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94
MOD 2
신소련 국가안전국의 훈련장.
타타탕!
......
총성의 메아리가 잦아들었고, AN-94는 무기를 내려놨다.
영점 안정성 - 92.16%.
축하합니다, AN-94. 또 발전하셨습니다.
또 지난번보다 성적이 상승했다.
AN-94는 인형의 성능은 출고될 때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그동안의 훈련으로 이룬 변화로 그녀의 심정도 변했다.
이것도 박사가 고려한 것인가... 이제 이해했다.
AN-94는 팔 관절을 풀면서 총을 한켠에 내려놨다. 나쟈에게 받은 보고로 답답하던 마음이 뚫린 듯했다.
어라, AN-94잖아? 오늘도 여기 있구나?
엘리트 인형이라지만 참 훈련에 열심이네.
훈련이란 원래부터 꾸준히 해야 하는 법이다.
내가 강하긴 하지만, 그것도 너희와 비교해서일 뿐이지.
쇼 박사의 기준에 도달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으음... 그 말은 좀 속상한걸.
우리도 훈련 열심히 하거든? 임무 때문에 평소에는 바빠서 그렇지.
너처럼 매일 훈련장에 있을 수만은 없다고.
......
AK-47의 말에 악의는 없었다. 그녀는 AN-94가 실전에 투입되지 않는 이유를 전혀 모를 테니까.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AN-94는 말문이 막혔고, 괜히 총을 다시 들어 탄창을 교체했다.
우린 너희와 규격부터가 달라, 필요한 때가 아니면 쉽게 출격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제작자는 완벽주의자다. 그리 간단히 우릴 임무에 보내지 않아.
어? 그래?
네 동생은 잘만 나가던데?
탕!
과녁 이탈.
지금... 뭐라고?
왜, 왜 그래?
자신의 말에 AN-94가 동요하는 이유를 알 도리가 없는 AK-47는 그 모습에 살짝 겁을 먹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내 동생?
어... 응, "AK-15". 몰라?
AK-47은 의아해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알지, 알다마다.
울프팩 프로젝트의 2호기, 총기명 AK-15를 각인할 예정인 "마스티프".
그래... 확실히, 그녀가 출고될 때긴 했어. 그동안 계속 훈련장에서 훈련하느라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
응, 아마 그저께쯤이었을 거야.
그런데 자매면서 몰랐다니, 매정하다 야.
우리는 전술인형이다. 자매 관계 같은 건 없으니 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마라.
그리고, 난 관련 통보도 받은 적 없... 아니, 이건 중요치 않아. 내가 지금 묻는 것은 방금 네 말이 무슨 뜻이냐는 거다.
무슨 말?
AK-15가 잘 나간다는 것 말이다. 무슨 뜻이지?
엥, 진짜 아무것도 몰라? 우리 방금 걔랑 같이 임무 나갔다 돌아온 참이야.
이야아~ 걔도 너처럼 완전 괴물이더라니까? 혼자서 테러리스트들 화력을 정면으로 돌파해서 제압하다니.
인형이 아니라 아주 탱크였어, 탱크.
......
어떻게 그럴 리가? 그저께?
그저께 AK-15가 출고되었다는 것은 즉 데이터 검수도 완료된 지 얼마 안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대테러 임무를 받고 출격했다고?
그럼... 내가 여기서 이러는 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나쟈?
예,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너는 알고 있었나?
임무 프로필 206202170016에 관해서 말이십니까?
"울프팩 프로젝트" 관련 보안과 연관되어 실험실 이외 장소에서 언급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그런 임무가 있었다고?
어째서!?
엑?! 저, 저기 AN-94, 우선 좀 진정할래? 아까부터 뭐야? 왜 갑자기 소리지르고 그래?
비켜!!
우왓! 아 뭐야 진짜... 쟤 갑자기 왜 저래?
............
나쟈, 왜 내게는 알려 주지 않았지?
복도를 따라 달리며, AN-94는 신경질적으로 나쟈에게 따졌다.
당신이 관련 일정에 관해 질문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저도 정확히 어느 일을 묻는 것인지 알 수――
시치미 떼지 마! AK-15 말이다!
AN-94가 걸음을 멈췄다.
지금 그녀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연구 시설 자체를 관리하는 AI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나는, 쇼 박사에게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 1호기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박사의 결정과 판단을 신뢰했어.
그래서 지난 몇 개월 내내 훈련장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박사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그런데 2호기는 출고된 지 하루만에 대테러 작전에 투입됐다니!
이걸 어떻게 납득하란 거냐! 심지어 나는 그녀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
죄송합니다, 해당 질문에 대한 대답이 불가능합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럼 박사에게 직접 물어보겠다.
권장하지 않습니다.
아마 당신이 원하는 답변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쟈의 충고를 무시하고, AN-94는 다시 달려갔다.
쇼 박사!! 엇...
......
격앙된 감정 탓에, AN-94는 드물게 인사도 없이 쇼의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하지만 따지려고 왔음에도, 안으로 들어선 순간 경악스러움에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한 쌍의 붉은 눈이, 그녀를 얼어붙게 만든 것이다.
...프로토타입.
흡사 철탑 같은 인형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곤 적대심을 거두었고, 사냥감을 노려보는 듯한 안광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AN-94는 사무실 한가운데 우뚝 선 철탑을 멍하니 바라봤다.
오, 네가 AN-94구나?
그때 들려온 낯선 목소리가 간신히 AN-94를 정신 차리게 했다.
만나서 반갑다, 난 안젤리아야. 너희 늑대 무리의 지휘관이 될 예정인 사람이지. 뭐, 일단은.
시끄러.
소파에 앉은 쇼는 짜증 섞인 투로 빈정대며 손의 담배를 껐다.
누가 봐도 지금 이 상황에 AN-94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왜, 내 부하가 될 애한테 자기소개도 못 하냐? 너야말로 끼어들지 마.
개발자는 너여도 최종 수령인은 나라고.
너한테 줄 건 AK-15랑 AK-12야, 쟤가 아니라.
쟨 그냥 프로토타입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
AN-94가 고개를 돌려 쇼에게 물었다.
방금 그녀도... AK-15 맞지? 그녀도 방금 그 단어를 언급했다.
박사, 울프팩 프로젝트의 1호기는 내가 아닌가? 프로토타입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음... 쇼?
쟤가 멋대로 오해한 거야. 인형한테 설명해 줄 의무는 없거든?
오해라고?
AN-94의 마인드맵에 싹 틔운 불안감의 씨앗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라났다.
틀렸다, AN-94. 1호기는 나다.
너는 프로토타입, 굳이 번호를 매기자면 0번이다.
AK-15는 무덤덤하게 쇼 대신 AN-94에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AN-94는 주먹을 꽉 쥐며 분노를 억눌렀다.
한편, 질문이 반복되자 AK-15도 이해하지 못하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질문의 반복을 이해할 수 없다. 설명에 부족한 점이 있었나?
AK-15의 반문엔 일말의 도발도, 악감정도 없었다.
그녀의 얼굴도 평온하고,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녀의 시뻘건 눈이 뿜는 시선도, 그녀가 이 세상을 보는 방식처럼 무미건조했다.
이거 네가 잘 좀 설명해 줘야겠는데?
뭘? 누구한테?
처음부터 이를 방관하던 쇼는 귀찮음 가득한 얼굴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쟤한테? 왜?
네가 쟤로 뭘 할 셈인진 몰라도, 꽤 심각한 오해가 생겼잖아.
쟨 진실을 알 권리가 있어.
하, 인형한테 권리랜다.
당사자인 AN-94를 앞에 두고, 두 사람은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언쟁을 벌였다.
그 광경에, 애초부터 초조함에 여기까지 온 AN-94는 당연히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박사에게 묻고 싶은 일이 있어서 왔다.
내가 프로토타입인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제발, 꼭 알고 싶다. 왜 AK-15는 임무에 투입되는데 나는 안 되는 것이지?
괜한 소리 말지?
너나 괜한 소리 말고, 시간 낭비하기 싫으면 이 문제나 얼른 해결해.
안젤리아의 말이 신경을 건드렸는지, 쇼는 다소 거칠게 혀를 차면서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새로 꺼냈다.
...넌 프로토타입이니까.
그러니까,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인 것이냔 말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널 임무에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고.
그냥 실험용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기체지, 실전용이 아니란 뜻. 이제 됐어?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실험품? 내가, 박사가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과학 연구란 원래 시행착오의 연속이야.
그럼 내가 착오라고!?
AN-94가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
이에 AK-15는 경계하며 몸을 살짝 틀어 AN-94를 주시했다.
AN-94, 진정해.
그리고 쇼 너, 좀 사람다운 말 하면 어디가 덧나냐?
허, 살다살다 너한테 말 좀 곱게 하란 소리도 듣는 날이 오네.
......미안하다.
자신이 과격하게 반응했음을 인지한 AN-94는 감정을 억눌러 목메인 소리로 사과했다.
그래도... 인정할 수 없다.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판단은 내가 해. 네가 인정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
네가 알려 달라 해서 말해 준 거야.
알았으면 돌아가서 대기해.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
알았다.
AN-94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양보 없는 쇼의 눈빛에 결국 포기했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마지막으로 AK-15에게 시선을 던진 뒤, AN-94는 떨리는 몸으로 방을 나갔다.
......
그런 AN-94의 뒷모습을 보며, 안젤리아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예감이 들었다.
이 일이, 결코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