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R
MOD 2
5일 후, 그리폰 지휘실.
지휘관님~ OBR의 18번째 대출 명세입니다, 확인하세요!
쿠웅!
카리나가 싱글벙글 웃으며 추가로 인쇄한 명세서를 이미 테이블 위에 산더미인 명세서들 위에 올려 지휘관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지휘관은 떨리는 손으로 종합 명세서를 집어 확인했고... 거기에 적힌 천문학적인 금액에 넋을 잃었다.
괘, 괜찮으세요...?
아... 음... 머리가 좀 아프네...
아, 편찮으신 건가요? 제가 숙소까지 모실까요? 지금 제 소체면――
아니 아니 물리적인 두통 말고...
지휘관은 말꼬리를 흐리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OBR? 대체 뭘 하길래 빚이 이렇게 많이 쌓였니? 네 평소 생활로 봐서는 돈을 별로 안 쓸 거 같은데...
OBR은 곤혹스러워하는 미소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하하, 글쎄요오... 분명 물건을 살 때도 최대한 아껴 쓰는데, 나중에 보면 누가 와서 저한테 돈을 갚으라 해서...
우으으... 정말 죄송해요, 고생하시게 만들어서 정말 죄송해요!
지휘관은 겉으론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지만, 속은 뒤집혔다.
이렇게 계속 OBR의 빚을 대신 갚아 주다간 통장이 거덜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그녀가 스스로 금전 관리를 잘 하도록 배우게 해야만 했다.
...카리나.
넵!
금전 관리에 경험 많은 인형들 선발해서 OBR한테 붙여 줘, 보고 배울 수 있게.
가능하면 함께 숙식하면서 단기간 내에 재테크 실력 쭉쭉 오르게!
죄송해요, 제가 모자라서... 화나셨어요?
그건 아니야. 하지만 네가 다른 애들을 보고 배워서 네 소비 습관의 어디가 문제인지를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네가 잘 배우고 나면, 너 혼자서도 다시는 빚 걱정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거야!
저... 정말로 가능할까요?
물론이지!
우으으... 지휘관님 말씀이시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도 명을 받들겠습니다~ "OBR 재테크 각성 작전", 맡겨만 주세요!
......이틀 후.
따스한 햇빛이 유리창 너머 그리폰 기지의 복도를 비췄다.
오가는 인형들은 모처럼 찾아온 조용함을 즐겼다.
비명이 들리기 전까진.
카리나아아아아!!!
방송이었다면 스피커가 찢어졌을 비명이 지휘실에서 터져 나왔다.
화들짝 놀란 인형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살짝 열린 문틈으로 대체 무슨 일인지 조심스레 엿보았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OH MY GOD——!!!
어떻게 이 영수증이 여태까지의 명세서를 합친 것보다 많을 수가 있어?!
설명 좀 해 봐 카리나!!!
지휘관이 터무니없는 숫자의 영수증을 카리나의 눈앞에 대고 마구 흔들었다.
분부하신 대로, OBR의 재테크 각성 작전에 지출된 건데요? 뭐가 문제인가요?
통장을 거덜내는 재테크가 어딨어?!
OBR한테 붙여 준 인형들이 대체 누구길래?!
카리나가 음흉한 눈빛으로 이죽이며 답했다.
류랑 PPD, ADS요.
그 답에 지휘관은 현기증이 나 의자에 쓰러졌다.
뭐어어...?
그리폰에서 소문난 사치 부리기 좋아하는 애들을...?!
네, 지휘관님이 바라신 대조군이 이런 거 아니었나요?
걔네를 한데 모아 비교하면 누가 진정한 지름신인지 알 수 있잖아요!
비교 대상이 생기면 OBR이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불평할 일이 없어지죠~
그게 아니지!!!
지휘관이 또 비명을 질렀다.
녀석들 지금 어딨어?! 계획은 종료다! 당장 종료해!
늦었어요, 이미 럭셔리 바다 여행으로 휴가를 보냈거든요. 거기서 돌아와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거에요!
뭐어... 그동안 지휘관님은 고생 좀 하시겠지만♪
......
Holy XXXX...
OBR... 제발 돈 좀 아껴 쓰렴...
왕래가 드문 열대 바다의 섬.
비행기도 몇 대 없는 공항의 출구에 모여앉아, 인형들은 예약한 호텔의 차량이 마중하러 오기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었다.
설마 지휘관이 우리를 바다로 여행을 보내 주다니...!
출고되고부터 여태까지 마음껏 물놀이를 한 적 없었어!
흥, 겨우 그걸로 만족이야?
그리폰의 정직원으로서 회사 경비로 여행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 정돈 오히려 너무 싱거워.
하지만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OBR 씨잖아요.
OBR 씨가 즐거우면 돼요.
아뇨 아뇨, 저는 여러분을 보고 배우는 입장인걸요! 잘 부탁드립니다!
참, 카리나 씨가 이번 여행은 OBR한테 맡겼으니 금전 관리랑 소비 습관을 관찰해서 지적하라 특별해 당부했지.
노는 것도 좋지만, 임무는 잊지 않도록 명심하자.
명심할 게 뭐 있어, 얘가 어떻게 돈을 낭비하나 보기만 하면 되는데.
......
PPD도 참! 겁먹지 마 OBR, 넌 머리부터 발끝까지 간단한 차림이잖아? 우리랑 비교하면, 음... 네가 제일 검소할 거야!
어쩌면 지휘관은 오히려 우리가 널 보고 절약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는 걸지도 몰라!
오오... ADS 씨의 말도 일리가 있네요!
즉, 진의는 따로 있었단 건가... 흥, 지휘관도 교활하다니까! 어쩐지 출발하기 전부터 예감이 영 좋지 않더라니...
네? 아, 아뇨, 그건 아닐걸요...
지휘관님이 제게 올바른 소비 습관을 들이라고 하셨는데...
지휘관이 너만 신경쓴 게 아닐 거 같아.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소비 습관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지도?
난 됐어, 내 씀씀이가 얼마나 올바르고 합리적인데. 정 배우고 싶다면 내가 노하우를 전수해 줄게.
솔직히, 저도 제 돈 씀씀이에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어...
혹시 괜찮으시면 장부를 봐도 될까요? 합리적인 장부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요.
물론이지.
PPD-40이 당당하게 자신의 장부를 들이밀었고, 거기엔 거액의 지출 기록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내가 고른 옷들은 전부 우수한 옷감에 꼼꼼한 마감으로 아주~ 아주 오래 입을 수 있어.
장식품도 당연히 때깔 고운 일등급만 취급하지. 저열한 플라스틱제는 입에도 올리기 싫어.
PPD-40은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꼴을 보곤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그래, 총액으로 보면 지출이 조금 많――
PPD 씨 의외로 검소하셨군요!
...뭐?
아, 무시하는 게 아니에요!
그게 그러니까, 제가 어쩌면... PPD 씨보다 쬐금 더 많이 쓸지도 모르겠네요.
류 소총이 수줍어하며 단말기를 꺼내자, 일행은 궁금증에 곧장 모여들었다.
지난 5주간의 지출 기록...
1만... 24만... 82만... 101만... 55만...
......!
PPD-40의 눈꺼풀이 움찔했다.
아니 이건 살짝인 수준이 아니잖아! 야 류, 너 대체 평소에 뭘 사고 다니길래 이래?!
어... 여러분과 똑같은 것들요? 보세요, 제가 산 것들 다 일상용품인데...
죄다 제일 비싼 브랜드인데?
아... 제가 숫자 개념이 부족하다는 소릴 자주 들어서요... 그래선가...?
알겠다. 항상 제일 비싼 것만 고르니까, 쇼핑 사이트가 한몫 단단히 챙기자고 알고리즘으로 너한테 비싼 것만 추천한 거야.
몇십 년 전부터 욕만 잔뜩 들어먹은 알고리즘이 아직도 쓰이다니, 꼴불견이네!
아하, 그런 거였군요!
류의 지출은 거품 가득이라 정상으로 봐줄 수 없어.
ADS, 설마 너도 이런 건 아니겠지?
날 뭘로 보고... 난 이성적으고 현명한 판단으로 돈을 쓰거든?
ADS가 자신있게 단말기를 꺼내자, 모두가 눈을 부릅 뜨고 지출 기록을 확인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난 생활비도 최대한 절약해서 집을 사기 위한 저축과 해파리 사육에만 투자한다고.
해변이 보이는 별장을 사려면 돈이 엄청 필요하고, 정기적으로 전문업체를 불러서 유지보수할 돈도 필요하지.
그리고 해파리는 사료 외에도 전문적인 사육 설비와 수질 정화 시설이 필요하니까...
이것저것 합쳐서, 내 매주 평균 지출은——
입이 떡 벌어지는 숫자가 인형들의 눈동자에 비쳤다.
괴... 굉장해요!
확실히 근거 있게 놀라운 숫자네.
ADS는 겸손을 떨며 모두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OBR이 내내 조용하던 것을 깨달았다.
OBR? 이제 네 장부를 공개할 차례 아닐까?
네?! 제, 제 장부는 그냥 안 보시는 편이이...
OBR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걱정 마 걱정 마, 그냥 수다 떠는 건데 뭐! 대강의 숫자만 말해도 돼!
맞아요, 그냥 대충 말해요!
그...
우리 모두 장부 보여 줬잖아, 너만 숨기면 안 되지!
일행의 친절하면서도 사나운 눈빛에, OBR은 터질 듯이 더욱 새빨개졌다.
알았어요, 그럼 말할게요...
네 네!
그게... 지금까지 제 매주 지출은...
OBR은 살며시 오른손을 쫙 펴 보였다.
5천?
절레절레...
5만?
절레절레...
설마 5백이려고.
그게...
......5백만이요.
???!!!
자리의 모두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