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 악마사냥꾼
TAC50
소녀는 겁에 질린 채 복도를 내달렸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본디 가족이었던 그림자가 소녀를 뒤쫓았다. 자상하기 그지없던 얼굴은 마치 괴물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맞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목숨이 위험해지면 지하실로 가라고 하셨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녀는 남은 힘을 끌어모아 지하실로 달려갔다.
"그래..."
"이번 차례는 이 아가씨로구나..."
차갑고 두려우면서도, 저항할 수가 없는 매혹적인 목소리였다.
누구지? 지하 감옥에 누가 있는 거지? 소녀의 피가 그 매마른 얼굴에 튄 순간, 혼돈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진다...
어때요, SAT8 씨? 이번 핼러윈의 하이라이트는 이게 좋을까요, 아니면 다른 버전으로 바꾸는 게 나을까요?
조금 있으면 핼러윈이니까,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어서 그런데, 괜찮으시다면...
으, 으음... 확실히 분위기 있는 이야기네요.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예요...
그럼 올해의 핼러윈 이벤트에 호러 요소로 넣어볼까요?
음향은 메이플 문에 소형 스피커를 다는 것으로 하고, 조명은――
그 열정에 감사드려요, TAC50 씨!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 괜찮다면 그걸 오프닝으로 해요!
하지만 그다음 건 저 혼자서 생각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어... 그런가요?
아하~ 하긴, 제가 계획을 다 알아 버리면 이벤트 당일 때 재미가 없어지겠죠.
그럼 힘내세요, SAT8 씨.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저를 불러주세요!
네에,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도망치지나 마세요!
하하, 물론이죠.
SAT8과의 대화를 마치고, TAC50은 숙소로 돌아왔다.
잠깐 멍하니 있다가, 메이플 문을 손에 내려오도록 했다.
SAT8 씨... 분명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은 거겠지.
설날 때 누구누구 때문에 애써 만든 폭죽이 다 터져 버렸던 일도 있었다고 하니... 이번 행사로 다시 자신감을 되찾고 싶은 거야.
드론 메이플 문의 카메라 렌즈에 TAC50의 얼굴이 비쳤다.
시각 공유 모듈로 보여지는 얼굴과 렌즈에 반사되는 얼굴이 겹쳐진 것을 바라보다, 결국 버티지 못한 듯 어깨의 힘을 풀었다.
이해는 가지만, 임무도 없는데 도울 일도 없으니 어째 불안해지기만 하네...
좀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은데. 애초부터, 인형은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잖아?
할 일도, 휴면할 필요도 없는 시간엔 대체 뭘 하면 좋을까?
하아... 메이플 문, 넌 어떻게 생각해?
방은 조용할 뿐이었다.
TAC50은 손 위의 메이플 문을 다시 공중으로 띄웠다.
...드론한테 물어보다니, 나도 참 이상하네. 아니, 지휘관님도 이런 식으로 나와 대화하잖아?
휴우... 그냥 간식이나 먹으러 가야지. 메이플 시럽 와플이 괜찮겠다.
마지막으로 메이플 시럽을 섭취한지 벌써 7시간이나 지났어. 이러다간 마인드맵이 엉망이 되어 버릴 거야.
괜한 생각 말자. SAT8 씨가 정성 들여 행사를 준비하는 만큼, 나도 기대애 보답해야만 해!
그래, 오늘 밤 내 차례 때 멋진 모습을 보여주자!
......
다시 7시간이 지났고, TAC은 낯선 어둠 속에서 시각 시스템을 가동했다.
적외선 스캔으로 홀로그램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봤지만, 의문만 커질 뿐이었다.
TAC은... 이벤트 도중 갑자기 이세계에 빠졌다.
도시, 숲, 거리, 바다... 이런 요상한 조합은 현실에 거의 있을 수 없어. 즉, 여긴 전자 공간이겠네.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우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떠올려 보자...
먼저 SAT8 씨가 MDR의 괴담이 깜짝 놀랐지?
그다음, 신호 연결 싱크로율 119.9%로 기능 이상이 발생했다는 시스템 알림이 떴고.
...그리고 지금, 우린 여기에 있지.
우리? 넌 누구야?
네 머리 위를 봐, TAC50. 난 항상 위에서 널 지켜보고 있었어.
TAC50이 무언가에 홀린듯 고개를 들자, 공중엔 메이플 문이 떠 있었다.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드론의 카메라는 스스로 TAC을 향했고, 익숙한 겹쳐진 영상이 머리에 들어왔다.
이제 내가 보여?
어...? 너, 자의식이 있었어...?
그럼... 여태까지 내 말을 듣고 있었던 거야?
"핼러윈엔 귀신이 나온다", 맞지?
그러니까 이것도 오늘, 여기서 뿐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럼,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따라와, TAC. 너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
잠깐. 먼저 내 동료들에게 연락해야 해! 어쩌면 다들 여기에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SAT8 씨는 아까 들은 괴담에 엄청 겁먹어서, 지금 혼자 이런 곳에 떨어졌다면 위험해.
빨리 찾아야 해.
그 다음엔?
그 다음?
가서... 네 도움을 거절하고, 네 아이디어를 무시한 인형을 지킨다고?
가서... 녀석을 찢어버려야 하지 않아?
......
TAC50은 뒤로 돌아, 총을 들어 자신의 드론을 겨누었다.
너 대체 누구야! 메이플 문한테서 떨어져!
진심으로 날 쏠 생각이야?
난 메이플 문이야. 오늘밤, 여기에서만 나타난 메이플 문.
난 언제나 네 말을 듣고 있었어. 그리고 너에게 알려주고 싶은 일도 있지.
웃기지 마. 메이플 문은 항상 내 곁에 있었어. 네가 정말 메이플 문이라면, 내 생각을 모를 리 없다고!
그건 오히려 네가 잘 알지 않아?
아니야!
SAT8 씨는 내 아이디어를 무시한 게 아니야! 그저 혼자서 행사를 기획하고 싶었을 뿐이야!
당장 메이플 문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면, 함께 박살 내 버리겠어!
"그건 안 된다"고 TAC50의 시스템이 오류를 뱉었다.
메이플 문을 파괴한다고 안에 깃든 정체불명의 의지를 정말 소멸시킬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리고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한 메이플 문을 정말 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알 수 없는 위험 앞에서, TAC50은 그저 허세로 상대를 위협할 수밖에 없었다.
......
진짜 귀신이라도 상관없어.
오늘은 핼러윈이야. 귀신에 대한 대비책은 진작에 마련해놨어.
내 퇴마탄 맛을 보여줄까?
빨리 메이플 문한테서 떨어져! 안 나오면 진짜로 쏘겠어!
항복! 항복할게요――
그냥 장난 좀 쳐보고 싶었어요――
메이플 문의 제어권이 돌아왔다.
TAC50은 재빨리 카메라를 돌려 어둠 속을 탐색했다.
형체가 있는 것은 찾을 수 없었지만, 대신 형체도 없고 저온인 무언가가 자신의 옆에서 일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용서해주세요――
정말 조금만 장난치고 싶었을 뿐이에요――
항복할 테니까 살려만 주세요――
내 동료 가지고 장난치지 마. 난 그런 거 질색이니까.
지금 동료한테 연락할 테니까, 얌전히 있어. 알겠어?
연락 못 해요―― 못 받아요――
여긴 우리 영역이에요――
그럼, 넌 뭐야?
유령이에요――
오늘 밤에만 나타나는 유령이에요――
꿈속에서 노래하고, 환상 속에서 춤춰요――
...핼러윈에 어울리는 거네.
그래서, 나한테는 무슨 볼일이야?
그냥요―― 당신이 우울해 보여서――
마음을 흩뜨려서 몸을 차지하면――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해서요――
그래, 적이구나.
메이플 문, 표식 개시!
항복, 항복한다고 했잖아요——
신호 차단도 껐어요——
......
안 돼. 놓아줄 수 없어.
넌 너무 위험해. 만약 SAT8 씨도 지금 똑같은 상황이라면 정말 큰일이야!
널 없애고, 어서 도우러 가야겠어.
다 물러날게요―― 다 포기할 테니까――
우릴 죽이지만 말아 주세요――
우린 그냥 살고 싶어요―― 여기서만 사는 거라 해도 괜찮으니까――
...약속할 수 있어?
우린 죽고 싶지 않아요――
당신의 동료도 굉장해요―― 지금 바로 연결해드릴게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좋아. 내 동료들과 외부하고 연결해줘.
우리가 무사히 벗어날 수 있으면, 널 놓아줄게.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휴우―― 살았어요――
...유령아, 네 말대로, 방금 난 기분이 안 좋았어.
하지만 바깥세상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 않아. 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찢어버리거나 할 수 없어.
너희가 좋든 싫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어. 너희는... 그런 세상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런 가요―? 그런 건가요――
얌전히 여기에서 즐겁게 살도록 해. 여기선 전쟁도, 다툼도 없으니까...
오히려 우리가 너희를 부러워해야 해. 나도 이런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즐겁게―― 기쁘게――
다음 핼러윈에는 꼭 함께 춤춰요――
MDR과 통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TAC50은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점점 밝아지면서 희미해져 가는 전자 숲에서, 유령들은 노래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수고했어, TAC50.
지휘관님도 힘들어 보이시네요. 제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하하... 좀 떠올리기 싫은 일이야.
뭐, 매년 핼러윈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곤 하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 밖에 더 말하고 싶은 거 있니?
유령들이 부르던 노래의 가사가 인상 깊었어요. 자신들이 존재할 수 있음을 노래했어요.
하지만, 형체도 없이 전자 공간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딱 잘라 말하긴 어렵겠는걸.
하지만 인류의 옛말 중에는 "사람은 세 번 죽는다"란 말이 있어.
지휘관의 말에 TAC50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인간의 목숨은 하나뿐이지 않나요? 제 데이터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맞아, 인간의 목숨은 하나뿐이지.
한목숨으로 세 번 죽는단 말인가요... 그건 정말 힘들어 보이네요.
문자 그대로의 뜻은 아니야.
인간이 처음 죽는 건 육체가 사망할 때야. 이건 되돌릴 수 없어. 영혼의 존재유무는... 나도 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으니 넘어가자.
그리고 두 번째로 죽는 때는, 유족들이 몇 가지 절차를 거쳐 사망신고를 해서 사회적으로 죽을 때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그 사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마저 죽을 때야. 이 세상에서 아무도 그의 존재를 기억하지 않게 되면서, 진정으로 사라지는 거지.
그러니까... 누군가가 기억을 해주고 있기에 유령들은 살아있다는 건가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나도 예전에 "유령은 사람의 기억으로 인해 존재한다"라는 전설을 들었어.
인형의 기억도 마찬가지로 쳐줄 수 있다면, 네가 그들을 기억하는 이상 꽤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러니까... 전 혼자서가 아니라, 기억 속의 수많은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거군요.
그리고 어떤 경험이든 더 많은 기억을 만들어 내, 그 기억 속에서 인간과 인형들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요.
으음... 갑자기 이런 문제를 고민하니까, 사고회로의 용량이 부족해지는 느낌이에요.
넌 나보다 깊게 생각하는구나. 그래도 무리할 필요는 없어.
순조롭게 결론을 짓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잖아요?
하하, 맞는 말이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는 것이 있어요.
인간도 인형도, 다들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죠?
그래. 또 다른 의문이 드는 거니?
하지만... 계속 살아가면서, 계속 여러 가지를 겪어보는 것이 삶의 의미인가요?
언젠가는 죽게 될 텐데, 그럼 이런 시도와 경험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흐음... 후계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려나?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그리폰에서 하는 노력들은, 세상을 새로 쓰게 될 테지.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이뤄낸 노력의 결실을 맛보게 될 거야.
물론, 우리 잘못의 책임을 대신 질 수도 있고.
하지만 어느 쪽이든, 우리는 기억되겠지. 우리의 노력은 분명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테고 말이야.
...역시 지휘관님의 생각이 더 깊으시네요.
지휘관님과 함께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칭찬해주니 부끄러운걸.
그래도 결국, 살아간다는 건 생물의 본능이야. 의미를 모른다 해도, 계속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찾을 수 있어.
그 의미를 찾을 때까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거야.
알겠어요.
그럼, 지금 바로 새로운 일을 해볼까?
어디보자... 예를 들면, 건배라던가.
건배요?
그래, 이렇게.
지휘관은 잔을 들어 TAC의 잔 끝을 가볍게 쳤다.
인간들은 이렇게 서로를 축복해.
그다음은 단숨에 잔을 비우지. 이렇게......
그렇군요. 지휘관님의 "축복"을 받는다니, 새로운 경험이네요. 그리고 기뻐요.
지휘관님이 제가 만든 음료를 마시는 걸 보는 것만큼 기쁘네요.
야... 너... 여기다 메이플 시럽을 대체 얼마나...
이거 밀크티인데...!
어, 입맛에 안 맞으세요? 밀크티에 시럽을 좀 더 넣는 게 어떨까 싶어서...
지휘관님 괜찮으세요?! 왜 목을 감싸쥐시고...
괘, 괜찮으니까... 물 좀 줘, 맹물이면 돼!
안녕하세요~ 어머, 지휘관님 괜찮으세요? 물은 없지만, 호박 쥬스라면 있는데요.
큰일이에요, 지휘관님 많이 괴로워 보여요...
응급처치를 해야 할까요?
아님 냉장고에서 콜라라도 가져올까?
물... 그냥 물이면 되는데...
그렇게, 올해의 핼러윈도 난리 속에서 막을 내렸다.
...내년에는 꼭 부적을 챙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