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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 3
......
어두운 방 안에서, 찰리는 홀로 빛이 새어드는 창가 밑에 웅크리고 있었지만 기분만은 무척이나 통쾌했다.
그 인형은 단순히 탈영병이기만 한 게 아니라 전범이기까지 했다.
어떻게 아버지를 구워삶았는진 몰라도, 더는 상관없었다. 더 늦기 전에 그녀의 정체를 모두에게 까발렸으니까.
...도련님.
반성 시간 끝났어?
......
흥.
찰리는 방에서 나와, 며칠만에 햇볕을 직접 받으며 기지개를 켰다.
......
그날 오후는 평소보다 훨씬 조용했다.
찰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말없이 옆에 서 있기만 하는 경호원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이제 서재로 가면 돼?
아버지가 이대로 잔소리도 안 하실 리가 없는데.
...아니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어르신께서, 도련님은 바로 교실로 가라 하셨습니다.
찰리는 곧장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경호원이 덧붙인 한마디에 다시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분들과 새로 온 선생님과 인사해야 한다셨습니다.
새 선생님...?
가정교사 새로 불렀다고?
그렇다는 것은...
그 자식 쫓겨났구나?
...네, 곧 떠날 예정입니다.
도련님이 찾아내신 소식은 파장이 생각보다 훨씬 엄청났습니다.
리엔필드는 탈영병일 뿐만 아니라 폭주 인형이었더군요.
폭주?
찰리는 잠깐 멈칫했다.
네.
왠지 모를 위화감에, 찰리는 코끝을 문질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찰리는 그 위화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멀리 던져버렸다. 더는 아무 상관 없었다.
"내가 이겼다."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
......
찰리!
찰리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이 그를 반겼다.
너희 셋 다 여기 있었구나.
새로 왔다는 선생은?
아까 조니가 창 밖으로 던져 버렸어.
무슨 어디 교장인 줄 알았다니까, 촌스럽게스리 단안경이 뭐야?
그딴 영감탱이 밑에서 공부하기 싫어.
보나마나 쓸데없는 거나 잔뜩 외우게 시킬 거 아니야.
흥... 그건 그래.
찰리는 그 교사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무 상관 없었다.
그 불쌍한 교사보다, 친구들의 미묘한 분위기가 눈에 띄었으니까.
...아직도 그 탈영병 생각해?
......
......
누, 누가 그딴 녀석 생각한대!?
그런 범죄자를 한 달 넘게 선생님이라 부르다니...
어휴 쪽팔려!
우리 엄마는 정말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네 아빠랑 대판 싸우기 직전까지 갔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시우스 씨 당신이 어떻게 우리 애들을 폭주 경력까지 있는 인형한테 맡길 수가 있어요!?" 이렇게.
우리 모두 속은 거야.
찰리 말대로 영웅이 아니라 사기꾼이었어.
네가 정체를 밝혀내서 다행이라니까, 안 그랬음 아직도 속고 있었을걸?
알았으면 됐어.
찰리는 손을 내저었다.
그나저나 내 가방은? 아직 여기 있지?
응, 네 자리에 있어.
왜 아버지가 그딴 자식을 감쌌는지 모르겠다... 어휴, 내 가방도 여기 둔 채로 바로 반성실에 가두고는...
......응?
왜 그래?
뭐야 이거?
찰리의 가방 밖으로 그의 것이 아닌 리본이 늘어져 있었고, 주욱 잡아당기자 가방 속에서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멋들어진 훈장이 나왔다.
뭐야, 이거 누구 짓이야?
그런데, 훈장을 본 조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아... 용기병 훈장이다!
응? 뭐야 그게?
왕실 최고 명예 훈장 중 하나야.
수훈자가 국가와 국민에게 아주 큰 공헌을 했다는 증표래.
이거 받은 사람은 세금 안 내도 된다더라!
국가반역죄만 아니면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이 훈장을 반납하는 대신 감형받을 수도 있댔어.
...그런 걸 왜 그렇게 잘 알아?
세 명이 갑자기 동시에 입을 꾹 다무는 것을 본 찰리는 바로 알아챘다.
그 여자가 가르쳤구나?
어어... 그땐 아직 그 인형이 사기꾼인 거 몰랐을 때였는걸!
됐어.
그래서, 이건 그 자식이 두고 간 거겠네?
...왜지?
세 아이들은 서로 멍하니 마주보다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널 달래려고 그런 게 아닐까? 그럼 안 쫓겨날 줄 알고.
그렇게 멍청할 리가... 내가 마을 전체에다 소문을 쫙 퍼뜨렸는데.
내가 마음 바꿔먹었어도 결과는 안 변했을 거야.
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그 인형은 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걸 두고 갔을까?
똑똑똑.
안녕하세요 친구들, 잠깐 괜찮을까요?
누, 누구세요?
그쪽의 도련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기자 아저씨?
......
네...? 그녀가 인정했다고요?
접객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해 들은 조지는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우쭐대며 설명한 찰리는 손의 훈장에 자꾸 정신이 팔려 대화에 좀처럼 집중이 되질 않았다.
다, 당연하잖아요, 인정 안 하고 배기겠어요?
이건... 제 예상을 아득히 벗어났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기대했던 방향도 아닙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저로서도 더는 뭘 어떻게 할 수 없겠군요.
괜찮아요, 이걸로 됐어요. 할일은 다 한 셈이잖아요.
물론 아저씨가 준 정보 덕분이에요.
아저씨 덕분에 그 인형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어요. 사기꾼에 살인마란 걸요.
옛?
조지가 한층 더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제가 드린 자료로 어떻게 그런 평가가 나왔죠...?
...그게 무슨 뜻이에요?
찰리는 훈장을 쥐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조지가 찻잔을 내려놨다.
이런... 아무래도 큰 오해가 있었나 보군요. 제가 도련님에게 드린 자료는 그저 당시의 재판 기록일 뿐이에요.
당신이 전술인형인 그녀가 왜 군을 떠났는지 이유를 알려 달라 했기에 보여드린 겁니다.
네, 본인인 죄를 인정했다는 신문 기사도 봤어요.
제가 뭘 오해했단 거예요? 재판을 통해서 공식으로 밝혀진 진실 아니에요?
그 재판은 공정성이 의심스럽습니다. 그 사건 뒤로 더 큰 사건을 덮으려 한 게 분명해요. 제 의혹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헛소리라 여겨진다면, 한번 생각해보세요.
폭주 경력이 있는 인형이 어떻게 재판까지 받고도 여태까지 멀쩡하게 돌아다녔겠습니까?
더 큰 사건...? 무슨 사건이요?
그날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입수한 정보로는, 그녀의 소위 "폭주"란 장교의 명령에 대한 항명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뭐어야... 전술인형이 항명이라니, 그게 가장 심각한 폭주잖아요?
그렇죠?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 항명이 "민간인 사살"에 반발한 것만 아니었다면.
?!
아주 잠깐, 찰리의 숨이 턱 막혔다.
그가 훨씬 어렸을 적부터 그를 옭아매던 악몽이 다시 떠올라, 긴장감에 동공도 수축했다.
언제 말라버렸는지 모를 입술을 핥고서, 찰리는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러니까... 민간인 사살 명령을 거부했다고요...?
네. 제가 조사한 바로는 그랬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 여자는... 그럼 그 여자는 왜 안 말했어요...?
네?
그게 정말이라면 왜 해명하지 않았는데요?
제가 얼굴에다 대고 겁쟁이에 살인마랬는데...
왜 한 마디도 반박하지 않았어요?
그녀가 "연루"된 사건으로 그녀의 전우들이 모두 전사했고, 오직 그녀만 적진의 후방에서 회수되어 생환했거든요.
찰리는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고, 피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는데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게 다 자기 책임이라 생각한다고요?
그렇겠죠.
겁쟁이...
온통 뒤죽박죽이 된 찰리의 머릿속에서, 전부 폭로했을 때 리엔필드의 슬픈 표정이 떠올랐다.
이 얘기를 듣고 나니, 그녀에게 깔보인 기분이었다.
이런 거짓된 승리라도 양보하면 자신이 만족하리라 여겼을 것이라 생각하니, 깔보인 기분이었다.
그리고 제 생각에 말입니다만, 도련님이 이 일을 밝히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떠났을 겁니다.
마침 얼마 전 제 상사한테서 연락이 왔거든요.
군한테서 압박이 들어왔답니다, 저한테 조사를 그만두게 하라고요.
아마 그들 중 누군가가 민간인 사살 명령을 내렸단 사실이 밝혀지길 원치 않는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보도 안 할 거예요?
저는 오늘 도련님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사실 그녀와도 마지막으로 말이라도 좀 나눠보고 싶었습니다만...
찰리가 쏘아보자, 조지는 바늘처럼 따가운 시선에 맥없이 한숨을 쉬었다.
어휴... 네, 보도하지 않을 겁니다.
언론인으로서 진실을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월급쟁이로서 밥그릇이 더 소중한 걸 어떡하겠어요.
모가지도 달아나기 싫으니, 적당히 이쯤에서 물러나야죠.
그리고... 그녀 본인도 굳이 누명이 벗겨지길 바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거 참 이상하네요, 도련님이 저보다 그녀를 잘 알 거라 생각했는데.
...별로 안 친했는데요.
리엔필드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용기병이었습니다.
제가 취재한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녀가 한 명의 전술인형으로서 신중하고, 용감하고, 이성적이었다 증언했어요.
그 재판은 분명히 잘못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까집니다, 더는 취재도 조사도 못 합니다.
대신 도련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물론 당신이 원한다면의 이야기지만.
조지는 새 명함을 꺼내 찰리에게 건넸다.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
찰리는 명함을 손에 쥔 채 침묵에 빠졌다.
조지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 더 말하지 않고 자신의 외투를 집으며 일어나 모자를 쓰고 이만 떠나려 했다.
...그 여자, 저한테 용기병 훈장을 두고 갔어요.
찰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의미 같아요?
......
조지는 잠깐 생각했다.
훈장이란 명예입니다.
도련님은 전쟁을 싫어한댔죠? 잠깐이어도 도련님의 가정교사였던 그녀가 양도한 훈장이라면, 군 복무를 면제받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말을 마친 그는 가죽 가방을 들곤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오직 찰리만 혼자 남아, 멍하니 찻잔을 바라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