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
MOD 2
전선대기조의 일과 훈련 시간.
평소처럼, 네게브는 소대의 예비역들의 훈련을 지도했다.
한편, 갈릴은 과녁판을 멍하니 바라보며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역시 네게브한테도 말을 해야겠지?
아무 말도 없이 갔다간 분명 화낼 게 뻔하니...
갈릴은 곁눈질로 네게브를 지켜봤다.
네게브는 신입 인형의 총기 파지법을 교정해 주고...
다른 신입 인형과 대화를 나눈 뒤...
마침내 갈릴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때가 되자, 갈릴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응? 뭐야, 너 아직도 안 끝났어?
네게브, 따로 할 말이 있어.
우리 사이에도 그렇게 뜸을 들일 일이라니, 뭔데?
아하하... 그게,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네...
됐으니까 얼른 말해.
......
나, 전선대기조에서 나가서 다른 부서를 찾아보고 싶어.
...이유는?
내게 가장 어울리는 자리를 찾고 싶어서.
그러니까...
지금 일이 안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데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다?
...응.
잠깐에 불과했지만, 갈릴에겐 네게브의 침묵이 한세월처럼 느껴졌다.
이거 된통 한소리 듣겠는데...
...알았어. 신청서 제출해, 수리해 줄 테니까.
어?
그냥 넘어간다고?
네게브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대로 다른 인형에게 발길을 돌렸다.
뚜벅, 뚜벅...
하지만 네게브의 힘찬 발걸음이, 갈릴에겐 자신을 질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부서의 정보센터로 가는 길.
자신의 이력서를 든 갈릴은 마치 비바람 속의 갈대와 같은 심정이었다.
후우... 가장 어려운 첫걸음은 내디뎠어.
이젠 어느 문턱을 넘느냐가 관건이겠지.
온갖 부서들의 명패를 보면서, 갈릴은 이력서를 꼬옥 안은 채 고민했다.
어디로 갈까...
솔직히 끌리는 데가 없는데... 확 그냥 다 찔러 봐?
갈릴 씨?
아, 안녕 호식아.
호식이 아니라니까요... 그런데 손에 들고 계신 그거, 다른 부서로 이적하시려고요?
응,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그래서 우지 씨가 요즘 기운이 없으셨군요...
아하하...
아무튼, 그냥 마침 보이시길래 인사드렸어요.
그런데 제가 알기론 지금은 다른 부서들 모두 한창 바쁠 시기라서, 이적하기 좋은 때는 아닐 것 같아요.
그런가... 고마워, 전체적으로 적당히 한번 둘러봐야겠네.
네. 그럼 행운을 빌어요, 갈릴 씨.
HS2000은 잠깐 머뭇대다 자리를 떠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내가 어디로 갈지보단 어디에서 날 받아 줄지가 문제겠는걸...
...그래도,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지.
갈릴은 한숨을 내쉬고, 가장 가까운 전략대기조로 향했다.
딩동——
전략대기조 정보센터의 초인종이 울렸다.
안녕~! 잠깐 시간 될까?
어서 와라, 갈릴. 무슨 일이지?
웰로드... 나, 전략대기조에 들어가고 싶어.
여기 내 이력서야.
으음...? 무슨 일 있었나?
그대는 전선대기조의 네게브 소대 소속이잖은가.
그렇지.
일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나한테 더 어울리는 곳을 찾고 싶어서 나왔어.
흠... 사정은 알겠다. 하지만 유감이군, 지금 전략대기조는 만원이라서 말이지.
새 대원을 받을 자리가 없다.
아하...
웰로드의 어깨 너머로, 바쁘게 움직이는 인형들이 갈릴의 눈에 들어왔다.
그럼 다른 데를 알아봐야겠네, 실례했어.
미안하다. 그대의 길에 행운이 있기를 빌지.
갈릴의 등뒤로 자동문이 닫히면서, 전략대기조의 신선한 세상도 멀어졌다.
변방조사단의 정보센터.
똑똑똑... 갈릴이 낡은 목제 문짝을 노크했다.
어... 안녕? 갈릴이라고 해.
여어, 반가워. 무슨 일이야?
NTW-20 있어?
타이밍이 나쁘네, 방금 대규모 출동이 있었거든.
NTW도 같이 가서, 지금은 우리만 남아서 집을 지키는 중이지.
그렇구나...
그럼 변방조사단에 이적 신청하려면 또 누구한테 말하면 돼?
없지, 신청 수리 권한은 NTW한테밖에 없거든.
그럼 별수 없네. 실례했어.
실례라니 천만에. 수고해.
갈릴의 등뒤로 묵직한 판자문이 닫히면서, 미약한 온기도 사라졌다.
...일반지원팀의 활동 장소.
......
......
안녕 G3, 여기 혹시 인형 일자리 있어?
죄송해요, 보시다시피 여긴 요정만 받아서...
역시 그렇지, 미안...
통합회수팀의 전용 공방.
......
......
......
......
......
......
실례했슴다!
방에 한가득인 철혈 인형들과 10분가량 눈싸움을 한 갈릴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
종합근무팀의 부속 카페.
...그렇게 된 일이야.
당신의 생각은 잘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여기서 일하시겠어요?
전장에 나갈 일은 적을지 몰라도, 기지에서의 후방 지원 업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어요.
그 정도야 당연히 알지.
그래도 꼭 하고 싶으세요?
응. 기회를 줘, 스프링필드.
결의에 찬 갈릴의 눈빛에, 스프링필드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다른 팀의 담당자와 토의해 일과를 배정해 드릴 테니, 오늘은 돌아가서 통지를 기다려 주세요.
응! 정말 고마워!
자신의 새 출발을 기념하고자, 갈릴은 특별히 저녁을 소대의 동료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잔뜩 차렸다.
그리고 그녀가 음식을 접시에 옮겨 담던 도중이었다.
룰루랄라...♪
...아니 근데, 어디서 뭐하길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도 안 와?
오늘 뭐 또 하는 일이 있던가?
창밖의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본 갈릴은 우지에게 통신을 보냈다.
우지, 뭐해? 왜 아직도 안 돌아와?
아차차, 말하는 걸 깜빡했다!
우지도 참... 갈릴? 죄송해요, 긴급 임무로 저녁 전까지 출발하라 해서 준비하느라 바빠 연락을 못했어요.
지금 준비 다 하고 가는 중이야!
아... 그랬구나...
네게브가 갈릴은 다른 부서로 갔으니 이번 임무에서 빠질 거라고 해서...
괜찮아 괜찮아. 그럼 언제 돌아와?
며칠 걸릴 거야, 임무 끝나면 연락 줄게!
...알았어, 모두 조심해.
응 응~ 우왓, 끊어야겠다, 네게브가 작전 회의한다고 모이래.
그럼 나중에 봐!
통신이 급하게 끊어졌다.
갈릴은 손에 든 수저를 내려놓고, 식탁에 한가득 차린 음식을 멍하니 바라봤다.
해는 이미 저물어, 창밖의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