에겐 없어야 할 기억이, 본능적으로 깨어나는 듯했다.
그럴 리가... 예고르도 거기서 죽었다며...
틀림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지금은 그것 말고는 다른 가능성이 없네요.
앗! 저길 봐요, 적 부대가 접근 중이에요!
저건... 군의 제식 장비잖아...
진짜네...
인형의 눈이기에, 두 인형은 폭격이 끝난지 얼마 안 됐음에도 벌써 가까이 접근한 군부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프링필드는 곧장 총을 들었지만, 외곽의 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인형들이 적의 기습에 쓰러지는 것을 눈 뜨고 볼 수밖에 없었다.
빨리... 빨리 기지에 경보를 울려야 해요... 이런, 통신기가 망가졌잖아...!
폭격을 받은 건 기지의 일부만일까요, 아님 전체일까요...?
부상자는... 아직 사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야 하는데... 그리고 또...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미소로 맞이할 스프링필드였지만, 이런 상황에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게파드 M1도 마찬가지였다.
넋이 나간 것처럼, 불바다가 된 기지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래, 먼저 헬리안 씨와 크루거 님께 연락을...!
여기서 중앙 홀로 가려면 공터를 지나야 하는데, 저들을 피할 방법이 뭐 없을――
스프링필드.
...네?
내가 저놈들의 주의를 끌게.
중앙 홀로 가서 모두에게 알려.
뭐라고요?!
안 돼요, 아무리 개조도 받았어도 당신은 수복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여기서 또 쓰러지면...!
걱정 마, 안 당해.
아까까지만 해도 고민하던 그녀는 온데간데 없었다. 표정은 단호하고 침착했다.
조금만 시간 벌고 놈들을 따돌릴 거야.
나도 바로 합류할 테니까 너무 걱정 마. 어... 뭐라 설명은 못 하겠는데...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 그게 무슨 뜻이에요?
스프링필드는 어안이 벙벙했다.
...살아남아, 스프링필드.
게파드 씨! 기다려요! 게파드 씨!!
콰앙!!!
스프링필드의 만류를 뿌리치고, 게파드 M1은 무기를 들고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단도로 접근한 적 병사 둘의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그녀의 총에서 강선을 타고 발사된 철갑탄이 불길이 치솟는 기지를 가로질러, 돌파 부대 사이에 섞여 있던 적 지휘관의 머리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젠장, 리더가 당했다! 놈들이 반격하기 시작했다! 반복한다, 정예급 전술인형의 저격이다!
후우.
너무나도 익숙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어떡할지를 알고 행동했다.
이 강인한 몸뚱이는, 역시 이때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 실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꿈 깨셔.
......
아니, 절대 안 돼.
게파드 M1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뿌리쳤다.
그 꼴로 무슨 시간을 번다고 그래, 리엔필드.
지금은 억지 부릴 때가 아니야!
우리 모두 살아남기는 불가능해! 내가 희생하면 적어도 넌 살 수 있다고!
알아.
그러니까, 내가 주의를 끌게.
그럼 너만이라도 돌아갈 수 있어.
뭐어!?
리엔필드가 보기 드물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말을, 설마 그녀에게서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난...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그저 인형이지만, 그리폰에서 나는 인형이면서도 아주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았어.
그녀가 리엔필드의 손을 꼬옥 쥐었다.
난 평범한 인형이야, 리엔필드처럼 뛰어나지 않아.
하지만 이런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그리폰을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안 돼... 안 돼! 그럼 네가 죽는단 말이다 게파드!
지금 지휘관에겐 나보다 네가 더 필요해.
그리고 붙잡은 두 손으로, 그녀를 막으려는 리엔필드를 단호히 바닥에 눕혀 제압했다.
카리나라면 널 고칠 수 있을 거야.
큭...! 게파드, 이거 놔! 나는 너보다 상급자다! 명령이라고!
나도 백업이 있는 인형이란 말이다! 네가 그럴 필요는 없어! 게파드!!
...미안해.
안간힘을 쓰며 소리지르는 리엔필드를 바라보며, 게파드 M1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 나, 너희 엄청 좋아해. 진심으로.
인형도 인형으로서 살아남을 권리가 있어.
안 돼! 돌아와라! 게파드――!!
리엔필드의 처절한 외침을 뒤로하고, 게파드 M1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폭약도 모조리 뺏어 방어선의 반대 방향으로 달음박질 쳤다.
......
후우...
저기... 누구 없어...?
집합 장소의 문을 연 게파드 M1이, 만신창이인 몸으로 문틀에 기댄 채 힘없는 목소리를 냈다.
게파드 씨!!
그 소리를 들은 스프링필드가 황급히 달려와 게파드 M1을 부축했다.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스프링필드...
부상이 심각하네요. 여기 누우세요, 응급처치해드릴게요.
고마워... 그나저나 헬리안 씨는...?
잉그램과 함께 페르시카 씨를 찾으러 갔어요. 스프링필드 씨한테 들었는데, 혼자서 적의 주의를 끌으러 갔다면서요?
게파드 씨답지 않게 무모하잖아요, 한 끗만 실수했어도 이렇게 다시 못 봤을 거라고요.
응...
곁에서 걱정하는 스프링필드에게 눈웃음을 지은 뒤, 게파드 M1은 시선을 천장으로 향했다.
솔직히, 나도 내 실력으로 그런 바보 짓 해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
천만다행으로, 새 소체가 엄청 좋더라... 스프링필드?
네, 저 여기 있어요.
스프링필드는 게파드 M1의 손을 꼭 쥐어 안심시켰다.
나... "그거" 불에다 버렸어.
그러니까 못 들었던 걸로 해 줄래?
...어머? "그거"라니 무슨 말이세요?
헤헤... 고마워. 으으... 나 좀 쉴게...
게파드 M1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불안했던 마음도 마침내 잔잔해졌다.
바로 여기였다. 그녀가 있을, 영원토록 몸을 맡길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