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VAL
MOD 2
그러던 어느 날... 곰 세 마리가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니, 따뜻한 보금자리는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습니다.
깨진 접시 조각투성이인 식탁, 부서진 의자, 여기저기 찍힌 침입자의 발자국... 그 광경에, 아빠 곰과 엄마 곰은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아기 곰을 정말로 슬프게 한 것은...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할 각오도 했지만, 다행히도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 같았다.
AS Val이 잔해 속에서 몸을 일으켜 보니, 적어도 품속의 곰인형은 멀쩡했다.
윽... 아파...
아... 곰돌아,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은?
추락한 곳은 새하얀 설원이었다.
곤두박질친 헬리콥터의 파편과 전술인형들은 추락 지점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다행히, 그중 몇 명이 일어났다.
다른 사람 없어?! 살아있으면 대답해!
나 여기 있어!
Val도 살아있구나! 다행이다...
모두 괜찮아? 무사해?
마지막 순간에 헬리콥터가 균형을 잡는 데 성공해서, 거의 다 살아는 있어.
...무사하다고는 못 하겠지만.
9A91은 사지가 절단되어 신음하는 인형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고, 74U는 추락 도중 튕겨져 나간 인형들을 수색했다.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우리 셋뿐인 것 같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마지막 헬리콥터에 타서 철수 도중 추락했는데... 살아남았다 해서 운이 좋다고 할 순 없어.
기지에 돌아가면 분명 모두가 비웃을 거야.
큰 재난에서 살아남으면 큰 행운이 온다는 말도 있잖아.
다 세어 봤어. Val이 마지막이야. 탑승 인원 전부 찾았어.
왜 추락한 걸까?
뭔가에 맞은 거겠지. 대공포든 미사일이든.
어쨌든, 본부에 구조 요청을 보내야 해.
헬리콥터가 완전히 박살 나지는 않았으니 아직 무전기가 작동할지도 몰라.
그럼 역할을 분담하자. 9A91은 여기 남아서 통신기기를 수리해.
왜 나야?
말을 꺼낸 게 너니까.
그리고 저번 작전에서 부상을 입었는데 전력으로 싸울 수나 있겠어?
네가 희망을 찾아냈으니, 실천하라고.
너흰 뭘 할 건데?
나랑 Val은 각각 남쪽과 북쪽을 경계할게... 적의 공격으로 추락했다면, 근방에도 적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적과 마주치면 어떡해...?
되도록이면 그런 상황은 피해야겠지만, 정 어쩔 수 없으면 맞서 싸워야지.
지금 우린 마인드맵 백업도 못 해. 동료들이 여기서 파괴되었다간, 진짜 영영 사라지는 거야.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
알았어. 만약 우리가 적을 놓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9A91가 알아서 처리해.
자, 그럼 움직이자.
저기...
Val, 기지에서 다시 보자.
...응, 나중에 봐.
AS Val은 총과 곰인형을 챙기고, 헬리콥터 근처의 관측 지점으로 향했다.
혼자 설원 위를 걸으며,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무전기를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적이 나타났을 때 처치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9A91과 74U는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실패할 가능성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는 척하고 있어.)
......
둘 다... 너무나도 상냥해.
사수할 언덕에 도착하자, AS Val은 총을 거치한 뒤 곰인형을 품에 안고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곰돌아, 너도 기억하지? 내가 그리폰에 처음 온 날, 너 말고 다른 친구가 하나도 없었던 나에게 그 둘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어.
하아... 만약 우리 모두 무사히 돌아갈 수가 없다면, 적어도 그 둘만이라도 무사하면 좋겠어.
...왜냐고? 만일 내가 죽는다면, 나를 위해 슬퍼해줄 사람은 곰돌이 너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9A91이랑 74U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슬퍼할 거야.
응, 맞아. 그게 좋아.
역시 곰돌이 네가 최고야. 이런 말은 곰돌이 너한테 밖에 못 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엔 너무 창피해... 응?
멀리서 인기척을 느끼자, AS Val은 몸을 움츠렸다.
대규모의 군용 자율인형 부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결코 전술인형 몇 명이 상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9A91, 무전기는 다 고쳤어?
이제 방금 배터리를 확인하고 재가동했어. 지금 설명서를 읽는 중이야.
정말이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설계했을까?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다니, 무슨 일이야 Val? 그쪽에 상황 발생했어?
북측에서 군용 인형 다수 출현...
대형 유닛은 없지만, 수가 엄청나. 추락 지점으로 접근하려는 것 같아.
알았어, 내가 그쪽으로 갈――
네가 올 필요는 없어. 내가 저들을 유인해서 시간을 벌게.
뭐? 야 너...!
AS Val은 그대로 통신을 끊고, 곰인형을 껴안았다.
나도 친구들을 돕고 싶어.
가자, 곰돌아!
AS Val은 숨을 깊게 들이쉰 뒤, 산턱의 엄폐물에서 뛰쳐나와 군용 인형 부대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소음기에서 뿜어져 나온 총알은 군용 인형 몇 기를 쓰러뜨리는 데 그쳤고, 나머지 부대가 총성의 방향을 분석하고는 곧장 AS Val이 있는 방향으로 반격했다.
예상대로야...
인간이 직접 지휘하지 않는 한 자율인형은 수색보다 교전을 우선시해.
적을 섬멸하기엔 화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AS Val은 몇 발 쏘고 엄폐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군용 인형이 반격을 멈출 때마다 다시 기습 사격을 가했다.
...그렇게 군용 인형 부대는 점점 헬리콥터에서 멀어졌다.
쫓아온다... 좋았어!
이제 거리를 충분히 벌린 다음 알아채지 못하게 복귀하면...
타타탕!
이쪽에서도?! 꺄악!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온 총알이 AS Val에게 명중했다. 뒤이어 날아오는 총알 세례를 AS Val은 엎드려 피해야만 했다.
무릎 관절 손상. 보행 불가능... 이젠 도망도 못 치겠구나.
이렇게 된 이상, 머릿수라도 최대한 줄이겠어!
절망적인 국면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AS Val은 침착하게 상황을 이해하고 다시 총을 들어 지평선 너머의 적을 조준해 방아쇠를 당겼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겠지?)
(마지막 순간이지만, 외롭지 않아. 적어도 곰돌이가 곁에 있으니까.)
(이렇게 끝나는 것도... 나쁘진 않아.)
하지만 가까운 위치에서 일어난 폭발이 전투에 심취한 AS Val을 덮쳤다.
콜록콜록... 총류탄...? 직격이 아니라서 다행이... 앗.
폭발에 부상을 입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던 중, 그녀의 시선은 품속에 고정됐다.
품속에 있었을 터인 곰인형은 솜뭉치밖에 없었다.
앗... 아아...
붙잡고 있던 총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작은 조각이라도 놓칠까, 떨리는 양손으로 솜뭉치를 쥐었다.
곰돌아... 안 돼... 곰돌이가... 빨리 고쳐야... 곰돌아... 제발...
AS Val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지고, 패닉에 빠졌다.
곰돌이가 없으면...
난... 여기서...
여기서 혼자 외롭게 죽는 거야...?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다른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고막이 터질 듯한 총성이 그를 덮었다.
압도적인 절망감에, AS Val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래도 역시... 아직 죽기 싫어.
죽기 싫으면 그 총 다시 들어!
어...?
뭘 멍하니 있는 거야?! 여기서 쓰러지면 어떡해!
마인드맵이 박살 나면 정말 끝장이라고! 일어나서 싸워! 돌아가면 가만 안 둘 거니까 각오해!
어느샌가 곁에 나타난 74U가 AS Val에게 소리쳤다.
환각일까? 곰돌이를 잃은 슬픔을 잊으려고 환상을 만들어낸 걸까?
AS Val은 손에 쥔 솜뭉치를 코트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떨어트린 총을 다시 집어 들었다.
......
총성은 멈추지 않았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다가왔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