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VAL
MOD 4
완전무장한 인형들이 수송 헬리콥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전 투입을 기다리는 인형들 옆으로,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인형들이 지나갔다.
임무가 끝나면 바로 다음 임무에 투입되고...
지휘관이 돌아오고 난 뒤론 도통 쉬지를 못했어.
좋은 일 아니야? 예전엔 우리 모두 벤치나 데우는 신세라 한탄했으면서.
지금은 군수지원은 물론, 정찰이나 전장 청소로 한가할 틈이 없잖아.
그래도 예비 부대일 때가 더 자유로웠다고!
그리고 9A91이나 나 같은 떨거지들로 머릿수만 채운 부대한테 무슨 중요한 임무를 맡기겠어?
누구보고 떨거지라는 거야...
그건 내 탓도 있을 거야. 지휘관님께서 아직 새 소체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고 하셨거든.
어휴... 너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그렇게 뜯어고치는데 왜 우리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어?
안 어울려?
9A91과 74U는 AS Val의 주위를 빙빙 돌며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찬찬히 훑어봤다.
안 어울린다는 건 아니고...
아침에 네가 막 복귀했을 땐 자세히 안 봐서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Val 너 정말 엄청 많이 변했구나.
맞아, 전혀 몰라보게 변했어.
네가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거야.
응... 나도 처음엔 많이 어색했어.
하지만 이 새로운 소체는 전보다 힘이 더 넘치는 것 같은 느낌이야. 더 무거운 장비도 가뿐히 들 수 있게 됐고, 시야도 훨씬 맑아졌어.
전과 비교해서, AS Val의 체형은 많이 다부져졌다.
총기는 개조와 교정을 거쳤고, 더 이상 안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밖에 눈에 띄지 않는 변화도 잔뜩이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야 당연하지! IOP의 최신 기술로 개수돼서, 지금의 Val 누나는 평범한 민간용 자율인형의 규격을 아득히 뛰어넘었다구!
......
......
......
왜, 엄청난 성능에 놀라서 말도 안 나오는 거야?
IOP는 현재 전술인형 커스텀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절찬 제공 중! 지금 바로 전화하시면――
저기... 내가 저번에 말한 걸 이해하지 못한 것 같으니까 다시 말할게.
우리 셋이서 얘기할 땐 끼어들지 말아 줄래?
왜? 나도 AS Val 누나의 친구잖아? 친구는 다 함께 대화를 나눠야지!
친구의 친구가 꼭 내 친구라는 법은 없는데.
신참이면서 선배한테 존댓말도 안 하고, 한턱내지도 않고.
Val, 걔 너무 기어오르는 거 아니야? 74U도 신참한테 불만이 많은 것 같아.
병영 부조리! 신고할 거야!
저기 Val, 얘 원래 이렇게 시끄러운 녀석이었어? 전혀 안 어울리는데?
하하... 내 희망대로 인격을 설정한 건데, 설마 남동생이 이렇게 귀찮은 걸 줄은 몰랐어.
귀찮다니 너무해! 난 최신형 교감 학습 인공지능이란 말이야!
내 데이터베이스엔 전술인형 정비에 관련한 모든 지식이...
어쩌면 Val은 속으론 이렇게 시끄러운 아이였는지도 몰라.
그럴 리가. 난 Val이 과묵한 녀석이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걸?
일리 있는 말이야.
종종 어떤 말은 너희에게 직접 할 수가 없어서, 항상 곰돌이를 데리고 다녔어.
어쩌면... 곰돌이는 내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걸지도..
생각해 보면, 너희와 친구가 된 것도 엄청난 기적이라고 생각해.
오호라... 그럼 지금은 어때? 그렇게 시끄러운 녀석한테 속마음을 털어낼 수 있겠어?
염려 붙들어 매시라! 심리 상담에서 고민 청취까지, 인형에게 철두철미한 지원도 제공한다고!
비밀은 반드시 지키니까 얼마든지 내게 털어놔도 좋아, Val 누나!
AS Val은 자신만만해 하는 곰돌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솔직하게 속마음을 말했다.
그러네. 확실히 이제 더는 뭐든지 털어놓을 수가 없겠어.
그럴 수가! 날 믿어 줘! 누나를 믿는 나를 믿어 줘!
안 돼. 왜냐면... 친구는 서로 주고받는 사이니까.
일방적으로 푸념을 늘어놓는다면, 친구가 아니라 단순한 화풀이 대상이 될 뿐이야.
난 너희와 친구가 되고 싶어. 곰돌이의 친구도 되고 싶고.
그러니까, 친구에게 무슨 말이나 내뱉을 수는 없어.
그럼 왜 이렇게 만들었어? 그 말대로라면 이 시끄러운 곰돌이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역할을 맡을 수 없게 됐잖아.
좋게좋게 말해서, 얘는 이제 그냥 스팸 광고 스피커야.
괜찮아. 시간을 되돌릴 생각은 없어. 지금 이대로 만족해.
예전엔 성장하기 위해선 과거의 자신을 버려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어. 그 무엇도 버려선 안 되는 거였어.
그 말에 74U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왜 그래?
과거를 버리네 마네 하다니... 설마 Val한테서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어찌 됐든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야.
맞는 말이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결국엔 지나가니까.
만사형통할 수는 없지만, 항상 불행할 리도 없으니...
그래, 항상 불행할 리는 없어.
어... 그러니까, 난 여전히 Val 누나의 친구라는 거지?
말을 빙빙 돌리면 이해하기 힘들다구.
세 인형은 다시 AS Val의 품속의 곰인형을 바라보았다.
몇 초의 침묵 끝에 74U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핫! 그래그래, 새 친구를 환영할게. 참고로 우리 사이엔 새로 온 친구가 한턱 쏴야 하는 규칙이 있거든?
그리고 1주일 동안 숙소 청소도 도맡아 해야 해. 부탁할게, 곰돌아.
선임 곰돌이는 나를 대신해 총알에 맞아 장렬하게 희생했어. 부디 선임의 명예에 먹칠을 하지 말아 줘, 곰돌이 2세야.
친구를 위해 몸을 바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잠깐잠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친구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거 정말 병영 부조리 아니야?
네게 꼭 맞는 방탄 장비도 만들어 줄 테니까 안심해.
이번 정찰 작전은 전투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친구를 푸대접하진 않을 거야. 다음은 특등석에서 내가 싸우는 모습을 보게 해줄게.
아, 아무리 고성능 소체라 해도 쓸데없는 소모는 최소화해야...
그런데, 얘한테 맞는 사이즈의 장비가 있을까?
카리나한테 3D 프린터 같은 거 있나 한번 물어보자. 뭐, 없다 해도 번거로울 뿐이지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거야.
그 뭐더라, 방탄 합성수지라는 게 있었지?
그거 좋겠다, 당장 가자.
안전제일! 멍청한 짓 하면 안 돼, Val 누나!
......
숲속의 곰 가족은 새로운 친구를 만났습니다.
예전만큼 평화롭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죠.
그리고 아기곰도 깨달았습니다. 잃은 것이 있다면, 잃지 않은 것도 있고... 세상에는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이 잔뜩 있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