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416
MOD 3
...도시의 하수도 속 어딘가.
인형 밀매업자들은 건달과 불량배를 고용해, 주로 버려지거나 분실 신고된 떠돌이 인형들을 노렸다.
만약 홀로 외출한 고급 신형 모델이라도 발견하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납치했다.
인형과 주인의 소중한 추억은 그들에게 있어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납치한 인형을 그 즉시 초기화할 뿐이었다.
마인드맵이 공장 초기화되어 버린 인형들은 암시장을 통해 새 주인에게 팔고, 한물간 모델은 해체해 부품을 싼값에 팔았다.
지금 이 도시의 음침한 구석에는 인형 밀매업자들과 그들의 조무래기, 인형들... 그리고 인형들의 부품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아니 이보쇼, 약속이랑 다르잖아. 이렇게 멀쩡한 자율인형이 고작 그거밖에 안 해?
멀쩡하긴 개뿔이. 두부 함몰에, 얼마나 쏴 재꼈길래 몸에 구멍이 이렇게 숭숭 났어? 너라면 이딴 걸 사고 싶겠냐?
그리고 아직 움직인다 쳐도 수리비가 얼만데. 철 지난 모델이라 멀쩡한 부품이나 뜯어서 파는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그 이상은 못 줘.
아오...
그러니까 내가 적당히 하라고 했잖아.
참나, 그 두 년을 놓친 이후로 되는 일이 없다니까.
젠장, 요즘 수입 가지곤 입에 풀칠도 못 하겠네.
주변의 인형이란 인형은 누가 싹 다 쓸어갔나... 뉘신진 몰라도 수완 참 좋구만.
듣자 하니 어떤 장사꾼은 사기를 친다더라.
인형을 판 다음에 사람을 시켜서 그 인형을 훔쳐 와서 포맷하고 다시 판대.
오오, 그거 괜찮네! 같이 일할 사람을 알아보는 것도 좋겠는걸...
그때, 하수도를 밝히던 조명이 전부 꺼졌다.
뭐야, 정전인가?
으아, 아무것도 안 보이네... 휴대폰에 플래시 기능이 있어서 다행이지...
야, 잠깐...잠깐! 불 켜지 마!
뭐?
여자가 휴대폰의 플래시를 켠 그 순간, 하수도 저 끝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바람을 꿰뚫는 소리와 함께,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내 손! 내 손!!
침입자다! 제길, 짭새들인가... 으악!
경찰이라고!? 이 주변은 죄다 매수했을 텐데?!
설마 다른 구역에서 수사한 건가? 놈들이 우릴 팔아넘겼을 리는 없고... 제기랄, 다들 튀어!
상황이 심상찮음을 느낀 밀매업자들은 재빨리 자리를 정리했다. 팔려고 내놓은 인형들을 가동해 전투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방패 삼아 도망치는 자도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도망은 치욕이 아니었다. 빠져나가기만 하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총성은 여전히 하수도 반대편에서 격렬하게 울려 퍼졌다.
밀매업자 중 한 명이 몇 분 가까이 전력질주하다가, 총성이 멀어지고 나서야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휴우... 여, 여기까지 왔으면 안전――끄악!
겨우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며 방심한 순간, 총알 두 발이 날아와 그의 두 다리를 관통해 쓰러뜨렸다.
45 언니, 미꾸라지 하나가 빠져나가려 하길래 해치웠어. 그쪽은 어때?
다 처리했어.
...지금 총소리가 엄청난데, 네가 쏘는 거 아니었어?
아니, 난 여태 딱 두 발밖에 안 쐈어.
알았어. 그럼 포위망을 좁히면서 합류 지점으로 이동해.
UMP9이 어느 정도 이동하니, 다른 통로에서 기어 나온 UMP45와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부르려던 찰나, 또다시 하수도 저편에서 섬광이 번쩍이더니 인간들의 비명이 들렸다.
언니, 몇 명 해치웠어?
난 한 발도 안 쐈어. 오는 길에 강제로 총을 든 자율인형을 만나서, 간단하게 해킹으로 처리한 게 다야.
흐음... 그렇다는 건, 알바생이네.
맞아. 설마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할 줄은 몰랐어.
UMP45와 UMP9이 합류 지점에 도착했다. 이미 와 있던 HK416은 무표정한 얼굴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총을 겨눴다.
워 워, 긴장 풀어. 아군이야.
아군이라... 지금은 그렇지.
우와, 저기 완전 아비규환이야...
너 혼자서 다 해치운 거야? 우릴 기다리지도 않고 혼자 들어가서?
난 민간용 자율인형을 개조한 장난감이 아니라 전술인형이니까.
예전에나 그랬겠지. 그런데 큰소리 떵떵 치더니, 급소는 하나도 못 맞췄네? 소리만 들으면 무슨 도살장인 줄 알겠어.
일부러 그런 거야. 확실하게 급소를 피하고 손에 든 무기와 치명적이지 않은 부위만 맞출 수 있도록, 최대한 가까이 잠행해서.
그 말에 UMP45의 눈이 가늘어졌다.
호오... 하지만 왜? 번거로웠을 텐데.
내가 알아서 판단하라며.
저놈들 죽어도 싸지만...
죽기 전에 공포와 고통을 잔뜩 받아 마땅해. 그동안 한 짓에 대한 대가야.
정말 잔인하구나. 그래도 마음에 들어.
UMP45는 가볍게 킥킥 웃고는 휴대폰을 HK416에게 던져 주었다.
그럼 다 끝났으니 돌아가자. 경찰 신고는 네가 해.
그냥... 하수도에서 총소리가 들렸는데 조폭끼리 무력 충돌이라도 일어난 것 같다고 하면 될 거야.
히히, 경찰들이 보면 이 조폭들 총 참 못 쏜다고 웃겠지?
다녀왔어 데레~!
돌아왔구나, 9! 모두 무사하지?
상처 하나 안 나고 해치웠지. 그래도 보수 덜 받진 않을 거야.
하하하, 약속한 대로 줄 테니까 걱정 마. 신문에 기사 나온 거 봤어? 사망자 없이 부상자만 18명! 이야, 정말 잘했어!
나도 매스컴에 익명으로 편지를 보내서, 경찰이 뇌물을 받고 밀매업자들을 눈감아줬다는 사실도 보도되기 시작했어.
만족한다니 다행이네. 너 같은 금수저가 이렇게 정의감에 불타는 줄은 상상도 못 했는걸?
당연하지! 인형에게도 존엄성은 있다고! 인형을 물건 취급하는 놈들은 인형 정비사에 대한 모독이야!
...잠깐, 내가 언제 금수저가 됐어?
에이, 됐다 됐어. 어쨌든 다 끝난 일이니까 뭐. 거래만 잘 되면 그걸로 족해.
그... 그 녀석은 어때?
응? 아, 그 깜찍이? 말보단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게 어때?
소년 정비사는 일행과 함께 정비실로 들어갔다.
흰 머리의 소녀는 메이드 옷차림인 자율인형의 주위를 폴짝폴짝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잔뜩 나타나자, 질겁하며 메이드 인형 뒤로 숨었다.
히익!
괜찮아, 겁낼 것 없어... 아무도 널 해치지 않아.
너... 너는 그때...?
응, 난 HK416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니? 뭐라 부르면 돼?
나... 나는... 모르겠어...
보다시피, 수복은 끝났어. 외상과 시스템 모두 완벽하게 복구했지.
하지만 마인드맵 속의 기록들은... 다 떠올리기도 싫어하는 것 같아.
그렇겠지... 해결할 방법은 없어?
제일 빠르고 편한 방법은 초기화해서 마인드맵을 포맷하는 거지만... 난 웬만해선 추천 안 해.
난 인형의 수복은 유물을 복원하는 것처럼 훼손을 최소화해야 한다 생각하거든.
그리고, 쟤를 어떻게 고칠지는 의뢰인이 정해야지. 어떡할래?
난... 나도 내 손으로 저 녀석의 운명을 정할 수는 없어.
내 인생... 완벽한 전술인형으로서의 내 삶은... 내 의사도 완전히 무시하는 빌어먹을 자식에게 산산조각 났어.
나까지 다른 인형에게 그럴 수는 없어.
귀찮은 일에 말려들기 싫으면 애초부터 영웅 행세를 하지 말았어야지. 네 의도가 어쨌건, 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넌 쟤의 운명을 정한 거야.
어쩌면 그냥 평범하게 중고 시장으로 팔릴 운명이었는데, 네가 이 잔인하고 짜증 나는 세상으로 끌고 온 건지 누가 알아?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래, HK416?
......
내가 책임지고 쟤를 보호할 거야.
짐덩이를 데리고 목적도 없이 떠돌아다니겠다고? 너한테나 쟤한테나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보는데.
목적이야 있지. 난 그리폰으로 돌아가겠어. 언젠가, 반드시...
그렇다면... 당분간이라도 우리 열차에 탈래?
...무슨 뜻이야?
나도 어떤 일을 조사하고 있거든. 그리폰도 분명 아주 깊게 관련되어 있을 거야.
내릴 역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아. 뭣하면 저 아이도 데리고 와도 돼.
너에게만큼은 맡기지 않을 거야.
응, 걱정 마. 나도 짐덩이를 끌고 다니긴 싫으니까.
그래서, 데레한테 화기관제 코어와 총을 줘서 전술인형으로 개조해 달라고 의뢰하려고. 그럼 적어도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킬 수 있잖아. 어때?
너...
오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 안 그래도 수집한 총기가 꽤 많이 있거든! 지난 세기의 총들은 구조가 참 복잡한 게 태엽 시계 같단 말이야.
그리고 마침 굉장한 성능의 개조 코어를 얻었어! 저 애를 시장에서는 구경도 못 할 강력한 전술인형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아, 그리고 쟤까지 합하면 4명이니까, 어디서 한 명만 더 데려오면 히어로 전대 결성할 수도 있겠다. 응...? 나 진짜 천재 아니야?
좋아, 이러면 어떨까? 돈은 내가 대줄 테니까, 내가 디자인한 제복을 입고 활동하는 거야. 악당을 물리치는 비밀 조직처럼! 어때? 내 생각엔 메이드 전대를 만들면 대박 날 거 같은데...
뭐야, 그 듣기만 해도 닭살 돋는 이야긴. 언젯적 구닥다리 아이디어야?
구... 구닥... 싫으면 그만두지 뭐...
어쩜 데레는 그렇게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하나 모르겠단 말이야.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넌 좀 더 믿음직한 재무 관리자가 필요해.
요즘 네가 의뢰한 일은 너 대신 내가 다 주먹구구식으로 보수를 계산해야 할 지경이었다고. 고용주가 이래서야, 마음이 안 놓인다니까.
으으... 그건 제레가 요즘 집에서 일이 많아서 내 쪽에 신경 써 줄 시간이...
그치~ 누나가 없으면 참 힘들지~
시, 시끄러워! 지금은 너무 바빠서 그런 거라니까!
두고 봐, 나중에는 내 재무 관리든 집안일이든 뭐든지 할 수 있는 어어엄청 굉장한 인형을 만들 테니까! 제레가 도와줄 일 하나도 없도록 할 거라고!
오오? 그거 조금 기대되는데?
재잘재잘 떠드는 9과 데레를 뒤로 하고, UMP45는 HK416에게 다가갔다.
그럼, 생각해 봤어? 방금 내 제안.
......
잠깐의 침묵 후, HK416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그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나 다른 사람을 팔아넘길 낌새가 눈곱만큼이라도 보이면, 그 자리에서 빠지든지 널 먼저 해치우겠어.
우오오!? 다 들었어! 그러려면 먼저 내 시체를 넘어야 할 거야!
흥분할 것 없어, 9. 다 이 녀석 나름대로 의견이 일치한다는 표현이니까.
UMP45는 가식적인 미소로 한 발짝 더 다가가, HK416에게 손을 내밀었다.
404에 온 걸 환영해.
그게 뭐야...?
어때? 방금 생각해낸 우리의 팀명이야. 머릿수도 딱 넷이고, 우리 모두 세상에서 사라졌어야 할 인형들이니까. 어울리는 이름이지?
정말 센스 없네...
입으로는 툴툴대도, HK416은 UMP45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했다.
그때만 해도, 두 인형 모두 같은 열차를 그리 오래 타진 않으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