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33
MOD 2
토카레프는 정비대에 누워 전면 점검을 마쳤다.
그러나 조작대 뒤에 서 있는 카리나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으음...
……
카린, 상태가 어때?
기억 저장 기능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고, 소체에도 다른 고장은 안 보여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과로로 인해서 기억이 조금 혼란해진 것일 수 있어요.
그런 건가요?
추측에 불과하고, 그거 말곤 딱히 짐작 가는 게 없어.
카리나는 조작대를 지나 토카레프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권장 사항으로는 휴가를 받아서 푹 쉬면 나을지도 몰라.
지휘관님도 혹시 시간 되시면 곁에서 토카레프를 좀 보살펴 주실래요?
그, 그럴 것까진 없지 않나요?
지휘관도 할 일이 많으실 텐데...
당연히 문제 없지!
어리둥절한 사이에 지휘관이 토카레프 앞에 다가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손을 받쳐 들었다.
에에!?
휴일의 길거리.
토카레프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이런 풍경을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새하얀 구름이 두껍게 포개져 푸른 하늘과 섞여 매우 맑은 색조를 이루었다.
햇빛이 구름 사이로 비쳐 거리와 곁에 있는 사람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실감 나면서도 꿈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좀 더 가까이 붙으렴, 그러다 길 잃을라.
아, 네...!
토카레프는 당연히 지휘관 곁에 바짝 붙었다. 그러나 지휘관은 한술 더 떠서 손을 꼭 잡고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거리에 스쳐 지나가는 커플들과, 지휘관의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에 토카레프는 점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 지휘관, 지금 우리 어디에 가나요?
그건 말이지...
지휘관은 토카레프를 바라보며 맑은 미소를 지었다.
금방 알게 될 거야.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승강장에서 사람들은 얼마 안 남은 시간을 붙잡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토카레프는 기차에 한쪽 발을 내딛고 있는 지휘관에게 짐가방을 건네고, 눈빛에 애틋함을 가득 담았다.
언제 돌아오실 건가요?
금방 돌아올게. 너를...
너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게.
기차가 경적을 울렸고, 눈물이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시간을 확인하고, 지휘관은 토카레프와 악수하며 작별하려고 했다.
이때 토카레프가 지휘관을 와락 끌어안았다.
천리만리 떨어져 있다 해도, 반드시 네 곁에 돌아올게. 오직 너만이 내 영혼의 항구니까.
지휘관, 저... 저...
지휘관을 사랑해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게요!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상대를 가슴에 단단히 새기려는 듯 했다. 눈에서 뺨으로, 그리고 입술로...
그렇게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크흠, 토카레프? 토카레프?
네!?
토카레프가 정신을 차리니, 옆에 앉아 있는 지휘관이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손, 너무 세게 잡았어……
토카레프는 그제야 자신이 지휘관의 손을 꽉 잡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의 손가락 마디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앗?! 죄, 죄송해요! 저, 저 일부러 그런 건…!
괜찮아, 괜찮아. 영화에 몰입하는 건 좋지.
레몬에이드 좀 마셔.
고마워요.
컵을 받아 든 토카레프는 다시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남주와 여주가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장면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정말 감동적인 영화였어. 설마 여주가 마지막에 그런 선택을 할 줄이야.
토카레프는 어땠어?
……
토카레프? 혹시 몸이 안 좋은 거야?
네!? 아, 아뇨!
그... 엄청 멋진 영화였어요!
다행이네. 토카레프도 그 스토리를 좋아하나 보구나!
아... 네, 네!
토카레프는 영화의 마지막 결말을 열심히 떠올려 보려 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방금 무심코 망상으로 덧씌운 장면뿐이었다.
자신만의 기쁨의 원천을 찾은 것마냥, 토카레프는 계속 지휘관을 힐끗거렸다. 그리고...
지휘관의 입술도.
안 돼, 안 돼, 안 돼! 지휘관께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건지를 들키면…
으… 너무 부끄러워!
한숨을 내쉬고, 방금 웨이터가 서빙한 아이스크림을 내려다보고선, 냉큼 크게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크응——!!!
차가운 감각이 입 안의 센서를 통해 마인드맵을 직격했다. 토카레프는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구겨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휘관이 화들짝 놀라고 피식 웃는 것을 보면 꼴이 엉망인 게 틀림 없었다.
지, 지휘관...
미안, 미안. 토카레프가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만.
우우... 분명 절 놀리시는 거잖아요.
에이, 그럴 리가.
지휘관이 눈을 초승달처럼 게슴츠레 떴다. 토카레프는 상대의 두 눈도 자신의 입을 향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왜, 왜 그러세요?
가만있어.
지휘관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 윗몸을 기울여, 천천히 토카레프에게 다가왔다.
어?! 설마설마설마?!
토카레프는 마인드맵이 과열되는 것을 느꼈다. 냉각액이 완전히 효과를 잃은 것만 같았다.
자신이 긴장하고 있는지 기대하고 있는지도 분간할 수가 없었고, 점점 다가오는 지휘관의 얼굴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토카레프의 콧수염 잡았다~!
에?
토카레프가 눈을 뜨자, 지휘관의 손가락이 자신의 입술 위를 훑는 것이 보였다. 손끝으로 훔친 하얀 크림 한 점은 지휘관의 입 안에 들어갔다.
지, 지휘과안!
요동치는 가슴을 더는 참을 수 없어 토카레프는 벌떡 일어났다.
중간에 테이블만 없었으면 분명 상대의 품 안에 와락 뛰어들었을 것이다.
응? 왜 그래?
그... 아이스크림이 너무 차가워서요. 네...
서쪽으로 기울은 태양이 나른한 주황색으로 변했다. 휴일이 끝나가며, 토카레프는 지휘관과 함께 그리폰 기지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다행이라고 할까, 아쉽다고 할까, 마지막까지도 딱히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어…
하아...
지휘관의 모습을 바라보며, 토카레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토카레프, 아직 아쉬운 일이라도 있어?
아아, 아뇨! 저 엄청 즐거웠어요!
그냥... 휴일이 벌써 끝나버렸구나 해서요.
그런 거구나. 나도 네가 어떤 심정인지 알겠어!
네, 네에!?
물론이지. 나도 예전에 그런 기분을 느껴봤어.
방학이 곧 끝날 때 항상 아쉬운 느낌이 들고, 조금이라도 이 시간이 길어지면 좋겠다 싶어서 밤 늦게까지 잠도 못 들었어.
어릴 적에 자주 그런 기분을 느꼈다니깐!
우웅...
어? 그런 게 아니야?
사, 사실... 저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마지막의 순간이 아쉬운 것도 맞긴 하지만…
솔직한 생각을 말해버렸다간, 으으…
이 날이 결국 지나가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순간을 붙잡아둘 방법은 있지.
네?
지휘관이 토카레프에게 다가가, 가방에서 정교하게 포장된 종이봉투를 꺼냈다.
이건...?
열어보렴.
그 말에 토카레프의 호기심이 들었다.
그녀는 종이봉투를 열어 손을 집어넣었고, 안에서 예쁜 머리띠를 꺼냈다.
지휘관…
길가 상점에서 이걸 보고, 딱 너한테 어울리겠다 싶었어.
지휘관은 토카레프의 손에서 머리띠를 집어, 두 손을 토카레프의 머리 뒤로 뻗었다.
토카레프는 눈치 있게 고개를 숙여, 지휘관이 편하게 머리띠를 묶어주도록 했다.
감사합니다, 지휘관…
네 마음을 맞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확실하게 알고 있어.
너와 함께 지낸 하루는 정말 즐거웠고, 나도 이런 즐거운 시간이 곧 끝나버린다는 게 아쉬워.
어떻게 이 순간을 붙잡아둘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무언가로 지금의 감정을 간직하면 되겠다 싶었어. 그래서 고민한 결과, 이 머리띠에 마음을 담아두기로 했어.
…지휘관.
지휘관의 뺨이 살짝 달아올랐고,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깜짝 선물로 준비한 건데, 네 마음에 들지는 잘 모르겠네. 혹시 이걸로 부족하다면...
엄청 마음에 들어요!
무엇이든 지휘관께서 주신 선물이면 전 다 좋아요.
그리고 이 머리띠에는 오늘의 아름다운 추억이 전부 담겨 있어요. 꼭 소중하게 간직할게요, 영원히요!
토카레프…
그리고, 제 억지를 용서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이 머리띠에 가장 소중한 추억을 하나 더 남기고 싶어요.
토카레프는 두 손으로 지휘관의 허리를 감싸고, 고개를 들어 상대의 놀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는 석양을 받아, 아름다운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지휘관…
토카레프는 눈을 감고 상대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휘관의 얼굴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뜨거운 입김, 도취될 것만 같은 향기가...
아니...
아니었다...
향기가... 아니었다.
...어라? 여기는...?
그녀는 전장 한가운데 서 있었고, 공기 중엔 피와 초연의 냄새가 자욱했다.
으윽——!
익숙한 통증이 다시 마인드맵 깊은 곳에서 솟아났다. 토카레프는 몇 걸음 휘청거렸고, 발에 수많은 물렁한 것들이 밟혔다.
고개를 숙여보니, 바닥은 자갈과 진흙이 아닌 인형의 잔해로 가득했다.
실수로 밟을 때마다, 잔해가 눈을 번쩍 뜨고 토카레프를 노려봤다.
이건...!?
이제야 깨어났냐.
토카레프가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지휘관도 잔해 위에 서 있었다.
하지만 방금 상냥했던 모습과 달리, 지금 지휘관의 시선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웠다.
지휘관… 이게 도대체…?
시간이 됐다, 토카레프.
이제 네가 나를 위해 희생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