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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 3
1년 전, 마테우스, 적의 거점 안.
강물을 타고 적의 진지로 잠입한 후 저희는 신속하게 적절한 돌입 지점을 찾아냈습니다.
순찰하는 병사를 각개격파하는 계획을 세우고 강가에 있는 적의 초소에 돌입했죠.
라에는 겉으로는 평소처럼 진지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척을 했지만, 그녀가 계속 저를 바라보며 할말이 있으면서도 꾹 참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전방 양호!
이쪽도 양호!
다 깨끗이 청소한 모양이군, 모두 잠깐 정비하면서 전력을 보충하도록 해.
예!
......
군용인형들은 각자 산개하여 안전한 포트를 찾아 에너지를 보충했어요.
제 곁엔 또 라에만 남았고, 저는 그녀가 그 질문을 꺼내길 기다렸죠.
...대위님.
뭐지?
다 끝나면 뭘 하실 겁니까?
하지만 여전히 그 질문을 꺼내진 못하더라고요.
집에 가야지.
집인가요...
탄흔으로 가득한 벽에 머리를 기댄 라에의 눈빛은 또다시 공허해졌죠.
저는 이미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그럼 아네트의 시계를 어디에 가져갈 셈이지?
그 물음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전 이미 답을 머릿속에 떠올렸어요.
라에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고향에 갈 생각이 없었죠. 아네트의 시계 자체가 고향과의 연결고리고, 그 시계를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향으로 이어진 실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실 저편에 아무것도 없다 해도요.
그럼 대위님은요?
그렇게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는 건 집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겁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내겐 고향이 없어, 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저와 같은 처지네요.
그렇지.
라에는 고개를 기울이고 제 방탄모 틈으로 제 눈을 보려고 했어요.
설마 그 정도 죄를 저지르고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
계속 있다 보면 그 비밀은 결국 들통나고 말 겁니다.
지금 저 쇳덩어리들이 없는 틈에 대위의 제복을 벗고 도망치시죠.
그럼 너는?
저는 남아서 당신이 충분히 멀리 갈 때까지 저놈들의 발을 묶을 겁니다.
추적 따돌리는 데는 선수니까 절 걱정할 필요는 없고요.
그런 다음엔, 어디에 가려고?
......
새출발할 생각은 없나 보군?
아네트의 시계를 묻고 나면 죽을 장소를 찾을 생각이겠지...
그건 당신이랑 관계 없잖아요! 빨리 가라고요!
저는 라에의 재촉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난 도망치지 않아, 라에. 난 끝까지 싸울 것이다.
......
군용인형들의 가지런한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라에의 눈엔 다시 그늘이 드리워졌어요.
출발하자. 적의 지휘소가 바로 코앞이다.
성대한 폭발을 엄폐물 삼아서 저희는 적의 방어선을 하나씩 돌파했습니다.
적의 주요 병력은 숲과 주요 교통로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숲에 있는 병력이 돌아오기엔 이미 늦었고, 도로를 지키는 병력은 인형 소대에 격멸된 상태였죠.
하지만 그래도 우린 큰 대가를 치러야 했어요.
......
저는 쓰러진 군용인형들의 소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잔해에 불이 붙어 온 세상에 밝은 주황색만 남은 것 같았죠.
대위님, 죄송하지만 저희는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계속 전진하여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십시오.
맹세하지.
레이너드 대위님...
그래.
가능하다면... 대위님의 권한으로...
저희를 새 소체에 복원을 신청해...
......
군용인형이 소원을 다 말하기도 전에 라에가 그들의 코어를 뽑아 제게 줬어요.
이룰 수도 없는 환상인데 다 들어봤자 괜히 우울해질 뿐입니다.
라에는 폐허를 뒤져 탄약을 보충하고선, 뒤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갑시다, 대위. 바로 앞이 지휘소입니다.
타타탕——저와 라에의 침착한 전진으로, 고립되어 악만 남은 저항 병력들은 총성에 쓰러졌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하는 데 꼭 긴 과정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아주 짧은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산사태처럼 무너질 수도 있죠.
끝까지 퇴각하지 않고 전사하길 선택한 병사들의 주검을 넘어서, 저는 마침내 수개월 동안 그토록 넘길 바랐던 문에 도착했어요.
쑥대밭이 된 지휘소 안에는 얼마 안 남은 적들이 이미 자결한 채 쓰러져 있었죠. 그들은 진작에 한계에 다다랐던 거예요.
라에, 쓸만한 정보가 있는지 찾아봐라.
예.
저는 점령한 거점의 정보를 지휘부에 전송했습니다.
적의 마지막 거점을 제거했으니, 남은 것은 협상 테이블에서의 설전뿐이었죠.
물론 저한텐 이제 전부 끝난 일이었지만요.
거점 점령 성공, 임무 완료.
이제 집에 갈 수 있다.
...하.
그래요?
라에는 건조한 쓴웃음을 짓고서, 품에서 자신의 회중시계를 꺼내 돌벽에 내리쳤어요.
시계는 그 순간 멈춰버렸죠.
왜 그러는 거지?
레이너드 대위...
라에는 바로 총을 들어 저를 겨눴어요.
총 놓고 손 들어.
......
결국 이 순간이 찾아왔죠.
저는 그녀의 말에 따라 천천히 총을 내려놨어요.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는 아나?
......
그녀는 제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방아쇠를 천천히 당겼어요.
슬로우모션처럼 일부러 아주 천천히요. 제게 반격할 시간을 주려는 것이었죠.
미세하게 떨리던 총구는 한참을 주저한 끝에야 불을 뿜었어요.
타——앙!
총알은 제 방탄모를 스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기세로 벽의 스크린을 박살냈습니다.
......
정말 반격 안 할 셈이야?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내 손에 죽고 싶은 거냐고!
두 발째는 안 봐줘!
라에는 사격자세를 유지한 채 손가락을 방아쇠에서 떼지 않았어요.
쏘기 전에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
뭔데?
왜 레이너드 대위를 죽인 거지? 그 대위가 아네트의 죽음과 무슨 관련이 있나?
......
콰르릉——천둥이 터지고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비 내리는 오두막 안에서 라에의 표정은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았어요.
몇 개월 전, 마테우스 거점으로 향하는 길가.
눈이 녹은 후로 산길은 온통 진창이 되어, 병사들을 가득 태운 수송차량은 진흙에 바퀴가 빠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라에와 아네트는 차에서 내려 길가에서 대기해야 했다.
라에, 전장 속보 좀 그만 봐! 가끔은 마음도 풀어야지.
마테우스의 전보가 아주 즐거운걸, 지금 여기서 우린 절대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어.
양호한 군장, 훈련 잘된 병사들, 상대는 며칠째 포위되어 보급이 끊긴 고립된 거점.
눈 감고도 따낼 수 있다고.
드디어 끝나는구나!
그러게...
그리고 그리고, 라에, 저길 봐봐. 우리 집 여기서 엄청 가까운 거 아냐?
산 밑의 안개로 흐릿한 구역을 가리키면서 아네트는 흥분해 하며 재잘거렸다.
응, 마테우스는 포르츠하임에 가깝지. 그런데 마을이 다 불타버렸다고 들었어...
괜찮아! 사람만 있으면 고향은 금방 복구할 수 있어!
어차피 이 전쟁도 곧 끝날 건데, 잘하면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낼 수도 있을 거야.
응. 이게 적의 마지막 거점이지. 이것만 처리하면 우린...
집이다! 집에 간다!
그래!
마음 속엔 걱정이 많았지만, 라에는 아네트의 열정에 맞장구쳐 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레이너드 대위는 그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위인이 아니었어.
그저 가족 인맥으로 그 자리에 올라온 귀족 아가씨였지. 인명경시는 기본이고, 사납고 충동적이고...
쓸데없이 마테우스에서 시간만 질질 끌어서 아군의 우세를 열세로 만들어 버렸어.
......
당신도 그녀를 접해봤겠지, 그리 오래 같이 지낼 필요도 없어, 그냥 몇 마디만 하면 바로 알 수 있었을 거야.
그래, 내 원래의 지휘자가 전사하고 레이너드 대위가 우리 지휘권을 인계받았지.
그렇다면 이틀 전의 일도 아주 잘 알겠네.
이틀 전, 적 거점 동쪽의 밀림 지대.
상부에서 정한 최종 기한을 통지받고, 조바심에 미친 레이너드 대위는 무리수를 던졌다.
소수의 인형 부대를 미끼로 적의 주요 교통로 상의 화력을 유인하고, 자신은 나머지 잔존병력으로 정찰도 하지 않은 삼림지대를 통과해 적의 지휘소를 기습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적은 주요 교통로에 화력을 배치했을 뿐만 아니라 지휘소에 가까운 삼림지대에도 매복을 깔아놨다.
전혀 지형을 모르는 상황에서 연이은 패배로 사기가 바닥을 치던 부대는 순식간에 와해되어버렸다.
도망치지 마라! 돌격해!
타타탕——!
적의 그림자는 어둡고 고요한 밀림 사이에 숨어있고, 총알은 마치 놀란 새떼처럼 쏟아졌다.
총알 세례에 레이너드 대위가 이끄는 대열이 무너지고, 죽음의 기운을 품은 검붉은 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어났다.
후퇴해야 합니다, 대위님! 엄폐물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후퇴다! 후퇴!
밀림 밖에 있는 병사들은 숨을 엄폐물이 없어 근처 나무 사이로 뛰어야만 했다.
누가 도망치는 거냐!? 도망치지 마라!
......
사방으로 흩어져 엄폐물을 찾는 병사들과 적의 매서운 화력 사이에서, 여전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레이너드 대위는 마치 격류 속에도 꿈쩍하지 않는 바위 같았다.
대위가 권총을 꺼냈다.
타앙——!
달리던 병사 한 명이 쓰러졌고, 더 많은 병사가 그녀 옆에서 도망쳤다.
익숙한 모습이 도주하는 인파를 거슬러 쓰러진 병사 옆에 달려왔다.
아네트!
도망치지 마! 도망치지 말라고!
피아 양쪽의 화력이 겹치니, 질서있던 퇴각마저 엉망진창이 되었다.
왜... 왜 여기서 총을 쏘는 겁니까!?
라에는 눈을 찢어져라 부릅뜨고서 아네트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빗발치는 탄막 때문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비탈길을 따라 미끄러져 가장 가까운 숲 안으로 뛰어들었다.
퍼엉! 포성이 뒤에서 울렸다.
펑! 펑! 레이너드 대위의 광기에 전염되었는지 적은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다.
잠시 후, 전장의 초연이 서서히 흩어졌다.
라에는 먼지구름 속에서 생존자를 찾아다녔다.
아네트! 너 어딨어!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된 평원 위에서, 라에는 겨우 아네트를 찾아냈다.
나... 발이 걸려 넘어졌어...
......
아네트는 이미 숨을 멎은 부상병 옆에 누워있었다. 얼굴에 띄운 혼이 나간 미소는, 아마도 라에를 안심시키려는 것일 테다.
피가 그녀의 복부에서 콸콸 흘러나왔고, 라에는 말없이 붕대를 손으로 압박했다. 하지만 아네트는 라에의 손을 잡아당기고는, 자신의 회중시계를 꺼내서 쥐여주었다.
난 이미...
괜찮아... 의무병한테 데려가 줄게, 치료하면 나을 거야. 같이 집에 가서 크리스마스 보내야지.
따듯한 화로 앞에 모여서 네 외할머니가 만든 감자튀김도 먹고, 올해는 누가 선물 들고 찾아오나 수다도 떨고...
라에가 중얼거리는 사이 누군가 그녀 등 뒤에 나타났다.
그녀는 이미 늦었다, 병사. 즉시 일어나라, 전선에 네가 필요하다.
아뇨... 그럴 리...
라에... 라에...
철컥,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
더없이 익숙한 소리이지만, 이 순간엔 더욱 가슴이 철렁했다.
집에... 가고 싶어...
비켜!
타앙——!
뜨거운 피가 라에의 얼굴에 튀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
라에는 자신이 미친 듯이 총을 쏴대며 레이너드 대위에게 올라타 피곤죽을 만들어놓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라에는 그저 얼음 조각상처럼 아네트의 옆에 주저앉을 뿐이었다.
일어나라, 병사! 빨리 일어나!
......
레이너드 대위가 라에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지만, 라에의 시선은 여전히 아네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 한심한 자식!
라에에게 욕을 뱉고선 레이너드 대위는 다른 부상병을 응급처치 중인 병사에게 다가갔다.
부상병을 신경쓸 시간이 없다! 당장 돌격하라! 적은 이미 총알이 바닥났다!
......
비켜! 쓸모 없는 부상병한테 계속 시간 낭비하지 말란 말이다! 돌격해, 다 일어나 돌격하라!
타앙——!
잔혹한 총알이 또 젊은 생명을 앗아갔다.
......
살아있냐!? 살아있으면 가서 싸워라!
못 일어나겠어? 그럼 넌 이제 쓸모 없다!
타앙——!
끓어오르는 열이 심장을 감싸고, 용암 같은 혈액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라에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레이너드 대위 뒤에 서 있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경외했던 모습이 이토록 야윈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차분하게 권총을 꺼내 레이너드 대위의 방탄모를 벗기자, 어리둥절한 얼굴이 이쪽으로 돌아왔다.
누구냐!? 계급이 뭐길래 내 방탄모를 벗겨? 너는 즉시——
......
라에, 라에 프리지.
꺼져!
라에는 레이너드 대위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탕탕탕——!
전장으로부터 도망치는 길. 권총은 진작에 버렸음에도, 라에는 여전히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철컥, 철컥.
절망적인 소리가 계속 울렸다.
라에는 목적 없이 그저 길을 따라 앞으로 걸었다. 어디가 종점인지도, 어디로 가야 집이 나오는지도 모르는 채...
그리고 결국...
결국에 당신한테 붙잡혔지.
라에는 거의 무덤덤하게 모든 일을 진술했습니다. 디테일이 많이 생략됐다는 건 알아요. 고통과 절망, 그리고 어둠의 소용돌이가 디테일을 집어삼킨 것이죠.
그녀는 다시 총을 들었어요.
죽기 전에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줘.
......
저는 천천히 방탄모와 제복을 벗고, 저를 감싸고 있던 껍질에서 낑낑거리며 나왔죠.
이러면 됐나요?
잠깐만, 넌 본 적이 없어. 넌 대체 누구야!?
7번 인형보병분대 분대장 350109호예요.
인형이라고...? 어째서...
군용인형도 아니잖아, 그럼 인간보다 더 쉽게 도망칠 수 있잖아!?
라에의 떨리는 총구 앞에서 저는 그저 가볍게 웃어보였죠.
...흥.
인형이든 인간이든 죽음 앞에선 다 평등하지.
자, 그럼 누가 죽을지 운명에게 맡겨보자고.
어떻게 할 셈인데요?
내가 셋둘하나 하면 서로를 향해 쏘는 거다, 살아남은 쪽이 떠나는 거야.
......
왜 한 명만 살아남아야 하죠? 우리 둘이서——
우리 둘은 치명적인 비밀을 공유하고 있어. 어느 쪽이 들키든 다른 쪽의 파멸을 초래하게 돼.
안전을 위해 한쪽만 살 수밖에 없어.
......
정말 그 이유로 서로 쏘자고 하는 건가요?
당신이 정녕 살고 싶은 거라면 우리 단둘이서 있을 기회는 많아요, 당신도 분명——
이거 받아.
라에가 다른 권총을 제게 던졌어요.
이제 센다.
......
저는 제 무기를 쓰겠어요.
더 좋지.
라에는 손에 든 소총을 내려놓고, 권총을 장전하고 안전장치를 풀었습니다.
준비됐어?
네.
셋——
저는 제 코트 안 주머니에 손을 넣었어요. 제가 오랫동안 숨겨둔 무기에 손이 닿았죠. 툭하면 깨질 것 같은 감촉은 저의 아주 예전 기억을 떠오르게 했어요. 전우들과 함께 훈련하던 시절...
둘——
그리고 그 무기는 이미 희생했던 전우에게서 훈련 중 받은 선물이었죠.
하나——
소리가 공기 중에 퍼지는 순간, 둘은 동시에 팔을 들었어요.
타앙——!
총성은 한 발뿐이었어요.
너...
날 놀리는 거냐!?
......
라에의 총알은 제 팔에 비스듬히 맞았어요. 그리고 제가 라에에게 꺼낸 것은——
구리색의 7.92x57mm 구경 소총탄이었죠.
겉에 흠집이 좀 있지만 그래도 멀쩡한 물건이었어요.
이걸 당신에게 드리고 싶어요.
......
이건 제가 동료와 함께 훈련을 받을 때, 동료가 마지막 남은 총알을 제게 준 것이에요.
그냥 평범한 총알이죠. 하지만 이걸 볼 때마다 저는 그때 역경을 헤쳐나갈 때의 심정이 떠올라요.
총알이 한 발밖에 안 남았다 해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상기시켜 주죠.
저는 라에에게 다가가 그녀 손에서 권총을 빼내고 총알을 그 떨고 있는 손바닥에 얹었습니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왜냐고요? 그건 이야기가 좀 길어지겠는걸요...
오늘, 포르츠하임 마을의 한 술집.
쓸쓸한 빗소리 속에서 지휘관은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그 소문이 다 사실이었구나. 레이너드 대위는 무능해서 작은 거점 하나조차 한참 동안 함락시키지 못했어...
그런데 마지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것이 바로 너였다니...
저뿐만이 아니죠. 거기서 희생한, 기록되지 않은 병사들 모두 최후의 승리에 모든 힘을 바쳤어요.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아무 말씀도 필요 없어요, 지휘관님. 다 이해하니까요.
좀 더 일찍 들었으면 좋았을걸. 나도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분담해줄 수 있었을 텐데.
그 말씀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답니다...
나는 지휘관과 다시 잔을 부딪치고 여전히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그럼 이제 시점과 시간을 바꿔서 이야기를 할 차례 아닐까?
네, 지금부터는 저의 이야기를 해야죠.
레이너드 대위가 아니라, 350109호로서의 저의 이야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