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S
MOD 2
...오후.
그리폰 기지의 복도.
급한 일? 얼마나 급하길래 영창 간 인형을 찾을 정도야?
억울한 척하긴.
그럼 기지의 물자는 왜 팔아버렸어?
돈 벌려고. 그뿐이야.
어이구...
OTs-12의 눈에서 웃음기가 가시진 않았지만, 대신 한심스러움이 조금 늘어났다.
돈을 모으고 싶으면 그냥 쓸데없는 쇼핑을 줄이면 되잖아.
쇼핑을 안 하면 모은 돈을 어디다 써?
그리고 난 취미가 쇼핑밖에 없단 말이야. 티스 너도 잘 알잖아.
그렇다고 기지의 물자를 빼돌리면 안 되지.
식료품이랑 작은 가구였기에 망정이지, 지휘관도 스테츠킨의 실적을 감안해서 영창 며칠로 봐준 거라고.
그냥 영창이었으면 다행이지...
스테츠킨이 눈을 부라리며 OTs-12의 말을 끊었다.
작전에 나갈 때마다, 기지로 복귀할 때마다 저런 이상한 기계한테 영문도 모를 질문을 잔뜩 받아 봐, 너도 못 버틸걸?
나도 그리폰의 사원이란 말이야, 내가 알아서 그리폰을 위해 싸울 거라고! 그래도, 그래도...
스테츠킨은 심통을 부리면서도 점점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OTs-12는 한숨을 쉬곤 그녀의 팔을 붙잡아 밖으로 끌고 나갔다.
지휘관에게 제대로 사과하면 되잖아.
물자를 빼돌린 게 잘못이란 건 나도 알아...
그리고 잘못하면 벌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치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불합리하다고.
지휘관도 다른 처분은 내리지 않았대.
모두 선처해 달라고 사정했다고. 스테츠킨은 실적도 많으니까.
실적 실적... 짜증 나. 나도 그리폰의 사원이라고. 당연히...
겨우 며칠만 영창에 보낸 것도 그래.
내 마인드맵에 강제로 "그리폰의 안위를 최우선시하라"는 프로그램을 주입했단 말이야. 테스트받을 때도 프로그램이 나 대신 대답하고...
응? 스테츠킨은 그리폰이 위험해져도 상관없어?
그럴 리가 없잖아! 나도 물론 그리폰이 소중해. 아니면 돈 적당히 벌고 진작에 이직했지.
내 말은, 그런 것쯤이야 나 스스로 말할 수 있는데 왜 꼭 그런 안전장치를 붙였냐는 거야.
으응...? 왠지 앞뒤가 안 맞아.
그리폰이 소중하다면서 왜 기지의 물자를 빼돌렸어?
그럼 그런 프로그램이 달려도 뭐라 못한다고 보는데...
스테츠킨이 OTs-12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우왓, 같이 가 스테츠킨!
내가 말주변이 너무 없어서... 아무튼, 이제부터 어떡할 거야?
스테츠킨이 제자리에 멈춰, OTs-12가 따라잡도록 기다렸다.
어떡할 거냐고? 뻔하잖아, 돈 모아야지. 돈을 더 많이 많이 모을 거야.
오우... 아, 설마 또 도둑질 셈이야?
스테츠킨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휴, 왜 네가 잘 차출되지 않는지 알겠다. 이해력이 그렇게 떨어져서야 원.
도둑질은 나쁜 짓이라고 내가 말했잖아.
나도 똑같은 실수로 다시 영창 가긴 싫어.
그럼?
평범하게 열심히 벌어서 저축할 거야.
이젠 쇼핑만을 위해서가 아니야. 제일 먼저 마인드맵 업그레이드를 받아서, 이 강제로 주입된 명령을 지워버릴 거야.
마인드맵 업그레이드? 그거 돈 엄청나게 든다며?
그래, 그러니 아주 장대한 계획이지. 차근차근 계획해야 해...
그래도 말이야, 그런 명령이 있든 없든 별 차이 없지 않아?
있고말고.
난 다른 사람이... 뭐가 됐든 다른 게 나 대신 결정을 내리게 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기본적인 일조차도 나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겠냐고.
설령 내가 오류투성이라 해도, 난 나이고 싶어.
OTs-12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으휴 이 바보, 또 못 알아들었지?
예를 들어서, 나한테 자폭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고, 기지가 위험에 빠졌다 치자.
그럼 그 자폭 프로그램의 실행 명령권은 내가 쥐고 싶어. 빌어먹을 로봇 3원칙 같은 게 멋대로 작동시키는 게 아니라.
오... 그렇구나. 그래도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 특히 우리가 같이 작전을 수행할 땐.
걱정 마,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너한테 미리 신호를 줄게. 내가 자폭하는데 너까지 휘말리면 안 되지.
그렇게 해서 네가 다치게 되면 네 수복 비용도 내가 물어 줘야 한다고.
음... 그러면 신호는 뭐가 좋으려나...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든가...
OTs-12가 뭔가 깨달았는 듯 끄덕였다.
알았어. 그런데...
스테츠킨은 맨날 거짓말하잖아. 가끔은 진지한 건지 농담하는 건지 헷갈려...
스테츠킨이 풉하고 웃었다.
에이, 무슨 소리야. 나도 진지할 땐 완전 진지하다고.
자, 쓸데없는 얘긴 그만하고, 급한 일 있다며? 무슨 일이야?
스테츠킨이 고개를 돌려 OTs-12를 봤다. 그녀 눈동자 안의 웃음기는 여전했다.
스테츠킨한테도 좋은 거야.
지휘관이 나한테 비밀 임무를 맡겼는데, 스테츠킨이랑 같이 가래. 오늘 저녁에 바로 출발할 거야.
비밀 임무? 나한테 왜 좋은데?
돈 모을 거라며. 조금 위험하지만, 그만큼 보수를 엄청 많이 준다고 했어.
돈 많이 주는 비밀 임무니까, 스테츠킨이랑 내가 적임이야!
분명 스테츠킨의 장대한 계획의 첫걸음이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