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킨 포트리스
M870P
......
이른 아침, 그리폰 인형 숙소.
노크 소리에 잠이 깬 M870은 화가 나 소리질렀다.
아침부터 어떤 놈이야?!
지갑이 아주 빵빵해서 벌금 좀 두둑하게 내고 싶은 거냐!
M870이 이불을 뻥 차고 일어나 문을 여니...
KSVK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다, 운명에게 선택받은 행운아여.
KSVK... 내 잠을 방해한 이유를 설명할 기회를 주겠어.
납득 가는 이유 아니면 그 모자 속을 벌금 딱지로 가득 채워 버릴 거니까.
화내지 말거라 M870, 흔치 않은 폭풍이 다가오고 있으니.
폭풍이 덮치기 전까진 그 속에서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을지 아무도 모르지.
헛소리 작작하고 간결하게 말해.
시답잖은 농담이나 해대면 차 앞에다 범퍼 대신 묶어버리겠어.
오늘, 모든 그리폰 인형들이 한데 모여, 영혼이 날뛰는 밤을 보낼 것이다!
마지막 경고야.
오늘 밤, 담력 시합에서 인형들은 모두 공포에 쫓기게 될 거다. 두려움을 떨쳐낼 유일한 방법은, 다른 이들을 겁주는 것.
어쩌면 날이 밝기 전까지 어떤 인형도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쓸데없는 헛소리를 빼면, 오늘 밤에 담력 시합을 연다는 거야?
이제야 좀 재밌는 얘기가 나왔네♪
듣자하니, 승자는 1년치 사이다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자아, 운명의 인도에 따라 시합에 도전하거라!
그날 밤, 담력 시합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M870은 목에 붙인 센서를 만지작거렸다.
규칙 설명도 쓸데없이 난잡하게 해서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 결론만 따지면 귀신 팀과 도전 팀으로 나뉘어서, 귀신이 사람을 많이 놀래킬 수록 높은 점수를 얻는다는 소리잖아.
그런데, 그걸 판단하는 기준이 목소리의 음량을 측정하는 거야?
진짜 멍청한 방법이네... 뭐, 그리폰 스타일이 다 그렇지.
M870은 근처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인형을 노렸다.
후후후... 얼간이들아, 꽁무니 빠지게 도망쳐라!
지금 당장 쫓아가서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찍어 줄 테니까! 캬하핫!
...30분 후.
이쑤시개를 문 채, M870은 나무 위에 드러누워 투덜댔다.
아아~ 시시해...
살짝 놀래켰을 뿐인데 다들 바로 사이다를 냉큼 바치기나 하고...
꺼——억.
M870은 두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저 얼간이들이 유일하게 잘하는 건 줄행랑뿐이겠지.
하여간, 비명만 들으면 666번 국도 놈들처럼 쏜살같이 도망친다니까.
그때, 수풀 속에서 WA2000이 엉금엉금 기어나와, 나무 밑으로 다가왔다.
다들 어디 간 거야? 반나절을 매복했는데 수확이 전혀 없잖아...
WA2000은 나무 밑에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번 귀신의 집 행사 때, 지휘관 앞에서 창피하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어...
이번에야말로 완벽한 활약으로 저번 일을 깔끔하게 잊게 만들 거야!
그냥 다른 애들을 놀래키는 일이잖아? 식은 죽 먹기라고...
그 광경을 본 M870은 물고 있던 이쑤시개를 뱉고 사악하게 씨익 웃었다.
그래, 오늘은 귀신 놀이하기 좋은 날이지...
모두 귀신인 척하니까, 나도 얌전하게 굴 필요가 없거든...
무, 뭐뭐뭐뭐야? 거기 누구 있어?
WA2000이 당황하며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M870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어머나... 내가 안 보이니? 여태껏 네 뒤에 있었는데...
누, 누군진 몰라도 자자자장난치지 마...
WA2000이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릴 때...
M870은 타이밍에 맞춰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여깄잖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 귀신이다아아아아아아!!!
귀신 팀의 WA2000, 아웃! 최종 점수 0점!
M870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는 WA200의 뒷모습을 흡족스럽게 구경했다.
푸히힛, 표정을 못 봐서 아쉬운걸.
그때, 또 다른 곳에서 터져나온 처절한 비명이 자아도취 중이던 M870의 주의를 끌었다.
오호라, 또 어디서 생쥐 한 마리가 내 무대에 슬금슬금 기어올라왔나 보구만?
<Size=55>꺄아아아아아 언니이이이이이이이!!!</Size>
G36C는 커다란 호박 껍질을 냅다 던지고서 부리나케 도망쳤고, PSG-1은 몸에 묻은 인공 혈액을 닦아냈다.
또 1점 추가. 이대로라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네.
피를 소품으로 썼네? 후후...
역시 얼간이들은 마인드맵을 오버클럭해도 그런 유치한 수단밖에 생각 못하는구나.
마침 저멀리 보이는 십자가 소품을 보고, M870은 한 가지 계략이 번뜩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겨, PSG-1이 볼 수 없는 구석에 숨고 목을 눌러 한껏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너도...
너도... 우리와 같은 편이니?
누구야? 나와!
나도 나오고 싶지만... 상처투성이라...
그리고... 네 몸에서 나는 피 냄새를 맡으면 발작해서 널 놀라게 할까 봐...
M870은 일부러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흐음... 네가 먹고 남은... 찌꺼기의 냄새만 맡아도... 기분이 좋아지네...
......
나의 동포야, 왜 말이 없니...?
어... 급한 볼일이 생겨서...
이렇게 느긋한 밤에...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오늘은 핼러윈... 사냥감들 모두 방심해서 마음껏 사냥할 수 있는 날인데...
PSG-1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그렇지? 그래서 사, 사냥감을 창고에 넣고 오려고...
기다려, 동포야. 적어도 내 부탁을 들어줘.
무, 무슨 부탁...?
저기 있는, 보기만 해도 거슬리는 저 십자가... 난 저걸 치울 힘이 없어...
나 대신 저걸 치워 준다면, 내가 가진 것 중 제일 향기로운 혈주를 한 잔 줄게...
......
도와 줄 수는 있지만, 혀, 혈주는 사양할게...
PSG-1는 전전긍긍하며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십자가에 걸린 수갑에는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이 핏자국... 너희...가 아니라 우리 동포 거야?
맞아... 그 수갑은 일족의 배신자를 벌하기 위한 것이지...
열심히 사냥하지 않고, 팔자 좋게 놀기만 하는 미련한 흡혈귀들을 말이야...
그리고...
흡혈귀를 사칭하는 기만자들도.
엑... 그, 그럼... 여기 묶였던 녀석들은 어디로 갔어?
PSG-1이 단단히 겁을 먹고 굳어 있을 때, M870은 그늘에서 살금살금 나와 PSG-1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야 물론... 동이 틀 때 햇빛을 보고 잿더미가 되었지♪
그런데, 너는 정말 향기롭구나. 동포의 피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아...
PSG-1는 기겁하며 반사적으로 십자가를 붙잡았다.
아... 설마 너도, 반·역·자?
꺄아아아아아아악!!!
PSG-1은 십자가를 뽑아 몸을 가리려 했지만, M870이 한발 먼저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PSG-1의 손에 십자가의 수갑이 채워졌다.
귀신 팀 PSG-1, 아웃! 최종 점수 8점.
꺄하하핫! 제법이었지만, 나보단 한 수 아래였어.
너였어?!
설마 진짜 흡혈귀라도 나타나길 기대한 거야?
웃겨서 배꼽 빠지겠다 야, 푸하하!
......
MDR의 흡혈귀 글을 믿는 게 아니었어...
그래도 결과엔 승복해야겠지. 나 탈락했으니까 어서 풀어 줘.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래? 모처럼 잡은 사냥감인데 모두에게 자랑해야지 않겠어?
내 전리품으로서 얌전히 구경거리가 되렴♪
바둥대는 PSG-1을 뒤로하고, M870은 싱글벙글 웃으며 다음 사냥감을 찾으러 떠났다.
G36C가 버리고 간 커다란 호박 껍질이 사라진 것도 모른 채...
잠시 후, M870의 시야에 이번에는 지휘관을 찾아 헤매는 Mk23이 포착됐다.
딱 봐도 싱거운 녀석이네... 뭐, 당장은 더 나은 사냥감이 안 보이니 어쩔 수 없지.
이번에는 수풀 속에 숨어, Mk23에게 접근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그녀를 붙잡아 세웠다.
오늘 밤 선택받은 아이여, 사냥이 매우 순조로워 보이는구나.
엥, KSVK? 방송하다 말고 뭐하러 나왔어? 공무집행방해할 셈이야?
미래를 보았다... 걸음이 느려진 네가 공포에 따라잡히는 미래가...
내가 추월당한다고? 올해 들은 것들 중에서 제일 웃긴 농담이다 야.
그래서 네게 선물을 주려 왔다. 요새이자 감옥이 될 물건을...
널 공포로부터 지켜 줄 요새가 될지, 공포와 함께 가둘 감옥이 될지는 네게 달렸다.
야... 너 휘발유 한 사발이라도 했냐?
됐으니까 저리 가, 자꾸 내 업무 방해하면 너도 같이——으악!?
KSVK가 난데없이 수풀 속에서 커다란 호박 껍질을 꺼내, 그대로 M870에게 씌웠다.
그럼, 이 공포의 폭풍 속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지...
야! 이게 뭐야아아아!!!
야 임마! 너 거기 안 서!?
유유히 발걸음을 돌리는 KSVK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를 지르면서, M870은 있는 힘을 다해 버둥거렸다.
하지만 호박 껍질이 꽉 끼어서 도저히 벗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때마침 바람이 불어, M870의 머릿결을 간지럽혔다.
누, 누구야?! 뒤에 누구야!?!!
M870이 뒤뚱뒤뚱 몸을 돌렸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으으... 날 어쩔 셈이냐!
미리 경고하는데, 공무원 폭행은 중죄라고!
허무한 위협에 대답하는 건 쌀쌀한 바람뿐이었다.
벌금형에 개처럼 짖어야 한다고!
밝은 달빛에,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땅에 드리웠다. 그 형상은 뼈만 앙상한 손 같았다.
M870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바람에 풀밭이 쏴아쏴아 소리를 냈고,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그건 마치, 원한으로 가득찬 괴물이 시공을 찢고 달려드는 듯한——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어어어!!!
M870은 비명을 지르며 내달렸다.
하지만 커다란 호박 껍질을 뒤집어쓴 탓에 발밑을 보지 못해, 얼마 안 가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지도 못하고, 뒹굴뒹굴 구르며 울부짖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인형 살려어어어어어!!!
바닥에 드러누운 시간이 마치 수백 년처럼 느껴질 무렵, 드디어 M870의 눈에 몇 쌍의 발이 보였다.
아이고 M870, 참 특이한 핼러윈 분장이구나?
어... 넘어졌는데 너무 둥그레서 못 일어나니까 소리 지른 거였어?
방금 살려 달라 한 게 너야...?
구경만 하지 말고 얼른 좀 꺼내 줘!
말이야 쉽지, 몸이 꽉 끼었는데 어떻게 꺼내라고?
나야 모르지! 아무튼 빨랑 꺼내 달라니까!
진정해, 일단 뜯는 곳이 있나 찾아볼게.
QBU-88은 자신의 도구 보따리를 풀고, 호박 껍질에 하나씩 갖다대 보았다.
...20분 후.
안 되겠어, 좀 더 큰 연장이 필요해...
야! 뭐가 이리 굼떠?! 빨랑빨랑 하라고!
구경꾼이 점점 더 늘어나잖아, 이런 창피를 당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좋았어, 그럼 내가——
잠깐 기다려 호크, 아무래도 그건 좀 위험해.
사람 가까이서 총을 쏘려 하면 어떡해?
그럼 뭘 어째? 난 빨리 지휘관 찾으러 가야 한단 말이야.
다른 방법이 있을 거 아니야!
저기, 싸우지 말고...
땅바닥을 뒹굴던 M870은 티격태격해대는 세 인형에 속이 답답해져, 다리를 버둥거려 겨우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 내가——
또 얼마나 기다리라고! 지금 상황 파악 안 돼냐?!
대체 언제 꺼내 줄 셈이야?!
이게 진짜...
금방 갔다 올 테니까 5분만 더 참아!
MG3는 지휘관에게 통신을 걸면서 현장에서 뛰쳐나갔다.
야! 너 그거 과속이야!
그리고 날 내버려두고 어딜 가냐고!!!
아 진짜 짜증나네 이 녀석!
결국 폭발한 호크가 QBU-88을 밀치고, 총을 M870에게 겨눴다.
퍼엉!!
끼야아아아악!!!
30분 후, 자진 퇴장한 M870은 넋두리가 나간 채로 지휘관 호위 팀에 합류했다.
어... M870? 네가 조용하니까 오히려 어색하다...?
......
하긴, 트라우마로 남을 만도 하지...
자, 눈을 감아 봐. 네게 줄 선물이 있으니까.
M870은 드물게도 순순히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M870은 따뜻한 품속에 안긴 느낌이 들었다.
이제 눈을 떠보렴.
응...? 으에에에엑!? 또 빌어먹을 호박이야!!!
자 자, 진정하고 여기, 여기 이 버튼을 눌러 봐.
성질을 내면서도, M870은 이번에도 얌전히 시키는 대로 손을 더듬어 버튼을 찾아 눌렀다.
어...? 껍질이 열렸네?
공방에서 근무 중이던 인형에게 부탁해서 만든 개량형이야.
이러니까 편리하지?
너... 이, 이거 공무원 희롱이야!
그래도... 정성을 봐서 이번만 눈감아 줄게.
그리폰 담력 시합 종료. 참가자는 시상식으로 이동!
자, M870. 상을 받으러 가야지.
담력 시합 시상식.
...이상, 이번 행사의 수상자 명단이야.
경품은 각자 내게 와서 수령해!
그럼,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줘서 고마워! 내년에 다시 보자!
카리나, 20% 할인 쿠폰 줘.
응? 그런 경품은 없는데?
카리나! 난 사이다!
사이다도 경품 목록에는 없는데...?
......?
......?
KSVK... 그 자식 어딨어?! 독방에다 처넣어서 밤새도록 데스메탈을 틀어 줄 테다!
KSVK한테 속은 거야...? 사람들 놀래키느라 엄청 노력했는데...
KSVK라니 무슨 말이야?
KSVK라면 임무 도중 부상을 입어서 아직도 혼수 상태인걸?
뭐... 뭐라고오오?!!
으아아아앙!
...같은 시각, 그리폰 인형 숙소.
거울 앞에서 화장을 지우는 "KSVK"는,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KSVK를 보며 살며시 미소지었다.
트릭 오어 트릿, 버러지들. 오늘은 정말 즐거웠어♪
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