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S
MOD 4
타앙!
헌터의 탄환이 OTs-12의 왼팔을 관통했다. 그 충격으로 잠시 휘청인 OTs-12가 다시 균형을 잡은 순간, 헌터의 총구는 이미 그녀의 관자놀이에 닿고 있었다.
너 따위 쓰레기 같은 모델이 이렇게까지 오래 버틸 줄은 몰랐다.
하지만 너도 이제 한계겠지.
OTs-12는 힘도 제대로 들어가질 않는 왼손으로 허리춤을 더듬었다.
타앙!
퍼엉!!
겨우 더듬어 집은 소형 폭탄을 던지기도 전에, 헌터가 손을 쏘았다. 그리고 그 폭발에 OTs-12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스테츠킨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헤헤... 자폭 프로그램, 출발하기 전에 나도 미리 달아놓을 걸 그랬다...
OTs-12의 귓가에, 노이즈 섞인 바람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노이즈가 작동이 정지되기 직전인 자신에게서 나는 건지 아닌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이제 한계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나는 거지?
착각인가? 철혈의 지원 병력인가?
콰아앙!!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헌터는 심각한 표정으로 폭발이 일어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잔해와 나뭇가지를 밟으며 걸어오는 소리였다.
OTs-12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보니...
티스 이 바보 멍청아, 그렇게 자폭하고 싶어?! 네 마음대로 해! 난 세상에서 네가 제일 싫어!
OTs-12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헌터는 눈살을 찌푸리며, 눈앞에 자신만만하게 서 있는 인형을 응시했다.
아까 놓친 사냥감인가. 왜 돌아왔지?
헌터, 나랑 거래하자.
방금 그 폭발은 뭐였지?
그거? 홀로그램으로 위장한 네 컨테이너가 터진 거야. 그리고 너네가 모아둔 다른 물자에도 폭탄을 설치했어.
그래서?
스테츠킨이 손안의 기폭 스위치를 흔들었다.
나머지 물자들이 어떻게 돼도 상관없으면, 거기 그 녀석의 머리통을 날려버리시든지.
하지만, 걔를 놓아준다면... 남은 부스러기 정도는 회수하게 해 줄게.
내가 왜 네 녀석과 그런 거래를 해야 하지?
너 바보 아니잖아. 그럼 이해가 갈 텐데?
곧 그리폰의 지원 병력이 여기 도착할 거야. 지금 당장 걔랑 날 죽여 봤자, 너네도 곧 전멸당하겠지. 그래도 괜찮겠어?
하지만 우릴 놓아준다면, 모두 그대로 철수할 거야.
그러니까, 이건 꽤 공평한 조건의 거래란 소리지. 어때?
바람이 멈추지 않는 가운데, 헌터는 번쩍이는 눈으로 스테츠킨을 노려봤다.
한참 뒤, 헌터는 OTs-12의 머리를 겨누던 총을 내렸다.
스위치를 버리고 꺼져라.
또 만난다면, 그땐 절대 놓치지 않겠다.
...깊은 밤.
그리폰 기지로 귀환하는 길.
두 인형은 아무 말도 없이 기지를 향해 걸었다.
스테츠킨의 부축을 받는 OTs-12가 그녀의 얼굴을 보았지만, 날이 어두워져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
스테츠킨...
스테츠킨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왜 헌터가 거래를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어?
그러니까... 그 녀석은 우리를 처치하고 이탈해도 우리의 지원 병력을 따돌리고도 남았을 거 아니야...
아, 아니 그보다, 왜 돌아왔어...? 그리고 폭탄은 언제 그렇게 잔뜩 설치한 거야...?
오늘따라 진짜 말 많네... 너, 한번 말문이 트이면 입이 안 멈추는 타입이었구나?
하――
헌터가 정말 널 놓아줄지는 나도 장담할 수가 없었어. 지원 병력도, 폭탄을 설치했다는 말도 다 허세였으니까.
뭐어?! 그럼 확인하면 다 들통나는 거였잖아!
그렇지, 하지만 그놈은 더미여도 본체만큼 신중해.
지금은 거점을 옮기려고 하느라 바쁠걸?
그리고... 컨테이너를 터뜨린 건 진짜야. 그러니 나머지 폭탄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폰의 지원 병력이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할 여유도 없을 거야.
우와, 완전 도박이었네.
만약 헌터가 네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았으면 너까지 생포됐을 거야!
걱정 마셔.
설치하지 않았다고 했지, 폭탄이 아예 없다고는 안 했잖아?
응?
내가 단시간에 어디서 그렇게 많은 폭탄을 구했겠어? 게다가 너한테 조금 나눠주기까지 했는데...
스테츠킨이 옷자락을 슬쩍 들어 올려 안을 보여 주었다.
이렇게 여기 묶을 정도밖에 안 남았는걸.
스테츠킨의 몸에 묶인 폭탄을 본 OTs-12는 화들짝 놀랐다.
너...!
아, 기폭 스위치! 헌터 앞에 버리고 왔지!?
괜찮대도. 이미 조작해놔서 작동시켜봤자 아무 일도 안 일어나.
그러니까 내가 갑자기 폭발하지 않을까 걱정 안 해도 돼.
두 인형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OTs-12가 풉하고 웃으며 그 정적을 깼다.
뭐야, 음성 모듈까지 고장 났어?
에헤헤... 그때 네가 나한테 소리 질렀잖아...
그게 바로 "자폭 신호"였구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자폭하기 전에 일부러 거짓말을 할 거라곤 했지만, 무슨 거짓말을 했는데?
했으면서 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며.
그거 진짜야. 나도 항상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진 않는다고.
오오... 정말?
그럼 왜 임무에 실패할 가능성까지 감수하면서 날 구하러 왔어?
그 빌어먹을 "그리폰의 안위를 최우선시하라"는 명령 때문이야.
그게 멋대로 작동해서 그리폰의 전술인형을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는 거지.
스테츠킨이 얼굴을 돌리며 머뭇거렸다.
너, 널 구하려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그래도 이제 서로 빚진 거 없기다?
응? 정말?
정말이야. 멍청하고, 이해력도 모자라고, 평소엔 말도 잘 안 하고, "비밀 병기" 타령이나 하면서 허세나 부리고, 전장에선 명령밖에 모르는 녀석한테 빚을 지워서 뭘 어떡해?
...아, 이번엔 명령도 안 따랐지 참.
헤헤... 그래도 이번엔 진짜 비밀 병기가 생긴 기분이야.
응? 그게 뭔데? 아무튼, 넌 걸리적거리기만 한다고. 진짜 싫어.
응 응, 나도 스테츠킨이 좋아.
또 뚱딴지같은 소리 하네... 티스가 정말 싫다니까?
응! 나도 네가 정말 좋아!
...진짜, 세상에서 티스가 제일 싫어.
응 응~ 나도 세상에서 스테츠킨이 제일 좋아♪
...다음날.
그리폰 지휘실.
눈앞에 잔뜩인 소재들에, 스테츠킨은 화가 나면서도 화를 내지 못했다.
지휘관, 나 이해가 안 가는데.
음? 뭐가?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를 모르겠네...
일단 제일 먼저, 난 징계받아서 영창까지 간 인형이잖아. 게다가 물자 회수 임무까지 실패했는데, 왜 마인드맵 업그레이드를 해 준 거야?
어... 그건... 너도 그리폰의 소중한 사원이니까.
전혀 대답 같지 않은 대답이네... 에이, 그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왜 내가 자는 틈을 타서 멋대로 업그레이드를 해 버린 거야!
음... 그게... 그러는 편이 더 편하니까...?
스테츠킨은 질색이라는 표정으로 지휘관을 매섭게 쏘아봤다.
하여간 제멋대로라니까. 지휘관도, 티스도...
참, 티스 말인데, 이제 왼팔의 수복도 끝났을 테니 언제든지 보러 가도 돼.
그리고 너희의 보고를 받자마자 그 지역의 철혈을 섬멸하기 위해 병력을 파견했어.
이 공로를 고려해서, 임무를 실패한 책임은 묻지 않을게.
아, 그리고 네 마인드맵 업그레이드 비용은 티스가 벌써 다 지불했으니까 비용 걱정은 안 해도 된단다.
그 말에 스테츠킨은 충격으로 잠시 넋이 나갔지만, 이내 씨익 웃었다.
좋아, 적어도 그 빌어먹을 명령이 없어졌으니까 다시 돈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겠네.
너 그러다간 또 테스트 통과 못 한다?
걱정 붙들어 매셔.
둘이 멋대로 저질러 준 덕분에, 티스한테 큰 빚이 생겨 버렸어. 그런 강제 명령보단 이런 금전 관계가 더 확실하다고.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속상해지네...
스테츠킨, 너 정말 그리폰에 충성하는 거 맞지?
킥킥대며 웃는 스테츠킨의 눈동자는 OTs-12처럼 웃음기가 넘쳐났다.
물론이지. 내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라고, 친애하는 지휘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