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5
MOD 3
MP5는 질끈 감았던 눈을 살짝 떠 보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방금까지만 해도 청각 모듈이 마비될 것만 같던 폭음이 거짓말같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반신반의하며 눈을 똑바로 뜨니, 화가 단단히 난 얼굴이 코앞에서 MP5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바보 꼬맹이가 진짜 귀먹기라고 했나! P99가 뛰라 했잖아!
어어...? 왜 XM8이 여기에...
...잠깐만, 얼굴이 너무 가까워. 좀만 떨어져...
상황 파악 못하는 MP5에게 XM8이 꿀밤을 먹이려던 찰나, P99이 불쑥 끼어들어 손을 받아냈다.
깼니?
정말 운이 좋았어. 후속 제대의 좌표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설마 공수로 날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니까.
그래, 그리고 오자마자 이 바보 꼬맹이가 꼼짝도 않고 총알받이를 자처하는 꼴을 봤지.
아... 저기... 적은 다 물리쳤어?
응, 내가 죄다 체크메이트했어.
그랬구나... 역시 XM8이야. 역시 실전 경험이 많으면 강하구나...
헤헤... 그런데 난 다리나 잃고...
배시시 웃는 MP5였지만, 의료진의 들것에 실려가는 자신의 하반신을 보자 다시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부님이었다면――
아 진짜, 너 언제까지 톰슨 타령만 할래?
언제나처럼, XM8은 MP5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MP5는 언제나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선 우울함이 가시지 않았다.
사부님이었다면... 다리를 잃거나 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 톰슨이라면 다리 한 짝 안 잃었겠지. 그럴 만한 짓을 안 하니까.
그게 그거잖아...
옆에서 듣고 있던 P99는 다시 XM8의 손날을 막았다.
그러니까 XM8의 말은... 톰슨 씨라면 스스로를 이런 곤경에 빠뜨리지 않았을 거란 뜻이야.
사부님은 멋지고 강하니까!
사부님처럼 강한 인형이라면 당연히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지... 난 아직 수련이 부족한 거야...
그럼 P99가 뛰라 했을 때 왜 가만히 맞고만 있었어?
톰슨보다 훨씬 약한 걸 알면서 왜 그랬는데?
XM8, 너무 직설적이잖아...
P99의 지적에도 XM8은 아랑곳 않고 말을 계속했다.
약하고 겁도 많으면서 왜 무리했냐고!
MP5는 눈길을 피하며 입을 삐죽였다.
그건... 그게 그러니까...
도망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라도 강해지지 않을까 해서...
어휴 이 바보 꼬맹아...
전장에서 가만히 서 있는다고 무슨 정신이 강해져...
하, 하지만 사부님은 도망치지 않는걸!
그러니까 톰슨 씨는 톰슨 씨고 MP5는 MP5라니까...
아, P99도 같은 말만 하네.
아얏!
딱!
드디어 XM8이 손가락으로 MP5의 이마를 튕겼다.
톰슨이 도망치지 않는 건 아예 도망칠 필요도 없으니까지.
MP5는 그럴 수 있어?
그런 거 말 안 해도 알아...
알긴 뭘 알아!
하아... 넌 지금 레이팅 무시하고 국제 체스 대회에 나갔다가 된통 당한 초보나 마찬가지라고. 자신을 그랜드 마스터랑 비교하면 당연히 가랑이가 찢어지지 이 바보야.
MP5는 반박도 못 하고, 그저 들것에 누운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XM8과 P99를 바라보았다.
바보라 놀린다고 진짜 바보가 됐냐...
그냥... 대답한 건데...
P99는 안경을 고쳐 썼다.
XM8이 하고 싶은 말은, 톰슨 씨는 동료가 걱정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단 거야.
그렇지, 사부님은 엄청 강하――
무언가 번뜩 깨달은 듯, MP5는 말을 멈추더니 손을 이마에 올렸다.
어어...? 저... XM8? 네 말이 무슨 뜻이지 조금 알 것 같아...
XM8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다만 P99가 두 손을 꽉 붙들고 있어서 손을 올리진 못했다.
야, 내가 너 나가기 전에 뭐라 했어?
멀―쩡―하―게― 돌아오라 했지? 이렇게 쓸데없이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
넌 톰슨이 아니잖아. 꼭 뭐든지 따라 할 필요 없다고. 네 방식대로 싸우면 돼.
어... 가만히 있지 말고 뛰는 것처럼...?
그래 이 바보야, 넌 앞에서 부대의 모두를 지키는 중요한 역할이잖아. 근데 그러려면 먼저 너 자신부터 지켜야 할 거 아니야.
네가 쓰러지면 P99랑 다른 애들은 어떡하라고?
이번에는 MP5도 바로 말대꾸하지 않았다.
예전에... 전장에 있는 동료들에게 물자를 보급하는 임무를 맡은 적이 있어.
임무를 마치고 나서... 헬리안 씨가, 우리 같은 민간용 인형을 어떻게 해도 군용 인형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하셨지만...
그래도 우리만이 가능한 일이 있다고 하셨어.
아, 그 말 나도 입사할 때 들었어.
그리폰은 다 이유가 있어서 우릴 선택했다고...
그때부터 난 사부님을 동경했어...
사부님은 강하고, 멋지고... 또 경력도 엄청나니까!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사부님은 내 눈엔 언제나 눈부셨어. 하지만 그러면서도 너무 멀게 느껴져서...
맨날 훈련장 가면 만나면서.
비유법이야! 비유법!
또다시 입을 삐죽인 MP5의 눈은 이번엔 망설임으로 가득했다.
나도 사부님처럼 되고 싶은데...
내 생각이지만... 톰슨 씨는 네가 "2번째 톰슨"이 되는 것보단 "더 나은 MP5"가 되길 바라지 않을까?
더 나은 나...? 그게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어...
지휘관님은 항상 나도 믿음직하다고 하시지만, 난 힘도 약하고 겁도 많아서 툭하면 우는데... 으으...
그래, 결론적으로 말해서 넌 전선에 안 어울――아야야.
P99가 XM8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사실은... 톰슨 씨가 아주 예전에 나한테 말한 적이 있거든?
넌 덩치도 작고 지휘관님한테서 전용 장비도 지급받았잖아. 그러니 맹목적으로 톰슨 씨의 흉내를 내기보단, 그걸 고려해서 너만의 방식으로 강해지는 게 좋지 않을까?
MP5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어!? 사부님이 너한테 내 얘기를 했어?!
그렇다니까~?
그리고 XM8도 같이 들었어. 톰슨 씨가 많이 얘기했잖아, 그치?
응? 어... 아, 맞아 맞아.
톰슨이 특히나 널 전장 한가운데에 말뚝처럼 세워 놓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 너 박살 나면 우리도 큰일 난다고.
너 정말... 아하하, 그러니까 톰슨 씨는 동료들이 널 얼마나 걱정하는지도 생각하라는 뜻이야.
P99는 XM8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눈치를 주고, MP5를 주시했다.
MP5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들은 말을 곱씹었다.
MP5...?
짝!
P99가 말을 더 꺼내려던 그때, MP5가 손뼉을 쳤다. P99가 깜짝 놀란 덕분에 XM8도 그녀의 수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래! 피하면 되는 거였어!
공격을 피하면 전방에서 더 오랫동안 동료를 지킬 수 있잖아!
그제서야 한시름 놓고, P99와 XM8은 서로를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야 생각이 좀 정리된 모양이네.
그러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아니라 톰슨을 위해서지만――
끄아악! 다리는 때리지 말라니까!
......
지휘부로 귀환하는 수송기에서, 의료진 인형들은 또 부상자가 생기진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