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x4Storm
MOD 1
햇살을 받으며 깨어나는 도시의 길가에 그리폰 로고가 도장된 자동차 한 대가 천천히 멈춰섰다.
이와 대비되는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은, 딱딱한 호밀빵을 품에 안은 채 주위의 눈치를 보며 바쁜 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졸려어... 잠이 부족하면 눈 부어서 짝짝이 되는데...
어제 오후에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지휘관님도 도시의 분위기가 신경쓰이시겠죠.
타부크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에휴... 그래서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순찰 도는 거잖아요.
어라?
타부크가 갑자기 얼굴을 백미러에 들이댔다.
눈 안 부었어요, 짝짝이 아니에요.
아니 저거 봐요! 길 끝자락의 저 차요!
어라? 누굴 내던졌다?!
여성 같은데요!?
V-PM5가 급히 핸들을 꺾어 유턴해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약 100m 남짓한 거리를 순식간에 달려가 보니, 후드 모자로 얼굴이 가려진 여성이 쓰러져 있었다. 지저분한 옷차림에, 상처투성이로.
그리고 그 검은 차량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구급차 부를게요, V-PM5는 바이탈 체크!
네!
...어라? 바이탈 체크가 안 되는데요? 잠깐...
이 사람 인간이 아니라 인형이에요! 가동 정지된 상태네요...
V-PM5가 조심조심 후드를 벗겼다.
Px4 스톰!?
그리폰 기지.
수복 캡슐 앞에서 타부크는 안경을 고쳐썼다.
마인드맵 업그레이드는 완료됐는데 왜 아직도 안 깨어나죠?
페르시카 씨가 마인드맵 코어에 데이터 분실 정황이 있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냥 "5분만 더~" 상태야.
Px4~? 빨리 일어나서 출근 안 하면 이번 달 보너스 깎는다~?
――누구 맘대로!
수복 캡슐에 얌전히 누워 있던 인형이 벌떡 일어났다.
어라? 내가 왜 여기에...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좋은 소식이라면 마인드맵 업그레이드됐다는 거지? 그럼 나쁜 소식.
아니, 나쁜 소식은 네 원래 소체가 아주 심각하게 망가져서, 수복 견적 왕창 나왔다는 거! 그리고 좋은 소식은~
마인드맵 업그레이드용 새 소체가 완성돼서 수복비 굳었다는 거!
......
나 무슨 문제 생겼어?
Px4 스톰은 자신의 기억 데이터를 검색했다.
점심 시간에 난 도시에서 순찰 중이었는데, 사람들이 소란 피우는 걸 보고... 그 다음은 기억이 안 나네.
위치는 기억해?
도시의 08호 기초 배급소.
그런데 네가 소체가 정지하고 신호가 사라진 지점은 거기서 200km 떨어진 허허벌판이었어.
카리나는 타부크와 V-PM5가 길거리에서 그녀를 발견한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검사한 바로는, 너는 가동 정지하기 전 9시간가량의 기억이 삭제됐어.
그리고 네 원래 소체에 총상, 창상, 타박상 등이 있었어서, 꽤 심각한 일을 겪었던 걸로 짐작돼.
그런데도 난 경보도 안 울리고, 구조 요청도 안 하고, 그리폰에 어떤 비밀 메시지도 안 보냈다?
임무 라이브러리 데이터랑 지휘관님 말씀으로는 무슨 비밀 임무 수행 중도 아니었던데?
내가 아는 나라면... 대충 뭐하고 있었는지 짐작이――
Px4 스톰이 갑자기 정색하며 통신기를 냅다 꺼내더니 액정을 긁어벗길 기세로 조작했다.
그녀의 그리폰 게시판 계정은 정상이었다. 계정을 도난당하지도, 게시판에다 이상한 소리를 하지도 않았다.
낯선 번호나 이상한 메시지도 없으니, 연락처와 통신 기록도 정상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자 지갑의 잔액을 확인하니...
......0?
뭐야 이거?!!
마지막 계좌 이체 기록을 조회하니, 모든 금액이 "N**"란 사람에게 송금됐다고 나왔다.
송금처 이름도 이니셜만 표기되어서 상세 정보는 알 수 없었다.
아잇 깜짝이야, 얼마나 잃었길래 그래?
Px4 스톰이 액수를 말하자 카리나도 바로 식겁했다.
내 피 같은 돈을 건들다니... 잡히기만 해봐!!!
1일 전, 도시 08호 기초 배급소.
때는 정오 무렵. 배급소는 대문이 굳게 닫혔지만, 처마 아래서 램프를 깜빡이는 감시 카메라가 주위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대문에 붙은 하얀 종이에는 굵은 마커펜으로 글이 적혀 있었다.
"호밀빵 무료 배급, 선착순 500명"
이런 날씨에 시꺼먼 아스팔트 도로 위로 줄을 선 이들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따라 모습도 흔들렸다.
더위로 지친 그들은 어떻게든 열기를 식혀보려고 얼굴에서부터 구슬땀을 뚝뚝 흘렸지만, 당연히 소용없었다.
아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문을 안 열어?! 또 어디 술집 가서 곯아떨어진 거 아니야!?
배고파 죽겠네! 빵 언제 나눠 주냐!
굶주린 원성은 전염병처럼 퍼졌다.
이런 인파의 끝자락에서, 허약한 노인은 땀을 뻘뻘 흘리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입술이 하얗게 마른 손녀의 손을 꼭 잡았다.
할아버지, 저 더워요... 머리도 어지러워요...
쪼끔만 더 참자, 금방 먹을 거 받을 수 있을 거야.
그거 그냥 까만 톱밥덩어리잖아요, 맛없는데... 따뜻하고 푹신푹신한 빵이 먹고 싶어요...
네 아빠가 돈 벌러 멀리 갔잖니, 돌아오면 잔뜩 사 줄 테니 그때까지만 참자.
손 절대 놓으면 안 된다, 알았지?
네에...
어? 와아, 저 언니 이쁘다!
어디선가 젊은 여성이 걸어와 노인 바로 뒤에 줄을 섰다.
고운 살결에 깨끗한 옷차림으로 이런 곳에 서니, 마치 진흙밭에 떨어진 보석처럼 전혀 녹아들지 않았다.
보면 안 돼, 저 사람한테 혼나!
그 말에 여자아이는 화들짝 놀라, 할아버지 뒤에 숨어 반쪽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저기, 여러――
그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배급소의 셔터문이 열렸다.
문 열렸다! 빨리 빵 줘요!
굶주린 이들을 벌떼처럼 몰려가 수량이 한정된 호밀빵을 손에 넣으려고 쟁탈전을 벌였다. 곱게 차려입은 사람이 뭐라 말하려 한들, 그들에겐 지금 저 빵 외엔 그 무엇도 알 바 아니었으니까.
아 진짜 밀지 좀 마쇼!
저리 좀 비켜요 내가 먼저 왔다고!
커다란 종이 상자 옆에 서 있던 배급소 직원이 사람들을 제지하려 했지만, 당연히 혼자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인파에 휩쓸려 밀려나고 말았다.
통조림에 생선이 쑤셔넣어지듯 가드레일이 찌그러지고, 호밀빵이 담긴 상자들이 찢어졌다.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지만, 아무도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뒤처지면 또 하루를 굶어야 함을 의미하니까.
할아버지와 손녀는 몇 걸음도 못 가 밀쳐져 바닥에 넘어졌다. 아이를 필사적으로 감싸는 노인을 수많은 발들이 밟고 지나갔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딱딱한 호밀빵을 뺏고 뺏기기에만 바빴다.
여러분, 뺏지 마세요! 뺏지 말라고요, 애초에 그거 먹을 만한 것도 아니예요!
가냘픈 외침만으론 이들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려오더니 요란하게 배급소 앞에 급정거했다.
타앙!!
총성에 그 자리의 대부분이 얼어붙었다.
굶주림에 미친 두세 명 정도만이 계속 종이 상자 옆에 엎어진 채로, 호두도 깨부술 만큼 딱딱한 호밀빵을 갉으며 사레가 들려도 꾸역꾸역 삼킬 뿐이었다.
모두 동작 그만!!!
빵 먹고 싶으면 가만 있어!!
두 분 괜찮아요?
젊은 여성이 둘을 일으켜 세웠다. 여자아이는 다친 곳은 없었지만, 겁에 질려 혼이 나간 상태였다.
한편, 작전복 차림의 인형은 권총을 들고 그녀의 뒤를 똑같은 모습의 더미 인형들 4기와 함께 차에서 내리며 윽박질렀다.
시내 긴급 상황 대응 약관에 따라 PMC가 질서를 유지한다!
빵 먹고 싶으면 차례대로 줄 서! 다 보이니까 수작 부리지 마라, 새치기해도 3일간 구금한다!
더미 인형 4기가 인파를 정리해 한 줄로 세우던 그때, 배급소 앞의 Px4 스톰 가까이에 있던 홀쭉한 남자가 대뜸 그녀에게 매달렸다.
차라리 잡아가! 그냥 나 잡아가! 적어도 빵에선 먹을 거 주지? 그치!?
"음식이 나온다"는 말에 사람들이 다시 웅성였다.
하지만 대답은 발치의 탄흔이었다.
아주 빵에 미쳤구만! 밥 준다고 누가 그래? 물도 없이 3일 내내 쫄쫄 굶길 건데 그래도 잡아 갈까!?
우리 PMC는 시내 공공질서 유지 도중 긴급 상황 발생 시 발포 허가도 받았다!
질서 안 지키는 놈은 어떻게 되든 자기책임이야! 알았냐!
평소에는 교활하기만 하던 초록빛 눈동자는 지금 차갑고 냉정한, 소름끼치는 안광을 뿜어냈다.
수가 아무리 많아도 민간인. 권총 5자루를 앞세운 위협에 이성이 본능을 이겼다.
지금부터 빵은 내가 배급한다, 차례대로 줄 서서 하나씩 받아 가라!
배급소 사무실.
감시 녹화 영상 속에서 Px4 스톰이 한 손에는 권총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빵을 나눠 주는 모습을 V-PM5는 넋놓고 바라봤다.
우와아, 대단하다...
어제 발생한 이 일 때문에 지휘관님이 모든 배급소에 질서 유지 인력을 배치했죠.
그때 당신이 과감하게 위협 사격을 하지 않았다면 더 심각한 사고가 일어났을지도 몰라요.
하하, 비상 상황이어서 신속하고 전문가답게 해결했지.
평소에는 내가 얼마나 상냥하고 친절하게 동료들을 대하는데~♪
...뭐야, 다들 눈초리가 왜 그래?
글쎄요. 아무튼, 여기에 당신이 기억과 돈을 잃은 단서가 있을까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내 돈을 되찾을 거 아니야!
기억이 지워진 시간을 생각해 봐, 24시간도 아니고 6시간도 아니고 왜 애매하게 9시간일까?
아, 알겠다. 기억을 잃은 시점이 바로 그 인물을 처음 만났을 때겠군요!
바로 그거야~ 정보 하나 덮으려는 시도 자체가 오히려 더 큰 단서를 만들곤 하지.
그럼 지금 단서를 찾았나요?
흠, 분명히 여기에 단서가 있어, 우리가 아직 찾아내지 못했을 뿐...
그러니까 8배속으로 돌려보자고♪
영상이 빠르게 재생돼, 호밀빵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바닥의 빈 상자와 빵 포장지만 남았다.
결국 몇십 명이 빵을 받지 못했고, Px4 스톰이 배급소 직원에게 무어라 하니 직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때, Px4 스톰은 뭔가에 시선이 끌렸는지 한동안 그 방향만 바라보다 감시 화면의 끄트머리로 걸어갔다.
앗, 여기 보세요. 당신이 지금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로 가서 누구랑 대화하는 것 같아요.
...Px4 씨?
아, 응? 미안, 은행 고겍센터에 전화하고 있었어.
뭐 찾았어?
같은 신세인 몇십 명의 행렬과 텅 비어버린 빵 상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노인은 눈물을 흘렸다.
이를 어쩌나... 우리 낸시 또 굶으면 안 되는데...
할아버지 울지 마요, 지금 고철 주으러 가면 안 늦을 거예요...
그때 Px4 스톰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자아자아 진정들 하시고, 배급소에서 지급 물자 재배치 중이라니 조금 이따 호밀빵 또 올 거예요.
꼬마야, 우선 이거라도 먹으렴.
젊은 여성이 가방에서 웬 노릇노릇한 빵을 하나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꿀꺽...
노인은 망설이다 여전히 의심하는 눈빛으로 빵을 받았고, 여자아이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냅다 빵을 입에 쑤셔넣어 볼을 빵빵하게 채우곤 젊은 여성에게 순긴무구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선행에 감사드려요, 아가씨.
선행이요? 하아...
음? 당신... "Px4 스톰", 코드 GK*********. 그리폰 PMC의 인형이군요?
순찰차도 몰고 발포 권한도 있고, 팔자 좋네요.
총은 사람을 해치기 위해서가 아닌 더 많이 지키기 위해서. 그리폰은 언제나 지역 안전 유지에 힘쓰고 있답니다.
아가씨는 무슨 일로 혼자서 이런 빈곤한 지역의 배급소에 오셨나요? 조심해야죠.
그리폰이 지켜 주고 있어서 걱정할 게 뭐가 있겠어요.
음... 이왕 이렇게 만난 거, 그냥 당신으로하죠. 의뢰가 있는데 받을래요?
의뢰라면 기지로 연락해 주세요, 가장 적합한 인선을 파견해 드립니다.
당신이 괜찮을 것 같은데.
지명 의뢰는 추가 요금이 붙는답니다, 가성비 안 좋으니 추천하지 않아요.
까놓고 말하죠. 지금 그리폰에 연락해서 의뢰 절차 밟을 시간 없고, 소대 하나 통째로 고용할 돈도 없어요.
그리고, 여기서 프라하까지 태워다 주는 일이 그리 힘들진 않을 테잖아요. 어때요?
그 말에 Px4 스톰은 상대를 한 번 스윽 훑어봤다.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이지만 전부 싸구려 브랜드에, 보석 목걸이도 장식이 플라스틱마냥 어설펐다.
여기서 프라하까지는 자동차로 약 5시간 소요. 내일 정시 출근에도 전혀 지장 없으니...
그런데, 그냥 운전할 사람이 필요한 건가요? 솔직히 그런 건 가정부 인형도 할 수 있는데.
가정부보단 전술인형인 당신이 훨씬 더 안심되는걸요. 돈 드는 건 마찬가진데 그럼 더 나은 사람 고용해야죠.
리스크와 리턴은 정비례한다지만, 당신의 말을 듣자하니 가는 길에 혹시 모를 위험 요소라도 있나 봐요?
과대평가예요, 저 같은 일반인한테 무슨 위험이 있겠어요?
그리고 젊은 여성은 Px4 스톰도 약간 의아해할 정도의 금액을 불렀다.
프라하에 무사히 도착하기만 하면 되니까, 어떤 차량으로 어느 길로 갈지는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단, 꼭 오늘 안으로 가야만 해요. 어때요, 의뢰 받을래요?
......
추가 호밀빵 도착했습니다. 계속 배급할까요?
...먼저 가서 상자 뜯고 있어요, 금방 갈게요.
아가씨, 전 아직 일하는 중이니 방금 얘기는 좀 더 생각해보고 답해드릴게요.
아 참, 이 배급소에 수급자 조건 같은 거 없죠? 없으면 저도 빵 하나 주세요.
네?
이제 밥 먹을 돈도 없으니 저거라도 먹어야죠.
젊은 여성은 당당히 줄 맨 끝에 섰다.
배급소 사무실.
Px4 스톰이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최대로 확대시켰다.
한 쌍의 뽀얀 손이 Px4 스톰에게 딱딱한 호밀빵을 건네받는 모습. 하지만 아쉽게도 넓은 차양 모자에 얼굴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이 파란 모자 쓴 여자...
어디서 굶고 다니는 것처럼은 안 보이는데, 왜 저걸 받으러 왔지? 나는 왜 아무 말도 않고 그냥 주는 거지?
얌체? 아니면 생활이 어려워진 걸까요?
너희 저거 먹어봤어?
아뇨, 맛 없나요?
차라리 통나무를 씹는 게 나을걸? 벽돌처럼 단단해서 음식보단 호신용품으로 더 쓸만해.
진심으로 말하는데, 당장 굶어죽을 지경 아니면 아무도 저거 안 먹어.
엑... 그렇게 맛없어요? 혹시 먹어봤어요?
Px4 스톰은 표정이 무거워졌다.
사람을 달래 주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상처만 되는 음식도 있는 법이야.
어라, 이 말을 어디서...
Px4 스톰이 순간 흠칫했지만, 타부크는 시선이 감시 영상에 꽂혀 있어서 그녀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빵을 받으러 왔다고요? 이상하네요.
영상은 다시 빨리감기되어, 해도 금방 기울어 배급소가 문을 닫고 Px4 스톰도 순식간에 화면 밖으로 벗어났다.
Px4 스톰은 영상을 조금 되감기하고 0.5배속으로 재생해, 자신이 화면 밖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다시 살펴봤다.
왠지... 누구를 바라보는 것 같네요? 이쪽으로 직선으로 걸어갔어요.
영상 시각, 오후 16시. 응, 딱 임무 종료 시간이네.
그러고 보니 말인데, 내가 어제 발송한 임무 일지를 확인하니 업무 관련 외에는 다른 인물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어.
Px4 스톰의 통신기에서 연결 대기 음악이 멈추고 상담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아 안녕하세요, 거래 기록 조회 좀 부탁드리려고요. 제 계좌에서 마지막으로 송금한 대상의 정확한 이름을 알고 싶은데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거래 내역을 조회하겠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08호 배급소 밖.
Px4 스톰은 임무 일지를 작성하면서, 비고란에 굶주린 사람들이 몰려 인명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을 강조하고 건의 사항에 순찰 강화 및 근무자 추가 배치를 적은 다음 발송했다.
임무 끝~! 퇴근이다 퇴근!
저기요, 제 의뢰 받을 거예요 말 거예요?
무슨 의뢰요? 안 받아요.
왜요, 보수가 너무 짜요?
당신이 제시한 가격으론 그리폰의 이름을 달고선 자선사업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뭐어 개인 의뢰라면야 제법 가성비 좋다고 볼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저는 제가 확실하게 받을 수 있는 돈만 버는 주의라서요. 아무 사정도 안 말하는데 뭘 믿고 당신 의뢰를 받겠어요?
속일 생각은 없지만, 그게...
Px4 스톰은 히죽 웃고 뒤돌아 떠나려 했다.
잠깐만요!
2할 더 얹을게요!
돈 문제가 아니에요 아가씨, 겨우 그거 벌자고 혹시 모를 리스크를 질――
3할 더!
Px4 스톰은 계속 차량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알았어요! 말할게요! 전 프라하로 가서, 그... 그, 중요한 사람을 만나야만 해요!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뜯어말렸지만,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뭘 어떡할지 스스로 정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부탁해요, 저 좀 도와주세요!
젊은 여성이 Px4 스톰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글썽글썽한 눈동자에, 천하의 Px4 스톰도 조금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의뢰인 아가씨. 뭐라 부르면 돼?
니다 보프너. 니다라 불러 주세요.
......
거래 번호 끝자리 9276 송금 기록의 송금처 성함은——
니다 보프너입니다.
니다 보프너...
내 돈을 떼먹고 도망칠 생각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