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950A
MOD 3
그렇게 기세 좋게 출발했지만...
우리는 금세 군의 추격 부대에게 따라잡혔고...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버려진 세이프하우스.
이게 네가 기절하기 전까지의 전투 기록이야.
젠장...!
삐삑.
쉬잇. 탐지기가 반응했어. 적이 가까이 왔어.
...썬더, 너 먼저 가.
......
나 혼자 빠져나가도, 또 금방 따라잡힐 거야.
그리고, 우리는 도망치는 게 아니라 지휘관을 구하러 가는 거잖아.
하지만... 난...
놈들을 따돌릴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질 않아...
삐 삐 삐. 탐지기의 반응이, 군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했다.
......
썬더가 검지를 입술에 댔다.
정말로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그, 그게 무슨...?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아무도 희생하지 않는 방법이 없다는 거잖아.
안 돼! 절대 안 돼!
M950A와 썬더가 서로를 마주봤다.
둘 다 입을 다물었지만, 눈빛이 말을 대신했다.
...군에게 곧 들키고 말아.
내가 반대 방향으로 유인해서, 몇 명이라도 길동무로 삼겠어.
썬더가 배낭에서 폭탄을 꺼내 몸에 묶었다.
안 된다니까!
나더러 이 꼴로 어떻게 지휘관이 있는 곳까지 가란 거야?
너도 이 방법을 생각해봤잖아. 지금 저 군부대를 유인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난 지휘관과 너 모두 살아남기를 바라.
안 돼... 그 방법은... 절대 찬성할 수 없어!
우리가 이기면, 다음 내가 나를 대신할 거야.
그리고 우린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어.
M950A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야, 그건 네가 아니야...
...내가 아니라고 확신해?
확신해.
날 잃어본 적도 없으면서.
M950A가 다시 고개를 돌려, 썬더에게 소리쳤다.
잃고 나면 그땐 이미 늦었어!
나에겐 모든 만남이 다 소중해! 너도, 대장도, 모두와의 만남이 다 소중하다고!
너희가 있으니까 나도 M950A로서 모두의 곁에 있는 거란 말이야!
너... 변했구나.
그래, 변했지... 틀에 박혀 나만의 길을 찾지 못하는, 고지식한 내가 얼마나 싫었는데.
하지만 너희와 함께하면서 깨달았어. 내겐 언제나 나를 위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어.
그리고... 그 길을 너희와 함께 걷는 게 정말 즐거워...
그래서, 나는 바뀐 내가 좋아졌어.
썬더, 너도 계속 나를 좋아해 줄래?
응...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난 항상 널 좋아할 거야.
하지만 군부대가 우리를 찾아내기까지 이제 30초 정도밖에 안 남았어.
정말 다른 대책이 없으면, 내가 나설 거야.
알았어!
매초가 흐를수록, 세이프하우스 안의 긴장감도 고조되었다.
......
썬더는 입구 안쪽을 지키면서, 말없이 M950A를 바라봤다.
군의 돌격대는 인형과 인간의 혼합 편성... 기습으로는 승산이 없어.
10초...
그 소대장도 노련해 보였으니, 평범한 함정은 통하지 않을 테고...
다시 5초...
어떡하지... 안 좋은 예감밖에 안 들어...
그렇게 20초가 지났다.
좋은 수가 떠오르질 않아...
하지만 썬더를 죽게 할 수는 없어...!
젠장, 정말 방법이 없는 거냐고!
남은 시간은 5초.
M950A는 다급하게 방 안을 살펴봤다.
아직 5초 정도 남았어! 아직――
땅그랑. 쇠붙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썬——
타앙!
!!
총성과 함께, 썬더는 마치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쓰러졌다.
썬더!
M950A는 곧장 썬더에게 기어가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으아아악!!
바닥으로부터 터져 나온 전자파가 그녀의 마인드맵을 어지럽혔다.
EMP 수류탄이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썬더가...
왜 순진하게 30초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전쟁이 무슨 게임이냐고... 미리 썬더를 도망치게 했어야...
9...50...
썬더!
아직 의식이 있구나! 어떻게든 수복 캡슐까지 데려갈 수 있다면...!
M950A는 남은 힘을 쥐어짜내어 썬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를 어깨로 부축해, 어떻게든 그곳에서 벗어나려 했다.
타앙! 하지만 M950A도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인간 병사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해체해.
알겠습니다. 어느 쪽부터 처리합니까?
흰머리부터, 허튼짓 못하게 먼저 사지부터 절단하도록.
예.
나는, 내가 싫다.
이런 결말이 되어서는 안 됐다.
지금이라도, 나의 선택이 그때의 망설임을 만회할 수 있기를...
......
미안해... 썬더...
이대로 포기할 거야?
누구...?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해. 이대로 포기할 거야?
......아니.
포기할 리가 없잖아! 아직 기회가 있다면...
기회가 있다면?
놈들을 묵사발로 만들어서, 땅속 깊이 처박아 넣고 다시는 썬더한테 얼씬도 못하게 만들겠어!
좋았어, 강화 방안 확인.
그럼, 내가 널 도와줄게.
M950A는 돌연 자신의 데이터 포트가 열리더니, 수많은 리소스가 복구, 수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내가 질문해도 되지? 넌 누구야...?
네 시각 모듈을 일부 복구했어. 이제 눈이 좀 보일 거야.
M950A이 간신히 눈을 떴다. 아직 시야가 많이 흐릿했지만, 가까이에 있는 작은 무언가의 윤곽은 보였다.
안녕, 그리폰 소속 요정이야. "오리진"이라 불러 줘. 지금 너와의 대화는 심층 연결을 통한 거니까 들킬 걱정은 없어.
조금만 더 참아, 지금부터 네 소체를 재구성할 거니까.
뭐...? 요정이 인형을 재구성하는 것까지 할 수 있어?
수복과 재구성, 그게 바로 내 능력이지. 연구원들은 내가 아무 능력도 없다 했지만 말이야.
뭐? 왜?
가능성은 두 가지야. 그 사람들이 날 잘못 평가했거나, 날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했거나. 내가 보기엔 후자일 확률이 94%가량이지만.
그럼...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나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 있었거든... 그래서 스스로 이 전장에 왔지.
사실, 난 여태까지 나 자신이 싫었어.
...!
어때, 우리 많이 닮았지?
준비되는 대로 해체 시작해.
예.
...? 저, 대장님? 통신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소리?
무슨... 음악 같습니다?
긴급 보고. 북서 방향에서 다수의 그리폰 무인 드론 포착! 아군 통신 채널에 난입하면서 이 위치로 이동 중입니다.
열상 관측으로 각 드론이 소량의 폭약을 소지한 것도 확인됐습니다. 자살특공이라도 하려는 것 같습니다.
하, 쇳덩어리들을 날려 보내는 게 무슨 자살특공이라고.
예비 무전 채널로 전환해라. 다른 통로는 없으니 문 앞에 보초 2명 외 전원은 나와 함께 저것들을 섬멸한다.
다행이다, 다들 안 늦었구나. 네가 재구성되는 걸 들켰다간 큰일 나거든.
누가 놈들을 유인해 갔어?
응, 치어리더 쌍둥이랑 토끼귀 달린 애. 너도 아는 사이지?
포터블 시티의 애들이...
수복이 끝나려면 조금 더 걸리겠는걸.
마침 잘 됐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들려줄까?
...응.
마치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시조요정의 회상이 M950A의 마인드맵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중요한 순간에 결단을 내려,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저 제자리에 서서, 어떤 선택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는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람이 싫다.
여기가, 전장...?
시조요정은 어느 폐허 밑으로 숨었다.
콰앙!!
끝없이 폭발과 폭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드문드문 인형의 비명소리가 섞여 들렸다.
950, 정신 차려!
......
저 인형, 전자전 공격을 받았구나. 나라면 깨울 수 있을 거야.
950!!
콰아앙!! 또다시 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그리고 지근거리에서 폭발한 포격의 충격파에 휘말린 M950A은 두 다리가 박살 났다.
!
950, 죽으면 안 돼!
썬더는 기절한 M950A를 등에 업고 피신했다.
왜지? 나는 저들의 전투를 보조하는 기계인데, 지금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았어.
전진? 후퇴? ...안 돼, 결정하질 못하겠어.
......이런 내가 정말 싫다.
타앙!
그때, 어디선가 날아든 눈먼탄에 시조요정이 맞았다.
EEEError 0xc000225
시조요정은 그대로 추락했다.
응? 신참이냐? 전장에서 뭘 멍하니 그러고 있어?
Error 0xc0000001...
엑, 이거 심각하네. CPU까지 망가졌잖아?
지금 남 신경 쓸 때야? 빨리 지원 준비나 해!
손이 비는 애들은 얘 좀 후방으로 데려가!
연구원님,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물론이지, 오리진. 뭐가 궁금하니?
왜 저를 파기하지 않았죠? 저에겐 아무 능력도 없다면서요. 그럼 저는 존재 가치가 아예 없단 뜻이잖아요?
그렇다면, 이렇게 있어봤자 무의미하게 전력만 낭비할 뿐이지 않나요?
아니, 그렇지 않아.
연구원은 허리를 숙여 살며시 쥔 주먹을 시조요정의 가슴팍에 댔다.
존재 가치는 스스로 찾는 거란다.
우리 인간처럼, 난 네가 너 스스로 자신이 할 일을 찾길 바라.
......
일어났어요?
응. 전투 기록을 보아하니, 너희에게 폐를 끼쳤구나. 미안해.
괜찮아요, 그저 당신을 여기까지 옮긴 게 다인걸요.
그런데, 모습이 살짝 변한 것 같은데요?
자가수복의 대가야.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런데, 너... 노래를 듣고 있니?
네, 이 노래만 다 듣고 전선으로 다시 나갈 거예요.
음악에 흥미 있어요?
아니, 딱히. 하지만 궁금해. 왜 노래를 듣는 거야?
왜 노래를 듣냐니, 참 이상한 질문이네요.
뭐, 굳이 말하자면... 즐거운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겠죠.
즐거운 추억?
네. 적이 곧 쳐들어오더라도, 작은 추억을 남기고 싶어요.
비합리적이야. 단순한 시간 낭비일 뿐이야.
헤헤헤, 이것보다 더 어이없는 일도 있는데요 뭘. 예전에 세상이 멸망하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도시를 산책하는 두 사람도 있었답니다.
뭐야 그게?
토끼귀가 달린 은발의 요정은 시조요정에게 이어폰을 건넸다.
들어보실래요? 이 노래와... 자아를 찾으러 가는 이야기를.
......
자기 자신이 싫어서 스스로를 포기했다고...?
그럼 그 사람은 어떻게 다시 일어선 거야?
모르겠어요?
아무리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더라도, 항상 그녀를 믿고 곁에서 함께 있어 주는 친구들이 그녀를 도와준 거예요.
그러니까, 친구들이 그녀의 존재 가치를 찾아 주었단 말이야?
음... 그건 아니라고 봐요. 그 친구들은 그저 그녀와 함께 길을 찾아 준 거예요.
길을 잃은 거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하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비합리적이야. 세계 종말의 때에 올바른 행동이 아니야.
하지만, 추억을 남기는 일이잖아요?
그건 인정해.
나도 그들과 함께하고 싶어.
그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이 노래를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이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헤헷.
그럼 출발할 거예요?
응. 너희도 그들도, 모두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었어.
그렇다면, 나도 추하게 목숨이나 부지하느니, 내 나름대로 즐거운 추억을 남기겠어.
괜찮다면 도와줄 수 있을까?
이게... 네 기억이구나...
수복, 재구성 완료. 너희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내가 가장 남기고 싶은 추억이야.
고마워, 오리진.
이제 일어나 봐.
아직 문 앞에 병사가 2명이나 있는데?
재구성되면서 넌 강화됐어. 각 기능이 기존 수치를 월등히 초월했으니, 날 믿고 일어나 봐.
알았어...
우와아... 이 장비랑 무기는...! 이것도 네가 만들어낸 거야?
응, 외형은 네 기억을 토대로 구성했지.
그나저나 넌 어디 있어? 우선 너부터 숨겨 줄게.
난 신경 쓰지 말고 적을 조심해.
타타탕! 문 앞을 지키던 병사 한 명이, M950A이 일어선 것을 눈치채고 그녀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M950A는 반사적으로 몸을 작업대 밑으로 숨겼다.
그와 동시에, 다른 병사가 M950A 바로 앞의 합판 뒤까지 달려와 배낭에서 EMP 수류탄을 꺼냈다.
서걱!
끄아악!
병사는 EMP 수류탄을 던지려 했지만, 수류탄을 쥔 손이 합판 끝자락에 노출되자마자 M950A가 던진 손도끼에 손이 절단되어 수류탄도 떨어뜨렸다.
이게 내 반응 속도야...?! 굉장해! 고마워 오리진!
좋았어... 놈들이 썬더를 건들게 하지 않겠어!
타타탕!
문 앞의 병사는 계속해서 M950A를 향해 사격해, 엄폐물로 삼은 작업대에서 눈부신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그도 EMP 수류탄을 꺼내 들어, 투척할 틈을 노렸다.
하지만 M950A는 몸을 수그리고 다리에 힘을 모았다가, 있는 힘껏 땅을 박차고 뛰쳐 나갔다.
——!
엄청난 속도로 돌진한 M950A가, 벽을 뚫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탕!
그리고 병사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총알이 헬멧을 뚫었다.
한편, 한 손을 잃은 다른 병사는 과다 출혈로 인한 쇼크로 기절했다.
둘 다... 제압 완료.
M950A는 바닥에 쓰러진 썬더를 안아 올렸다.
여길 벗어나자.
오리진, 넌 어딨어?
치직...
하지만 대답은 없고, 노이즈만 들렸다.
오리진...? 설마 방금 그 충격에 휘말렸나?
그때, 방 한구석에서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뭐지?
M950A는 썬더를 등에 업고서 소리가 난 곳으로 다가갔지만, 시조요정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오리진, 너 어디 있어? 같이 얼른 여기서 나가자!
그리고 이에 대답하는 듯한, 매우 희미한 소리가 났다.
M950A는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 방을 헤매다, 바닥에 쌓인 파편 더미에 시선이 향했다.
그 파편 밑, 다 부서져 가는 발성 모듈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오리진...? 서, 설마 너니...?
응, 나야...
치지직. 노이즈가 더 커졌다.
어떻게 된 거야...? 눈먼탄에 맞은 수준이 아닌데...
이게... 대가야.
내 재구성 능력은... 대상에게 내 부품을 제공하는 것...
뭐라고...?!
놀랄 것 없어... 애초에... 아주 단순한 능력인걸...
나 자신을 예비 부품으로 삼아, 너희를 지원하는 거지...
태어난 순간부터... 알고 있었어.
M950A는 시조요정의 기억 속, 연구원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 연구원이 그런 말을...
하지만, 너무해... 이런 대가는...
인간이란... 참 상냥하지...? 그저... 명령하면 되는 걸 말이야...
M950A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희생되기 위해 태어났다니! 그런... 그런 어이없는 일이 어디 있어!
그래서... 연구원님은 내가 직접 결정하라 한 거야... 그러니까... 난 후회하지 않아...
이 세상은, 참 넓더라... 재미있는 사람도 잔뜩 만났고... 재미있는 일도 많이 겪었어... 만족스러웠어.
오리진... 하지만 벌써 끝이잖아...
괜찮아, 이미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으니까... 너희 덕분에... 내가 선택할 길을 찾았어.
고마워... 난 이제... 나 자신이 좋아졌어.
——!
나도... 너희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이미 금이 가 있던 발성 모듈은 M950A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결국 바스러지고 말았다.
M950A는 외투를 벗어, 시조요정의 잔해를 살며시 덮었다.
...물론이지!
흐르는 눈물을 닦고서, M950A는 썬더와 함께 세이프하우스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