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Zero1
MOD 2
구호소에서 2주간 일하고 받은 보수예요, 한 푼도 안 쓰고 다 모아 뒀어요.
Rex Zero 1은 건네받은 돈이 아니라 주인이 신경쓰지 않아 지저분한 책상을 훑어봤다.
일에는 익숙해졌나요?
네, 소개해 주신 덕분에요. 조금 지저분하지만 신경쓰지 마세요.
마르타는 서둘러 책상을 정리한 뒤, 그 위에 막 끓여 따뜻한 차를 내어 Rex Zero 1에게 건넸다.
임금을 이렇게 많이 받을 줄은 몰랐어요. 이대로라면 앞으로 8주 정도만 더 일하면 말하신 금액을 다 모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 혹시――
마르타 씨! 빨리 와서 도와줘! 방금 노숙자들 도착했는데 임산부랑 애들도 있어! 오늘 안으로 자리 마련해 줘야 해!
한 명씩 상태 전부 체크하고, 아픈 사람 있으면 병원으로 보내!
마르타의 질문을 끊은 구호소 직원의 말은 계속 이어졌고, 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점점 많아지더니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마틸다가 어디 있는지만이라도 먼저 말해 주실 수 없을까요?
마르타 씨! 뭐해? 얼른 와서 도우라니까!
마르타는 재촉도 무시하고 그 자리 그대로 꿈쩍 않고 Rex Zero 1을 바라봤다.
약속한 금액 다 모을 때까지 여기서 계속 일할게요, 제발요.
이런, 이쪽 임산부 기절했어! 빨리 의무실로 데려가! 어 조심조심!
맙소사, 사람이 갑자기 너무 많이 몰려서 난장판이 됐네... 일단 창문 전부 열어서 환기부터 시키고, 애들 놔두면 큰일나니까 얌전히 줄 세워!
마르타가 있든 없든, 구호소의 홀은 이미 다른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분주했다.
...일을 마치고 난 뒤에 계속 얘기할까요?
마르타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자, Rex Zero 1은 그녀를 뒤로하고 혼란 그 자체인 홀로 나왔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 있나요?
모두에게 바쁜 하루였다.
Rex Zero 1은 우선 구호소를 찾아온 노숙자들이 자리잡는 것을 도왔다. 노약자와 어린이는 전담 요원에게 맡기고, 임산부와 병자는 속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공구를 든 채 차량의 엔진 보닛을 열어 더 고칠 곳은 없는지 확인한 후, 보닛을 닫는 것으로 일의 끝을 알렸다.
끝!
고마워요, 수고 많았어요. 엔진이 덜거덕거리는데 고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죠.
직원이 Rex Zero 1에게 젖은 수건으로 손을 닦아 주고 스패너를 돌려받았다.
구호소는 항상 인력 부족인데, 당신 같은 인형들이 시간 날 때 도와주기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지난번에 컨테이너 조립할 때도 신세 많이 졌어요.
공짜가 아니라 엄연히 보수를 받고 하는 일인걸요, 여러분께 부탁을 드렸으니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에이 겨우 그거야 별거 아닌데요 뭘. 그런데, 마르타 말입니다만...
무슨 일 있나요?
아무래도 마음이 딴 데 있는 것 같아요. 일하는 덴 별 차질 없지만 항상 주변 모든 것에 반응이 느리더라고요.
아까도 보셨다시피, 여러 번 불러야만 반응하는 일이 잦아요. 그런데 오늘 당신이 오니, 뭐랄까... 생기가 돌아온 것 같다고나 할까요?
...알겠습니다. 며칠 만 더 그녀를 봐 주세요, 어떤 일이든 사양 말고 시키시고요.
그녀는 쉬기보단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생각해요.
저기, Rex Zero 1 씨?
아, 일 끝났나요? 그럼 좀 걸을까요?
구호소 직원들과 인사하고, Rex Zero 1은 마르타를 데리고 인근의 거리로 나왔다.
마틸다 얘기를 해 주시려는 건가요?
지금 그 애가 어딨는지까진 아니어도, 뭐라도 얘기해 줄 수는 없을까요?
마틸다를 찾아 헤맨 지, 벌써... 6년이나 됐어요...
두 사람은 거리를 따라 걸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낮에는 번화했던 상가는 이제 대부분의 가게가 폐점을 준비 중이었다.
마틸다가 어디 있을지, 추측해본 적 있나요?
길을 잃었으니, 이런 구호소나 육아원에 보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적어도 그랬기를 바라요.
구호소는 어디까지나 임시 수용 시설이라, 모두 잠시 머물렀다가 새로운 곳으로 옮겨 가야 해요.
집을 찾는다면 집으로 가고, 그렇지 못하면 직장이라도 구해야 하죠. 하지만 노인과 어린이들은 오래 머무를 수 있어요.
네, 구호소에서 들었어요. 노인과 아이들은 일을 할 수 없으니 가족을 찾을 방법이 없다면 다른 복지 기관으로 인계되기 전까지 머무를 수 있다고 해요.
요즘 세상에 "쓸모"란 정말 중요한 모양이네요...
Rex Zero 1은 고개를 숙이고, 발에 밟히는 자갈을 옆으로 차며 손가락에 낀 고무를 이리저리 당겼다.
고아에게 입양을 원하는 가족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고 말예요.
다행히, 마틸다는 운이 좋았어요.
왜 아직도 안 깨어나요...?
분명 제대로 수리했는데, 또 배터리가 나갔나?
......
훌쩍... 얘 죽으면 안 돼요...
인형이 죽긴 왜 죽어.
......
봐요! 움직였어요!
눈을 뜬 Rex Zero 1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와 성인 한 명을 발견했다.
눈이 움직여요, 저를 보는 거 같아요!
안녕! 내가 널 주워 왔어, 네 생명의 은인이야!
네가 예전에 무슨 일을 했든, 앞으로는 내가 네 주인이야, 알았지? 내 말 잘 들어야 해!
시끄럽다.
Rex Zero 1은 주위를 살폈다.
여긴 어떤 매장의 주방 같았다.
다양한 제과 기구들이 깔끔하게 늘어서 있었고, 한 쪽 유리 벽면을 통해 가게의 전경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이 가게는 다양한 빵이 진열된 제과점이었다.
구석에는 테이블이 2개 있고, 입구의 쇼윈도에 "도널드의 디저트 하우스"라는 형형색색의 커다란 글자도 붙어 있었다.
애를 입양하고 볼 일이구만, 용케도 이런 큰 걸 주와 왔네 참.
어휴, 인형이 전기 먹는 하마는 아니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 가게 굴리는 데만도 이미 적자라고...
다 고치면 일을 돕게 하면 되잖아요? 일손이 많아지면 배달 서비스도 늘릴 수 있고, 그럼 장사가 더 잘 돼서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을 거예요!
허이구, 꿈도 크셔.
생각은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요, 겨우 도움이 될 만한 걸 주웠는데.
정말 시끄러워.
폐품으로 쓰레기통에 버려져, 대체 얼마만에 다시 눈을 뜬 걸까. Rex Zero 1은 마인드맵마저 녹슬어버린 듯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 이름이 뭐야? 난 마틸다야, 앞으로 잘 지내자!
어? 눈 떠! 자면 안 돼, 얼른 일어나!
저는 2년 전, 어느 디저트 가게의 주인 도널드에게 입양된 마틸다에게 주워졌어요.
가게는 꽤 잘 됐답니다. 마틸다는 지역의 학교에 다녔고, 저는 가게를 봤어요. 주말에는 마틸다가 일을 도와주곤 했죠.
날이 점점 더 어두워져 갔지만 두 사람은 계속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Rex Zero 1의 손에 걸린 고무줄도, 걸음에 따라 계속 당겨지기를 반복했다.
마르타는 Rex Zero 1이 어떻게 마틸다와 만났는지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요?
그다음 이야기는... 돈을 더 많이 벌어서 교환하세요.
Rex Zero 1이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마르타는 그녀가 그 발레리나 머리핀을 뺀 것을 깨달았다.
...그 머리핀, 제가 만든 거예요. 만들 적에 마틸다가 바로 제 옆에 있었죠.
발레리나의 눈을 그릴 때, 그 애가 장난을 치는 바람에 한쪽 눈은 초승달처럼 웃는 모양인데 다른 쪽은 그렇지 않게 됐어요. 덕분에 독특해져서 바로 알아볼 수 있죠.
그래선지 그 애가 제일 좋아하는 거라, 언제 어디서나 항상 끼고 다녔답니다... 잃어버렸던 날에도요.
당시에 저도 남편도 너무 바빠서, 씩씩한 딸아이 혼자 등하교를 하게 뒀는데... 다 우리 잘못이에요.
...지난 몇 년간 마틸다를 찾는 게 저의 전부였습니다.
Rex Zero 1이 멈춰 섰다.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까지 해요.
구호소는 한동안 더는 일손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니, 제가 아는 병원에다 연락을 해 뒀어요. 며칠 뒤에 당신을 데리러 올 거예요. 전문적인 간호 지식이 없어도 도울 수 있는 일은 많답니다.
그리고 걱정 마세요, 병원에서 자원봉사로 받는 보수는 구호소보다 적지 않으니까요.
병원이요? 알겠어요, 딸아이를 찾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게요.
마틸다가 입양되었다니... 정말, 몇 년만에 듣는 좋은 소식이네요. 당신과 도널드 씨는 우리의 은인이세요.
마르타는 갑자기 허리를 숙여, Rex Zero 1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손을 내저었다.
아앗 이러지 마세요, 돈을 지불하실 거잖아요? 이렇게 감사하지 않으셔도 돼요.
정 뭔가 하고 싶으시다면, 가서 더 많은 이들을 도와주세요.
바쁜 하루를 마치고 그리폰의 숙소로 돌아온 Rex Zero 1은 침대에 누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네...
도널드 아저씨, 디저트 가게...
Rex Zero 1은 침대맡에 놓인, 하드커버 표지에 작은 보라색 꽃이 그려진 책 한 권을 들여다보았다.
...내일 생각하자.
불을 끄고, 긴장을 풀고, 잠에 들었다.
분명 제대로 수리했는데, 또 배터리가 나갔나?
흥, 고물이 뭐 그렇지. 괜히 전기만 낭비했네.
조금만 더 충전해보고 돌려드릴게요, 조금만 더요!
이번 할당량도 못 채웠으면서 하긴 뭘 더 해! 얼른 이 쓰레기 데리고 나가!
악몽을 꾸듯, 침대에 누운 Rex Zero 1이 미간을 찌푸리고 불안하게 몸을 뒤척였다.
훌쩍... 얘 죽으면 안 돼요...
인형이 죽긴 왜 죽어.
네가 죽지, 이 망할 꼬맹이가.
고치면 쓸모 있을 거라더니 이게 뭐냐? 고철덩이에 시간 낭비한 거기만 해봐, 너 가만 안 둬.
믿어 주세요, 쓸모 있을 거예요, 정말요! 앞으로 도널드 브라더스를 도와서 함께 일할 수 있을 거예요!
부품도 잔뜩 가져왔어요, 폐건전지도 있으니까... 제발, 고쳐 주세요...
기회 이미 줬잖――
잠깐만요... 봐요! 움직였어요!
......
잠은 이미 깼지만, Rex Zero 1은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얼른 자야 해, 계속 자야 해...
...결국, 또 네 꿈을 꾸고 말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