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x4Storm
MOD 4
그리폰 기지.
회의실 스크린을 온통 장식한 것은 바로 메모리 카드에서 해석해낸 증거 자료였다.
하석에는 지휘관과 카리나, 타부크, V-PM5가 앉았고...
Px4 스톰은 레이저 지시기를 들고 물 흐르듯 자료를 설명해 나갔다.
자아, 지금 보시는 이건 케레스 제빵 공장이 25개 농장에서 원재료를 구입한 수입 내역이야.
그리고 이건 타니아스 농장의 올해 토질 검사 보고선데, 여기 붉게 표시한 항목 봐봐. 중금속 함유량이 안전 기준치 심각하게 초과했지?
이쪽은 헤브라엘 농장의 곡창 환경 검사 보고서. 작년에 비가 많이 온데다 곡창의 노후화 때문에 최소 6,000톤의 밀에 곰팡이가 피었더라고.
Px4 스톰은 거침없이 다음 자료 화면으로 넘어갔다.
여기 이건 케레스가 제공한 호밀빵 표본 검사 보고서. 수치 정상이고 지표도 완벽해서, 아무 문제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나와 있어.
하지만 이쪽을 보실까? 전혀 다른 시설에다 맡긴 호밀빵 성분 분석 보고서에서는 각종 영양소 함량이 걔네 보고서보다 한참 낮고, 무엇보다 기준치를 한참 초과한 아플라톡신과 중금속이 검출됐네?
아, 참고로 검사 의뢰한 사람은 자료 제공자 니다 보프너 씨.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라는마냥 툭 던지고 Px4 스톰은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다음은 케레스 법인이 서명한 납품 계약서. "3년간 시내 기초 배급소 14개소 전부에 케레스 제빵 공장의 호밀빵을 제공한다."
이쪽의 이건 올해 초 어느 자선단체가 슬럼가에서 시행한 건강 검진 결과. 4, 5, 그리고 15페이지 볼래? 청년 남성에게 암, 원인불명의 복통, 무기력증 발생 비율이 제일 높고, 여성, 노인, 아동 순으로 낮아지지?
젊은 남성의 식사량이 제일 많으니까 독소를 더 많이 섭취했기 때문임을 추측할 수 있지.
그말은 즉, 그들은 호밀빵 한 입마다 죽음에 한 걸음 가까워진단 거야.
......
......
회의실은 침묵에 잠겼다.
종합해서, 타부크와 V-PM4의 협조를 받아 작일 정오부터 Px4 스톰의 행동 궤적을 조사하여 얻어낸 결론은 다음과 같아.
전 케레스 제빵회사 직원 니다 보프나 씨는 08호 배급소에서 Px4 스톰과 조우, 개인 의뢰를 요청하였고, Px4 스톰은 이를 수락함. 목적지와 외출 목적은 현재 불명.
대형 스크린에 배급소 감시 녹화 영상 중 Px4 스톰이 호밀빵을 파란 차양모자를 쓴 니다에게 건네는 장면이 나왔다.
근무 시간 종료 후, Px4 스톰은 차량 한 대를 대여해 시내에서 물자 구입 후 보프너 씨와 함께 도시를 이탈.
화면에 당시 Px4 스톰이 잡화점에 남긴 영수증이 띄워졌다.
약 200km를 이동한 시점에서 케레스의 인원이 해당 차량을 추격해 왔고, 곧이어 무력 충돌이 발생.
마지막으로 이 지점에서 Px4 스톰은, 즉 작일의 나는, 어떤 이유에선지 현장을 벗어나 메모리 카드를 안전히 회수할 수 없다 판단하여, 메모리 카드를 부품 속에 숨겨 두고 풀밭에 은닉하였음.
스크린엔 그들 셋이서 현장을 조사하며 찍은 사진이 나타났다.
이건 내가 교통 단속 카메라에서 뽑은 화면. 여기 검은 양복 입고 운전하는 남성은 케레스의 보안팀 실장 크리스래.
그 뒷차량에는 다른 케레스 직원인데 아직 이름은 조회 못했어.
그리고 Px4 스톰이 대여한 차량은 파손된 이 인형이 운전해서 딴 데다 치웠고. 녀석 머리에 탄흔 보이지? 현재 이 차량은 도시 외곽의 어느 공터에 방치돼서 지금도 요금 쌓이고 있어.
차량 3대가 차례대로 촬영된 감시 영상 화면이 스크린에 흘렀다.
니다 보프너 씨의 신변은 아마 현재 크리스에게 구금, 내지는 자유가 제한된 상태라고 봐.
그리고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발견이 있었어.
손을 깍지 끼고 엄지로 턱을 받친 채인 지휘관은 계속하라 턱짓했다.
이건 시청의 민원 게시판에서 2주 전 삭제된 게시글인데, 시민들이 배급소의 호밀빵을 먹게 둬선 안 된다고 호소하는 내용이야. 검색 엔진에 미리보기가 남아있었어.
이건 어느 SNS에서 찾아낸 거. 1주일 전에 이 사람이 도시의 빈곤가에서 배급소 호밀빵 수령을 말리다 집단폭행으로 번질 뻔한 일의 목격담이야.
――참고로 이건 니다 보프너 씨가 SNS에 올린 셀카. 딱 봐도 젊고 활력 넘치는 사람이지?
이상으로, 보고를 마치겠어.
회의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지휘관은 잠시 사색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너는 이 니다 보프너 씨를 구출하러 갈 거니?
......
회의실 토론일 뿐이야, 정식으로 정하는 게 아니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내가 비록... 이 사람이랑 뭘 했길래 그랬는진 기억 못해. 지금의 나는 오늘 조사하면서 얼굴 처음 봤어.
그래도 내가 추측한 결과로는, 이 사람은 자기 목숨을 걸고 이렇게 많은 증거를 담은 메모리 카드를 가지고 이동하다, 나를 믿고 그걸 나한테 맡겼어.
이 사람은 도시의 식품 안전에 경종을 울렸고, 무엇보다 내 전재산을 가져갔어!
지휘관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하지만 마스터, 난 아직 그녀를 구하러 갈 수 없어.
옆에서 듣던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다 화들짝 놀랐다.
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
...아! 기지에 물자 새로 도착했는데 보러 가야겠어요!
V-PM5, 우리 커피 마시러 갈까요?
네?! 왜요, 아니 잠깐――
회의실에는 지휘관과 Px4 스톰만 남았다.
마스터, 마스터가 결정하기 전에 내가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전, 나한텐 아주 예쁜 눈을 가진 친구가 한 명 있었어.
올곧고 착해 빠진 애라서,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들고 말았지.
결국 걔는 이따만한 금속 쓰레기로 압축당해 바다에 버려졌어.
세월에 풍화된 기억을 되짚는 Px4 스톰은 담담한 말투로 어깨를 으쓱했다.
착하게 살면 대가가 따라붙어. 만약――
그러니까, 그리폰의 안전이 걱정된단 말이구나?
케레스는 도시 전체의 배급소에 호밀빵을 제공하는 계약을 따낼 만큼 큰 기업이야. 그게 어떤 의미인진 마스터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나는 어느 날 바다에 뛰어들어 마스터 통조림을 따고 싶지 않아.
대신 저 니다 보프너 씨 통조림을 따게 될지도 모르는데?
......
우리 그리폰의 역량으로, 민간 빵공장에서 사람 하나 구출하는 건 마스터가 지금 커피 한 잔 모금 마시는 것만큼 쉬운 일이겠지.
하지만 그러고 나면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그리폰이 끼어들어선 안 되는 일에 끼어드는 것 아닐까?
나 개인적으로는 물론 그 사람을 구하고 싶지. 하지만 그리폰의 이익이 내 사심보다 훨씬 우선 순위야.
그러니까 어제 내가 끝까지 마스터한테 구조 요청이나 발포 권한을 요청하지 않은 거겠지.
Px4 스톰, 나는 그 아가씨의 용기를 대단히 존경한다.
그 말 아직 기억해? "자유로의 길을 여는 자가..."
"가시덩굴에 묶이도록 두고보지 마라."
그게 우리가 총을 드는 이유야.
마스터...
놈들이 단지 네 기억만 삭제하고 도시에 버리고 간 건, 놈들도 우릴 건드리지 못한단 뜻이야.
나도 그 경종을 울린 사람을 돕고 싶어. 그리고 마침 그런 일은 내 역량 내의 일이지.
그럼 말이야, 마스터, 나한테 계획이 있어.
......
칠흑같은 방. 음식도, 물도, 빛도, 소리도 없었다.
그런 방에서 니다는 양팔로 무릎을 감싸 안은 채,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Px4 스톰 씨는 어떻게 됐을까...
정말로... 설마...
쉬어버린 목소리로 희미하게 단어를 읊어봐도 방은 여전히 고요했다.
......누가 나 좀 구해 줘...
엄마... 아ㅃ――
예고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려, 갑작스런 빛에 니다는 눈을 질끈 감고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니다 보프너 씨 맞아?
Px... 콜록콜록...
목 아프면 말 말고, 눈도 뜨지 마, 실명할라!
당신...
괜찮아 괜찮아, 당신 이제 안전해.
아찔함 속에서도 니다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그녀는 들것에 실려, 누군가가 몸에 두꺼운 타올도 덮어 주었다.
또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케레스", "호밀빵"... 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그녀는 그걸 알아들을 기운이 없었고,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
"깨끗한 식량, 깨끗한 물". 오늘 아침 일찍부터 도시 빈민가의 시민들이 식품 안전을 호소하는 시위에 나섰습니다.
케레스 제빵회사가 안전 기준치의 60배를 초과한 중금속이 함유된 독성 밀을 사용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자선 구호 단체는 이 치명적인 식품 안전 문제에 경각심을 세우고, 불량 업체를 철저히 단속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더불어 케레스 사 보안팀 실장도 이를 폭로하려 했던 전 직원의 자유권 침해 및 납치 혐의로 현지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
니다는 왼손에는 수액 주사를 맞으며, 오른손으로 포크를 집은 채로 TV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뉴스가 다 끝난 다음에야, 그녀는 흡족스런 얼굴로 사과 한 조각을 찍었다.
병문안 와 줘서 고마워요. 의사 선생님이 별 이상 없다셨으니까 걱정 마요.
기억은 없지만 보프너 씨가 친절한 사람인 건 알겠네.
흠... 근데, 실물 보니까 인터넷의 사진보다 좀 통통하다?
콰직. 니다의 손의 플라스틱 포크가 부러졌다.
당신 무사한 거 확인했으니까 이제 내가 여기에 온 가장 중요한 일을 말해보자.
내 돈 돌려 줘!
엑? 그러니까... 의뢰 보수 달라고요?
당신도 기억 상실이야? 송금 기록, 그저께 밤. 당장 확인해 봐.
Px4 스톰이 송금 기록을 꺼내 냅다 얼굴에 들이대니, 니다는 얼떨떨해 하는 얼굴로 자신의 전자 지갑을 확인했다.
뭐야 대체... 당신이 저한테 송금했다뇨, 아니 제가 크리스한테 송금했지――
어라?! 통장에 무슨 돈이 이렇게 많아?! 뭐야 정말 당신이 보낸 거 맞네요...
시간은... 당신이 쓰러지기 전인가요?
니다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Px4 스톰은 히죽 웃었다.
이게 내가 당신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단서였다고.
...기억은 잃어도 통장 잔고만큼은 절대 안 잊는다?
아무튼, 이걸로 거래 끝!
다음에 또 비슷한 의뢰 생기면 연락하라고, VIP한텐 요금 2% 깎아 줄 테니까!
이딴 경험 두번 다시는 싫거든요!
......
그러니까, "인형 재산 강탈"은 없었고, 네가 단서를 남기기 위해 직접 전 재산을 보프너 씨에게 입금했던 거야?
나는 내가 잘 알아. 깨어나고 보니 기억은 없는데 돈이 몽땅 사라졌으면 땅을 파서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 들지.
자신감은 좋다만, 그 "Px4 스톰"이? 한 푼도 되찾지 못하면 어떡하려고 그랬어?
예전 같았음 절대 못 이랬지.
예전?
아주, 아주 예전.
...내가 그리폰 오기 전에는, 돈 말곤 기댈 데가 없었거든.
그럼 지금은?
지금은? 그야 기억을 지우던 순간 난 분명 그리폰에 돌아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믿었겠지 뭐.
나에겐 마스터와 모두가 있으니까. 황금이나 보석보다 의지가 되는 존재들 말이야.
네가 갑자기 그런 감동적인 말을...
나도, 너희와 함께라서 정말 영광이라 생각해.
응 응, 감사 인사는 다 했으니까 마스터~
우리 다다음 달 보너스 계획에 관해서 토론을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