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21
MOD 1
조용한 새벽의 그리폰 기지.
FN-49와 AK-47, P7은 일찍부터 훈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점점 드리우며 눈을 비추는 아침 햇살은 너무나도 부드럽게 느껴져, FN-49은 금방이라도 다시 잠들 것만 같았다.
후아아암...
우옷, 모양 빠지게 자면서 걸으려는 건 아니겠지?
아이 어제 밤 늦게까지 미식회로 고생하신 셰프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오늘 휴가 낸 애들 절반이 넘는대, 이렇게 아침 훈련을 하러 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구.
하...? 그건 좀 너무 많은데.
다들 네 그 유통 기한 지난 초콜릿 먹고 쓰러진 거 아니야?
생인형 잡지 마, 내가 그랬을 리가 없잖아! 내가 얼마나 동료들을 챙기는지 알기나 해?
그, 그치만 다들 초콜릿 먹고 이상해지긴 했어요...
저랑 같이 제일 많이 먹었던 FNC는 밤새도록 토했는걸요...
으으... 배고파서 쓰러질 거 같아요오...
거 봐 너 때문 맞네!
아 아 아니래두?! 나 진짜 아니야, 이 선량한 미소를 봐! 에헤헤...
까고 자빠졌넴마!
지휘관을 대신해 내가 벌을 내리겠다! 일루와 코로 보드카 좀 마셔봐야 정신 차리지!
으아악 이거 놔 나 진짜 결백해!
즈, 증거도 있어!
그래봤자 구차한 변명이겠지!
아냐아냐 진짜야 증거 있다니까!? 저기! 저기 봐봐!
P7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이쪽으로 달려오는 건장한 체격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구릿빛 피부와 활기 넘치는 얼굴이 선명해졌다.
저건... CR-21 씨?
여어! 다들 좋은 아침!
이런 데서 뭐하고 있어? 무슨 씨름 훈련이라도 해?
CR-21도 어제 내 초콜릿 잔뜩 먹었어!
근데 저거 봐, 멀쩡하게 조깅까지 하고 있잖아!
하, 하지만 CR-21 씨는 평소에도 단련하시잖아요... 우리랑 체질부터가 다른데요...
맞아 맞아, 쟤는 참고가 안 돼.
안 되긴 왜 안 돼? 인형이 뭐 인간처럼 달리기 열심히 한다고 지구력이 좋아지나?
아 아무튼 이거 놓고 말해!
무슨 얘긴진 모르겠지만, 운동은 인형에게도 효과가 있어!
...응?
인형도 꾸준히 운동하면 소체의 성능을 교정하고 자기에 맞게 최적화할 수 있어!
예를 들자면, 장거리 달리기는 관절의 유연성을 길러서 부품의 마모를 줄이고――
수영은 냉각 시스템의 효율과 작전 지속 가능 시간을 늘려 주는데다――
역도는 소체의 중량 밸런스와 동작 제어 알고리즘 향상에 도움이 되고――
농구 같은 구기 종목은 민첩성과 반사 속도를――
......
어, 어떻게 이렇게 끝도 없이 설명할 수가 있죠...?
P7 이 자식 머리 좀 굴렸구나...
히히힛, 잘했어 CR-21! 덕분에 아주 잘 넘어갔네!
――고 가장 중요한 건, 운동을 통해 인간의 동작을 더욱 자연스럽게 따라하고 이해하면서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인형이라도 운동의 효과를 무시해선 안 돼!
저기... CR-21 씨?
이제 충분해요오... 운동의 장점은 이제 충분히 알겠어요...
그러게~ 이렇게 얘기를 들으니까 막 우리까지 운동하고 싶어지는 기분이야!
그치 AK-47?
아, 아하하하... 땀 흘리고 마시는 보드카가 또 각별하긴 하지...
정말? 너희도 운동할래?
그럼 내가 너희를 위한 운동 루틴을 짜 줄게!
엑?! 저저저, 전 괜찮은데요...!?
사양 마, 내가 잘 지도해 줄게! 가자가자!
CR-21이 기다렸다는 듯 뒤춤에서 알록달록한 카드 한 묶음을 꺼내 세 인형의 손에 쥐였다.
우리 헬스장이야!
어... 그러니까...
카드에는 "식스팩 일주일 속성 코스", "30일 10kg 감량!", "그리폰 퀸 변신 프로젝트!" 등 상당히 과장된 홍보 문구가 잔뜩이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맨 아래의, 세 인형들이 보자마자 헛숨을 들이킨 "깜짝 할인가!"라 적힌 등록비 설명란이었다.
어때, 정말 파격적인 가격이지?
어떤 걸로 등록할래? 월간? 연간? 아님 아예 초장기 회원권?
참고로 장기일수록 혜택이 더 좋아!
열정적으로 "포교"하는 CR-21의 눈빛에, 세 인형들은 서로의 눈치를 봤다.
우린...
좀 더...
새... 생각을...
생각해 본다고? 알았어!
응, 다른 회원들도 하루이틀쯤은 고민했으니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돼!
그럼 난 계속 조깅하러 갈게, 내일 등록하러 와~!
내, 내일요? 좀 더 오랫동안 생각을...
아으으 CR-21 씨? CR-21 씨!
CR-21은 놀라운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와오 초고속! 그냥 조깅이 뭐 저렇게 빠르대?
너 이씨 지금 웃음이 나와!?
이 돈이면 보드카가 몇 병이냐...
어? 잠깐만, 이거...
왜 그래?
이거 어디서 본 기억이 있어.
AK-47이 카드를 들어 스캔한 후 클라우드 마인드맵의 데이터베이스로 대조해보았다.
확실해, 3번 정도 봤던 거야.
MP40의 모자챙이랑, 갈릴의 탄창이랑, SPAS-12의 사물함에서.
푸하핫! 딱 CR-21의 말에 넘어갈 만한 녀석들이네!
그럼 의외로 회원이 꽤 많단 뜻이려나? 걔 돈 좀 만지겠는데?
저기... 제가 한마디 해도 될까요?
어젯밤에, CR-21 씨가 다른 분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몰래 포장해 가져가는 걸 봤어요. ...앗! 그, 그게, 훔쳐보려 한 건 아닌데...
CR-21 씨가 수입이 많다면, 그런 행동은 좀 어울리지 않아서, 이상하네요...
아, 그 말 들으니까 생각났다. 나도 한밤중에 술 사러 갈 때 자주 걔랑 마주쳤어.
시원하니까 달리기 딱이라서 나왔댔는데, 한밤중에 뛴다고?
생각해보니 수상하네, 야밤에 뭘 하려고 나온 거지?
설마... CR-21 씨에게 우리도 모르는 비밀이라도...?
의심스런 일들과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진 용의자라... 이거이거 사건의 냄새가 풀풀 나는데요~?
조아쓰! 이 사건은 P7에게 맡기시라!
진상을 밝혀낼 방법이 떠올랐어!
......
0시 15분, 그리폰 기지 인근의 이름도 없는 숲.
AK-47과 FN-49, P7은 숲 어딘가의 공터에서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취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숲에 절망적인 어둠이 깔려버렸으니까.
...야 P7, 이게 네가 말한 "진상을 밝혀낼 방법"이야?
역시 미행은 좋지 않아요오...
아이 그러지 말구 힘내! CR-21이 밤에 몰래 기지 밖으로 나온다는 건 알았으니까 직접 확인하는 게 가장 확실하잖아!
그리고, 미행이라니 말조심해 FN-49!
이건 "등록 전 1회 체험"이야, 미행이 아니라!
아아 그러셔? 그럼 지금 같은 상황은 생각해 봤나 모르겠네...
우리가 CR-21을 놓치는 상황을 말이야!
............
걔가 그러케 빠를 줄 알았나 머.
이제 어떡하죠? CR-21 씨도 놓치고, 돌아가는 길도 모르고...
애초에 여긴 대체 어딘가요?
으으으... 깜깜하고 추워서 무서워요... 돌아가서 따뜻한 밥 먹고 싶어요오...
걱정 마, 보드카 두 모금이면 후끈해지니까.
길이야 찾아봐야겠지만 정 안 되면 그냥 야영해야지.
엑... 여, 여기서요...?
난 상관없어~ 그런데 FN-49, 너 그거 알아...?
새벽 3시가 되면 말이야, 이 숲에서 무시무시한 짐승이 나온대...
......네?
방패처럼 딴딴하고 커다란 몸에, 칼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이렇게 어두컴컴한 밤을 제일 좋아하는 짐승이지...
길을 잃은 불쌍한 희생자를 찾아다니면서...
발견하면... 그대로!
――!
아우우우~!
끼야아아악!!
얘가 진짜 매를 버네 벌어!
이런 상황에서까지 장난을 치는 P7을 혼내려고 AK-47이 총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때 똑똑히 들려온, 짐승의 울음소리.
그 자리의 모두가 얼어붙었다.
무무, 무무무무슨 소리죠?! 숲에 저, 정말로, 지지지짐승이...?!
쉬잇.
AK-47이 재빨리 가까운 나무에 등을 기대고 귀를 쫑긋 세워 주위를 경계했다.
짐승의 울음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런데 어렴풋이, 그 사이로 익숙한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흰둥아, 이제 그만――
CR-21이다!
CR-21이 위험해!
으엑? 가, 같이 가!
여, 역시 짐승과의 전투는 피할 수 없는 건가요오...
P7과 FN-49은 헐레벌떡 AK-47의 뒤를 쫓았다.
세 인형들은 숲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 소리가 들리는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숲속에 숨겨진 농구장 만한 크기의 터에 말뚝과 밧줄로 된 울타리가 둘러져 있었다.
그 안 여기저기 세워진 작은 오두막 사이로, 모닥불 주위에서 뛰어노는 동물들도 보였다.
...?!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어린 늑대를 품에 안은 채 눈이 휘둥그레진 CR-21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