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2
MOD 3
그리폰 기지, 지휘관의 사무실.
......
지휘관은 한참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탁상을 두드리다,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우선 정리를 좀 해보자...
너와 P90은 59식에게 물어서, 걔가 어젯밤 FAL의 숙소를 출입한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보안 카메라 영상을 검사했을 때 해당 장면은 없었기 때문에, 59식의 증언을 토대로 보다 정확한 범행 시간을 추정했다, 이 말이지?
네.
나중에 알아낸 바로, 보안 카메라를 조작한 건 다름아닌 저였어요.
안전관리부 멤버로서 제 인증키는 지휘관님과 헬리안 씨 바로 아래 등급이기에 추적이 불가능하죠.
데이터 복구도 불가능해요, 애초에 프로그램이 수정된 후로 그날 밤 보안 데이터는 기지 DB에 들어가지 않았기도 하고요.
EM-2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보안 영상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그 전 날 오후 5시부터 사건 발견 당일 저와 P90이 확인하러 간 오전 9시까지. 그 사이에 아무도 이 일을 눈치채지 못했어요.
시간대가 너무 넓어서 범행 시각을 확정할 수도 없었고, 범인이 현장 처리를... 그러니까, 제가 엄청 빈틈없이 처리해서, 저희는 어떤 흔적도 찾아낼 수 없었어요.
하지만 59식의 도움으로 일단은 범행 시각이 자정 이후임은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지의 인형들은 휴면 시 모두 기지의 주동력 시스템에 연결됩니다.
그래서 그 시간대에 휴면에 들지 않은 인형을 확인하면 용의자 범위를 더욱 좁힐 수 있었어요.
왜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지?
범행 시각을 확실하게 알지 않으면 조사에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후 5시부터 각 시간대마다 수많은 인형들이 외출 중이었어요.
제가 만약 처음부터 자정 이후에 활동한 인형을 알아내더라도, 나중에 범행 시각이 자정 이전으로 밝혀지면 헛수고가 되잖아요?
그건 그렇군.
물론... 어디까지나 접근법 중 하나지만요.
일이 심상찮음을 제가 확실히 인지한 시점은 조사 도중 제 이름이 그 명단에 나타난 걸 봤을 때입니다.
저는 그날 밤 분명히, 아주 이른 시각에 휴면을 시작한 걸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
사건 발생 6시간 후, EM-2의 숙소.
............
마인드맵을 3차례나 자가진단해봤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다.
한 시간...
다만, 그녀의 기록상 자신의 휴면 도중 1시간가량의 공백이 있었다.
그녀에겐 이 1시간 동안의 기억이 전혀 없어서, 이때 자신이 어디서 무얼 했는지 전혀 몰랐다.
마인드맵에 문제가 없다면... 누군가 내 휴면 기록을 수정한 걸까?
하지만 누가, 어째서?
EM-2는 심장이 격하게 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EM-2는 자신의 무기 서랍을 열어, 안에서 자신의 무기를 전부 꺼냈다.
돌격소총 "EM-2" 2정, 권총 3정, 대검, 수류탄... 그리고 다양한 탄두의 총알.
이것들을 탁상에 한 줄로 주욱 늘어놓고, 조마조마해 하며 검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을 믿었다. 자신이 무얼 했고 무얼 안 했는지 아주 잘 알았으니까.
...하지만, 만약 사실 모르고 있었다면?
......!!
덜컥.
총알이 두 발 모자랐다.
쿵!
여어 EM-2! 뭘 빈둥거리고 있냐!
얼렁 같이 조사하러... 응? 너 지금 뭐해?
예고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P90은 허둥지둥 몸으로 탁상을 가리는 EM-2를 목격했다.
아, 아뇨, 저는 지금......
입은 열었지만 말문이 막혔다.
뭐라 말해야 할까? P90에게, 지금 자기 자신이 범인으로 의심된다 말할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저 P90은 물론 그녀 자신도 그딴 헛소리를 믿을 리가 없었다.
물건 다 꺼내 놓고 뭐하는 거야?
누구랑 싸우러 가? 아직 범인 못 찾았잖아.
P90에게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로, EM-2의 왼손이 권총을 단단히 쥐었다.
총알이 장전된 권총을.
EM-2의 호흡이 가빠졌다.
들키면 의심받을까? 만약 그녀가 지휘관에게 신고한다면...
그 순간, 동요하던 EM-2의 마인드맵 속에서 P90에게 방아쇠를 당겨 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아났다.
?!
EM-2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섬뜩한 오한이 들었다. 왜 이런 생각이 든 거지?
우왓!? 너 왜 그래? 깜짝 놀랐잖아!
저...
입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자백하려던 말이 목에 걸려, EM-2는 눈이 번쩍 뜨여졌다.
...일상 무기 실셈 중이었어요.
어...
역시 이상함을 느꼈는지 P90도 장난스런 태도를 접었다.
너 정보 센터에 명단 뽑으러 갔었지?
결과 나왔어?
...여기요.
EM-2의 눈동자가 반짝하며 P90에게 자료를 전송했다.
자신의 이름을 뺀 그 명단을 건네 주면서도, 그녀는 무표정이었다.
......
P90의 눈동자도 반짝이며 명단을 받아, 빠르게 열람했다.
그럼 난 다시 지휘관한테 보고하러 갈게. 넌 좀 쉬고 있을래?
...응.
EM-2의 상태가 이상하니, P90도 더 캐묻지는 않고 눈치껏 물러났다.
P90이 떠난 뒤, EM-2는 탁상에 늘어놓은 무기들, 그리고 거울을 바라봤다.
깨끗한 거울에는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그 냉담하게 굳은 얼굴이건만, 어째선지 틈틈이 입꼬리가 씰룩여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차암 좋겠네...
먹고 사는 걱정 없고, 서로 신뢰하는 동료도 있고.
대가도 필요 없고, 걱정할 것도 없이, 그저 여기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남들이 꿈도 못 꿀 모든 걸 누릴 수 있다니...
58번 다시 태어나도 손에 넣지 못했던 것들을 말이야!
돌연 그녀의 것이 아닌 흉악함이 얼굴에 나타났다.
——!!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고, EM-2의 표정은 흉악함에서 경악으로 변했다.
이렇게까지 됐으니 그녀도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방금 그 소름끼치고 잔인한 생각은 애초에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당신... 누군진 몰라도, 제 소체에 침입했다고 멋대로 할 수 있다 생각 말아요!
당신이 또 제 동료를 해치는 짓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어요!
——침입?
얼굴이 다시 분노로 흉악한 표정으로 변했다.
이건 내 몸이야! 원래부터! 내가 진짜 주인이라고!
불현듯 화가 치밀어 올라, 그녀는 움켜쥔 권총을 거울에 내던졌다.
거미줄처럼 퍼진 거울의 균열은 EM-2의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 불규칙한 파편들 뒤로 표정을 가려버렸다.
네가 괜히 신경쓰지만 않았어도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는데...
조용히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자연스레 사라지려 했는데!
FAL...
결국 진실을 깨달은 EM-2는 분통스러웠지만, 이내 그보다 더 거대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당신이 할 일을 마칠 거라고요? 그리폰의 동료들을 더 해치려는 건가요!?
절대 안 돼요! 절대 그렇게 두지 않아요!
마인드맵을 자가진단할 수 없었다.
방금 전 P90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한 글자도 입 밖으로 소리내지 못할 만큼, 소체의 지배권도 상대가 우위를 점했다.
이대로 가다간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을 터.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치열한 쟁탈전 도중, EM-2의 몸이 갑자기 뒤틀리며 뒤로 돌아 탁상으로 뛰어들었다.
뭐야!? 뭘 하려고?!
우위를 점했건만 몸이 멋대로 움직이자, 잔인한 얼굴의 "EM-2"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제가 당신을 이기지 못하는지는 몰라도...
이 몸은 제 거예요!
덥석!
"몸"을 놓고 벌이는 쟁탈전에서 열세에 놓인 EM-2는 큰 각오로 어마어마한 정신력을 발휘해...
탁상에 놓인 수류탄을 쥐었다.
그리고 소체를 차지한 이 정체불명의 의식이 반응하기 전에, EM-2는 오른손을 움직여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그녀의 것이 아닌 표정도 식겁하며 곧장 수류탄을 멀리 던져버리려 했지만, EM-2는 남은 힘을 다해 그걸 단단히 움켜쥐었다.
이 미친――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