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e100
MOD 4
그리폰 기지, 카페.
100식은 커피잔을 쥐고서 조마조마 기다렸다.
구조 작전에 참여한 인형들이 테이블을 중앙에 두고 앉아서, 구조 당시의 상황을 왁자지껄 떠들었다.
...데이터 트랩이 얼마나 성가신지, 몇 층짜리 미로 같았어요!
100식 씨의 흔적을 겨우 찾아낼 뻔하면 바로 어디서 데이터스트림이 몰려와 휩쓸려 갔다니까요!
...잠깐만! 그래서, 트랩 속에서 우린 100식을 막 쫓아다니는 검은 가죽의 괴물들이었다고?
100식 씨가 그건 그냥 모습이 뒤틀린 검은 고양이랬잖아요!
그리고 그게 중요한가요? 검은 괴물이 되는 거 엄청 폼나잖아요!
꼬맹이가 키 커져서?
진짜, 때릴 거예요!
100식은 입술을 씰룩거리다 결국 못 참고 피식 웃었다.
어찌 되었든, 100식 씨가 무사해서 참 다행이에요!
모두 잠깐 실례할게.
100식... 앗, 조심해!
카리나가 메모장을 툭툭 두드리며 다가오자, 100식이 벌떡 일어나 커피잔을 엎지를 뻔했다.
카리나 씨! 아프라의 신분을 밝혀냈나요? 왜 저를 함정에 빠뜨린 거죠? 혹시 그리폰에 무슨 위협이라도——
자자, 급해하지 마. FP-6가 다 조사해놨어.
그 아프라 씨 말이지. 그녀의 주인이 암시장의 건달인데, 마지막으로 한탕치고 자리를 옮기려고 할 때, 웬 호구가——
크흠, "돈 좀 되고 잘 속을 것 같은" 100식을 마주쳐서...
아프라의 주인이 버려진 야영지에 치밀한 함정을 깔아뒀고, 네가 거기에 가자마자 시스템이 마비된 거야. 그러니까...
100식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니까, 아프라 씨는 명령을 받아 저를 함정에 빠뜨린 거군요? 그리고 그곳에 벚나무도 없었고...
뒤의 절반은 틀렸어, 목표 지점에 벚나무는 정말 있었어.
......!!
아프라의 진술에 따르면, 5년 전 가을, 그곳에서 살아있는 벚나무를 봤어.
너를 구조할 때 겸사겸사 현지를 조사해 봤는데 정말이었어.
안타깝지만 환경 악화로 말라죽은 줄기만 남았지만.
100식은 입술을 깨물고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제 하찮은 일 때문에 모두를 고생시켰어요.
에이, 100식 너 오글거리게 왜 그래!
아참, 지휘관님이 부르셨으니까, 어서 가보렴.
지휘관 사무실.
100식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렴.
지휘관님...
100식, 너의 마인드맵 업그레이드를 잠시 미뤄야 할 것 같아.
어째서——
죄송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어떤 처벌이든 달게...
어이, 뭘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해.
100식 맞지? 너 그리폰에 금방 왔을 때 나한테 부탁해서 했던 "작은 처리" 기억해?
아, 그래서 평가 보고서에 있는 초록색 물음표는...
맞아, 일부 기억을 수정하고 암호화했지. 그리고 나중에 그 데이터를 따로 격리했고, 그래서 그 데이터는 지금 이상 상태에 있어.
마인드맵 업그레이드는 너를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거야, 기억 모듈까지 포함해서 말이지.
검사한 결과, 데이터의 이상 상태를 풀어야 계속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어.
물론 그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하는 것도 방법이야.
그런 거였군요...
그럼, 봉인을 해제할래, 아님 그냥 삭제할래?
100식은 머리 위의 사파이어 같은 벚꽃 머리핀을 만지작거렸다.
100식, 네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렴.
지휘관님... 페르시카 씨, 저는...
하늘의 매달린 벚나무는 여전히 찬란했다.
하지만 온 세상엔 정적뿐이었다.
100식은 무녀가 마지막으로 춤을 췄던 마른 나무줄기를 어루만지고 평야를 지나, 폐건물을 지나, 야영지를 지나서, 야영지 바깥 호숫가에 도착했다.
어디까지나 따라오던 하늘의 벚나무가 수면에 모습을 비췄다.
100식은 물 속 거울상에 손을 뻗어 어루만졌다.
진작에 떠올렸어야 했는데...
일부 잘못, 일부 허상을 이젠 바로잡아야 해...
100식은 깊은 물에 몸을 담갔다.
가라앉는다...
끝없이 가라앉았다...
그러다 갑자기 허공에 던져져 세상이 뒤집혔다——
시끌벅적한 놀이공원의 한구석.
입구의 포스터에 큼지막한 글씨가 쓰여있었다. "고전 문화 수확제, 무녀의 파사 의식, 몰입형 상호작용 체험."
무대가 야영지와 같은 모습으로 꾸며져, 배우들은 즐겁게 웃으며 야외 극장 사이를 누볐다.
가이아 야영지에 어서와요! 와서 수확제를 즐기고 가십쇼!
오늘 무녀님께서 벚나무 아래에서 친히 기도 의식을 올려, 신의 광휘를 내리십니다!
관광객들은 흥미진진하게 축제를 즐겼다.
배우 인형들은 각본에 짠 대로의 대사를 열정 담아서 외웠다.
모두가 허리를 숙이고, 무녀가 등장했다...
모두가 노래하며, 무녀는 춤을 췄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올라 무녀를 바라보며 야옹거렸다.
야영지에 사전에 녹음된 대사가 울려퍼졌다.
크하하하! 미물들아, 이몸께 어서 처녀 열 명을 바치지 못할까!
우리 부족민을 해칠 생각 말아라!
무녀가 소매를 힘껏 휘둘러, 소매 안의 감춘 생선 머리를 무대 밖으로 던지려 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생선 머리는 무녀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검은 고양이는 먹잇감을 발견하자 냉큼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한편 무대 스피커는 이 상황을 무시한 채 녹음된 대사를 계속 틀었다.
아니, 설마 신의 힘을 다루다니! 흥, 오늘은 그냥 물러나마!
반면 무대 위에선 무녀와 검은 고양이의 비명이 뒤엉켜 울려퍼졌다.
으아아앙!!!
우왜애애오오옹!!!
무녀는 눈앞이 깜깜해져 손을 마구잡이로 저으며 이 검은 가죽의 괴물을 쫓아내려 했다.
검은 고양이는 생선 머리를 낚아채고 바로 도망치려 했지만, 발톱이 무녀의 머리카락에 걸리고, 무녀에게 살을 꼬집혀 마구 울었다.
무녀가 자빠져서 제사상을 넘어뜨리고, 제사상에 술통 더미가 무너졌다...
......
도미노처럼 온갖 소품들이 바닥에 뒹굴었고, 사과 하나가 야영지 바깥까지 굴어갔다.
......
푸하하하하, 저것 좀 봐, 저 무녀 왜 저래?
뭔 엉망진창인 공연이야, 시간만 낭비하겠네, 가자 가자!
어질어질해진 검은 고양이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투덜대듯 야옹거리고서, 호박 위에 떨어진 생선 머리를 물고 갔다.
그 호박은 기우뚱하더니 굴러떨어져,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무녀의 머리에 정확하게 떨어졌다.
소품 더미에 파묻힌 무녀는 그대로 꼴까닥 기능을 정지해 버렸다.
다른 배우 인형들은 그 꼴에 이마를 짚었다...
100식은 구석에 서서, 과거의 자신을 멀리서 미소로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때 나에겐 검은 고양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괴물이었겠지...
그래서 가공한 기억 속에서도 무녀가 "검은 가죽의 괴물"를 상대로 싸우던 거였어.
공연은 중단됐다.
인형들은 모여서 무녀의 끔찍한 연기를 나무랐다.
야! 너 제대로 하는 거 맞아? 왜 주인장이 너를 무녀 역할로 골랐는지 이해가 안 가!
오늘 공연을 망쳐서 공연장 임대료만 잔뜩 내서 돈은 못 벌었지.
야 무녀야, 부품으로 쪼개져서 수거장에 가고 싶어?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생선 머리를 잘못 던져서, 정말 죄송해요...
대체 어떻게 너같이 엉뚱한 인형이 출고된 거야?
어휴 짜증나. 무대가 이렇게 엉망이 되어서 주인장이 돌아오면 또 잔뜩 욕 먹겠잖아!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정리할 테니까 여러분은 뒤에서 쉬고 계세요!
야스마사가 초록색 벚꽃 머리핀을 꺼내, 짜증 부리며 무녀에게 내던졌다.
왜 내 설정은 차기 무녀 지망생인 건데? 게다가 네 시중을 드는 역할?
뭔 대본이 이따구야!
회상은 빨리감기 하듯 빠르게 지나갔다.
인형들은 하루 하루 공연을 반복하며 수백수천번 같은 대사를 외웠다.
옐로우존이 점점 넓어지며, 마침내 어느 날 놀이공원에 다신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극단의 주인장은 도박장의 검은 양복들에게 깊은 물 속에 던져져 다신 떠오르지 않았다.
인형들은 겁에 질려 도망쳤다...
......
100식이 폐건물을 지나쳤다.
이 빌어먹을 자식, 보스한테 돈을 그렇게나 빌리고,이 인형들을 잡아다 팔아도 못 때우겠지!
신호 찾았다, 저쪽 건물 안에 있어...!
......
......
야, 멍청하게 기도하지 말고 이거 들어!
이건... 따발총?!
주인장 서랍에서 슬쩍했어, 어차피 그 사람 죽었으니까.
지금 소체가 멀쩡한 게 너랑 나뿐이야,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총 들고 저 망할 놈들한테 쏴!
무녀는 총을 안아 들고, 야스마사의 자세를 따라해, 떨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
100식이 평야를 지나갔다.
무녀가 기습해 온 검은 양복을 기관단총으로 쏴 죽였지만, 야스마사의 코어는 이미 산산조각 났다.
케흑... 이제야 무녀 시종 역할에서 해방이네... 그 역할 진짜 질렸어...
야스마사 씨! 이제 괜찮아요!
이제 거의 다 도망쳤으니까, 조금만 더 버텨요!
바보...
아직도 그거... 쓰고 있냐...
야스마사는 손을 뻗어 무녀 머리 위의 초록색 벚꽃을 만지려 했지만 이미 팔이 반응하지 않았다.
시종이고 무녀고 다 하기 싫어...
그냥... 진짜 벚꽃을 보고 싶어...
초록색인 것보다... 예쁜지... 좀 보게...
야스마사! 야스마사아아!!
신이시여, 저희를 구해주세요... 제발 저희를 구해주세요, 신이시여!
무녀는 간절하게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신이 기적을 일으켜 마지막 동료를 구해주길 빌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야스마사는 무녀의 품에 안긴 채로, 눈동자의 빛이 영원히 꺼졌다...
......
100식은 말라죽은 나무 밑에 왔다.
상처투성이인 무녀는 나무줄기에 기댄 채 울먹였다.
과거 세월의, 봉인되어 격리된 기억 데이터 안에서, 슬픔, 자책, 미안함이 형상 없는 감옥처럼 그녀를 가두었다.
죄송해요, 모두를 볼 면목이 없어요...
죄송해요, 이런 자신을 마주볼 수가 없어서.
그래서 전 가짜 기억을 지어내고 당신을 봉인하고 격리했어요.
죄송해요, 저는 연극 속의 강하고 우아한 무녀가 아니라, 약하고 쓸모 없는 공연배우 인형일 뿐이에요...
왜 살아남은 게 저인 거예요...
그 트랩의 위력은 인형의 마인드맵을 파괴할 수준이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여기서 그 연극 속 신의 선택을 받은 무녀처럼 온힘을 다해 제 마인드맵을 지켜줬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흑흑... 아무도 구하질 못해서...
당신이 절 구했어요, 무녀씨.
당신은 봉인될 과거가 아니고, 제 상상 속 강하고 우아한 무녀도 아니에요.
당신은 약하고, 한심한 저예요. 동시에 힘을 원하며, 동료를 지키고픈 저예요.
무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100식은 몸을 숙여 만신창이인 자신을 살며시 껴안았다.
아시나요, 무녀씨. 당신은 여기서 종말을 기다려요.
그러다 절망 끝에서 빛을 보게 돼요, 지휘관님이 빛 위를 걸으며 다가오시고...
당신은 그리폰에 받아들여져, 많은 동료를 새로 만나고, 강한 전술인형이 될 거예요...
그 총의 이름, 100식이 당신의 새로운 이름이 되고, 그 총과 함께 굳세게 살아갈 거예요...
무녀와 100식의 모습이 서서히 합쳐졌다.
바람이 불어, 초록색 벚나무가 나뭇가지를 흔들고, 무수한 나뭇잎과 꽃잎이 둘에게 날아갔다.
비처럼 쏟아지는 벚꽃잎.
부드러움, 씁쓸함, 포근함... 수많은 느낌이 가득 담겨, 100식은 가슴을 움켜잡았다.
마인드맵의 그 무형의 구멍이 빈틈 없이 가득 메워진 기분이었다.
정말, 아름다운 기적이네요...
......
그리폰 기지.
수복 캡슐에서 100식이 몸을 일으켰다.
개조 끝, 축하해!
고마워요, 카리나 씨.
아참, 누가 대신 말을 전해 달라는데, 누구게?
100식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기지 안의 동료라면 그냥 통신으로 전하면 될 걸, 기지 밖에는... 자신에게 말을 전할 친구가 있었나?
바로 그 아프라 말이야! 흥, 걔가 뭐라면, 며칠 뒤에 어느 정규 경매에서 식물 종자 몇 가지를 올리겠대, 그 중에 벚나무 씨앗도 있어.
그러면서 뭐 "제가 예전에 저지른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칩니다"라나 뭐래나.
그딴 말뿐인 사과를 누가 받냐! 감히 우리 그리폰 인형을 괴롭히고 말이야!
100식은 잠깐 놀랐다가, 미소를 지었다.
어, 설마 진짜 가게?
아뇨, 카리나 씨, 그 벚나무는...
이미 찾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