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21
MOD 3
...그 창문 앞에서 얼마나 멍하니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러다 다른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고, 그 공장에 다른 동물들이 더 갇혀 있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 몰래 구했는데, 다들 많이 다쳐서 그대로 숲으로 돌려보내봤자 금방 죽을 게 뻔한 상태였어.
그래서, 내가 뭐라도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여기에 보호소를 만든 거야.
그랬군요...
그럼, 이 동물들은 모두 그때 CR-21 씨가 구한 아이들이에요?
응. 처음엔 내가 돌봐주는 것도 적응 못 할까 봐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히 금방 회복하고 잘 적응한 거 같아.
정말... 다행이라니까.
이 보호소를 위해서 혼자 그토록 많은 돈과 시간을...
정말 대단하세요.
어쩐지 뼈 빠지게 돈 벌면서 음식까지 모~올래 싸가더라~
너, 너무 직설적이에요 P7...
어쩐지 한밤중에 몰래 빠져나가더라니!
아하하... 걱정 끼쳐서 미안해.
이걸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 건 너희가 처음이야.
...내가 그리폰에 들어온 이유기도 하고.
네?
세상엔 아직 그 6번가 같은 곳이 많잖아?
거기 사람들에겐 희망도, 미래도 없어. 그리고 나 혼자서는 아무도 구해줄 수 없고.
그래서, 정말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난 그리폰이 그런 곳이라 생각해.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터프하구만! 마음에 들어!
음음, 지휘관이 들으면 엄청 기뻐하겠네~
그렇겠지...
...이걸 더 빨리 생각해냈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더 빨리 알아챘다면, 랄프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 테고...
죄 없는 동물들도...
CR-21 씨...
내 눈앞에서... 랄프한테...
따뜻한 모닥불의 빛이 CR-21의 구릿빛 피부를 비췄다.
그녀의 눈동자는 지금, 저 흔들리는 모닥불처럼 괴로움에 반짝였다.
그녀가 이렇게 후회하는 것도 벌써 몇 번째일까?
조용히 시선을 교환한 세 인형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CR-21의 곁으로 다가갔다.
흐이구 하는 수 없구만, 특별히 이 P7 님의 전매특허 힐링 스마일을 보여 줄게~ 스마일~
저, 저는 CR-21 씨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 CR-21, 너무 자책하지 마.
우리도 도와줄게! 함께 이곳을 멋지게 만들어보자고!
자금이든 일손이든 필요한 거 있음 우리한테 말만 해!
그, 그리폰의 다른 분들도 도와주실 거예요!
당욘한 말쑴!
고마워 얘들아...
나에게 이곳은 단순한 동물 보호소가 아니야.
나는... 여기를 지키고 싶어.
그러니까...
당분간은 비밀로 해 주지 않을래?
네? 비, 비밀이라뇨...?
그건 좀 이해가 안 되는 부탁인걸.
동물 보호는 좋은 일이잖아, 왜 숨기려 해?
......
그건...
말 잘했네요! 우리가 다 먹고살자고 이러는 건데 뭐 동물 몇 마리가 대수야!?
동물을 소중히는 XX, 대가리가 맛이 갔나? 그럼 인간은?
인형이면 인류에게 봉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도 모르겠어.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옳은 걸까?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리 같은 민수용 인형은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졌잖아?
그런데, 나는 동물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어.
이런 행동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까...?
에휴, 뭔 말을 하나 했더니만... 너무 멀리 갔잖아, 그딴 소릴 지껄일 놈이 어딨겠냐?
걱정 마 CR-21, 지휘관도 아무리 못해도 그냥 어깨 다독이면서 "응원할게!"라 할걸? 뭐어 보나마나 신나서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라 하겠지만.
맞아요, 그리폰의 모두가 그럴 거예요!
물론 지휘관도, 그리폰의 모두도 믿어.
하지만...
인형이면 인류에게 봉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미안해.
생각이 정리되면 내가 직접 지휘관에게 설명할게.
하지만 지금은 아닌 거 같아.
아니 야――
타앙!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모두가 흠칫했다.
뭔가 접근하고 있어... 모두 조심해!
...!
......
숲속에서 예고도 없이 튀어나온 검은 그림자에 인형들은 즉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CR-21은 앞으로 나와
누구냐!
사, 살려 주......
얼레, 인간인가?
어떻게 된 거야, 이 근처에 사람 안 살지 않아?
손에 엽총이 있어요, 사사, 사냥꾼인 거 같아요...!
아 뭘 떠들어대고 있어, 저 오른다리서 피 철철 나는 거 안 보여?!
CR-21! 여기 구급상자 있지? 쟤 치료하게 빨랑 가져와!
어떻게... 어떻게 사냥꾼이 여길...
CR-21? 야!
CR-21에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쓰러진 "사냥꾼"과 그의 손에 들린 낡은 엽총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녀는 겁에 질렸다.
저 엽총이 동물들을 사냥하는 흉기로 변하는 광경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야아아!! 뭘 멍때리고 있어!?
저 사람 출혈 심각하다고! 저러다 큰일나!
하... 하, 하지만 동물들을 지켜야... 사냥꾼이 여길 알면...
프로토콜상 생명이 위험한 인간을 무시하면 안 되지만...
저 애들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는데...
시선이 사냥꾼과 그 엽총을 오가는 것이 마치 중요 순위를 저울질하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CR-21은 고개를 돌려 도움을 청했다.
...어떡하지?
그게 물어볼 일이냐?
사람을 살려야지!
......!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말야, 인간도 동물도 인형도 따지고 보면 다 같은 생명이잖아?
동물의 목숨을 지키려고 인간의 목숨을 포기한다고?
그럼 너랑 그 랄프란 놈이랑 다를 게 뭔데?
생명의 본질...?
저어... CR-21 씨? 방금 그 말, 정말 좋았어요.
그리폰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곳이라셨잖아요.
저, 저도 솔직히 어떡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지만, 지휘관님이 여기 계신다면...
인간을 포기하는 것도, 당신이 과거예 얽매이는 것도 원치 않으실 거예요.
지휘관...
저도 CR-21 씨가 과거를 후회하는 기분을 잘 알아요...
그래서, 진심으로 CR-21 씨가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요.
에잇 둘이 할 말 다 해버리면 난 어떡해!?
저 봐, 쟤도 네가 저 사람 빨랑 구하라 하잖아!
엣... 동물들이...?
그제서야 CR-21의 눈에도 보였다.
쓰러진 "사냥꾼" 뒤에 사슴이 있었다.
그 사슴은 한쪽 발을 절뚝이면서도, 이 사람을 구해 달라는 듯 쓰러진 사냥꾼의 등을 이리저리 밀어댔다.
...알겠어.
인간도 동물도, 모두 지켜야 하는 소중한 생명...
응, 할게, 다시는 후회하지 않도록!
네!
헹, 이제야 좀 내가 아는 CR-21답네.
사람 하나 죽기 전에 빨리빨리 움직이자구!
FN-49, 저쪽에 구급상자랑 깨끗한 물이 있으니 가져와 줘.
평평한 곳이 필요해, AK-47이랑 P7은 저 사람을 오두막 안의 침대로 옮겨 줘.
모두의 도움이 필요해...
부탁할게!
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