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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 2
1년 전, 마테우스 거점 안. 적의 지휘소로 향하는 길.
라에를 부대에 재편성하고, 저는 그녀를 대열 중간에 세워 앞뒤의 군용인형이 그녀의 거동을 항시 주시하도록 했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제 등을 찌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대위님.
그녀의 걸음 소리가 갑자기 멈췄습니다.
먼저 현재 임무 내용을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탈영한 놈이 입 털게 돼 있냐?
지금은 모두 같은 소대다. 서로 헐뜯지 마라.
저는 또 개머리판을 들어올리는 군용인형을 제지하고 라에를 돌아봤죠.
작전 내용을 재확인한다.
현재 적 거점으로 통하는 주요 교통로 상의 화력진지는 아군 인형소대가 견제하고 있다.
우리의 임무는 이 틈에 적 거점 동쪽 숲으로 잠입하여 적의 지휘부를 격파하는 것이다.
고작 우리 몇 명으로 말입니까? 전에도 꽤 많은 부대가 그 계획으로 지휘부를 노렸지만...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 부대 배치 상황으론 적군과 정면 대항할 능력이 없다. 잠입하는 것이 승률이 가장 높은 방법이다.
......
라에의 눈빛은 어두웠습니다. 무엇을 우려하는 건지는 알고 있었죠. 레이너드 대위의 지휘를 받아 저희보다 앞서 움직인 부대는 거의 다 적 거점 동쪽 밀림에서 전멸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규모도 얼마 안 되는 부대를 끌고 그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었으니까요.
제 동료들은 그 잠입 과정에서 전부 희생되었습니다.
깊은 유감을 표한다.
우리도 다 죽을 겁니다.
이 놈이...!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오늘은 아니다.
......
움직여.
라에의 어두운 눈에서 시선을 떼고, 저는 등을 돌려 계속 전진했습니다.
저희는 저 앞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산비탈의 밀림을 지나야 했습니다. 저희는 전우들이 지났던 길을 따라서 각자의 마음 속 종점으로 향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밀림은 하늘에 뭉쳐 있는 검은 안개처럼 자욱한 죽음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숲에 진입하고 얼마 안 지나서, 저는 라에가 확실히 이 잠입 임무에 최적의 인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기척 없이 그늘 속에 녹아들어 눈 깜빡할 사이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곤 했죠.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저희에게 있어서도 가장 성가신 상대라는 뜻이기도 했어요.
누가 와서 거들어줘!
제압했다!
이미 두 번이나 목격했는데도, 그녀가 세 번째로 삼엄한 감시를 따돌리는 것을 보고 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군용인형 둘이서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는 그녀를 바닥에 눌러놓고, 나머지는 빠져나갈 길을 막았어요. 그중 한 기는 제 옆에 서서 라에를 내려다보고 있었죠.
대위님, 아무리 이 여자가 대단해도 결국엔 탈영병입니다. 그냥 사살하는 편이 좋다고 봅니다.
......
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외투 주머니를 더듬었습니다. 압수한 회중시계가 역시나 사라져 있었죠.
언제 슬쩍한 걸까요? 제게 통조림을 건넬 때? 아니면 제 총을 들어줄 때?
전 다시 그녀 옆에 쪼그려앉아 그녀 몸에서 그 회중시계를 꺼냈습니다. 그녀가 진흙바닥에 얼굴이 처박힌 채로도 노발대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일단 묶어놔라, 마침 재정비할 시간이다.
너희 둘은 전방을 정찰하고, 나머지는 주위를 경계해라.
괜찮습니까? 대위님 혼자서 이 탈영병과 있겠다는 겁니까?
똑같은 말을 또 해야 하나?
...알겠습니다.
대위님, 저놈과 거리를 유지하시고 안전에 주의하십시오.
알고 있다.
흙투성이가 된 라에를 나무에 묶어놓고 군용인형들은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윽고 그곳엔 저와 라에만 남았죠. 라에는 고개를 들어 비난하듯이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왜 절 안 죽이는 겁니까?
넌 아직 쓸모가 있으니까.
제가 얌전히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네 목적은 이 회중시계를 가지고 도망가는 것이지 자살하려는 게 아니잖나.
저는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회중시계를 꺼내 겉면의 긁힌 흔적, 깨진 시계판, 그리고 위에 새겨진 글씨를 자세히 더듬었어요.
"ANNETT"
.......
이 회중시계의 주인 이름이 아네트인가?
...네.
소중한 사람인가?
네, 제 전우입니다.
저 앞의 숲에서 죽었습니다, 바로 레이너드 대위가 직접 이끈 침투 작전에서요.
그녀의 시신은 나골드 강 지류로 떠내려갔고, 남은 건 이 회중시계뿐입니다.
그 사망자를 잔뜩 낸 침투 작전에 생존자가 있었구나...
저뿐입니다, 도망쳐온 길에 또 살아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
저는 다시 고개를 숙여 "ANNETT"라 새긴 글씨를 어루만졌습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아네트란 여성이 존재했던 흔적 중 제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작은 회중시계 뿐이었습니다.
아네트는 어떤 사람이었지?
이미 죽은 사람인데 뭘 얘기하겠습니까.
생전의 이야기를 얘기하는 것도 죽은 자를 기리는 의식이야.
......
라에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죠.
그냥 평범한 여자애였습니다. 순진하고 단순해서, 마을 선생님의 구호 몇 마디에 넘어가서 혈기왕성하게 전장에 나가 의무병이 됐죠.
게다가 안전한 후방에 가만있질 못하고 꼭 제가 있는 소대를 따라다니려고 했습니다.
전선 의무병에 자원했다는 건가? 참으로 용감하군...
아뇨, 걘 겁이 엄청 많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랑 친구들이 매미를 잡으면 놀라서 막 소리지르고, 같이 담력 시험 하러 가자고 하면 입구에서 반 시간이나 꾸물대는 애였습니다.
다른 동네 애들과 패싸움을 할 때는 전혀 쓸모가 없고 울면서 어른한테 고자질할 줄만 아는 애였죠.
덕분에 우리 동네 애들은 싸움에선 기세부터 지고 들어간데다 집에 가선 매까지 맞아야 했어요.
라에는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는 듯, 그때 처음으로 얼굴에 웃음기를 띄웠습니다.
분명 저희 또래 중에 가장 겁 많고 눈물 많은 녀석이었는데, 굳이 저희와 함께 전장에 따라나갔어요.
너희... 아네트 말고도 다른 동향 사람들도 여기에 있었나?
네, 샤를로테, 그레타, 미리암, 돈, 빅토르...
하지만 모두 마테우스에 도달하기 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
그레타와 미리암은 폭발에 가루가 돼서 회중시계를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나머지 애들의 시계는 다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아니, 그곳도 이젠 익숙하던 그곳이 아니게 됐죠...
아네트도 그걸 알고 있고?
네, 둘만 남은 후로 저희는 함께 휴가를 내서 포르츠하임에 돌아갔습니다.
원래는 회중시계를 저희가 어릴 적 자주 같이 놀던 곳에 묻으려고 했는데, 저흰 완전히 낯설어진 그곳에서 계속 헤맸습니다...
익숙한 곳은 한 구석도 없었어요. 어릴 적 매미를 잡던 큰 나무, 으스스한 폐가, 패싸움할 때 꼭 가던 광장... 전부 사라졌더군요.
임무 장소가 자주 바뀌는 인형인 저는, 그때 고향이 파괴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라에의 칙칙한 눈빛에서 그것이 인간에겐 평생 치료할 수 없는 아픔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었죠.
결국 시계는 학교였던 폐허 앞에 묻었습니다.
그날 밤 아네트는 밤새도록 울었죠. 그 후로 그 애는 다신 울지 않았습니다.
마치 하룻밤 사이에 과거의 자신이 죽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요.
......
이야기를 들으니 손 안의 회중시계가 묵직하고 뜨겁게 느껴졌어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하나의 추억, 부탁, 이미 사라진 고향과의 연결고리가 되었으니까요.
라에는 자조하는 듯 쓴웃음을 짓고선 더 복잡해진 눈빛으로 앞의 숲을 바라보았습니다.
저기 보십쇼, 아네트가 우리한테 손짓하네요.
여전히 순진하기 짝이 없어서 남을 경계할 줄 전혀 모르고 바보같이 웃기만 해요.
저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봤지만 거기에 인간의 모습은 없었어요. 끝이 안 보이는 숲과 걸어다니는 군용인형뿐이었죠.
안 보이는——
샤샥——그 틈에 그녀는 밧줄을 풀고 제가 시선을 돌린 사이 제 하단을 공격했어요.
전 피하거나 반격할 타이밍을 놓쳐 정면으로 허리를 붙잡혔죠.
안심해요, 당신은 안 죽일 테니까. 그 여자하곤 다르니까...
그녀는 제 허리를 껴안은 채 나무를 향해 냅다 달렸어요. 절 나무에 부딪쳐 기절시킬 셈이었겠죠.
쾅——확실히 저도 정통으로 나무에 부딪혔어요.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꽤 효과적인 공격이었겠지만, 아쉽게도...
.......
어?
라에는 경계심으로 제 허리를 놓지 않았지만, 그건 동시에 그녀가 두 팔로 방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죠.
너...
저는 가볍게 거리를 벌렸고, 그녀가 계속 난동을 부려 군용인형의 주의를 끌지 않게끔——
아주 가볍게 무릎으로 그녀의 턱을 올려차고, 복부에 주먹을 살살 꽂았어요.
그녀는 곧바로 쓰러져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결국 이번에도 힘조절에 실패한 거죠.
미안하다, 하지만 또 위험한 짓을 할까봐 어쩔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저는 그녀 옆에 쪼그려 앉아 대화를 이어나갔죠.
방금 전 이야기를 계속하지. 회중시계를 고향에 돌려보내는 건 특별한 풍습인가?
마테우스 근처에 시계 공예로 유명한 마을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거하고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군.
......
포르츠하임 마을의 풍습입니다. 시계의 마을인만큼 누구나 시계를 가지고 다니죠.
몸이 고향으로 못 돌아간다면, 대신 회중시계를 고향에 묻습니다.
참 슬픈 풍습이군, 그래도 세상에 무언가라도 흔적을 남길 수 있겠구나...
......
아네트의 시계는 내가 잘 보관해 주겠다. 임무가 끝나면 아네트의 시계를 가지고 돌아가도록.
때마침 다급한 발소리가 울리고 근처에 있던 군용인형들이 달려왔어요.
대위님! 무슨 일입니까?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바로 달려왔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다. 방금 나무 위에 무슨 소리가 들려서 이 녀석보고 올라가서 확인하라 했더니 나무에서 떨어졌지 뭐냐.
예...
아... 무사하시면 다행입니다.
저는 라에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 아직 걸음이 비틀비틀거리는 걸 보아 당분간은 도망칠 수 없어 보였죠.
나무 사이 틈새로 앞을 바라보니, 우리의 첫 목표지점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라에가 말한 나골드 강의 이름 없는 지류가 바로 앞에 있었죠. 산비탈의 지형 때문에 흐르는 물줄기는 크진 않지만 유속이 꽤나 빨랐어요.
저는 강줄기를 따라서 비탈 아래를 바라보았습니다.
병사 수십 명이 잔잔한 물굽이에 한데 모여 물결을 타고 둥실거리는 것이 마치 물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였죠.
그때 라에가 시선을 돌리고 눈빛이 더 어두워진 것을 눈치챘어요.
......
저는 군용인형들과 라에에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물길을 따라서 적의 내부에 잠입해 적 지휘소를 공격한다.
물길로 말입니까? 허나 지도를 보았을 때 이 물길은 적 거점의 중심 위치를 지납니다. 발각될 위험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리스크는 있지만 기존 경로대로 숲을 지나는 것보단 안전성과 은폐성이 훨씬 높다.
적의 매복지대를 지날 필요도 없이 적의 중심지대에 상륙하는 것이다.
확실히 적의 주요 병력은 모두 숲에 매복하고 있을 것이라 보지만, 강물에는 어떤 은폐물도 없습니다. 일단 발각되면 공격을 피하기도 어렵고 제때 반격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니 우리는 전우들의 시신을 위장용으로 쓸 것이다.
주검이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는 건 놈들에겐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일 테니까.
시체로 위장을...
라에의 눈에 놀란 기색이 잠깐 스쳤지만, 곧바로 그늘에 가려졌어요.
지금부터의 작전은 은폐에 주의해야 한다. 전우의 시신도 조심해서 다루도록.
비록 우리의 전우는 떠났다 해도 그들의 영혼은 우리와 함께한다.
예!
잠시 후, 저희는 물길로 잠입하기 전의 마지막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군용인형 한 명의 모습이 안 보였죠.
저 말고도 신출귀몰한 녀석이 있네요.
......
어디 간 거냐?
모릅니다...
모른다는 거냐, 말할 수 없다는 거냐?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눈 앞의 인형은 약간 당황한 듯 실종된 군용인형에게 연결해 주었어요.
예.
즉시 복귀하라.
죄송합니다, 대위님. 지금 더 우선적인 임무가 있습니다.
지금 무슨 임무가 적 거점 점령보다 우선인지 모르겠는데.
방금, 강가에서 급하게 묻은 여성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뭐가 희한하다는 거지?
시신에 여러가지 심상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머리 외에 새로 생긴 상처가 거의 없으며, 머리의 총상은 근거리에서 권총탄에 피격된 것입니다. 첫 발에 즉사했고 범인은 머리에 여러 발을 추가로 쐈습니다.
그리고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물건도 모조리 빼앗겼습니다. 인식표, 제복, 얼굴까지...
......
그 외에, 이 여성은 갈색 스포츠머리를 하였으며, 신장은 약 173cm, 왼쪽 장딴지에 수술 봉합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상의 사항으로 식별되는 신원 중 가장 유력한 것이...
당신, 레이너드 대위입니다.
헉!?
라에는 참지 못하고 놀란 소리를 냈죠. 저를 바라보는 눈동자엔 파도가 쳤고요.
그녀가 무엇 때문에 놀랐는지는 대략 짐작이 갔지만 거기서 설명할 순 없었어요.
그래서, 그 죽은 여성이 진짜 레이너드 대위고 나는 가짜라고 생각하나 보군.
저희는 레이너드 대위를 수행해 본 인형은 아니지만, 데이터베이스에 남아있는 그들의 일부 기억을 참조하면...
레이너드 대위는 당신과 완전히 딴판인 인물입니다.
......
적어도, 레이너드 대위는 탈영 행위를 눈감아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겨우 그거 가지고 내가 가짜라고 단언하는 건가?
지금 단언하진 않겠습니다. 이 시신의 혈액 샘플을 채취하여 상층부에 전달해 신분을 확인하겠습니다.
저의 추측이 잘못된 것이라면 징계를 달게 받겠습니다.
군용인형은 그대로 통신을 끊었어요.
원래 군용인형에겐 지휘자의 명령을 거부할 권한이 없는데, 제 명령을 거부했다는 건 그의 실제 명령권자가 제가 아니었단 뜻이죠.
그리고 그 실제 명령권자는 적의 거점 점령과 그 시신의 신분 확인이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여겼다는 소리이기도 했어요.
여기까지인가?
대위님, 어떻게 합니까?
군용인형 하나 이탈한 것쯤 이후 임무에 치명적이진 않다.
맘대로 조사하라지, 내가 원하는 건 최종적인 승리일 뿐...
임무를 속행하라.
예!
......
기존 계획대로 우리는 강물에 들어갔어요.
저의 신분을 알아채고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라에가 제 옆에 다가왔어요.
그 시신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그래, 대충 알고 있지.
그런데 왜...
라에는 다른 인형들을 힐끗 경계하고서 소리 낮춰 귓가에 속삭였어요.
그 쇳덩어리를 안 막을 겁니까? 당신을 따르지 않는 게 명백한데...
내버려둬, 녀석 하나 없다고 이 전투에 지장은 없어.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내게 이름은 없다.
무명씨라고요? 하, 정말 웃기네요.
레이너드 대위는 신분을 잃고 무명의 시체가 됐고, 진짜 무명씨는 레이너드 대위가 됐고...
내가 누구든 간에 우리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
......
그러는 너는? 왜 그 시체가 레이너드 대위라 확신하지? 그리고 왜 나를 돕는 거지?
그러게요... 왜일까요...?
라에?
제가 대책을 생각하던 중에, 라에가 또 옆에서 사라졌습니다.
바로 남은 군용인형들을 불러 수색하게 했죠. 얼마 안 가서...
밀림에서 총소리가 들려왔어요.
대위님, 저기 1호의 신호입니다!
경계태세 유지.
악... 네가 감히!?
군용인형의 고함 소리가 제 말을 끊었습니다. 저흰 그 소리를 따라갔죠. 그 인형은 창백해진 시체 옆에 쓰러진 채 라에에게 총을 빼앗겨 있었어요.
그 여성 시체는 거의 속옷바람이었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얼굴이 완전히 훼손되어 있었다는 거예요. 며칠 전 근거리에서 권총탄에 맞은 흔적 같았죠.
이 자식이 갑자기 튀어나와 제 채집도구를 박살내고 입막음을 하려 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려서 조사를 막으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
대위님, 어떻게 합니까?
이 여자를 죽——
타앙——!
제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라에가 방아쇠를 당겨 시체를 지키던 인형을 침묵시켰어요.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들고 교활한 웃음을 지은 채 저를 바라봤죠.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그녀를 처형하는 건 매우 합리적이고 의심받을 구석 없는 선택이었죠.
군용인형들 사이에서 제 위엄을 다시 세울 수 있으면서 비밀을 아는 마지막 사람도 제거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일 테니까요.
......
이 자식!
그만, 불필요한 희생을 늘리지 마라.
저는 총을 쏘려던 인형을 제지했어요.
1호가 오프라인되면 누가 지휘부와의 연락을 담당하지?
저입니다.
그래, 그럼 지휘부에 이렇게 통보해라.
이 전투는 레이너드 렌필드의 이름으로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지휘부가 뒤에서 이딴 시간 아까운 수작을 부린다면...
그 이름이 이대로 시체더미 속에서 썩게 돼도 날 탓하지 말라고.
...예!
......
라에는 약간 실망한 듯 총을 내렸어요. 저는 그녀 눈동자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며 방탄모의 흙탕물을 닦았죠.
그 총은 이제 네 것이다.
네.
오늘, 포르츠하임 마을의 한 술집.
푸우웁!
잠깐 스톱!
예상대로 지휘관이 놀라서 마시던 술을 뿜었다. 진작에 예상한 일이니 가볍게 피했다.
너... 너, 처음부터 레이너드 대위의 신분으로 라에와 대화했던 거야?
네.
언제부터 네가 레이너드 대위가 된 거야?
설마 네가...
안심하세요, 전 레이너드 대위를 해치지 않았어요. 그녀의 제복을 빌렸을 뿐이죠.
좀 혼란스러운데, 네가 왜... 또 언제부터...
잠깐만, 그 레이너드 대위의 시체가 발견됐을 때 왜 너는 전혀 놀라지 않은 거지?
성급해하지 마세요, 지휘관님. 천천히 다 이야기해 드릴게요.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어요. 인물의 시점 하나만 고치거나 시작점을 바꾸기만 해도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죠.
일단 지금은 끝까지 들어주세요.
...그래.
쿠릉...! 술집 밖에 천둥이 치더니 쏴아 하면서 빗물이 쏟아졌다.
마침 그날도 비가 내렸다, 아마 오늘처럼 거센 비였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빗줄기 사이로 또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같은 시간, 포르츠하임 마을, 엠마-아자니 거리.
골목길 뒤에 숨은 MP41은 슬금슬금 한 여자를 미행하고 있었다. 마인드맵 속 감시 녹화 영상과 여러 번 대조하고 분석하면서 그녀의 얼굴은 점점 희열로 뜨거워졌다.
저게 바로 카라비너 선배에게 엽서를 보낸 그 여자구만? 이렇게 쉽게 찾아내다니...
선배의 옛날이야기를 엄청 많이 알고 있겠지? 거기서 뭐라도 캐내기만 한다면...
MP41의 입이 저절로 찢어지며 목구멍에서 낄낄 소리가 났다.
그쪽이 선배하고 무슨 사이인진 몰라도 이 MP41을 만난 건 운이 다한 겁니다!
오늘 제가 직접 당신을 지휘관님과 카라비너 선배 앞으로 끌고 갈 거예요! 선배를 꼭 붙잡아두라구요, 지휘관님!
속으로 조용히 기도하고 MP41은 추적을 계속... 하려고 했다.
갑자기 어디 갔지?
MP41은 놀라서 벽 뒤의 그늘에서 뛰쳐나왔다. 방금 전만 해도 거기에 있던 여성이 갑자기 사라졌다.
MP41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 여자가 도망친 방향을 찾아내려 했다.
그럴 리가!? 내 앞에서 도망치다니, 이 무슨 커리어에 길이 남을 치욕!
지금 나를 찾니?
아뿔싸——!
MP41이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사제로 제작된 대인형용 전기충격기가 그녀의 등에 닿았다.
파지직——
찌릿찌릿한 전류가 온몸에 퍼져 MP41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MP41이 한참 동안 미행하던 그 여성이 길가의 버려진 방 창문을 타넘고 나와 충격기를 훅 불었다.
경험이 쌓이면 성장한다지. 너네 인형 상대로 힘만으론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고.
여자는 MP41의 옷깃을 질질 끌고서 으슥한 골목 끝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