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3
MOD 4
기진맥진한 두 인형은 엄폐물 안의 구석에서 서로에게 몸을 기대었다. 어찌나 만신창이였는지, 둘은 풍화된 주위에 그대로 녹아드는 듯했다.
바깥에선 여전히 ELID 무리가 울부짖고 있어, 둘은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다.
......
나한테 긴급 수복 키트 하나 있어, 이걸로 응급처치해...
됐어. 우리 모두 중상이라 응급처치해 봤자야.
지금 다른 소대에 구조 요청 보냈으니까, 이대로 지원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팔의 처치를 끝낸 97식 산탄총은 MG3에게 눈을 돌렸다.
방금 그거, 뭐였어?
......
막 비틀거렸잖아, 설마 나랑 같이 무작정 달려서 과열된 거야?
......응.
......
......
97식 산탄총이 벌떡 일어나더니, MG3의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기곤 그녀를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니까 잘 들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약골 소체로 갈아탄 거야!!
원래 소체의 어디가 나빠! 이딴 거의 어디가 너랑 어울리는지 생각은 해 봤어!?
막 거침없이 날뛰길래 소체의 단점을 보완할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있나 했더니만, 그냥 막무가내였냐!!
......
대답해 봐!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이유인지 어디 들어나 보자고!
97식 산탄총은 남은 한쪽 팔로 MG3의 멱살을 잡았다.
......
...이래야 다른 애들 발목을 안 붙잡는다고.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다시는 굵직굵직한 소체 때문에 참호에 끼어서 눈 뜨고 동료들 당하는 거 구경하기 싫어!
다신 발목 잡기 싫다고! 다시는!
......
나도 온갖 지형을 쏜살같이 뛰어다니고 싶어! 온갖 장애물을 날렵하게 뛰어넘고 싶다고!
아무리 좁은 지형이라도 끼이지 않고, 뒤처지지 않게!
MG3...
왜 난 꼭 산만한 덩치 때문에 여기저기 끼어야 해!?
왜 동료들이 나 구하려다 당해야 해?!
울분에 북받친 MG3의 절규에, 멱살을 잡았던 97식 산탄총의 손이 스르륵 풀렸다.
그리고 천천히 올라가는 그녀의 손에, MG3는 따귀라도 한 대 맞는 줄 알았지만...
97식 산탄총은 그대로 MG3를 꽉 껴안았다.
이 멍텅구리야... 그게 왜 네 잘못인데?
뭣...
핼러윈 때, 지휘관이 일깨워 주지 않았어?
동료 걱정도 정도가 있지, 너 자신을 신경써 본 적은 얼마나 돼?
난...
체격 큰 게 뭐 어때서? 자신 때문에 동료가 희생됐다고 무작정 가볍고 민첩함만 바라고.
반대로 말이야, 네가 그 덩치로 흔들림 없이 화력을 퍼부어서 동료들이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네가 처음부터 이딴 약골이었으면 네가 동료들 발목 잡을 겨를도 없었을 거담마!
그 말에 MG3는 충격받았다.
아무도 완벽할 순 없어. 누구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생긴다고!
원래부터 막 나가는 녀석이 뭘 그런 걸 따지고 앉았어?
그 무식한 힘으로 동료를 구한 적 없었냐? 아님 벌써 다 까먹었어? 왜 고작 한 번 실수했다고 거기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건데!
철부지를 보는 심정으로, 97식 산탄총은 MG3의 어깨를 다독이며 지휘관이 했던 말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 계속 "결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덕분에 나를 구할 수 있어서 기쁘다라.
즉 네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인류의 행복이라는 거지.
넌 그저 자신의 진심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지, 우리를 좀 더 잘 도와주고 싶어서 모든 잘못을 그 한 곳 탓으로 생각하는 것이야.
그 "결함"을 인지하고, 스스로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파악한 거지.
...그래서 네가 온갖 궁리로 그걸 바꾸려고 하는 거겠지.
그랬다. 그녀가 바랐던 건 가볍고 늘씬한 소체가 아니라, 동료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는 힘이었다.
그래서 "결함"이라 생각하는 것부터 극복하려 한 것이다.
그것을 재차 깨달은 MG3는 할 말을 잃었다.
음? 여보세요? 제3제대지? 어휴 드디어 연락 닿았네, 언제 도착해?
...뭐? 15분?! 장난하나! 다 디지게 생겼응께 퍼뜩 오라 안 카나!
97식 산탄총은 통신에 대고 닦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고야 이제 망했다! 우리 여서 끝장인갑다... MG3야, 기양 눈 딱 감고 돌파해보까?
쯧... 밖에서 화력 지원이라도 받으면 좀 낫겄는디...
조금 전의 언성을 듣고 몰려든 ELID들이 힘차게 문을 두들기자, 97식 산탄총은 방패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호크...
뭔데? 심리 상담 시간 끝났으니까 너도 준비해.
내기 할래?
내기는 뭔 내기?
우리가 몇 초나 버틸지 내기 말이야?
우리가 일발역전할 수 있나 없나.
머꼬, 니 지금 개그하나? 나 팔 한 짝이라 박수 못 치거든?
할 거야 말 거야?
MG3는 진지한 눈빛이었다.
그때, 낡은 문짝에 구멍이 뚫렸다.
ELID 감염자의 일그러진 얼굴이 그 찢겨져 뚫린 구멍으로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마치 두 인형의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조롱하는 듯했다.
좋아, 내기해! 뭘 걸 건데?
6개월... 아니, 1년치 보너스.
하여간 통도 커요. 콜!
낡은 문짝은 곧 부서질 기세였다. 97식 산탄총은 방패를 단단히 고쳐 쥐었지만, 어째선지 MG3는 여전히 벽에 기댄 채로 씨익 웃기만 했다.
...뭐야, 너 뭐하냐? 일발역전한다며?
MG3 대신 문밖의 ELID가 소리질렀다.
얌마! 설마 그냥 한 말이었냐?!
97식 산탄총은 눈알을 굴리며 MG3를 감싸고 문밖을 향해 사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가 쓰러지면 금세 그 옆의 다른 ELID가 빈자리를 채웠다.
결국 마지막 남은 한 발까지 다 쏜 후, 97식 산탄총은 총을 휙 던지곤 여전히 말이 없는 MG3의 옆에 주저앉았다.
후우... 그래도 마인드맵 백업은 겨우 끝났네. 너 수복실에서 두고봐 진짜.
......
MG3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97식 산탄총은 하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다가올 최후에 대비했――
투타타탕!!
맹렬한 기관총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뭐야? 지원군 왔어!?
97식 산탄총이 벌떡 일어나 문밖을 보니, 한 인형의 기관총이 탄띠를 약실로 빨아들이며 불을 내뿜어, 멀리서 보면 흡사 불타는 채찍으로 스치는 적을 모조리 지워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ELID 무리가 쓰러진 그 한가운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MG3였다.
......뭐여?
내 더미.
혹시 몰라서 내 개조 소체의 더미도 가져왔어.
아아니 왜 진작에 안 썼어?! 너 때문에 나... 나...! 이 팔 잃은 거 안 보여?! 야!
이젠 1년치 보너스도 잃었네~
으이이이이...!
구사일생했단 사실에 다리 힘이 풀린 97식 산탄총은 그대로 MG3에게 기어가 그녀를 주먹으로 마구 두들겼다.
아하하... 역시, 저런 몸이 내게 맞는구나...
ELID 무리를 상대로 혼자서 무쌍을 벌이는 자신의 더미를 본 MG3는 자기도 모르게 탄복했다.
몇 시간 후, 기지로 복귀한 MG3는 수복 캡슐에서 다시 눈을 떴다. 개조하면서 받아야 했던 그 소체로.
아, 지휘관...
이야기는 다 들었어.
미안해 지휘관!
이번 일은 다 내 책임이야! 나 때문에 동료까지 위험에 휘말리게 만들었어!
변명의 여지가 없지, 암!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을게!
네가 임무에 끌고 간 소체의 상태도 봤어. 그렇게 호되게 당했으니, 충분한 교훈이 됐겠지?
......
나 때문에 호크가 크게 다쳤다구...
이렇게 간단한 사실 하나도 깨닫질 못했어...
이 정도 손실이야 회사 차원에서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어. 네가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면 오히려 값싼 대가지.
...고마워, 지휘관.
벌써 한 번 일깨워 줬는데도...
괜찮으니까 푹 쉬도록 해. 아, 그래도 임무 경과 기록이랑 작전 보고서 제출하는 거 잊지 마렴.
특히 그 소체는 어디서 났는지――
어어어알았어어...
MG3는 잽싸게 시선을 돌려, 거울 속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살펴보는 척했다.
그럼 난 이만 호크를 보러 갈게.
아, 나도 이따 간다고 전해 줘!
지휘관은 그대로 수복실로 발걸음을 돌리며 어깨 너머로 말했다.
MG3? 이번 임무에서는 실수했겠지만, 다음 활약을 기대한다.
응! 내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할게, 지휘관!
창밖에서 비쳐 드는 햇빛을 받으며, MG3는 지휘관에게 경례했다.
앞으로도 그녀에게 걸맞는 열정 넘치는 길을 걸을 것이라 확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