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모닝퀸
Px4Storm
그리폰 기지.
나한테 물자 구매 임무를 맡기겠다고? 대체 계획을 어떻게 짰길래?
왜, 잘 못 할까 봐 걱정이라도 돼?
걱정보다는... 의문투성이야.
두목도 그 계획에 동의한 거 맞아? 구매 임무의 책임자는 누군데? 그리고 경비의 처리 방식은――
네가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 지휘관이 이번 크리스마스 이벤트의 기획을 내게 전적으로 위임했으니까.
영수증만 제대로 받아오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다 경비 처리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회삿돈인데,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나한테 그런 걸 맡기는 건 리스크가 크다는 생각은 안 들어?
너, 계산 업무를 처리하는 솜씨가 엄청 뛰어나다고 평판이 자자하던걸? 너에 대한 신임이라 생각해.
그럼, 같이 잘 해보자.
...알았어. 이 일은 나에게 맡겨줘.
크리스마스를 경축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 Px4는 어느 상가의 입구에서 간판을 확인하고 있었다.
사전 조사에 따르면, 여기가 기지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가격대가 제일 저렴한 상가였지?
할인 전단지 조각과 쪽지, 각주로 빽빽한 수첩을 꺼내 훑어보면서, Px4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보자... 품목도 다양하고, 명절 할인 행사 기간인 데다,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할인 이벤트도 있고...
이전 자료와 대조해 본 결과, 지금이 가장 알뜰하게 구매할 수 있는 시기인 것도 확인...
좋았어, 파티에 필요한 식재료는 여기서 다 살 수 있을 거야! 어서 들어가자!
어서 오세요~
음 음, 벌써 절반 정도가 팔려나가긴 했지만, 다 예상 범위 내네.
그럼 우선 반값 할인 중인 천연 소 홍두깨살부터 사야지... 앗!
정육 코너에 오니, 마지막 상품을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카트에 막 담는 참이었다.
저 사람... 아니, 저 인형은...!
예상보다 훨씬 싸네. 아주 좋아.
응? Px4잖아? 뭐야 그 눈빛은? 불만 있어?
CZ75...
설마 너도 이 특가 천연육을 사러 온 거야? 유감스럽지만, 한발 늦었구나!
천연육이 없으면 가서 합성육이나 사!
겨우 그거 하나 차지했다고 우쭐거리지 마!
하하, 신입이 입만 살았구만. 불쌍해라 불쌍해.
미안하지만 너랑 수다 떨 시간 없어. 난 임무 중이라고.
CZ75는 의기양양하게 카트를 밀며 떠났다. 하지만 Px4의 시선은 CZ75의 카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소고기, 양파, 감자. 그렇다는 건...
그래, 그렇구나. 그럼 다음은...
CZ75는 조미료 코너에 도착했다.
그럼 다음은...
아아아! 저건!
CZ75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눈앞에서 마지막 파프리카 가루를 자신의 카트에 담는 Px4의 모습이었다.
어머나~ 이거 CZ75 선배님 아니신가요~?
이게 마지막 한 통이야. 미안해서 이걸 어쩌나, 다른 데를 알아봐야겠네?
흥, 상관없어! 고춧가루가 있다면 파프리카 가루 없이도...
어머, 이걸 말하는 걸까?
그... 그거!
Px4는 도발하는 미소를 띄우며, 보란 듯이 카트 안에서 고춧가루가 담긴 통을 꺼내 들었다.
참고로, 이것도 마지막 한 통이야. 아무래도 오늘은 조미료가 잘 팔리는 날인가 봐~
너 이 자식...! 내가 사야 되는 것들을 어떻게 알고...?!
아까 그 카트의 내용물을 보고 알았지. 보아하니, 굴라쉬 만들려는 거지?
어때, 거래하지 않을래? 네가 필요한 건 내가 벌써 다 골라놨어.
하! 내가 너 같은 녀석한테 굴복할 것 같아? 너보다 먼저 나머지 식재료를 차지하면 내 승리야!!
CZ75는 홱 뒤돌아 카트를 밀며 전력질주했다.
경주하자 이거지? 미안하지만, 아무리 달려봤자 이 상가의 구조를 다 꿰고 있는 내 손바닥 안이야!
CZ75는 카트에 반쯤 올라타다시피 하면서 달렸지만, Px4는 최단 경로를 따라 한발 앞서 선반에 남아있던 생크림을 모조리 카트에 쓸어 담았다.
유제품, 유제품... 아아아아! 또 한발 늦었잖아!
야 임마! 한판 해볼 셈이냐!
그러게 거래하자니까! 내가 요구하는 것만 내놓으면...
경비원 아가씨, 여기예요! 저 두 분 좀 말려 주세요!
어? 너는...
난 또 무슨 취객이나 도둑인가 했더니, 너희들이었냐.
MG5? 네가 왜 여기에...
있어선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상가의 의뢰를 받아 경비 업무 중이다. 오히려 이게 우리의 본직이잖아?
너희 둘, 여기를 무슨 꼴로 만들었는지 봐. 이걸 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내 말 좀 들어봐, MG5! Px4 이 녀석이 일부러――
아야! 왜 때려!?
몰라서 묻냐? 쇼핑카트를 타고 달려서 다른 손님들을 겁준 게 누군데. 회사의 이미지도 좀 신경 써!
으으... 미, 미안...
그리고 Px4, 너도 공범이렷다?
그냥 사소한 다툼이야.
결론적으론 너도 똑같아.
정말이지... 너도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을 줄은 몰랐군.
감정적이라고? 내가?
자세한 사정에는 관심 없어. 문제는 너희가 상가 내에서 마구 달리고, 사재기하고,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일으킨 것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하고 있다는 거지.
여기의 손님 이외에도, 바깥에도 다른 인형들이 휴일의 쇼핑을 즐기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그러니까, 둘 다 민폐는 그만 끼치고 다른 상점으로 가도록.
아아~! 결국 헛수고만 했잖아!
당장 다른 상점을 찾아내지 못하면, 기지 PX에서 건빵이나 사 먹게 될지도 모르는데...
내가 사전 조사한 바로는, 여기서 동쪽으로 두 블록을 가면 재래시장이 하나 있어.
여기보다는 좀 더 비싸겠지만, 우리가 필요한 식재료는 거의 다 살 수 있을 거야.
우와, 빼곡히도 메모해뒀네...
...뭐, 어쨌든 고마워. 네 덕분에 빈손으로 돌아가진 않겠네.
주목할 만한 상점이랑, 가장 저렴한 특가 품목도 전부 적어놨어.
모든 가게의 특별 할인 행사나 할인 쿠폰도 챙겨뒀지.
Px4는 할인하는 것만 보면 충동 구매하는 타입이었구나. 몰랐네.
할인? 충동 구매? 그럴 리가. 다 사전에 샅샅이 정보를 수집한 성과야.
흐음, 그럼 왜 이런 일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거야?
따지고 보면, 기지에 먹을 게 떨어져 봤자 굶어 죽는 건 지휘관이랑 카리나 뿐이잖아. 우리 인형들이랑은 아무 상관 없는데.
이 세상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회색지대가 아직도 잔뜩 있어...
범죄 행위는 바로 잡아내는가 하면 못 잡을 때도 있고, 타인을 돕는 행위도 칭찬을 받거나, 거꾸로 핀잔을 받을 때도 있지.
하지만, 돈은 달라.
사물의 가치와 좋고 나쁨의 기준 전부를 확실한 숫자로 표시할 수 있지. 난 그 점이 마음에 들어. 나의 가치를 느낄 수 있으니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전력을 다해 할 거고,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다면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헤에... 근데, 그건 너무 속세주의적인 거 아니야? 남들한테 속물이라고 놀림받아도 괜찮겠어?
상관없어. 살아가면서 가장 신경 쓸 필요 없는 요소는 바로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야.
예를 들어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을 때 타인의 눈치를 살필 여유가 있겠어?
우와아... Px4 너 대체 그리폰에 오기 전엔 뭘 하면서 살았길래 그래?
별거 아닌 삶이었어. 적어도, 지금은 많은 동료가 있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고, 안심하고 돈이 쌓이는 걸 볼 수 있는 통장이 있으니까...
지금 이렇게 생활할 수 있는 것도, 다 두목과 동료들 덕분이야. 그러니까 나도 모두에게 보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
그래서 가성비를 따지는 거야.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식재료를 마련하면, 남는 돈은 더 많은 동료들에게 이득으로 돌아갈 테고, 그리폰에서의 내 가치도 증명할 수 있으니까.
풋, 다들 너한테 별로 관심도 없고, 딱히 기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지.
그래도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맛있는 요리를 많은 사람들한테 대접해야 하니, 우리 서로 목적이 일치하는 셈이지?
그럼, 거래할 거야? 나도 열심히 모은 특별 정보를 공짜로 줄 수는 없어.
응?
그 뛰어난 행동력으로 쇼핑을 도와줄 거지?
하아... 그래 그래, "오직 이익만이 영원하다"라는 거지?
다르게 말하자면, 서로 돕고 도우면서 살면 영원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지.
그럼, 크리스마스 쇼핑은 이 정도로 만족해?
바로 그게 지금 내가 바라는 최대의 이익이니까.
메리 크리스마스. 같이 힘내자, 그리폰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