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41
MOD 1
쿠르릉...
둔탁한 폭음의 메아리가 땅 깊숙이까지 울려 퍼졌다.
네?! 적을 모조리 처치했다고요?!
아니 진짜 하나도 안 남기고요? 그, 그럼 전 아무 공도 못 세운 거잖아요!
원래부터 이렇게 하기로 했잖아...
야비해요! 단순해서 속이기 쉬운 건 알았지만 설마 제 공로까지 빼앗아 갈 만큼 야비할 줄은 몰랐어요!
저 이제 지휘관님 얼굴 어떻게 봐요!?
지휘관님 돌아오셨을 때 영예롭게 맞이할 첫 인형이 되려고 했는데!
뭐 임마?!
MP41, 돌아오세요. 철수할 시간입니다.
크으으...
분해서 입술을 잘근거리며, MP41은 전방의 미탐색 구역을 바라봤다.
패러데우스의 소대 하나를 격파한 것 외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일이 이런 식으로 끝나는 건 계획에 없었는데.
경솔한 짓 할 생각도 마, 이번 임무는 가뜩이나 정보가 적어서 놈들의 세력 범위에 대해 아는 것도 얼마 없다고.
그래서 우리가 여기 온 거잖아요!
명령입니다 MP41, 즉시 철수하세요.
카라비너 선배...
우리가 무찌른 패러데우스 소대 말예요... 승산 없는 거 뻔히 알면서 왜 끝까지 저항했을까요?
도망칠 기회도 몇 번이나 있었는데도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놈들은 분명히 여기 있는 뭔가 중요한 걸 지키려고 한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200m도 안 되는 거리에 버려진 오두막이 하나 있어요.
놈들의 동선을 예측해봤을 때, 만약 철수하거나 누군가를 엄호해야 한다면 반드시 그곳을 지나가야만 해요.
분명히 거기에 뭔가 있는 거예요!
열변을 토했지만, 통신으로도 Kar98k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이미 마음을 먹었군요.
미안해요 선배. 이건 제 거예요, 제 거라고요!
그리고 달려나가는 MP41은 미소가 절로 나왔다. 벌써부터 기지로 돌아온 지휘관이 기뻐하며 자신을 표창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졌다.
바짝 경계하면서, MP41은 조심스럽게 폐가에 발을 들였다.
오두막은 본디 삼림 관리원을 위한 휴게소였는 듯, 간단한 생활용품의 잔해가 보였다.
하지만 그밖에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엔 그저 여러 번의 전쟁과 긴 세월의 흔적뿐이었다.
당장에라도 펑펑 울 것 같은 얼굴로 오두막을 더 뒤졌지만, 어디에도 패러데우스의 기밀 정보 비스무리한 것도차 없었다.
......
말도 안 돼.
반경 4km 내에 유일한 건물인데?
설마 지하인가? 그럼 어디로 들어갈 데가...
마인드맵이 초고속으로 회전하던 그때, 무너진 벽의 모서리 사이에서 무언가가 손전등의 빛을 반사했다.
MP41이 냉큼 가서 그걸 쑥 뽑아보니 오두막의 상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끔한 하드 디스크였다. 겉에 쓰인 글자는...
"캐서린068".
...캐서린?
이름 한번 완전 촌스럽네, 패러데우스가 쓰는 코드네임이 분명해.
손으로 하드 디스크의 무게를 가늠하던 MP41이 대쯤 씨익 웃었다.
뭐라도 보고할 게 생겼으니 조아쓰!
냄새가 나... 패러데우스의 내부 기밀이 들어있는 냄새가 난다구...
내가 지휘관님에게 표창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다 당신에게 달렸어요, "캐서린"!
그때, 긴급 통신 채널이 울렸다.
아 카라비너 선배 마침 잘됐네요 좋은 소식이에요 제가 뭘 찾았냐면요——
당장 철수하세요 MP41!
엥,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패러데우스의 지원군이 도착해 지금 이 구역을 공습 중입니다!
......
부우웅——
하늘로부터 죽음의 비명이 내려왔다.
비행기가 창밖을 스쳐지나갈 때마다 그림자를 드리웠고, MP41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콰아앙!!
......
그리폰 기지.
MP41은 조금 흐린 눈빛으로 수복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
일어났나요?
선배...?
지근거리 폭발에 소체가 파괴됐지만 다행히도 마인드맵 코어는 무사했어요.
아하...
허망한 표정으로 옆에 놓인 자신의 장비를 주워 들던 MP41가 문득 떠오른 것에 고개를 홱 돌렸다.
여기 하드 디스크 있지 않았나요?!
기술부서가 이미 검사했답니다.
결과는요? 저 최고로 호화로운 시상식에 설 수 있는 거죠? 그쵸!?
......
Kar98k는 담담히 가방에서 하드 디스크를 꺼내, MP41에게 건넸다.
"캐서린"이라는 이름의 인형의 마인드맵 백업뿐이었어요.
기술부서에서 대략적으로 확인했는데, 패러데우스와 관련된 정보는 없다더군요.
네...? 그냥... 그냥 평범한 인형의 마인드맵 백업...?
네. 시간 될 때 거기다 다시 돌려놓으세요, 원주인이 찾으러 올 수도 있으니.
......
Kar98k는 잔뜩 풀이 죽은 MP41을 토닥여 주고는 수복실에서 나갔다.
돌아가는 길에서도 MP41은 여전히 자신의 판단 미스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상해... 딱 봐도 엄청나게 중요한 장소였는데...
튀어나온 게 아무 관련도 없는 인형일 리가 없다고...
손으로 하드 디스크의 무게를 가늠하다, MP41은 문득 이전에 그리폰 익명 게시판에서 한동안 시끄러웠던 글이 떠올랐다.
"패러데우스는 얼굴을 바꿀 수 있대!", "네가 모르는 사이에 가까운 사람을 바꿔칠 수도 있다더라", "MDR 사실 패러데우스의 앞잡이 아닐까", "XX ㄴㄴ해 카이바르가 더 패첩 같음" ...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발걸음이 멈췄다.
맞아... 패러데우스가 인간으로 변장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다면, 실수하지 않는 한 절대 들키지 않을 거야.
그 말은 즉...!
MP41이 눈을 반짝이며 하드 디스크를 높이 들었다.
이 "캐서린"은 패러데우스의 중요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
그리고 그걸 입증할 정보를 찾아낸다면 엄청난 공을 세우는 거야!
그리고 흥분을 주체 못하면서 곧장 하드 디스크를 소체에 연결했다.
잠시 후, MP41의 마인드맵 공간.
아니 무슨 보안 등급이 이따구로 높아?!
평범한 인형한테 이렇게 높은 수준의 방화벽은 필요 없을 텐데?
역시 수상해...
보안 키 해독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MP41은 누군가가 그녀의 마인드맵 공간에 쳐들어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네가 이 소체의 주인이야?
흐기약!? 누구세요?!
화들짝 놀라며 난데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지만, 지금 마인드맵 공간에는 분명 MP41 혼자일 터였다.
난 캐서린. 네가 방금 인스톨한 백업의 주인이지.
인스톨? 전 그냥 읽어들이기만 했는데요? 게다가 아직 보안 키 해독도 못 했는데...?
아, 그거 가짜야. 네가 그거에 정신 팔린 동안 백그라운드에서 몰래 인스톨했어.
당신 그냥 랜섬웨어잖아요!
숙녀의 마인드맵 백업을 랜섬웨어라니, 무례하네.
네에 백신 가동.
소용없어, 이미 시스템도 나를 네 마인드맵 데이터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거든.
말도 안 돼!
마침 우리 소체 모델도 똑같더라? 이런 인연도 다 있네~
어? 당신도 생전에 이 모델 썼어요?
이보셔, 난 백업이라서 내 본체가 죽었는진 아직 모르거든?
그럼 어쩌다 백업을 그런 외딴 데다 뒀어요?
몰라, 이건 내 수많은 백업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아서.
지금 표시되는 시간으로 보아하니, 내 마지막 기억으로부터 몇 달이나 지났구나...
버려졌나 봐요?
풉,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럴 리는 없지.
아아 하긴 나에 대해 아는 게 없겠구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친구 매기와 함께 금융 시장을 아주 엉망진창으로 헤집고 다닌 거물이란 말씀.
그걸 자랑이라고 해요?
......
이해 못 해도 알아는 두라고.
값만 잘 치뤄 준다면, 이 캐서린이 어떤 소원이들 이뤄 줄 수 있어.
와아 바로 사기치네, 잠깐만 그대로 기다리세요 전문가 불러다 지워버리게.
레벨 2 플랫폼에서 로그아웃하려 하자, 갑자기 어디선가 솟아난 손이 그녀를 제지했다.
그 "지휘관님"한테 잔뜩 칭찬받고 싶은데, 기회가 영 없었나 봐?
......!
존경하는 "카라비너 선배"한테도 멋진 모습을 보여서, 어엿한 엘리트 전술인형이라고 인정받고 싶구...
......
객인인 내가 보기엔 말이야, 넌 이미 모든 조건을 다 갖췄어. 똑똑하고, 유연하고, 끈기 있고, 기회도 잘 잡는...
생각보다 보는 눈이 있네요!
그런 너에게 지금 부족한 건 딱 하나.
바로, 타이밍.
...당신, 대체 뭐하는 사람이에요?
나?
기다렸다는 듯 한 줄기 빛이 켜졌다.
폭스 시스터후드의 공동 창립자.
바르샤바 금융 지주 회사의 이사회 구성원.
잉겔스 그룹의 CEO.
북방연방대학 사회학과 학술 위원.
동시에 저명한 사회공학자!
캐서린 폰지!
한 장 씩 한 장 씩, 명함들이 마술쇼처럼 화려하게 날아와 자신의 손에 꽂히는 걸 MP41은 입이 떡 벌어진 채로 바라봤다.
그리고 마지막 명함까지 다 받자, MP41은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선생님, 제게 가르침을 주십쇼!
네 소원을 이뤄 줄 테니, 나랑 거래할래?
얼맙니까!
재능 소질 있고, 나름 같은 소체 모델인 인연에 이번이 첫 거래니까, 특별 서비스로 많이 깎아 줄게.
나한테 이 소체의 사용 권한을 개방해 주기만 하면 돼.
넹...? 그거 제 소체를 뺏겠단 말 아니예요?
무슨 소릴, 그냥 사용권을 공유하자는 거지. 싫으면 언제든지 권한 회수해도 돼.
MP41은 이 계약서처럼 구현된 프로토콜을 의심 어린 눈초리로 읽어봤다.
첫 몇 장은 확실히 함정 같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언제든지 중지할 수 있는 소체 사용 권한 공유 프로토콜이었다.
이러면... 당신에겐 무슨 이득인데요?
솔직하게 말할게. 나에겐 "매기"라는 아주 충성스런 부하 직원이 있어.
네 소원을 들어주고 나면, 난 매기를 찾아서 여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볼 거야. 내 본체가 아직 멀쩡하다면 그냥 그쪽으로 동기화할 거고.
내가 본체가 되어야 한다면, 매기가 가져오는 소체에 들어가면 그만이지.
어느 쪽이든 당신은 제 소체에서 떠나는 거 맞죠?
맞아. 솔직히 나 이 모델 이제 지긋지긋해, 새것으로 바꾸려 마음먹은 지도 꽤 됐어.
MP41은 집중해서 프로토콜을 찬찬히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려던 찰나...
싫음 관둬. 하지만 명심해, 기회는 한 순간이야.
캐서린이 "계약서"를 도로 가져가려고 하자, MP41이 꽉 잡고 놓지 않았다.
동의! 동의합니다!
그리고 급한 마음에 그만 프로토콜을 수락하고 말았다.
......
캐서린은 자신의 것은 아니지만 매우 익숙한 소체를 움직여 본 후, 씨익 미소지었다.
캐서린 부활! 캐서린 부활! 캐서린 부활!
아직 제 소원을 어떻게 이뤄 주실 건지 말 안 했는데요?
보채지 마, 도우미부터 불러야 하니까.
캐서린은 대충 대꾸하면서 매기에게 통신을 걸었다.
없는 번호.
또 없는 번호.
또 또 없는 번호.
그녀가 기억하는 매기의 연락처가 모조리 사라졌다.
이 녀석 설마 돈 들고 튀었나...?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파트너에게 연락했다.
퀸비?
어...? 캐서린? 살아있었어요?!
놀랐지!
지금 어디야? 매기는 어딨고?
매기? 제가 어떻게 알아요, 둘이 그 열차 탄 뒤로 연락이 뚝 끊겼는데!
여기저기 수소문했더니 무슨 도적단에, 반군에, 웬 하얀 녀석까지 열차에서 난리를 피웠다던데요?
그래서 저도 어쩔 수 없이 손 털었죠 뭐.
열차? 백업 이후의 일인가 보네...
또 뭐 아는 건? 매기 어딨는지 알아?
모른다니까요? 아 근데 살아는 있을 거예요, 그 열차 사건 후에 매기가 우리의 거래 기록을 모조리 지웠거든요.
......
너 지금 어디야? 일단 합류하자.
캐서린, 저는 이제 평범하고 안전한 직장을 찾았답니다. 9 to 5, 고정 수입인 직장을요.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위험한 생활은 이제 사양이에요!
뭐어!? 이제와서 손 씻겠다는 거야?!
여태까지야 어쩔 수 없어서였고, 전 그냥 착한 요정으로 살고 싶어요. 잘 가요 캐서린, 또 보지 말아요.
통신이 뚝 끊겼다.
꽤 충격이 심했는지, 캐서린은 멍하니 통신기를 쥔 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것도 잠깐, 통신기가 울리기가 무섭게 캐서린이 홱 받았다.
역시 생각 바꿀 줄——
MP41, 저예요. 그 마인드맵 백업이 든 하드 디스크는 제자리에 돌려놨나요?
어...
목소리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캐서린은 MP41의 말투를 적당히 흉내냈다.
네 선배, 잘 돌려놨어요.
좋아요. 그럼 서둘러 돌아오세요, 밤에 임무가 있어요.
넵.
또 한 번 통신이 뚝 끊겼다.
캐서린은 난생 처음으로 세상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딘가의 광활한 황야에 내던져진 것처럼, 알아낸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황야에도 길은 나 있으니까.
잠시 후, 그리폰 기지.
"MP41"은 안내받은 대로 지정된 집합 장소에 도착했다.
말끔한 건물 내부로 들어선 그녀는 스쳐지나가는 많은 인형들을 곁눈질했다.
G&K...? 규모 꽤 된다는 그 안전계약사?
이거 운이 좋은걸, 여기서 적당히 쓸 만한 소체를 하나 얻을 수도 있겠어.
하지만 그런 다음엔? 퀸비는 손 씻었고, 매기는 사라졌는데, 나 혼자 뭘 어떻게...
캐서린은 못내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마인드맵 공간에서는 MP41이 지치지도 않고 신이 나서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선생님은 진짜 행운의 여신님이시네요! 오자마자 이렇게나 막중한 임무를 받다니!
이날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몰라요!
선생님선생님, 이번 임무에서 큰 공을 세울 수 있게 꼭 좀 도와주세요!
...그래, 나만 믿어.
크으으 당장 뛰쳐나가고 싶어서 근질근질해요!
제가 몇 년 동안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알아요? 재능이 있으면 뭐해요, 지휘관님을 위해 활약하지도 못하는데!
......
흥분해서 마인드맵 안에서 방방 뛰는 MP41와는 정반대로, 캐서린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공허한 눈빛으로 지휘실의 문 앞에 섰다.
어... 선생님? 이건 우리가 막중한 임무를 받았어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고, 침착함을 어필하는 건가요?
...응, 똑똑하네.
대충 맞장구 치며, 문 손잡이를 향해 손을 든 그 순간...
문이 먼저 열렸다. 그리고 인형이 나왔다.
은은한 술의 향기를 풍기며.
응? MP41?
시스템 자동 인식상 이 인형은 "콜트 워커"였다.
......
어서 들어가 봐, 대장님이 찾으신다.
인형은 털털한 미소와 함께 큰 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지나간 자리에는 여전히 그녀가 남긴 술의 향기가 느껴졌다.
......
캐서린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저 사람은 분명...
...매기?
매기 맞지?!
너가 왜 여깄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이 찌릿찌릿했다. 당장 저 익숙한 뒷모습을 쫓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누군가가 팔뚝을 잡았다.
문 앞에서 뭐해요? 어서 들어오세요.
아, 앗, 그게!
미처 설명하지 못하고, 캐서린은 그대로 Kar98k의 손에 지휘실 안으로 끌려들어 갔다.
저 더없이 익숙한 뒷모습이 닫히는 문 너머로 사라지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