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x4Storm
MOD 2
여전히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
도시 밖으로 몇십km 나오자, 도로는 양쪽이 눈에 띄게 한적해져 지나는 차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졌다.
백그라운드 데이터에 따르면, 내 행동 궤적은 이 도로와 많이 겹쳐. 3시간 사이에 200여km를 이동했다면 차를 타고 사건 발생 지점으로 이동했단 뜻이겠지.
한편 내 통장에서 돈을 모조리 빼 간 그 니다 보프너 씨는――
Px4 스톰이 홧김에 경적을 세게 울렸다.
혼자서 날 제압할 능력이 전혀 없어 보였어!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날 고용해서 도시 밖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볼 수 있겠지.
그리고 200km를 가서 당신을 기습했다고요?
그렇게 멀리라면 기지에서 헬기를 타고 출동하더라도 제시간에 못 가겠네요.
그럴 가능성이 다분해.
하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현장을 조사해 보고서 생각하자고.
참, 오늘 지휘관님께 1일 외출 휴가를 받았어요. 운전 시간 3시간, 왕복하면 6시간...
그리고 현장 조사에 약 2시간 소비한다 치면, 나름 넉넉하네요.
현장에서 단서를 빨리 못 찾아내면 어떡하려고 그래?
혹시 모르니까 조사 시간은 좀 더 길게 잡자.
네?
인형이라 좋은 점이 뭐~게?
뭔데요...?
차멀미 없는 거! 꽉 잡아——
앗 안ㄷ꺄아아아아――
황혼 무렵.
지평선 끝자락에 계란 노른자 같은 석양을 향해, 낡아 빠진 사륜 차량이 도로를 달렸다.
조수석에 앉아 통신기로 문자를 보내는 중인 니다와, 운전석에서 고개를 흔들며 콧노래를 부르는 Px4 스톰을 태우고.
♪♪♪♪♪♪~~~~~~
...기분 좋은가 봐요?
퇴근하고도 돈을 버니 당연히 즐겁지~♪
딴지거든요?
알아, 지금 당신 기분 언짢은 거.
당신은 안 즐거워? 지금 바라던 대로 프라하에 "중요한 사람" 만나러 가고 있잖아?
즐겁긴요...
배급소의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즐거울 수 있겠어요?
니다가 가방에서 그 호밀빵을 꺼냈다.
그 애, 그렇게 어린데 비쩍 말라서는 이딴 것밖에 못 먹고, 폐품 주워서 하루하루 연명하고...
Px4 스톰의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갔다.
물론 그들에게 도시 밖이 훨씬 위험하긴 하죠, 만약 ELID라도 만났다간 그 자리서 죽은 목숨이니까요.
하지만 도시 안에서 살더라도 옷도 제대로 못 챙겨 입고 구호 물품으로만 간신히 사는 게, 과연 안전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당신은 그 애의 형편에 대신 괴롭고 무력감을 느낀다 이거지?
아니 그건...
...네, 조금. 조금은요.
어휴. 기근, 질병, 자연재해, 붕괴복사, 기타등등이 지금 어디에서나 시도때도 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 마스터... 그러니까 지휘관도 당장 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데 당신이라고 뭘 할 수 있겠어?
그래도 이해가 안 가요. 전쟁이 끝난지 10년도 더 됐는데, 이렇게 큰 도시도 다시 세우고 과학 기술도 잔뜩 발전했는데도 왜 여전히 밥 한 끼 제대로 못 챙겨 먹는 사람이 많죠?
원인이 뭐라 생각해?
...먹고 살 돈이 없어서?
왜 돈이 없을까?
음... 세계의 환경이 나빠져서 식료품 물가가 계속 상승해서?
그것도 이유 중 하나지.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들한테 수입이 없어서 구호품에나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럼 왜 수입이 없을까? 일자리가 없어서.
왜 일자리가 없을까? 저 봐, 도시에는 민수용 인형들이 아주 즐비하잖아. 청소, 물류, 접객, 가사, 정비...
그 말은... 인형들이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라고요?
빼앗았다? 하하하, 그건 아니지.
의뢰인 아가씨, 가정부 인형이나 돌보미 인형 본 적 있어?
제 부모님 집에 가정부 인형이 하나 있어요, 그게 왜요?
그야 예시를 들려고. 당신의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두 분 잘 보살필 돌보미가 필요해.
여기서 인선 A는 작업 능력 70~80점 사이로 안정적에,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하고,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군말 않고 똑 부러지게 처리해.
간호 지식이 필요하다면 몇 분만에 바로 터득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때리고 욕해도 얌전히 다 받아 주기까지.
게다가 A는 그냥 일시불로 종신계약을 맺을 수 있어. 밥 제때 주고 몸 관리 가끔 해 주기만 하면 월급도 휴일도 주든 말든 상관없고, 필요 없어지면 언제든지 해고해도 되지.
반면에 인선 B를 볼까? 작업 능력은 컨디션에 따라 -50에서 100까지 널뛰고, 달마다 월급 줘야지, 주5일제 지켜야지, 추가 근무 수당 계산해야지, 비싼 고용 보험도 들어야 해.
언제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어할 수 있고, 만약 해고한다면 위약금까지 물어야 하고.
아가씨라면 어느 쪽을 고를래?
그걸 누가 고민해요?
...그러니까, 일자리를 제공하는 인간들이 스스로 인형을 선택했단 말이군요.
이 의뢰처럼 말이야. 왜 돈이 궁한 인간 용병 안 찾고 구태여 아직 일하는 중이던 PMC의 인형한테 물어봤어?
사람 속은 모른다잖아요. 적어도 당신은 가다 말고 저를 차 밖으로 내팽개친다든가, 옷 벗으라고 총으로 위협하든가 하진 않을 거잖아요.
오호라, 그런 취향이시구나? 추가 요금 내고 면책 합의서만 잘 쓰면 나도 그렇게 해 줄 수――
아 진짜!
그러니까, 당신도 일부러 인간 용병 굶게 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지를 고른 거 아니겠냐고.
민수용 인형 잔뜩 부리는 부유층 인간들도 다 그런 생각이야.
......
이 세상엔 배부르다는 느낌을 모르는 애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아. 그리고 그들의 문제는 당신이 빵 하나 더 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지.
그래, 불쌍해. 하지만 그게 당신 잘못은 아니라고.
니다는 안색이 어두웠다.
...제 잘못이 있다면요?
무슨 말이야?
사람을 달래 주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상처만 되는 음식도 있어요.
그치, 그 호밀빵만 해도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동시에――
...이런, 저 차 역시 우리 따라오는 거 맞았네.
백미러에 한 쌍의 전조등이 깜빡였다. 방금 지나온 갈림길에서 나타나, 여태껏 멀찍이서 뒤를 밟는 검은 차량이었다.
니다도 그 차를 보자 표정이 돌변해 가슴팍의 보석 펜던트를 움켜쥐었다.
당신 뜯어말렸다던 사람인가 봐?
네... 아, 아니...
맞아 아니야?
그게... 사실 저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 아니에요... Px4 스톰 씨, 죄송해요...
뒤섞인 초록색과 갈색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임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태양빛에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도로.
G&K 마크가 부착된 지프가 지평선 너머에서 나타나 이 도로를 따라 달렸다.
내 신호 소실 지점까지 거의 다 왔으니까 주변 자세히 관찰해 줘.
이 도로에 무인 단속 카메라 한 대라도 있었으면 당신 면허 취소됐어요!
없으니까 안 걸렸지요~
――응?
Px4 스톰이 냅다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타부크는 찧은 이마를 감싸고 울먹였다.
으으윽 멀미는 안 해도 관성은 받는다고요!
저... 저는 멀미하는 거 가타여...
하하, 미안미안, 저쪽에 뭔가 보여서 급하게 세웠어.
가서 확인하자!
인형 셋은 차에서 내렸다.
발견한 것은 낡은 도로 위에 호선을 그리는 타이어 자국이었다.
급브레이크 자국...
당신이 남긴 걸까요?
내 신호 소실 지점에서 아주 가까우니, 가능성 높지.
사진 찍어서 기록해 두자.
Px4 스톰이 태블릿 카메라로 여러 각도서 촬영하고 화면에 표기했다.
고작 바퀴 자국뿐이어도 많은 걸 추측해낼 수 있단 말씀... 운전하던 속도와 방향, 차량 모델 등등까지 말이지.
추산한 데이터로 시뮬레이션 돌려 보면 당시의 상황도 재현할 수 있다니, 과학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다니까.
흔적 감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네요?
조금 아는 정도야.
보자... 앞 차량이 급정거해서 뒤따르던 차량은 긴급 회피...
흠, 이 뒷차량의 운전자는 실력이 영 모자라네. 이쪽 가드레일 긁어서 다 찌그러진 거 봐.
그런데 이 위치... 왜 앞차량은 계속 달리지 않았지? 급정거하면 당연히 충돌 위험이 있는데.
그 여자가 당신의 차에 타고 있었잖아요, 그녀가 무슨 짓을 한 것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정보가 너무 적어서 판단하기엔 아직 일러. 계속 조사해보자.
다시 한바탕 주위를 조사하던 도중, V-PM5가 도로 왼쪽의 가드레일을 가리켰다.
Px4 씨 이것 좀 보세요, 가드레일에 탄흔이 있어요! 그것도 아주 최근에 생긴 거예요!
흠? 각도로 봐선 뒷차가 앞차를 향해 쏘다 난 것 같네...
그런데 왜 앞차는 반격 안 했지? 내가 탄약이 부족했을 리는 없는데.
V-PM5는 탄흔의 사진을 여러 번 찍고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존재하는 건 전부 흔적을 남기는군요!
그러니까 말이야, 기억만 지운다고 무슨 소용이야? 내 돈 뺏은 사람 바본가?
죽은 사람조차 이야기를 남기건만. 읽을 수만 있다면 말이지만.
어느덧 날은 어두워져, 하늘 끝에 태양이 있었던 윤곽만 남았다.
가로수 사이로 "반딧불" 두 마리가 앞다퉈 질주했다.
거 참 우연이네, 나도 예전엔 그다지 깨끗한 사람 아니었는데.
그래서, 지금 쫓아오는 거 누군데?
빌어먹을 찰거머리 XX들!! 돈에 양심 팔아먹은 XXX들!!
부모님? 친척? 아님 약혼자?
후우... 이전 직장 동료요.
직장 동료? 당신이 중요한 사람 만나러 가려는 걸 뜯어말렸단 사람이?
200km 넘게 악착같이 쫓아오다니, 아주 가족 같은 회사였나 봐?
PX4 스톰이 기어를 바꿔 속력을 높이자, 뒤의 차도 따라서 가속했다.
조수석의 니다는 한 손으론 안전 손잡이를, 다른 손으론 가슴팍의 보석 펜던트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아 진짜 아주 숨쉬듯 딴지 거네!
놈들은 절 잡으러 온 거예요, 지켜 줄 수 있어요?
어디 보자아... 인간 한 명에 인형 둘이라.
인형 해치우기야 쉽지만 인간은 좀 어렵겠는걸, 내 무제한 발포 권한도 몇 시간 전에 만료됐으니.
총 쏠 줄 알아?
아뇨...
근데 총이 어딨어요? 당신 것 빌려주게요?
미안하지만 내 무기와 체크 카드는 절대 남한테 안 빌려주는 주의라서.
쯧... 육탄전으로도 당신이 저 인간 남성을 이길 확률은 5% 미만인가. 이거 좀 귀찮게 됐네.
그럼... 제가 놈들한테 붙잡힌다면, 부탁 하나 해도 돼요?
일단 말해봐, 운전수 일 말고 다른 건 상황 따라 판단해야 하니까.
니다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메모리 카드를 프라하의 "미시엘 프로바"란 기자에게 전해 주세요.
모두에게 배급소의 호밀빵을 먹으면 안 된다고 꼭 알려야만 해요.
응? 당신 기자였어? 그 호밀빵은 뭐가 문젠데?
저는 케레스 제빵 공장의 직원이었어요.
케레스, 현지 최대의 제빵업체 말이야?
네. 케레스는 도시의 모든 배급소로 전달되는 호밀빵의 생산을 맡고 있어요.
그런데 이윤을 위해서, 회사가 오래돼서 곰팡이까지 피거나 중금속이 함유돼 폐기했어야 할 밀까지 헐값에 수입해서 그걸로 빵을 만들었다고요!
배급받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목숨을 한 입씩 뜯어먹는 거예요!
증거는 있어?
Px4 스톰이 물으며 백미러를 다시 힐끗 보니, 상대는 여전히 끈질기게 따라오고 있었다.
제가 증인이에요!
아니 증인 말고 증거. 확실한 물증 있냐고.
제가 알아낸 거 전부 여기 이 메모리 카드에 들었어요!
하지만 놈들한테 잡히면 분명 몸수색을 할 텐데, 그랬다간 이걸 들키고 말 거예요...
니다가 보석 펜던트를 만지자 그 커다란 보석 장식이 열렸다. 속에 빈 공간이 있어, 거기엔 손톱만한 메모리 카드가 들어있었다.
원재료의 문제점을 알게 되고서 온갖 방법을 시도했지만 다 소용이 없었어요!
인터넷에 폭로해도 바로 삭제되고 차단당하고, 길거리에 나가 그 빵을 먹으면 안 된다고 말려도 다들 절 정신병자 취급하고...
내부고발 편지까지 써봤지만 바로 다음날 웬 건달 셋이 그 편지를 가지고 와서는 문을 막고 페인트를 뿌리고 죽은 쥐를 던지고...!
백미러에 비치는 저 검은 차량을 노려보며, 니다는 얼굴의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결국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여태까지 방구석에 숨어있었어요, 그동안 증거를 내놓으라며 사장한테 몇 번이고 협박도 받았고요.
이렇게 프라하로 가는 건?
계속 인터넷을 뒤지다 연락이 닿은 기자분이세요. 대신 보도해 주겠지만 자기가 증거물을 직접 보여야만 하니 가져와 달랬어요.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황량하잖아요? 혼자서는 도저히 못 가는데 때마침 배급소에서 당신을 만난 거예요. 아니었음 암시장이라도 가서 불법 인형이라도 알아볼까 했어요.
그 메모리 카드, 확인해봐도 될까?
여기요.
니다가 망설임 없이 메모리 카드를 건넸고, Px4 스톰은 받았지만 직접 읽어들이지는 않았다.
자아 그럼 여기서 문제. 먼 길을 절반가량 왔는데도 당신의 직장 동료들은 어딨는지 정확히 알고 쫓아왔어.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
몸에 추적기를 붙였다? 땡. 내가 진작에 스캔해 봤지만 아무것도 안 나왔거든.
그렇다면 뭘까? 당신이 연락했다는 그 "중요한 사람", 정말 기자 맞긴 해? 아니, 정말 "미시엘 프로바"라고 확언할 수 있어?
그 말에 니다도 깨달았는지 통신기를 꺼냈고, 기록을 뒤져보는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XX 저 사기꾼 XXX!
이제 됐어요! 놈들이 노리는 건 저니까 당신이 메모리 카드를 가지고 가세요, 이 호밀빵도 같이!
증거가 있는 한 저 빈대놈들은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으면서도 강인한 눈빛에, Px4 스톰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당신 오늘 아주 땡잡았네, 나를 만나서.
네?
유감스럽게도 프라하행은 중지야. 거기에 분명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Px4 스톰이 냅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안전벨트를 안 찼다면 니다는 바로 앞유리창을 깨로 날아갔을 것이다.
쫓아오던 차도 이런 건 예상 못했는지, 하마터면 부딪힐 뻔한 걸 간신히 방향을 꺾어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의뢰비도 받았으면 의뢰인의 안전은 무슨 수를 써서든 지킨다! 내가 누구냐, Px4 스톰이다!
Px4 스톰은 그대로 핸들을 빙빙 돌리다 적당한 샛길을 골라 급발진했다.
검은 차량도 황급히 방향을 돌려 뒤쫓았고, 챠량의 성능으로 조금씩 거리를 좁혀 갔다.
보프너! 차 세워! 안 세우면 쏜다!
어떡해어떡해어떡해――
당신 운전할 줄 알아?
도로 주행 시험 7번 떨어졌는데 괜찮아요?
...그럼 할 줄은 알겠네.
자리 바꿔! 페달 너무 세게 밟진 말고, 핸들 꽉 잡아!
두 사람은 얼른 자리를 바꾸고, Px4 스톰이 창문을 열며 총을 장전했다.
타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