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화
JS9mm
알았다. 수고가 많구나.
별말씀을요.
지휘관님은 언제 도착하시나요?
난 아무래도 저녁이나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때까지 너희에게 맡길게.
알겠습니다.
통신 종료.
......
이것도 다 업무의 일환이긴 하지만...
설마 관련 경험이 전무한 나를 책임자로 임명하시다니...
거절하진 않았지만, 지휘관의 판단에 다소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JS 9에겐 이런 가구 전시회를 조직해보기는커녕, 비슷한 것을 견학한 적조차 없었다.
이래서 내 특기 분야 외의 일이 싫다니까...
하지만 이미 배정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예정에 없었던 임시 임무인 만큼, 일손이 매우 부족했다.
게다가, 이 일이 익숙치 않은 건 JS 9과 함께 임무를 배정받은 대다수의 인형들도 마찬가지였다.
해야 하니, 하는 수밖에.
JS 9은 일단 모두의 상황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엉망진창이잖아...
하긴, 나처럼 다들 관련 경험이 거의 없을 테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
어머, JS 9?
상황 확인하러 왔니?
아, 네. 곧 문을 열어야 해서 확인하러 왔어요.
그렇구나. 그럼 지적할 만한 사항 있을까?
지적할 만한 거요? 아뇨... 애초에 이런 일은 잘 몰라서...
어... 아무튼 간에, 에너지 보충 잊지 마세요. 이따가 T91이 보급품을 가져올 거예요.
......
응, 알았어. 고마워.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저기, MG36 씨!
무거운 화물은 수레로 옮기세요!
알았어!
그런데, 그거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니야? 이렇게 커다란 걸 어떻게 맨손으로 옮기겠어.
아, 그건... 그렇네요.
앗! EM-2 씨, 의자 앞뒤로 흔들면서 장난치지 마세요!
죄송해요!
관련 지식도 없기에, JS 9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다른 인형들도 자기 할일로 바빠 JS 9의 말을 대충 넘겨들어서, 사실상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론 JS 9 본인도 이를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람...
이래서 내 능력 범위 밖의 일이 싫다고...
이 임무를 억지로 맡았을 때부터 이렇게 되리라 짐작은 했다.
무얼 어떻게 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은 안 되는 것이 당연지사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반대로 말하자면, 큰 책임을 맡으려면 큰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지 않은가.
이대로라면... 전시회를 열기도 전에 끝장날지도...
그때, 통신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JS 9?
네, 여기는 JS 9.
무슨 일이시죠, MG34 씨?
회장 밖에 손님들이 엄청 많이 모였어요.
분위기로 봐선 더는 못 기다릴 것 같아요.
아무래도 지금 문을 여는 게 좋겠어요.
네?! 아직 가구 배치도 안 끝났는데!
어떡하지...
JS 9의 눈에 비친 전시회장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었다.
가장 믿음직스러운 DP-12마저도 자기가 맡은 부스의 가구들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가만히 있다간, 정말로 전시회가 실패로 끝날 처지였다.
알겠습니다, 여긴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MG34 씨도 그쪽 업무 부탁할게요.
어머? 아직 배치가 다 안 끝났는데 벌써 손님이...
어쩐담, 이 옷장을 어디다 놓지?
죄송해요 DP-12 씨, 혹시 아직 배치 못한 물건이 있나요?
금방 도와드리러 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긴 내가 처리할 수 있으니 괜찮아, JS 9.
우선 너부터 진정하렴.
아... 목소리만 들어도 티가 나나요?
내가 듣기에는.
역시, 전 이런 일이 안 맞는 걸지도...
맞는지 안 맞는지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단다.
그러니 지금은 최선을 다하렴. 나도 같이 힘낼 테니까.
네... 헤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조금 안심이 되네요.
그럼 나중에 봐요!
그래, 이따 봐.
통신 종료.
......이제 어떡하지?
격려받은 덕에 기분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좋은 수가 떠오르질 않았다.
그렇게 망설이던 와중, 첫 번째 방문객 행렬이 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중국풍 가구 전시회라길래 와봤더니... 뭐가 이리 엉망이야?
설마 그냥 창고 문 열어 놓고 장사하려는 건가?
이건 그 수준도 아닌 거 같은데?
창고라도 물건은 최대한 정리해서 쌓아 두잖아.
이건 정리도 안 됐어.
그러게 말이야... 저 봐라, 저 병풍은 아예 뒤집어졌네.
......
이대로 끝인가...
JS 9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손님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JS 9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
아니야... 이제 겨우 문을 열었는걸! 한심하게 포기해선 안돼!
능력 밖의 일은 하지 않는 게 내 원칙이지만...
도중에 포기하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좋을까?
가구 배치가 엉망이라면 조금이라도 가지런히 정리하면 될 터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리해야 손님에게도 보기 좋을까?
으음? 벌써 무슨 일이 생겼나...?
어째선지 손님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어 가보니, EM-2가 땀을 뻘뻘 흘리며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 뭘 저렇게 만지작거리는 거지?
으... 어, 어라?! 언제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였지...?
아직 전화기도 못 고치고 가구도 확인 다 못했는데...
전화기가 고장났나?
아니, 그보다...
EM-2의 주변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가구들을 본 JS 9은 무언가가 번뜩 떠올랐다.
저 구도... 어디서 많이 비슷한 걸 본 기억이...
JS 9는 혹시나 싶어 마인드맵 기록을 빠르게 검색했다.
그리고 곧바로 고대 중국의 궁녀도를 찾아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그 그림과 꽤나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아하...!
EM-2 씨, 여기 가구 배치 아직 안 끝났죠?
아, JS 9 씨! 저 좀 도와주세요...
어쩔 줄 모르던 EM-2에게, JS 9의 갑작스런 출현은 마치 구세주의 재림 같았다.
EM-2의 기대로 가득 찬 눈빛에, JS 9도 절로 의욕이 솟아났다.
이 가구들, 생김새가 특이해서 뭐가 뭔지 잘 몰랐죠? 사전 정보 전달이 부족해서 죄송해요.
저쪽에서 보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제가 부스를 다시 정리해 줄게요.
JS 9은 망설임 없이 부스의 가구들을 설명하면서 다시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건 병풍이에요. 실내 공간을 나누고 바람을 막는 용도니까...
여기다 둬서 전화기를 놓을 공간을 분리하게 하는 게 좋겠네요.
이건 걸상이니까 힘들면 걸터앉아 쉬어도 돼요.
그리고 이 탁상에다 전화기를 놓으면...
와아...
JS 9의 손길에 점점 정리되어 가는 부스를, EM-2는 그저 감탄하며 지켜봤다.
왜 가만히 그러고 계세요? 가서 옷 갈아입고 오세요.
네? 옷도 갈아입어야 하나요?
그야 당연하죠! 이런 테마 가구 전시회는 판매원도 테마에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죠.
얼마나 전시회의 분위기에 녹아드느냐에 따라 판매원의 능력이 드러난다고요.
그러니까, 제가 이 부스 정리하는 동안 얼른 갈아입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어... 그밖에 판매원으로서의 자질은 또 뭐가 있나요?
음... 장사라 해서 무조건 물건을 비싸게 파는 게 아니라, 고객을 만족시키는 거겠네요!
아, 그런데 이건 중요한 만큼 하루아침에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아주 긴 시간을 들여 숙달하는 거죠.
아무튼 일단은 옷부터 갈아입도록 하세요.
그렇군요... 그럼 여기 좀 부탁할게요.
EM-2는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좋아, 그럼 EM-2 씨가 돌아올 때까지...
여길 더 예쁘게 꾸며보자.
방금까지 끼어 있던 마음속 안개가 말끔하게 걷힌 느낌이었다.
의욕 넘치는 모습으로 부스를 다시 꾸미는 JS 9의 모습은 전혀 초보 같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열중해서 EM-2가 옷을 갈아입고 돌아온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JS 9 씨, 저 왔어요!
우와, 여기 진짜 제 부스 맞아요?
아, 마침 잘 왔어요. 한번 여기에 서 보세요.
오오... 이렇게 서 있으니까, 전화기를 든 느낌이 아까랑 전혀 달라요...
다행이다, 제가 원하던 효과가 제대로 나는 모양이네요.
여기 작업은 이만하면 충분할 테니, 다음 부스를 확인하러 갈게요.
힘내세요, EM-2 씨!
네, 고마워요!
JS 9는 EM-2의 감사 인사를 다 듣기도 전에 사라졌다.
온몸에 의욕이 넘쳐흘러,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는 기관차처럼 멈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어쩔 줄 모르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도전하고픈 마음으로 가득했다.
어라? 이봐, 이리 좀 와봐. 저기 꽤 괜찮아 보이는데?
어디 어디? 오오... 판매원이 예쁘고 좋구만.
야이... 사람 말고 가구를 봐 가구를! 저 병풍 있잖아, 우리 식당에다 둬도 똑같이 근사한 분위기 날 거 같지 않아?
아, 근데 쟤 진짜 예쁘긴 하다.
갑자기 사람들이 저쪽으로 몰려가는데,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조합이 적절하다면, 똑같은 가구로도 다양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답니다.
본래의 용도를 벗어나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어... 멋진 말이긴 한데, 가구 이야기 맞아요?
네, 가구 이야기예요. 그럼 부디 전시회를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부담감을 완전히 털어 버린 JS 9은, 이제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잡담도 나눌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잔뜩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몸도 한층 더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으아아아 그렇게 고개를 숙이면...! 아아아알았으니까 빨리 고치세요!
DP-12 씨! 늦어서 죄송... 어라? 저 사람 어딜 저렇게 급하게 달려가는 거죠?
...코피까지 흘리네?
글쎄? 그런데 코피라니, 몸이 편찮은 와중에도 방문해 주신 고마운 분이었구나.
인간의 고집은 잘 모르겠지만요. 아직 배치가 안 끝난 것들은 이건가요?
응, 특히 이 옷장이 문제야. 대체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어.
아, 이거라면...
......
수고했어, 역시 JS 9이구나. 정말 큰 도움이 됐어.
아이 참, 부끄럽게 그렇게까지 말할 것까진... 그럼 먼저 가볼게요.
죄송합니다! 지금 정리할 테니 먼저 다른 부스를 방문해 주세요!
JS 9? 뭘 그렇게 급하게 뛰어왔어?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안 봤어요?
뚫고 오는 것만으로도 엄청 힘들었다고요.
고생했네. 그래서, 어딜 어떻게 수정하려고?
이 가구들이...
......
음... 이렇게 놓자.
어때요?
아까보다 훨씬 질서정연해 보여... 일반 가정 같은 느낌이야.
좋았어.
그럼 다른 데도 보러 갈게요. 힘내세요!
JS 9의 뒤늦지만 열정적인 지휘 덕분에, 전시회는 성황을 이루어 상품 판매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
지휘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전시회는 이미 막바지에 접어든 상태였다.
애써 제일 빠른 비행기를 타고 왔더니만...
벌써 거의 다 끝난 모양이네.
어차피 늦을 거였으면 그냥 느긋하게 올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지휘관님.
아니, 수고한 건 너희들이지.
상황은 어때?
성황리에 마무리 중입니다.
초반엔 다소 말썽이 좀 있었지만, 금방 해결했고요.
방문객 수와 판매량 전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어요.
임무 대성공이라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마무리 작업이 남았지?
나도 도와줄게.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나저나,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걸?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좋은 일이요?
JS 9은 잠깐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했다.
...아뇨, 그저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그보다, 전시회의 자세한 경과를 보고드리겠습니다.
응? 아, 그래, 보고해 줘.
누가 봐도 정말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JS 9 본인은 알지 못했다.
지휘관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가 즐거워하니 덩달아 흐뭇해졌다.
맞다, 지휘관님.
응?
다음에 또 임무를 내리실 때...
조금은 제 능력 밖이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하... 알았다, 고려할게.
그 말을 듣고 나니, JS 9이 즐거워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발전했음을 실감한 순간, 그 누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